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다

아버지는 백운산에 가장 오래 있긴 했지만 이산 저산 떠돌며 48년 겨울부터 52년 봄까지 빨치산으로 살았다. 아버지의 평생을 지배했지만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던 건 고작 사년뿐이었다. 고작 사년이 아버지의 평생을 옭죈 건 아버지의 신념이 대단해서라기보다 남한이 사회주의를 금기하고 한번 사회주의자였던 사람은 다시는 세상으로 복귀할 수 없도록 막았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는 고작 사년의 세월에 박제된 체 살았던 것이다. 아버지는 더 오랜 세월을 구례사람으로, 구례 사람의 이웃으로 살았다. 친인척이 구례에 있고 칠십년지기 친구들이 구례에 있다. 아버지의 뿌리는 산이 아니다. 아버지의 신념은 그 뿌리에서 뻗어나간 기둥이었을 뿐이다. 기둥이 잘려도 나무는 산다. 다른 나무 가지가 뻗어나와 새순이 돋고 새 기둥이 된다.(253쪽)
정지아의 “빨치산의 딸”을 거의 30년 전에 읽었을까. 내가 젊었을 때 직장생활을 했던 곳이 구례였었고 정지아가 살던 곳이 토금리며 중산리계곡, 그리고 반내골등의 지명이 너무나 익숙하고 그곳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여서 친근하기도 하고 그 당시 나는 사회과학적 인식을 할려고 노력하고 공부하는 중이었으니까 당연히 소설읽기도 경향적일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나는 이미 제도권 교육으로 기울어진 의식의 편향을 저울추를 맞추듯 금기시 되던 다른 한쪽에 대한 관심과 이해로 균형을 찾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거의 악마시되거가 적대시되었던 혹은 금기시되었던 이념을 위해 자기 청춘과 목숨을 내건 사람들의 삶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왜 그들은 역사와 인민대중을 위해 하나 뿐인 목숨을 바쳐 헌신했지만 지금껏 빨갱이라는 도깨비같은 말로 지워지고 단죄되는가.
어려운 말이 아니라 아주 단순한 언명이 가장 강하고 확고한 효과를 내는 것 같다. 특히 그것이 역사적인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어느 한쪽에 의해 조작된 허위의식으로 무장해 트라우마를 오히려 살찌우고 무의식적인 두려움을 자극하여 마치 도깨비처럼 의식의 의지적인 판단을 멈추게 한다면 그건 정말 상상을 뛰어넘는 효력을 발휘 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사람이 살고 있다. 사람은 당연히 세상에 대한 해석을 할 수 밖에 없고 그것에 대한 자신의 판단근거인 생각, 사상. 어렵게 말하면 이데올로기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사람이다. 입력된 정보를 그저 처리하고 배치하는 알고리즘적인 기계가 아닌 정서적인 판단과 그로인한 행동을 이끌어내는 사고의 영역을 가진 인간이 세상을 살고 있다.
그 누구도 생각을 담아내는 그릇없이 살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게 대다수 힘없는 인민대중의 삶에 연민을 느끼고 연대하여 대다수의 삶을 풍요롭게 할려는 쪽으로 생각의 방향이나 좌표가 기울어있거나, 권력과 개인의 극단적인 사유화를 위해 작동하고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우익적인 사고방식이든 우리 모두는 자신이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정치적인 입장이 있다. 다만 허깨비처럼 권력을 쟁취한 사람들이 반대편을 지우기위해 허위의식을 만들어내 악마화 시키는 것은 정말 위험한 것이다. 이미 세상은 편향되어 있다.이 편향된 세상에서 어떤 생각이 바른 방향으로 설정되어있는지를 결정하는 근거에 대해 숙고해야 할 것 같다.
정지아의 아버지 처럼 무고하게 죽임을 당한 수없이 많은 젊은 빨치산들의 삶을 지켜보고 그들에게 용납되지 않았던 세상속으로 다시 걸어들어오면서 겪어내야 했던 수없이 많은 오욕과 상처의 개인사를 겪었던 이들의 삶이 제대로 평가되고 오롯이 왜곡되지않고 인정되기를 바란다.
정지아 아버지는 그저 동네 머슴처럼 민중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낮은자로서의 일을 묵묵히 하면서 본인의 신념을 지켜낸 분이다. 그의 죽음이 그 삶을 대신해서 보여주고 있으니까. 수없이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에 불려나와 그와 함께 했던 귀중한 인연들을 증명하며 그를 추모하고 있으니까.
정말 나도 그 누구의 말처럼 웃음반 울음반으로 책을 읽었던 것 같다. 너무 재밌어서 주변의 문우들에게 권한 책이다. 정지아 작가는 아버지의 삶을 작가적인 소명의식과 책임감이라 할까 그런 힘으로 무거운 주제를 재치있고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담은 입담으로 가볍게 잘 풀어서 소설화한 것 같다. 그의 소설에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