나의 이야기

우리의 늙음을 위하여

숨그네 2022. 8. 6. 14:02

오십의 나이에 살아온 날들을 반추하고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기 위해 제주살이를 결심하고 떠났다던 가까운 어떤 시인의 말을 사십대에 들었을 때  나는 그럴 수 있겠다. 그 나이가 갖는 늙음의 정도가 엄청 커 보였다.  사십의 나이에 내 아버지는 어린 자식들을 두고 병환으로 돌아가셨으니 나에게 40의 나이는 죽는 나이였으니까. 벌써 40을 넘겨 오십대 후반을 살고 있는 내 자신의 실존이 가끔은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살 더 많은 좋아하는 소설가 언니는 얼마전 자신이 죽으면 남겨놓은 수천권의 책들을 처리하기가 난망하다고, 자식들에게 폐가 될 수 있다며 장서들을 정리해서 출판사와 알음알음 헌책방에 기증했다. 50의 황망한 나이에 살고 있으면서 십대 이십대 삼십대 이렇게 10년 단위로 묶여진 나이별 생태와 삶의 태도 경향 지수는 그저 통념이거나 사회적인 통계일까? 신체나이에 대한 어떤 특정한 일반화논리와 신화화는 어쩜 개별적인 인간들의 삶의 모습을 크게 왜곡시키거나 평가절하 시키는 것은 아닐까. 나의 신체적 정신적 늙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 리듬에 맞춰 자신을 조금씩 맞춰 나가는 것이 더 바람직하게 여겨진다. 어쩜 나도 주변의 나이로 인해 주어진 확정적인 개념에 사로잡혀 내 자신을 혹은 내 주변의 사람들을 평가하고 그의 개별성을 지웠는지도 모른다. 늙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은 이미 늙어있는 노인들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늙지 않고 살 수 있을 것처럼  여성의 젊은 피부와 늘씬한 몸매 가꾸기가 거대 화장품업계와 바이오 업계의 상품화 대상이 되고 늘상 거울을 들여다 보며 거울아 거울아 나는 여전히 젊지? 라며 확인을 받고싶은 심리적인 병리 현상을 낳고 있는 듯하다. 예전에 길지 않은 외국 경험을 몇번 하면서 인상깊게 보았던 것은 우리가 복지선진국가라고 생각 하는 곳에서는 노인들과 아이들 장애인들이 제일 먼저 배려의 대상이 되고 그들의 복리를 위한 정책들이 실제로 눈에 보이게 정착되어 실행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례로 가장 근사한 식당이나 카페는 연로한 노인들이 훨씬 더 많이 자리를 차지하고 여유있게 시간을 보내며 지인들과 오랫동안 담소를 나누는 모습, 공원의 좋은 벤취에 앉아 두툼한 책을 끼고 천천히 자연속에서 독서에 빠져들어 있는 할머니들의 모습. 내셔녈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는 그림들 앞에서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친구들과 함게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감상하는 모습. 젊은 나이에 어울릴 것 같은 이것도 편견이지만 화려한 색상의 정장과 구두를 차려입고 점잖하게 유유히 산책하는 모습. 나는 그런 모습이 노년이 내 모습이 되기를 바랬다. 그렇다해서 늙음에 대한 두려움과 낯섬이 없겠는가. 우리 모두는 늙고 병들고 그리고 죽는다. 하지만 과도한 젊음에 대한 집착과 예찬이 자연스러운 생명체의 변화과정의 마지막 단계인 늙음에 대한 두려움과 낯섬조차도 피해야 할 역병처럼 취급되는 사회에서는  늙고 병듬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와 긍정 그리고 연민이 깃들 수 없을 것 같다. 이 문제는 결국 인간들이 죽음을 어떻게 존엄하게 맞을 것인지. 죽음의 모습이 어떻해야 하는지 그리고 장례는 또 남겨진 이들을 위해서 어떻게 준비되고 애도해야 하는 지 와 같은 사회적인 문제들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어제 더위를 피해 수영장에 갔다. 초로의 노인 한분이 수영장 귀퉁이에 쪼그려 앉아 불편한 모습으로 수영복을 주섬주섬 가방에 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밟혔다.  안쓰럽고 짠했다.
왜 당당하게 넓은 공간을 이용하지 않고 구석대기에 가셔서 저렇게 웅크리고 있나. 그곳이 마치 자신의 자리인냥.
노인이 당당하게 수영도 하고 젊은이들 처럼 자신의 모습을 부끄럼없이 보여주고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우리들의 늙음을 자연스럽게 덜 두려워하며 받아들이는 그런 사회를 위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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