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노년의 의미에 대하여

숨그네 2022. 12. 24. 10:43



청춘을 그리워하고 중년을 기억하며 노년으로 살아가는 준비를 하는 시기에 와 있는 것 같다. 나이라는 굴레에 얽매이지 말고 인생을 살아야지 라는 다짐은 한낫 힘없고 나약한 다짐에 그치게 하는 말인것 같다. 날마다 살아내는 하루하루가 쌓여서 어느 새 일정한 나이대에 다다른다. 육체의 늙음과 정신의 느슨함을 선택이 아닌 필연적인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에 늙음마저 젊음이라는 절대적인 가치기준에 빗대 평가절하되어 싸구려 염가판매되는 상품처럼 취급되는 것이 좀 슬프다. 철학자 김진영의 말투대로 표현하자면 슬픈 늙음이다. 늙어보지지 않기 위해 눈처짐 수술을 하고 주름진 이마를 펴기 위해 보톡스를 맞고 삐꺽대는 관절을 위해 적절한 운동법을 찾아 유트브를 찾고 비문증으로 늙은 수정체를 위해 안과수술을 감행해야하는 끊임없이 자기갱신으로 젊음을 회복할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정상인지 아니면 비정상인지 모를 지경에 이른다. 젊음 자체를 우상화하고 신비화시키는 자본주의적인 신체관리가 요즘의 마케팅이니까. 나도 이런 상품경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런 구도에서 자유롭지 않은게 사실아닌가. 그래서 요즘은 우울이 너울처럼 걸려있다. 그러던 중 한겨레 신문에 실린 중견사업가로 은퇴해서 노년의 삶을 준비하고 있는 분의 글 중 얼마전 제주여행에서 본 독일의 판화가이자 조각가인 케테 일기장에 쓰인 구절이 위로와 새로운 인식을 안긴다.

“ 노년은 창춘이 가졌던 힘의 나머지가 아니라 온전히 새로운 ,그 자체로 존재하는 커다란 무엇이다.
아들 페터의 죽음이 나를 바깥세상으로의 문을 닫게 했을 때였다 나는 내안의 무엇인가가 새로와 지는 것을 느꼈는데 그것은 늙음이란 지속적인 발전이라는 의미였다 지금 나는 다시 바깥을 향해 살고 싶다”
눈앞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살 수 없다 나의 정체성을 과거에 고정해 놓으면 불행감에서 나올 수 없다. 나의 정체성이 흔들릴 때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에고 확장이 아니라 에고 수척으로 경험되는 은퇴와 노화는 비로서 내 자신이 하는 얘기에 귀기울이게 되면서 나와 친해지게 된다. 은퇴로 사회적 성취의 한계를 느끼면서 이를 견디고 버틴 후 그것을 받아들이는 노년은 삶의 현재성을 배울수 있는 축복 같은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