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제주여행 둘째날 -큰지그리 오름과 가시리마을 유채꽃 프라자

2월의 제주라. 몇 년 전 직장생활을 할 때는 봄방학기간이라 지인들과 짧은 일정으로 제주에 두세 번 정도 왔었다. 2월의 제주는 겨울에서 서서히 벗어나면서 무심한 듯 봄꽃을 준비하고 있었다. 중산간지대는 좀 더 따뜻한 해안지대에 금세 피어있는 유채꽃을 아직 볼 수 없다. 대신 새순이 움트는 훈훈한 냄새와 온기를 느낄 수 있다. 화산지대에 형성된 독특한 제주만의 곶자왈 숲과 목초지 그리고 그들의 생태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그러면서도 4.3 때 소개령이 내려 불타버린 제주민들의 잃어버린 고향과 터를 생각하면 왠지 숙연해지고 여행자로서 마음 한편이 미안해지곤 한다. 3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오름들을 품고 있는 제주의 오름 중 제주시 조천면 교래리 교래자연휴양림에서 출발하는 큰지그리 오름을 오른다.
교래자연휴양림은 난대와 온대수종이 공존하는 독특한 식생과 식물대를 갖고 있으며 서식 식물종이 다양하고 원시림이 우람하다. 산책로 입구에는 1940년대 산전을 일구었던 산전터와 1970년대까지 가마를 만들었던 가마터가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 교래자연휴양림은 우리나라 최초로 곶자왈 지역에 형성되었다 한다. 야영지구와 취사지구, 그리고 교육지구와 무대들이 오름 산책로를 따라 쭉 편재해 있다.


큰지그리오름은 곶자왈 답게 가시나무 덩굴과 첫남성 식물대 그리고 이끼와 같은 지피류 식물들이 넓게 분포되어 있어 아바타 배경으로 나오는 원시림을 보는 듯하다.

따비를 이용해 밭을 일구고 (산전) 그곳에서 수확한 잡곡을 보관하고 주변 방목지에 있는 마소로부터 곡식을 보호하기 위해 오두막집을 짓고 작물들을 돌본 움막터. 척박한 곶자왈에 삶의 터전을 일구고 오랜 시간 살아왔을 제주민들의 강한 삶의 의지와 노동의 숨결들이 그대로 보존된 곳이기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이 귀여운 녀석은 "너도바람꽃"이다. 잡풀 속에 숨어있다가 내 눈에 발각... 어린 생명들이 가냘프게 꽃봉오리를 열어 방문객의 시선을 훔친다.


날씨가 화창하면 저 너머 한라산 정상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오는 길에 두 분의 오름 등산객을 만났다. 그들은 제주토박이라 했다. 오르지 않은 오름이 별로 없지만 큰지그리 오름을 가장 좋아하여 틈나는 대로 오른다고 하신다. 왕복 9킬로, 2시간에서 3시간 내외로 소요된다. 길은 오름이지만 가파르지 않고 산책 삼아 걸어도 좋을 정도로 야트막하고 다정한 오름이다. 정상에 가까운 곳에 삼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어 시원한 청량감과 마음이 탁 트이는 자연의 넓은 품을 느낄 수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알피니스트"의 주인공 마크 앙드레는 솔로 알피니스트로 캐나다의 로키 롭슨, 파타고니아 또래 에고, 그리고 수 없이 많은 고산을 홀로 로프로 없이 암벽과 빙벽을 동시에 혼합등반을 한다. 안타깝게 알래스카 주노 정상에서 하산을 하다 눈사태로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산속에 묻힌다. 그는 말한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위험과 스릴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외롭게 빙벽과 암벽을 혼자의 힘으로 타다 보면 그 순간 모든 것이 단순해지고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나 자신을 스스로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얻는 행복과 충만감은 다른 그 어떤 것과 견줄 수 없다. 그래서 산을 오른다. 그리고 산을 오르기 전 식사는 마지막 식사가 될 수 있기에 가장 좋아하는 것을 되도록 먹는다. "
그는 자신을 통제하는 것은 자신이 있었지만 자연은 통제 할 수 없었던 지라 그가 그토록 좋아하던 산에서 최후를 맞았다. 그의 삶의 여정에서 그를 돌려세울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게 그의 삶이었으니까. 그리고 엄마는 그를 지지하고 축복했다. 그의 엄마가 말한다. "그가 없는 생의 단계는 예상해보지 않았고 낯설고 고통스럽지만 적응해야 줘." 사랑이 무엇인지 가슴이 뭉클해진다.

2022년 10월에 올랐던 따라비 오름과 큰 사슴 오름을 뒤로 둔 유채꽃 프라자에 다시 왔다. 가시리 마을. 4.3으로 잃어버린 마을이 된 슬프지만 다시 일어나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연대와 힘이 느껴지는 곳. 그곳에는 세상에서 처음으로 가슴 벅차게 보았던 너른 갈대숲이 있다. 그리고 4월이면 유채꽃이 만발할 것이다.

기억투쟁 73년 제주 4·3에서 발간한 " 4·3이 머우꽈?" 에서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4·3에서 이렇게 말한다. 5.18 발포 책임자가 규명, 처벌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4·3 역시 가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조치가 취해진 적이 없다. 오랫동안 학살의 주역들은 참회가 아니라 4·3의 정신을 '빨갱이 사상"으로 매도하면서 자신들은 애국을 한 것이라고 반격하고 있다. 여전히 큰 권력을 가지고 주류행세를 하며 딴죽을 걸고 있다. 또한 분단과 전쟁을 막으려다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정당한 조명도 없다. 막연히 시대의 희생자로만 언급되거나, 심지어는 국가 권력에 도전한 범법자 취급을 받는다. 오늘도 4·3은 계속되고 있다. '전쟁불사'를 외치는 사람들과 '전쟁반대'를 외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말이다.
1947년 3.1절 대회로부터 시작된 4·3은 분단에 반대하고 통일된 나라를 염원하던 제주도민의 열망의 표현이었다. 4·3은 공권력에 의해 보호받아야 할 국민의 생명권이 무참이 유린된 역사이기도 하다. 4·3 희생자드의 원혼과 유족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인권, 평화, 통일의 나라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기억이 말살된 곳에는 역사가 없다. 역사가 없는 데는 인간의 존재가 없는 것이다.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은 사람이 아닌 주검과 같은 존재이다 반세기가 넘도록 기억을 말살당한 4·3은 한국 역사 속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입 밖에 내놓지 못하는 일, 알고서도 몰라야 하는 일인 것. 나는 이것을 '기억의 자살'이라고 부른다. 공포에 질린 섬사람들 자신이 스스로 기억을 망각으로 들이쳐서 죽이는 기억의 자살인 것이다 -김석범 (소설가)

<강요배 작. " 천명" 4·3 당시 초토화작전으로 마을이 불태워지고 쫓겨나는 아비규환의 장면을 형상화한 작품>

강요배 작. " 한라산 자락 백성" 5.10 단독선거를 반대하는 주민들이 산에 오른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