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의 봄

남해금산 -이성복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오 달이 품어 주었네
남해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이성복의 비극적 낭만주의 시 남해금산을 소환해 낸다. 남해금산 보리암을 찾아가는 길에 만난 기암괴석은 말 그대로 기기묘묘하고 신비롭다. 사랑을 찾아왔지만 사랑을 잃고 홀로 남은 사람에게는 처절한 포옹으로 돌들이 읽히고, 가족의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은 마음을 다해 손을 모아 극락장생을 염원하는 신령한 토템으로 읽히고, 우리처럼 책을 읽고 올바른 삶의 길이 무엇일까 지지부진, 여태껏 질문하고 있는 공부쟁이들에게는 금산의 돌들은 요지부동으로 읽힐까. 명랑책방의 첫 독서나들이는 남해 보리암에 있는 무심하면서 실타래와 같은 이야기를 품고 있을 것 같은 돌에서 시작되었다.

이미 우리곁을 떠난 철학자 김진영의 "상처로 숨쉬기"로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은 쉽지 않다. 도망쳐서 외면하고 싶고 안전한 곳으로 가고 싶어 진다. 그것은 허위일까.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자기 분열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사람들은 도피하고 싶은 욕망도 있지만 자기와 대면하고 길을 찾으려 하는 의지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 길은 상처로 얼룩져있고 그 상처를 고통스럽게 바라보았을 때 조금씩 빈틈을 만들어 숨을 쉴 수 있게 한다. 그 숨 쉼이 나만의 해방구가 아니라 결국은 사람들로 이어지고 길을 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 우리는 긴 시간을 밤새워 이야기한다.

아마 우리도 언젠가는 저 멀리 가뭇거리는 섬들처럼 그리고 바다 멀리 떠도는 물길처럼 이 세상에서 멀어져 갈 것이다. 그 멀어짐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데 무거운 책을 읽으며 길을 묻고 있고 숨을 쉬기 위해 애쓰는 이들의 마음이 쓸쓸하고 슬프다. 나는 그것을 책 읽는 이들의 숙명이라 칭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길고도 가뭇없는 것들을 놓지 못하고 눈을 비비며 책 속의 난제들을 끌어안고 싸우고 있을 수가 있을까.

이 바닷가 작은 마을은 우리에게 서사적인 충동을 일으킨다. 물이 빠져나간 곳에 덩그런히 남아있는 고깃배, 미역일까 고시라기일까 아님 톳일까 그도 아니면 해초인가? 돌틈에 끼여 나부끼는 녹색 생명들, 그리고 색색들이 먼산. 무얼 하신가, 객지에 나가 고단한 세상살이로 때론 모욕을 당하기도 하고 절망에 영혼이 가난해졌을 자식을 위해 밥을 준비하고 있을 허리가 구부러진 우리의 늙디 늙은 엄니.

<사나운 애착>으로 내게 다가왔던 뉴욕커인 저널리스트이자 비평가인 비비안 고딕은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를 유독 괴롭히는 것은 침묵이다. 그것은 피부 밑으로 가라앉고, 귓속에 압력을 생겨나게 하며, 그 압력으로 윙윙거리는 소리로 되돌아온다. 그것은 대화가 매일의 필수품이 아닌 까닭에 섹스와 정치가 때 이른 죽음을 맞는 거리에서 만들어지는 침묵이다.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언어는 일상적 용도로 쓰이지 않게 되었고 사람들은 서로 연결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 이야기한다. " 자신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고 고개를 주억거려 주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커다란 행복이자 벅찬 에너지인가.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는 부족생리가 유전자로 내재화되어 고립에 대한 공포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어지려는 욕망이 침묵을 참을 수 없어하는 것이다. 의미 없는 웅웅 거림이 아니라 서로를 들여다보고 화답하는 대화의 즐거움. 우린 그래서 만나야 한다.

챝지피티 (chatGPT) 신종 에이아이가 이제 얼마 후면 카카오톡처럼 일상을 파고들어 우리를 어느 신생대로 이끌 것인지. 놀랍고도 두렵다. 새로운 기술발전으로 인한 고도의 문명화는 오히려 원시의 감각들을 불러들이고 잊히고 잃어버린 오래된 것들을 갈망하게 한다. 이제는 작물이 자라지 않는 유물화된 다랭이 논들. 관광객들이 굽이굽이 파도치듯 산자락에 드리워진 다랭이밭을 이리저리 자유롭게 미로놀이를 하듯 걸어나니며 재잘거린다. 저 아래 무위로 가득 찬 남해가 넓게 그들을 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