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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제주여행 엿새 (올래 11길 신흥 무릉 곶자왈)

숨그네 2022. 10. 20. 13:44

올레 11코스.. 드뎌 올레를 다시 시작하기로 작정하고 “올레패스” 핸드폰에 깔고 올레 책자를 사고, 올레기념품가게에 들러 디자인이 너무 세련된 스카프며 양말등속을 사서 마치 올레 21코스를 완주하여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고 말겠다는 다짐으로 단단히 준비하고 나선다. 산티아고 길을 꼭 걸어보는 것이 버킷리스트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너무나 아름답게 자리한 제주 올레 코스 완주는 당연한 것이라 용감하게 생각하며.. 올레 11코스 모슬포 하모체육공원시작점에서 먼저 한컷 찍는다. 모슬포는 방어와 자리돔잡이로 유명한 모슬포항을 향해 걷는 길목에 있다. 모슬포는 ‘못살포(못살 포)라고 부를 정도로 바람이 심하기로 유명한데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피바람 눈물바람이 불었던 곳이고 그 속에서 자신들을 지켜내기 위해 고통과 인내속에 투쟁했던 4.3관련 유적지가 곳곳에 있는 슬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모슬포항을 지나면 해안로로 나와 산이물을 지나간다. 암반수마농마을 까지 검은 바위 해변길이 호젓하고 구불구불이어져 있다. 이곳에서 섬안쪽 마을로 접어들면 바람 때문에 귤농작물을 재배할 수없어 대체농으로 심은 마늘밭이 밭담으로 둘러 싸인 넓디 넓은 밭길이 쭉이어진다. 강풍주의보가 발령된지라 몸이 바람에 밀리면서 그렇잖아도 바람이 많은 모슬포항 길을 힘들게 걷는 올레길의 묘한 즐거움 겸 힘듬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제주도 올레길의 가장 큰 매력은 이곳에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아온 제주 본토배기 들의 속 살림을 들여다보고 그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낮은 현무암 돌담과 슬레이트지붕을 얹은 소박한 살림살이. 대부분의 제주집은 바람이 많아 화산암을 이용해 집 외벽을 치는데 좀 다른 모양이다. 가난한 살림살이와 그 살림을 살아내고 있는 부지런하고 악착스러운 제주민들의 모습을 슬핏 볼 수 있어 마음이 겸허해진다.

평야지대 한가운데 우뚝 솟은 모슬봉의 모슬은 ‘모래’라는 뜻의 제주어인 모살에서 온 말이라 한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봉수대가 있었다 한다. 이길을 개발한 김철신씨에 의하면 이곳은”바람의 코스”라고 하며 한많은 제주민들이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며 겪어낸 맵디 매운 인생살이들이 이곳에 있다한다. 그리 험하지 않은 길을 오르다 보면 숲에 나무들이 뺵빽하고 흙길 옆으로 고사리와 풀들이 우거져 있다. 모슬봉 꼭대기까지는 군사지역으로 분류되있어 가지는 못한다. 그 곳에서는 제주 남서부 일대의 오름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고 하는데 아쉽다. 모슬봉과 그 일대는 지역 최대의 공동묘지가 조성되어 있어 우수개소리로 11코스는 삼분의 일이 공동묘지투어 이네 라며 웃는다.

느긋하게 길을 걷자는 뜻이 있는 재주 올레의 상징 안내인 간세 와 안내표식기. 제주올레를 세계적 트래킹코스로 만들어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올레 간세와 표식기를 이렇게 제주스럽게 세련되게 만든 사람들이 참 고맙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세계적일 수 있는 것.


제주올레인들이 자연을 아끼는 마음으로 제작한 폐타이어를 업싸이클링한 의자도 참 맘에 들었다. 현명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참 많다.

모란봉에서 내려오면 보성리로 제법 너른 밭길이 이어지고 사방은 모두 마늘밭이다. 보성리는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이고 토질이 좋아서 예부터 농사가 잘되어 잘사는 마을이라고 한다. 다만 태풍이 지나는 길이고 한라산과 산방산의 바람이 모이는 낮은지역이라 늘 거센 바람이 분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의 조카딸이자 백서사건으로 순교한 황사영의 아내로 바람의 땅 대정읍에 유배되어 관비로 살다가 생을 마감한 정난주 마리아가 묻힌 정난주 마리아 묘를 먼 발치로 보면서 꽤 긴 아스팔트 길을 걸어서 추사 김정희이 유배지인 추사적거지를 지나서 신평편의점까지 줄곧 걸어간다.

제주에는 서럽도록 아름다운 자연의 설치물이 많지만 그곳에 오랫동안 살아온 제주인들의 토속적인 삶의 지혜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 중의 하나가 돌담, 산담, 밭담일 것이다. 자연에서 주어지는 재료로 이렇듯 삶의 변경을 아름다이 가다듬는 제주민들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예술감각에 저절로 자잘한 웃음이 새어나오면서 감동스럽다.
그 안에 삶이 있다. 예술 따로 삶 따로가 아니다. 거칠한 돌들을 노동으로 거칠해진 손으로 옮겨와 바람에 맞서기 위한 돌담들을 이렇게 솔기 잇듯이 쌓아놓은 그들의 손길이 예술아니고 뭐 이겠는가. 밭담안에 마늘 꽃이 앙증맞게 피었다.

드뎌 배고픈 배를 움켜잡으며 바람을 맞고 걸어온 아스팔트 투어의 끝 무렵에 위안처럼 신평 올레 회장님이 운영하신다는 식당에 당도한다. 회장님이 혼자서 끓여서 서빙까지 해 준 고기국수는 그야말로 꿀맛이다. 친절하게도 오느라 고생했죠. 이곳부터는 곶자왈 숲길이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이렇게 위안의 말씀을 건넨다. 아휴. 힘들다



제주 올레길 11코스의 하이라이트인 무릉 곶자왈. 대략 5킬로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이가 긴 곶자왈이라한다. 그래서 여름에는 오후 4시 이후에 겨울에는 오후 3시 이후에는 진입하지 않는게 좋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길은 대낮에도 정말 깜깜한 길이 한없이 이어지는 숲길이라 혼자라면 좀 무섬증이 드는 곳일 수 있다. 곶자왈은 나무와 덩쿨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 수풀같이 어수선하게 된 것을 일컫는 말이다. 화산이 분출 할 때 점성이 높은 용암이 크고 작은 덩어리로 쪼개지면서 분출하여 매우 두껍게 쌓인 곳이다. 빗물이 그대로 지하로 스며들어 깨끗한 지하수를 품고 있다. 보온 다습한 효과가 있어 곶자왈은 북쪽한계지점에 자라는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남방한계지점에 자라는 한대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세계 유일의 독특한 숲이라 한다. 용암이 굳어 생긴 바위 위로 흙이 덮이곳 생명이 다시 움트기 시작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동안 수 많은 생명들이 서로 어울려 생명의 신세계를 이룬 곳. 이곳 신평 무릉 곶자왈은 제주에서 제일 먼저 공개되었다 한다.


무릉 곶자왈에는 정개왓이라는 정씨의 밭이라는 뜻의 너른 평지도 있고 지붕을 잇는데 쓰는 띠 (새)를 일군 곳들이 있다. 밭을 일구느라 작은 돌맹이들을 군데군데 탑처럼 쌓아 놓은 곳도 눈에 띄어 ‘아 이런 어둑한 숲길 깊숙이까지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경작하고 살았구나’라는 생각에 숙연한 마음이 든다.


무릉 2리 마을 입구에 세워진 43위령비. 1948년 5월 25일 새벽 4.3 항쟁으로 목숨을 잃은 동네 청년들의 무고한 희생을 기념하고 그 뜻을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위령비. 제주 올레를 하다보면 언제나 마주치게 되는 수없이 많은 학살터와 그를 기리는 위령탑과 유적지. 오늘의 제주는 우리에게 영원히 끝나지 않은 역사적 비극의 의미를 계속해서 묻고 있다.

무릉리는 무릉도원을 연상시키는 참 사랑스러운 마을 이름이다. 이곳에서는 폐교를 복합문화공장으로 재활용하면서 무릉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꾸러미로 묶어 회원들에게 전국으로 배송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다양한 농산물을 재가공하고 생산하는 공정들을 함께 배우고 익히는 문화농장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 농촌의 공동체 문화를 되살리는 유의미한 활동이라는 생각이 미치자 나도 이곳에서 살고싶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나이들수록 자신의 몸을 이용해 나를 넘어선 공동체를 위해 무언가 할일을 하는 활동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참 멋진 공간이다.

끝은 새로운 시작으로 가는 길이다. 11코스를 완주했으니 무릉에서 끝난 이곳은 다시 12코스로 시작되는 길목이기도 하겠다. 다음의 걸음이 있어서 덜 아쉽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