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목가 -필립로스

"내가 가진 것으로 최선을 다했다."
문학계에서 풀리쳐상을 비롯한 거의 모든 명망있는 상을 싹쓸이하면서 백악관에서 수여하는 국가예술훈장을 받은 가장 미국적이면서 가장 미국적인 표피들을 구석구석 파해쳐 통렬하게 비판한 유대인 디아스포라 작가 필립로스. 그가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명랑책방 5월 책읽기로 선정된 그의 작품 " 울분"에 이어 두번째 책이다. 모두들 난독증에 걸린 것 같다며 자신의 유약한 문해력을 탓했고 필립로스의 난마처럼 얽힌 글의 장황하고 어찌보면 산만한 액자소설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힘들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지나치게 디테일한, 현미경을 댄 듯 극사실주의로 등장인물과 주변상황에 대한 묘사들이 세밀해서 오히려 독자들에게 문장을 해독하고 주제를 따라잡는데 혼선을 주지 않았는가. 나는 무엇보다 미국에서 성공한 유대인 디아스포라 중산층 가족의 이상적인 낙원과 비극적인 추락을 역사적인 사건들을 통해 서사적인 틀로 짜면서 추락의 추를 당기는 주요한 악의 힘으로 좌파적 상상력과 사회학을 너무 지나치게 단순하고 유아론적으로 혹은 악마적으로 설정해서 오히려 그런 설정이 작품에서 로스가 끈질기게 파헤친 비극적인 파국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를 방해한 것이 아니었나 이런 생각을 했다. 1960년대 메카시광풍이 휩쓸면서 미국사회에 만연한 부조리와 부의 불평등한 분배 그리고 인종차별과 민권운동,노동자들의 권익운동,베트남전쟁에 대한 반제국주의 운동 등이 봇물처럼 전국적으로 터져나올 때 그 운동들을 추동했던 다양한 사회이론 및 좌파적 이데올로기들을 마치 사회악인 것처럼 몰이성적으로 진단하고 처단하여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들이 허사로 끝나고 끊임없이 사회적 내적 모순들이 해결되지 못한채 고여있는 게 현재의 미국아닌가.
모든 사람들이 이상주의적 영웅으로 생각했던 유대인 4세대의 매력적이고 흠없이 미국적으로 동화된 성공한 스위드가 말년에 그의 딸이 그들이 살던 동네 올드림룩의 잡화점을 폭파시키고 도망자의 신세가 되면서 비극적으로 추락하게 되는 과정들을 그려낸 소설. 로스의 "미국의 목가"는 우리에게 주제를 비롯한 수많은 논쟁거리를 제공해 주었고 흡사 우리가 현재 안고 있는 삶의 문제와 모순들 그리고 우울등이 닿아있는 듯한 인물들의 분석으로 우리를 이끌었고 한참동안 그 속에서 자신을 지켜보 수 있는 시간을 아프게 가지게 만들었다.
번역가 정영목은 " 사람이 삶을 겪어내는 방식"을 중시하는 로스에게 중요한 점은 그의 시야가 넓어졌다거나 안목이 달라졌다는 것 보다도 이 작품이 이루어낸 성취가 어디까지나 구체적인 성취하는 점이다.라고 언급했다.
로스가 평생 소설가로서 평생 긴장을 늦추지않고 살아온 것은 어떤 면에서 미국 사회의 핵심을 이루면서도 결코 주류에 끼지는 못하는 유대인이라는 위치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설의 무대인 뉴저지 주 뉴어크의 위케이크에서 필립로스 또한 보험대리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고 위케이크는 미국 문화에 동화되려고 노력했던 유대인들의 공동체가 단단히 뿌리를 박은 곳이었다. 유대인의 연대라는 소명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적 동화와 사회적 상승이동의 시대에 자신의 정체성을 확신하지 못하는 중간계급 유대계 미국인의 가치와 도덕에 자유롭게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면서 이 둘 사이의 갈등을 탐사해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작가적 욕구를 가장 충실하게 반영한 대표적 작품이 준수한 외모를 가진 어린시절 스위드라는 별명을 얻고 운동선수로서 이름을 날린 뒤 성장해서는 사업가로서 미국 주류사회에 깊숙이 진입한 인물의 몰락을 그린 중기 대표작 <미국의 목가>.
이책에서 로스는 유대인의 문제로 출발했으면서 미국 사회 전체를 조망하고 있다. 주변에서 주변성을 당연하게 느끼며 살아가는 것보다는 ,오히려 유대인처럼 자신의 주변성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에 그 주변성이 더 강하게 드러나고 또 그 주변의 빛으로 중심을 비출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주류라는 것은 많은 경우 환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작가의 분신인 네이선 주커먼이 1990년대에 직접 만나기도 하고 소식을 듣기도 한 시모어 스위드 레보브의 이야기를 소설로 재구성해나가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스위드는 미국의 꿈을 내면화하면서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과 결혼까지 한 인물로 유대인 사회의 우상이었던 사람이다. 그런 그이 삶이 파국을 맞이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중심부분을 이룬다.
스위드의 삶의 위기는1960년대말 부터 1970년대 초까지 미국이 맞이하게 된 위기와 일치한다. 민권운동과 베트남전쟁 그리고 성혁명이 일어난 시기였다. 그리고 닉슨 대통령이 사임하게 된 워터게이트 도청사건이 일어난 시기이기도 하다.
이 격변의 소용돌이에서 이 가족의 운명은 미국 전체의 운명과 맞물린다. 이 소설에서 작중 화자 주커먼의 과제는 스위드에게서 성공한 성실한 유대계 미국인이라는 딱지를 떼어내고 그가 실제로 삶을 겪어낸 방식을 구체적으로 그려낼 수 있을 만큼 그를 이해하려는 것이다. 처음에는 내면조차 없는 인간 취급을 받았던 스위드는 시대의 격변 한복판에서 그 누구보다 아픈 고통을 견뎌내야 했던 비극적 인간이었던 것이다. 결국 스위드의 비극은 한 고결하고 성실한 인간이 곡진한 선의에도 불구하고 좌절하는 마는 이야기로 유대인의 비극이자 미국인의 비극이자 인간의 비극이 되는 것이다.
미국의 목가 1편에서 마치 작품의 주제를 압축한듯한 대목을 인용해 보면서 각 장별로 주요한 표현들을 기록해본다.
" 베트남 전쟁동안 그 악명 높은 무법자 딸이 그와 가족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불만을 거의 모르던 남자가 중년에 자기반성의 공포에 눈을 뜬다. 모든 정상적인 것들이 살인으로 인해 중단되어버린다. 어느 가족이나 맞닥뜨릴 수 있는 모든 사소한 문제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어떤 사건에 의해 증폭되어버린다. 그는 미국의 미래가 견고한 미구의 과거로부터 그냥 저절로 펼쳐질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미국에서 자신의 권리를 철저하게 행사하고 유대인의 전통적인 습관과 태도를 버린 이상적인 인간, 미국 이민 이전의 불안정과 낡고 구속적인 강박으로 부터 벗어나 평등한 사람들 사이에서 한명의 평등한 사람으로서 떳떳하게 살아가는 이상적인 인간이 되기를 바라면, 그런 바람으로 부터 저절ㄹ 미국의미래가 펼쳐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고대하던 미국의 미래는 박살이 난다.
그리고 딸 미국 이민 4세대를 잃은 것이다. 스위드 자신이 자기 아버지의 완벽하게 다듬어진 형상이었고, 그의 압지가 그의 아버지의 완벽하게 다듬어진 형상이었듯, 그 자신의 완벽하게 다듬어진 형상이었어야 했으나 도망자가 되어버린 딸, 다음 세대의 성공적인 레보브가 되는데는 전혀 관심이 없고 정떨어지게 분노에 찬 말이나 밷어내는 딸, 도망자 처럼 숨어 있던 곳에서 스위드를 몰아내 미국으로 완전히 보내버린 딸. 수위드 특유의 유토피아적 사고 형태를 완전히 박살내버린 딸과 그 십년의 세월. 스위드의 성으로 침투해 그 곳에 있는 모든 사람을 감염시킨 미국이라는 전염병. 그토록 갈망하던 미국의 목가로부터 스위드를 끌어내 그 대립물이자 적인 모든 것으로, 분노, 폭력, 반목가의 절망속으로 , 미국 고유의 광포함 속으로 집어 넣은 딸.. 메리."
1. 기억속의 낙원
<미국의 목가 주인공 스위드>
우리 동네는 스위드를 통해 학벌이야말로 기쁨의 원천이고 자신과 세상에 대한 환상에 빠져들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잊고 운동에 모든 희망을 걸었던 것. 무엇보다도 전쟁을 잊을 수 있었다.
스위드의 순수 속으로 빠져들어 행복한 해방감을 느꼈던 것이다.
수위드는 자기 자신을 유지하는 재능 모든 것을 삼킬 드산 이질 힘을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우월함에 전혀 물들지 않고 이야기하고 웃음을 지을 수 있는 능력-- 아무런 장애도 없는 사랑. 한번도 자신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타고난 겸손..
이렇듯 다르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다르지않다고 주장하는 유대인의 모순이 <스위드>라는 의기양양한 스펙터클 속에서 해소되었다. 그는 어떤 정신적 삶을 살았을까. 궤도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우울, 슬픔, 혼란 , 상실은 반드시 사람에게 흔적을 남긴다.
그는 절대 자기 불신 때문에 불편해 하지 않고, 절대 강박의 그물에 걸리거나 무능에 시달리거나 원한 때문에 독이 쌓이거나 분노 때문에 제정신이 아닐 필요가 없고--- 스위드에게는 인생이란 것이 털실꾸러미 처럼 슬슬 풀렸을 것이다.
스위드의 삶은 매우 단순하고 평범했으며 딱 미국인의 기질에 맞게 훌륭했다.
산다는 것은 사람들을 오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그것은 복받은 것이다.
<스위드의 동생 제리>
남이 자기 말을 들어주는데 익숙해져 있는 차가운 존재. 남이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면서 모든걸 좌지우지 할 뿐아니라 모든것을 완전히 휘저어놓고야 마는 사람 스스로에게 냉엄한 확신을 가진 사람.
완벼했던 형에게 자신에 대한 의문이 다가오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만일 자신에 대한 의문이 인생에서 너무 일찍 찾아온 것보다 나쁜게 있다면 , 그건 너무 늦게 찾아오는 거야. 형의 인생은 형의 딸 메리가 던진 폭탄에 의해 박살나 버렸어.
결국 형 스위드가 죽은 것은 분노를 폭발시키지 않았기 때문이야. 반대로 공격성은 사람을 치유해 준다는 것. 자기 의무에 치명적으로 끌려간다는 것이 형의 약점이야. 영웅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책략, 윤리적 책임에 이끌린 것이 형의 불운이었어.
삶은 도무지 말이 도지않는 다는 것 그것을 배우게 되면 해옥은 두번 다시 자연스럽게 생길 수 없어. 인간관계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악과 만나는 순간. 끝이 나버리는 것.
<올드림록 동네의 잡화점을 폭발시켜버린 스위드의 딸 메리>
메리에게 상처는 무엇이었을까. 불안전함? 말더듬이? 아버지에게 비이성적으로 요구했던 키스?
2부. 추락
-그의 가족은 진리에 의해 지탱되고 있었다 그것은 파괴를 선동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를 피하고 합리적 삶의 유토피아를 창조해 파괴의 음험한 침입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불운의 전조처럼 다가온 리타 코언은 모욕자체였다.
"분노에 찬 유아적 자기 중심주의의 발현이었고 불안이고 무력감이었고 정치화된 미치광이 세뇌를 당하고 있었어 내딸은."
-딸메리는 자이나 교도가 되었다. 비폭력의 교리, 고행에 의해 정화되려는 신자로서 굶는 것이 아니라 앙상한 팔다리로 비참학 움직이는 카스트에 속한 경멸당하는 사람이 되 버렸다.
메리가 어쩌다 이런 곳에서 천민처럼 살게 되었는지
스위드: 유대인들이 억압을 피해 달아났는데 이제는 억압이 없는 걸 피해 달아나잖아 너는
한때는 가난을 피해 달아났는데 이제는 부를 피해 달아나잖아 다 미친짓이야. 처음에는 "민중"이라는 이타적인 헛소리라더니 이제는 "완전한 영혼"이라는 이타적 헛소리라니.
메리: 아빠야 말로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3부. 잃어버린 낙원
<스위드 아버지 >
그의 아버지는 인생의 많은 부분을 자비와 적대사이 이해와 맹목사이, 부드러운 친밀감과 분노사이의 과도적인 상태에서 살아온 사람이다.
<스의드의 어머니>
두 아들의 행복이 모든것인. 어머니의 심장으로 깊게 스며드는 느낌을 갖게 하는 사람.
< 스위드의 아내 돈>
백만장자의 귀부인 처럼 보이는 돈. 미스뉴저지로 뽑힌 아이랜드 출신 카톨릭신자인 그녀. 정신적 우울감으로 힘들어 하던 그녀. 불행의 기록을 지우듯 성형을 한 그녀. 얼굴에서는 고통을 지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안에 있는 기억을 지을 순 없지.
계급적 상처로 인해 모욕을 느끼고 방어적인 태도를 가진 그녀. 결코 폭파로 인한 살인으로 도망자 신제가 된 딸 메리를 찾지 않는 그녀. 권력적이고 오만한 성공한 유대인 오킷과 불륜에 빠진 그녀.
사람이 여러겹의 생물이라는 것은 스위드에게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의 초 낙관주의가 긍게 부여한 개방성, 정력이라는 축복은 이제 그의 것이 아니었다. 사업가로서 운동선수로서 미국의 해병으로서 평생 민첩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미래가 없는 상자에 포로로 갇힌 상태에는 전혀 대비하지 못했다.
<리타 코인>
당신은 그 멍청한 쾌락으로 다시 데려가려는 거야? 거룩함으로 끌어내 천박하고 영혼도 없는 허울뿐인 삶 속으로 끌고가려는 건가?
-그녀는 광기 , 도발, 인식가능한 것은 없다. 맥락도 없고 고난을 수용하는 능력조차도 없다.
부정과 배신 기만 친구들사이의 불신,균열이라는 주제. 박살나버린 인간적인 성실성 모든 윤리적 의무의 조롱 그것이 오늘 밤 이곳의 주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