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순례-구미 삼일문고

“ 한 서점이 문을 열면 나머지 세계의 온갖 물상들이 그 문 안으로 들어간다. 그날의 날씨며 뉴스, 고객들, 책 상자들과 그 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세계들이 말이다. 몇 세기 전에 처음 읽힌 책, 당대를 주름잡았던 책, 통속적인 책, 그 한가운데 서 있노라면 ”옛날 옛적에 “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한 보따리 풀어낼 수도 있으리라.”-루이즈버즈비-
극한 호우라는 말이 물살을 타고 빠르게 번져나가는 요즘. 세상의 하늘과 땅이 물속에 잠겼다 나타났다 하는사이 장마가 할퀴고 간 곳의 인명사고와 재해상황이 쏟아지는 비만큼 절망스럽고 무겁다. 비가 오는 장마기에 차를 타고 세 시간에 걸려 달려간 곳, 구미 삼일문고. 구미라는 곳도 처음이지만 구미를 품고 있는 금오산자락의 넉넉하고 푸짐한 품이 낳은 강과 천이 도심을 싸안고 있는 도시의 풍경이 참 멋지다는 생각. 하지만 나에게 구미는 삼일문고가 있는 곳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책방 앞에 설치예술처럼 세워진 책모형이 이렇게 멋질 수 있다니. 책장을 열어보이면서 행복을 파는 서점이라.. 궁금하고 궁금하다.

마음건강을 지켜준다는 구미의 마음이음 책방. 삼일서점 벽에 견고하게 자리한 푯말. 왜 이렇게 벌써 안심이 되는걸까.

책방에서 매달 꾸준하게 하고 있는 작가와의 만남을 비롯한 북토크 그리고 다양한 강좌들이 진행 중인 듯. 쫓기듯 전쟁같이 살거나. 관계의 헐렁함에 , 밋밋한 일상에 활력을 주고자 하는 이들이, 어쩌면 오히려 마음을 앞질러 가는 초기술시대의 불안함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그리워하는 것들에 걸음을 재촉할 것 같은 문학 관련 행사들.

일단 인테리어가 붉은 벽돌과 나무 서가들로 되어있어 마음이 차분해지고 단정해진다. 코너마다 ‘이달의 책“과 ” 여름의 책“과 같은 주제별 큐레이션을 해서 매대에 책표지를 보여주는 꼼꼼한 실렉션이 눈에 띈다.

1층에 대형서점이라면 참고서나 학생들 학습서를 먼저 깔았을 텐데 그렇지 않고 서점 주인장의 책에 대한 사랑이 남다름을 보여주는 듯 다양한 실렉션을 보여주는 책의 배열이 주목을 끈다. 요즘 사람들이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이 있어서 서점에 오기도 하지만 다양한 영역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추천해 주는 책을 읽는 것을 고려한 상업적 전략이랄까. 작은 동네서점에서는 왠지 한번 더 생각해 봐야 할 코너이긴 하다.

”사람들은 뭔가 원하는 게 있어서 서점엘 온다. 어떤 시의 제목이 궁금해서라든지 아니면 단세포 생물의 세포 발육 속도를 예측하는 데 필요한 수학 등식을 찾아보기 위해서 말이다. “-루이스 버즈니
내 손안에 있는 도서관, 내지는 백과서전인 핸드폰이 때로는 편리하게 원하는 질문과 의문에 답을 줄 때도 있다. 하지만 이리저리 걸어 다니면서 이 책 저책을 뒤적뒤적 거리며 답을 찾아가는 물리적인 여정을 주지는 않는다. 혼자이면서도 혼자이지 않는 책들로 무성한 숲 속. 손이 닿지 않은 곳은 조화이지만 나뭇잎으로 채워 놓은 센스도 돋보인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문화 검시관들은 다투어 교양이 죽음을 선언한다. 먼저 1960년대 초에는 소설이 죽었고, 1980년대 말에는 서점 그 자체가 죽었다. 지금은 책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죽었거나 적어도 위독한 상태에 있다. 아니, 그렇다고들 한다. 누워 있는 책, 서있는 책, 기대어 있는 책 그들은 우리의 내면의 씨앗들처럼 우리를 닮았다. 그렇게 발소리를 들으며 나란히 걷는다. 죽지 않고 옆에서 가만히.

여기저기 구경을 하고 다니는 고객에게 서점을 들르는 일이란 분주한 일과 속 한 차례 심부름이거나 잠깐의 휴식이겠지만, 책 판매원에게는 시공간을 한껏 늘여놓은 하루 종일인 것이다. 그런 다음 일시적인 휴전 상태가 깨지고 고객 한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다.
서점 계산대 뒤에 있는 물결모양은 서점 인테리어 공사를 하다 남은 쪼가리들을 주워 마치 재활용하듯 붙였다던데 마치 처음부터 구상한듯한 멋진 작품으로 탄생한 것 같다. 마음의 무늬, 그리고 요동치는 책 읽는 사람들의 마음의 진동 뭐 그런 것을 연상시키는. 때론 의외의 생각이 의외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

“오늘날 파리에는 ‘ Introuvable’ 문자 그대로 ‘찾을 수 없는 책’ 이란 멋진 이름이 붙은 서점이 있다. 내 머릿속의 완벽한 서점, 도시에서 상상할 수 있는 마지막 서점은 결국은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책’을 갖춘 서점일 것이다. 다시 말해 당신은 희망을 완전히 버렸을 때 에만 ‘찾을 수 없는 책’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루이스 비즈니”
사각상자 가운데가 아닌, 한쪽 귀퉁이에 써진 책분류명, 책도 공간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자유로운 상상이 또 다른 표정과 의미를 만들어내는 과정일 것이고 무한한 세계인 책을 수집하고 전시하고 그 책장을 넘기는 미래의 독자를 맞이하는 서점의 모습은 아마 그런 상상의 공간을 만들어 내는 곳일 지도 모른다. 단지 글자 하나일지라도. 삐딱하게 놓인 책 한권일 지라도.

누구를 따라가는 삶은 독서에서는 하지 말자. 나의 독서 좌우명중 하나. 글쎄 나는 성격유형 MBTI를 많이 신뢰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유형들이 숨어있거나 드러나거나 잠재적이거나 외향적으로 나타나거나 그런 것이라 생각하니까. 그것이 내 독서의 방향을 지배하지 않는다. 이 공간은 글쎄 흥미롭지만 너무 상업적인 냄새가 난다.

편리주의의 끝판왕 인터넷 시대에 검색을 하면서 책을 사는 것은 온라인 서점에서 하면 될 것이고 글쎄 책방은 고전주의적으로 품을 팔아서 내 손으로 발로 눈으로 직접 보면서 둘러보는 것이 서점이 아닐까 라는 생각.


책과 카페. 그래서 커피와 음료, 제과. 빵과 책. 책을 사기 위해 동네 서점을 오지 않아서, 책 읽는 사람들이 실제적으로 많이 없거나 예전에 비해 줄어서 생존을 위한 전략으로 빵과 커피를 함께 하는 곳이 늘고 있다. 나 또한 북카페를 하려고 하니까. 어쨌든 사람들이 와야 하니까. 그들만의 공간에서 책과 커피를 그리고 빵을.. 배를 곪으며 그 허기를 독서로 채워가며 정신적인 포만감을 느꼈던 세대는 지나간 걸까. 포식문화와 독서문화는 같이 동행할 수 있을까. 하지만 커피와 차를 마시면서 책을 보는 것. 묘한 겹침이 있다.

과잉친절의 시대라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완전음식을 새벽까지 배달해 주는 것도 그렇고 생산자들이 소비자들의 최대한으로 불편과 노고를 덜어주기 위해 거의 입속의 혀처럼 모든 것을 알아서 공급해 주는 그런 문화에서 길들여져 살고 있기 때문에.. 너무 빠르고 손쉬운 것이 좋은 것일까. 이렇게 책마다 가이드를 해주는 리뷰를 달아주고 추천글을 써줘야 하고..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크겠지.

한작가의 작품을 한꺼번에 다 볼 수 있는 코너는 확실히 매력이 있다. 쥐스킨트의 책을 한꺼번에 볼 수 있으니 너무 신난다. 두 권의 쥐스킨트 책을 가져온다.
은둔의 작가 쥐스킨트는 결국 이어지고 싶은 것이다. 모든 쥐스킨트들인 우리와.

지하의 작가와의 만남 및 강좌공간, 또 다른 서가공간으로 이어지는 층계의 중간쯤에 있는 공간에 이렇게 마치 쉬어가거나 숨어있고 싶은 작은 책방을 만들어 놓았다. 센스가 있다. 서가주인의 말을 빌리면 아이들이 지하로 바로 내려가는 것을 무서워해서 이렇게 중간참에 책방 공간을 만들었다고 한다. 책 보다 사람이 먼저니까. 참 마음씀씀이가 남 다르다.

아이들 책이 있는 공간. 꼬마들이 편하게 책을 볼 수 있도록 키높이가 맞은 의자를 놓았다. 그렇다. 이렇듯 독자층에 따라 달라지는 의자와 서가를 배치하는 것. 바닥도 나무여서 안전하고 편안하다. 신발을 벗고 나뒹굴면서 책도 보고 만화도 보고 글씨도 써보는 외갓집 문간방과 같은 공간배치도 재미있을 듯.

일인용 책상과 의자, 그리고 다인용 장탁자와 의자. 이곳에는 높이가 다른 의자들이 많다. 일면적이지 않고 다층적인 것들이 주는 존중감과 자유로움. 고립과 공유. 나무와 벽돌의 어울림.



요즘 서점은 복합문화공간으로 지역사회와 연대하여 다양한 문화행사를 함께 기획하거나 주최하고 그 결과를 공유하고 있다. 이 공간에서 강좌와 작가와의 만남이 이뤄진다. 학생들도 학교밖 교육이라는 자유학기 활동으로 서점방문 및 서점체험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너무 바람직하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마침 학생들에게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주인장의 강좌가 있어 잠시 머물면서 마음이 흡족해진다.

”그는 세계를 접수하려고 하지 않고 그저 자기의 열정을 따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 모두 책과 관련된 사람들, 작가, 출판사, 서점, 그리고 독자, 그 외의 책 관련 사람들이 이 사람처럼 권력을 접수하기 위해 가는 길이 아니라 자기의 열정을 따라가고 있는 사람들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자본 없이 책을 만들 수도 읽을 수도 유통시킬 수도 없을 터라 이 흐름이 원활하게 되기 위해서는 열정을 따라가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우린 알고 있다. 선한 목적을 가진 이들이 선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힘.

독서와 관련해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분노의 포도‘ 첫 장 ” … 오클라호마의 적색지구와 회색지구 한편으로 마지막 비가 부드럽게 내렸다. 그 빚줄기는 상처 난 그 땅에 스며들 수 없었다. “ 그 강렬한 기억으로 독서를 평생 이어갈 수도 있다. 나의 독서의 강렬한 기억은 무엇일까. 단칸방에서 책이 무지 많았던 친구의 집에서 빌려 읽었던 문고판 세계문학전집은 그때의 연약하고 심드렁했던 사춘기의 소녀에게 삶을 견뎌내게 해 준 묘약이자 숨을 장소였고 부담 없는 위로였다. 이런 동네 서점공간을 설계한 이도 독서에 대한 강렬한 기억이 그를 책과 사람을 이어지게 하고 싶은 공간에 대한 고민과 탐색을 하게 했을 것이다. 획일적이지 않고 비밀의 방에서 책을 보며 나만의 세상을 만들고 싶었던 이들을 위해 둥글고 구부러지고 머리 숙여 들어가서 가만히 앉아있고 싶은. 간혹은 창너머 나뭇잎의 흔들림을 볼 수도 있는.

흔적 없이 세상에서 잊혀지고 지워지고 싶은 이들이 있을까. 가족의 문신같은 그 동안의 가족사를 책과 함께 세상과 함께 나누며 살았던 삶의 무늬는 어떤 것일까. 삼일.. 고객, 사회,회사가 하나이니 모두를 함께 살펴야 한다는 의미로 지은 이름. 책으로 구미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의 삶을 어루만지고 떄로는 그들에게 쉼터가 되어주는 공간을 만들어가는 이곳의 역사를 보는 것은 즐겁다.

동네 사람들이 지하에 만들어진 꽃밭에 심을 나무를 가져오고 가꾸기도 하고 떄론 나무가 시들해지면 가서 되살려와 다시 심기도 한다는 주인장의 말에는 웃음과 여유로움, 그리고 따뜻한 연대감이 묻어있다. 나도 그저 타인이 아니라 책을 사랑하는 책사랑 지구인으로 그들과 함께 하고 싶다.

땅바닥이 그저 밟고 지나가는 바닥이 되지 않게 하는 마음이 책방을 일구고 책을 심는 책방주인의 마음이라면 아침에 부시시 눈을 뜨고 눈꼽을 붙인채로 한 달음에 찾아가 구석에 처박혀 온종일 책을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