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레비나스 평전-타자와 차이의 철학자

숨그네 2022. 12. 10. 20:58

블랑쇼가 말한 것처럼 그는 유대인이기 이전에 이미 유대인이었다. 이런 선행성은 그의 본성에 뿌리내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성되어 있었고, 아직 발생하지 않은 이타성에 대한 책임은 피할 수 없으며 반드시 응답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유대인이었고 그의 태생적 역사는 그의 철학과 사유체계를 형성하는데 이미 결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디아스포라로 러시아를 비롯한 전 유럽에 이방인처럼 내몰리며 변방에서 생존하면서 갖은 모욕과 인간적인 무존 재성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그저 실존적으로 놓여 있던 거였다. 모두가 그렇듯이 서적상으로 중산층 계급에 속한 그의 부모들은 아들에게 공공교육기회가 박탈된 유대인들이 갈 수없었던 러시아 고등학교에 보냈고 러시아 리투아니아인인 그가 유대인으로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사회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레비나스의 부모님과 친척은 결국 나치의 국가사회주의의 희생양으로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해되었으며 다행히 레비나스는 프랑스로 유학을 간 덕분에 그곳에서 살아남게 된다. 그렇지만 그는 살아남은 자로서의 죄책감과 고통 속에서 일생을 무한한 의미 탐구와 무한한 책임의 연속으로 일관한다. 러시아의 연방이었던 리투아니아에서 추방되고 우크라이나로 유형을 당하고 이어서 가족과 이별하여 프랑스에서 이민자로서 살아가야 했던 정처 없음이 레비나스의 성격 형성과 철학적인 지향성을 결정짓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음은 자명할 터이다. 그의 철학에서 타인을 향한 윤리적인 책임의식과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한 공감은 그런 그의 성장배경에서 연유된 것 일 것이다. 이 평전의 저자는 레비나스의 유대주의는 또한 논리적 구성에 대한 취향, 학구열, 노력을 바탕으로 하는 지성주의, 엄격함, 무미 건저함, 감정이 결핍되어 있는 신랄함”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레비나스의 정신적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는 어렸을 때부터 탈무드와 러시아 작가들 특히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에 심취해 있어서 종종 자신의 논지를 펼 때 그의 작품에서 많이 인용하곤 했다고 한다. 특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한 구절 “ 죄인들이다. 우리 모두는 죄인들이다. 그리고 나는 타인들보다 더 큰 죄인이다”라는 구절을 좋아했고 여기에서 그가 표명했던 윤리철학과 정확히 일치하는 측면이 보이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레비나스가 받은 교육은 이 세상에서 책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었다. 텍스트란 사람들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지식에 이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의 사유적 방법론은 항상 해결되는 변증법적 모순 속에서가 아니라 대립된 것들의 공존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형성되었으며 이것이 그의 삶 전체를 지배한 태도였다.
다보스 철학자 토론회에서 만난 하이데거는 레비나스의 철학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그가 프랑스에 소개해서 하이데거의 입문자들의 길잡이 역할을 한 것으로 주목받게 되지만 나치의 국가사회주의에 중요한 이데올로기적인 준거를 제공했다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하이데거는 이후 레비나스에겐 정신적인 부담감으로 남는다. 하이데거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논쟁의 중심에 놓은 철학자로서 “나의 모든 연구를 관통하는 유일한 노력은 바로 존재와 그것의 구조 그리고 그것의 진리 문제가 전개될 수 있는 지평을 정복하는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한다. 레비나스는 다른 철학자들과는 다른 이력으로 자신만의 철학적인 명제들을 준비한다. 그것은 자습감독 및 사무실에서 행정업무를 당당하기도 하면서 철학강의를 담당하는 교사로 오랫동안 일했다는 것이다. 낯선 프랑스에 정착한 유대인 이방자로서 생계를 책임져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유대인 연맹인 AIU에서 연맹 소속 학교와 학생들을 관리하는 행정적인 일에 봉사한다.
레비나스의 주요 철학적인 요소 중 하나인 “ 상호 주관성”은 초월의 장소이고 거기에서 주체는 주체로서의 구조를 그대로 보존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로의 숙명적인 되돌아옴을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레비나스는 디아스포라로부터 태어난 이스라엘의 재건에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이는 시오니즘을 외치며 팔레스타인들의 추방을 주장하는 강경한 유대주의와는 항상 거리를 유지하였다. 그는 유대인 지식인으로서 유명한 탈무드 강연자로 활동하면서도
이스라엘로 이주하지 않았으며 시어니스트들과는 간격을 꾸준히 유지한 것 때문에 오해와 갈등을 겪기도 한다.
그는 러시아 출신 합리주의자이자 감정적인 반카발주의자였으며 유대인 도덕주의자이자 후기 하이데거 주이자 이기도 했다.
또한 그는 유대주의는 종교 그 이상이다. 그것은 존재에 대한 이해이다” 라며 유대주의에 형이상학적인 차원을 부여했다.
그의 철학에서 타자는 중요한 요소였으며 그는 사유하는 것은 자아를 넘어서 외재성을 사유하는 것이며 타자에게 응답하는 것이다. 도덕적인 존재만이 존재할 뿐이다. 존재의 의미는 윤리학의 질서에 속한다. 고 역설한다.
그의 주저인 “ 전체성과 무한”에서 레비나스는 전쟁을 피할 수 없었던 서구 형이상학의 상징적 존재인 헤겔의 전체성을 공격함과 동시에 서구 형이상학의 이론적 역사적 필연성을 다시 정립하고자 했다. 그는 사람은 사회 속에서만 타자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는 뒤르켐의 사회학과 더불어 레비나스의 독창성은 “나가 무한한 대화 속에서는 절대로 ‘너’를 만날 수 없다는 통찰에 있다. 타자에 대한 사유는 적대관계나 분쟁의 사유에서가 아니라 영원한 평화에의 기도에서 나타난다. 언어는 더 이상 소통을 구축하지 못하며, 대신 분리와 단절을 만들어낸다. 나의 자유는 타자에 의해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타자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에고이즘 속에서 희석된 ㄴ자유는 타자 덕택에 전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타자는 나로 하여금 존재하게끔 하는 자이다. 그는 나에게 말을 건네는 자로서 나를 존재케 한다.
“ 이 전체성과 무한”으로 그는 프랑스 대학의 교수 자리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그는 엄마의 소원대로 소르본 대학의 철학 교수가 60대에 된다.
소르본 대학에서의 레비나스는 늘 그랬듯이 교수들과의 사교활동을 즐기지 못하고 다소 비사교적이었으며 수줍음이 많고 때론 정서적으로 불안해하고 감정적으로 쉽게 격앙되는 다혈질적인 면모도 보였으며 강의할 때는 언어가 갖는 애매함을 떨쳐버리려는 듯 조금씩 주저하는 어투로 강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레비나스는 화를 잘 내고 사회적으로는 좌파에 속했으며 어린 시절에 겪은 박해의 아픔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레비나스는 80세에 이르러 당시까지 해온 연구와 자신의 신념으로 인해 미디어와 지식인들 사이에서 큰 명성을 얻게 된다.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윤리와 관련된 그의 저서들이 현대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레비나스는 유대 메시아니즘의 관점에서 그리고 타자에 대한 책임의 관점에서 마르크스주의 전개를 지켜보았고 유대인의 신중함과 개인적인 망설임으로 60년대 정치적인 참여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마르크스주의를 행동을 이끌어내는 도덕으로서 받아들였다.
당시 마르크스주의는 하나의 이론이나 이데올로기가 이상이었다. 그것은 타자에 대한 헌신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비록 스탈린주의가 이 모든 것을 위태롭게 했지만 여전의 마르크스주의 속에는 타자를 향한 이러한 비약이 존재했다. 유대교의 휴머니즘을 철학의 본질적인 구성으로 가져가면서 레비나스는 휴머니즘과 보편적 긍휼로서 유대라는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간다. 유대교의 휴머니즘이란 그에게 모든 경험의 의미를 인간들 사이의 윤리적 관계로 이끄는 데 있다는 것이다.
레비나스는 서구 철학의 전통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며 인식하는 주체의 지평에서 모든 것을 재단하고 비틀어버리는 폭력성이 서구 철학을 지배해왔음을 비판하면서 그의 철학적인 주요 명제들을 다루었다. “ 제가 동생의 보호자입니까?”라는 카인의 부르짖음에 내포된 타인에 대한 책임문제 곧 윤리학의 문제에 직면한 레비나스가 바라본 것은 다름 아닌 타인의 얼굴이었다. 그 는 타인의 얼굴과 직면했을 때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사유의 공통성을 확신했다. 이 확신이 있었기에 “사랑의 지혜를 가지고 있지 않은 불완전한 존재로부터의 해방”을 외치를 그의 “타자의 윤리학”을 탄생시켰다.
수동성, 나약함.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 참을성에 대한 새로운 성찰…. 레비나스가 던져준 명제들을 21세기에 다시 사유하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며 그에 대한 평전에 실린 글 중 내게 다가왔던 내용을 정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