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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개를 추억함

숨그네 2022. 11. 5. 15:17
상실은 정리하는 역할을 한다. 있던 게 없어지는 것이니까. 먹이고 , 산책하고 , 목욕시키고, 안아줄 대상이 하나 없어지는 것이다. 소중히 여기고 , 걱정하고 , 동정하고, 위안을 얻을 지각력 있는 생물체가 하나 없어지는 것이다. ㅡ 매리 올리버

죽음은 죽음을 덮지 못한다. 하나의 죽음은 고유하게 개별적으로 의미가 있고 남겨진 이들의 마음을 슬픔과 회한으로 가득 채운다. 10.29 이태원 참사로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너무나 아까운 목숨들로 마음과 몸이 마르고 참담함과 슬픔 그리고 분노로 남겨진 자의 삶 또한 죽음과 깊게 맞닿아있다. 이 죽음들을 너머서기 위해선 그들의 죽음의 원인을 반드시 제대로 알아야 하고 그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다시 그들의 죽음이 정치적으로 왜곡되고 그들과 유족들의 명예를 훼손하며 그들을 비난하고 자의적으로 평가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책임회피를 하기 위해 잘못된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교활하고 잔인한 희생양 찾기에 절대 부화뇌동하지 않아야 한다. 과거로부터 학습된 이성으로 눈과 귀를 크게 열고 지켜볼 것이다. 경제성장을 턱 없이 따라가지 못하는 정치적 미숙과 사회적인 야만성은 경제의 성장이 다수의 국민을 복지의 사각지대로, 나눔의 불공정, 상대적 소외와 박탈감 그리고 소수의 부의 독점과 차별의 고착화를 통한 타인에 대한 공감력 부족과 특권적 선민의식, 이를 정당화시키는 법과 경제논리가 동력으로 작동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누린 자들은 이런 사회적인 참사에서도 제대로 슬퍼하거나 미안함을 느끼지 않은 도덕적인 무감각을 갖는 것일 것이다.
독일인 아이히만의 유태인 학살 재판을 기록한 글에서 유태인계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그들의 이 무감각을 사유의 부재에서 온다고 했다.
사유의 힘은 결국 상처받고 좌절한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이유를 확인하고자 혼신의 힘으로 벽을 밀어내듯이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생존의 힘이기도 하니까.
참담한 죽음과 함께 15년간 우리 가족으로 살았던 순둥이 강아지 순이가 무지개 자리를 건너갔다. 가족들은 슬픔에 슬픔이 더해지는 상황에서 조심스럽게 순이를 애도하고 있다. 죽음은 가까울수록 슬픔은 더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절감한다. 사라지는 것들 흩어지는 것들, 그건 단지 다른 모습으로 바뀔 뿐.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순이는 더 많이 시랑 하지 않은 것,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나를 돌아보게 하고 그 때문에 더 아프다. 그리고 나 보단 그 죽음이 소환하는 함께 한 추억으로 마음이 찢어질 다른 가족들을 생각하면 더 아프다
이태원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우리 곁에 순하게 머물다 간 순이의 명복을 빈다.

떠나가버린 작은 흰 개, 우리 삶의 모든 음악은 사라져 버리거니 낡은 것들에 있다. 신들은 행위를 하고, 우리는 그 행위의 목적은 알지 못하지만 이것만은 안다. 세상은 우리의 깊은 관심과 소중히 여김의 소용돌이와 회오리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
ㅡ매리 올리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