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발터밴야민의 1900경 베를린 연대기와 밴야민 연구에 대한 독서 노트

숨그네 2024. 8. 8. 17:00

'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살았다. 즉 우리는 책의 행간에 거주했던 것이다“
발터 밴야민을 읽는 시간은 아주 낯설지만 역설적으로 친숙하고 내밀한 아주 개인적인 독서행위로 내 안의 안전지대로 은밀하게 소리 죽여 들어가는 시간이다. 롤랑바르트, 알랭 드 보통, 쥐스킨트, 프루스트, 그리고 밴야민. 내 세계에 살고 있는 거주자들.벤야민을 만나는 시간은 행복하다. 
두 권의 책을 최근에 만났다.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을 '역사의 경험'의 차원에서 나치의 집권이 임박한 1931년 말에 집필한 <1900 베를린의 유년시절>
과 벤야민에 대한 탁월한 연구논문을 묶어서 펴낸 <벤야민 연구>.
망명지에서 생길 수 있는 향수에 대한 일종의 면역주사로 집핍된 베를린의 유년시절에서  벤야민은 지나간 과거를 개인사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우연의 소산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 사회적으로 돌이 킬 수 없는 필연적인 것으로 통찰하고자 했고, 유년시절의 이미지들 안에 “미래의 역사적 경험’이 미리 형상화되어 있음을 확인하고자 했다.
 나치 독일에서 저술 발표의 기회가 봉쇄되고 유대인들이 신변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된 절박한 위기의 상황에서 이 글을 쓴 그의 집필 동기는 역사의 경험과 인식의 계기를 얻기 위해 유년시절에 대한 이미지를 포착한다. 
벤야민의  회상에서 주체의 의식적 노력을 배제함으로써 의식과 회상을 분리시킨다. 즉 자아는 더 이상 회상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 관습의 지배를 받는 일상적 자아를 벗어나는 순간이자 보다 깊은 곳에 위치한 심층적 자아가 충격을 받는 순간 기억의 감광판에 에 이미지가 조명에 의해 찍힌다. 
기억하지 못하는 망각이 오히려 잠재적인 기억이라는 것. 꼽추 난쟁이에서 나오는 꼽추는 바로 기억과 망각의 이러한 상관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유년의 단편들
1892년에 태어난 벤야민의 유년시절은 1890년대와 1900년대에 걸쳐있다. 
사람의 유년시절이 준 안전이 훗날 얼마나 철저히 빼앗기게 되는지 그 이미지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집안에 들어가는 발걸음을 수호하는 문지방 신들을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기다림이 무엇인지를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비채집
나비가 이리저리 돌아다녔던 그 땡 그 공기에는 어떤 한단어가 스며들어 있다. 그 단어는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내 기에 들린 적도 내입에 올린 적도 없었다. 그 단어는 어린 시절에 알던 이른들이 그렇듯이, 어른이 된 내게 무언가 규명하기 어려운 것으로 다가왔다. 오랜 세월의 침묵은 그런 이른 것들을 신성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바로 브라우하우스 베르크이다. 그것은 우리 가족에게 거처를 재주기 우해 여름철에 세원진 일종의 푸른 언덕이었다. 
 -데자뷔
아직 보이지 않는 낯선 것을  짐작하게 만드는 단어나 멈춤의 순간이 있다. 
-수달
살고 있는 집이나 동네로부터 사람의 본성이나 기질을 상상하듯이 나는 동물원에 사는 동물들에 대해서도 그러한 추론을 해보았다. 
수달은 비와 은밀한 친화관계가 있었다. 왜냐하면 가늘거나 굵은 빗발로 내리는 비가 수달을 몇 분이고 몇 시간이고 빗겨주는 그런 날 보다 더 길고 더 애틋한 날은 내게 없었기 때문이다. 잿빛의 머리빗 아래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얌전한 수달. 
물건들이 독보적인 것은 시간의 흐름에 모든 것을 내맡기는 구태의연함에서 드러났다. 그 물건들은 자신의 운명을 오직 재료의 견고함에 맡길 뿐 어떠한 합리적인 이해타산도 허용하지 않았다. 궁핍함은 그 집의 공간 어디에서도 들어설 여지가 없었다. 그곳에는 죽음을 위한 장소는 존재하지 않았다. 

-글자상자
우리는 우리가 잊었던 것을 결코 온전히 되찾지는 못한다.  과거를 다시 찾게 된다면 그 충격이 너무 파괴적이다. 
어쨌든 간에 다른 습관들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습관을 만들어준 특별한 물건이 누구에게나 있다. 자신의 삶을 규정하게 된 능력들은 그러한 습관 속에서 형성된다. 나의 삶에서 그것은 읽기와 쓰기였기 때문에 어린 시절에 내가 마주친 물건 중에서 글자상자보다 내게 더 큰 동경을 불러일으킨 것은 없었다. 
나는 자주 아팠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발견하는 인내는 아마 거기서 왔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나의 병상에 시간들이 다가올 때처럼 내게 소중한 모든 것들이 먼 곳으로부터 내 앞에 다가오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성향이다. 여행을 할 때 만약 기차역에서 오래 기다리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으면 내게는 최고의 기쁨이 사라지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책들을 얻은 곳은 학급문고였다. 책의 매력은 그 내용이 아니라 삭막한 학교생활에서 느끼는 비통함을 견디게 해주는 15분이라는 휴식시간을 확보해 준다는 것이었다. 
내가 나중에 사람들의 왕래가 있는 거리에서 창녀에게 말을 걸어보려는 충동을 생전 처음 느끼게 된 데에는 어머니 아니 어머니와 내가 속한 계급과 단절한다는 감정. 유감스럽게도 위선적인 감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로지아
갓난아이를 깨우지 않으면서 가슴에 안고 있는 엄마처럼 우리의 삶도 오랫동안 유년시절에 대한 부드러운 추억을 품에 안고 있다. 컴컴한 로지아 중에서 여름이면 차양으로 덮이던 곳이 있었는데 게 그 로지아는 요람 같았다 

-꼽추 난쟁이
꼽추난쟁이가 쳐다보면 사람들은 주의력을 잃는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꼽추난쟁이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산산조각 난 물건 앞에서 당황해하며 서있다. 
무력감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그 일에서 결코 장인이 되지 못할 것이다. 
나의 무력감은 베를린과 관계에 있다. 이 도시에서 나의 방향감각이 아주 형편없었다는 점이 한 가지이다. 시내지도를 어떻게 사용할지 체득하는데 30년이 걸렸다. 그리고 미숙함을 인정하게 만드는 것은 어머니의 집요함 덕분이다. 
어머니는 자신이 언제나 보통 사람들보다 빠르고 더 능숙하고 영리하다는 중대한 착각에 처하게 된다.. 나는 엄마와 함께 길을 걸을 때는 언제나 반 발짝 뒤에서 따라갔다. 더 미숙하게 더 천천히...
한번 기억의 부채를 펼치기 시작한 사람은 항상 새로운 마디와 부챗살을 그 안에서 발견하게 된다. 어떠한 상도 그에게 만족스럽지 못하다. 왜냐하면 그는 그 상이 더 펼쳐질 수 있음을 이미 알고 있다. 바로 접힌 주름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어떤 고유한 것, 어떤 이미지, 어떤 취향 어떤 촉감 때문이 아닌가. 
길을 헤매는 사람에겐 거리의 간판 거리의 이름, 행인, 간이매점 혹은 술집이 마을 걸어오게 마련이다. 
나를 헤매는 기술을 가르쳐준 도시는 파리이다. 숲 속 빈터에서의 돌연한 정적처럼. 
오늘날 도시의 모습, 유동적이면서 기능적인 도시의 모습에 가까이 갈수록 사지 촬영에 적합한 장소는 점점 더 줄어든 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길가에서 창녀에게 말을 걸면서 느낀 거의 어디서도 맛보기 힘든 짜릿함에는 자신이 속한 계급의 경계를 처음으로 넘었다는 감정도 한몫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진짜로 경계 넘기를 한 것일까. 그것은 오히려 경계 위에 고집스럽게, 음탕하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그 경계를 지나면 허무로 빠진다는 아주 그럴듯한 이유는 대는 머뭇거림이 아닌가. 사실 대도시에는 허무로 빠지게 하는  경 게지점들이 무수히 많다.
 
기억이라는 말은 기억이 과거를 탐색하는 도구가 아니라 과거가 펼쳐지는 무대라는 것을 오해의 여지없이 밝혀준다. 기억은 체험된 것의 매개체이다. 묻혀 있는 매개체가 땅인 것처럼 자신의 고유한 과거에 가까이 가려고 하는 사람은 땅을 파헤치는 사람처럼 행동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기억의 어조와 태도를 규정한다. 흙을 뿌리듯이 기억의 내용을 뿌리고 , 땅을 파듯이 그 내용을 파헤치는 것을 기피해서는 안된다. 
나의 개인적 인간관계, 친구관계, 동료애, 나의 열정, 나의 연애서건들이 생생하면서도 아주 은밀하게 얽힌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그날 오후였다. 그것은 파리에서 일어날  밖에 없었다고, 담장과 부두, 아스팔트, 페허, 회랑, 격자창, 네모난 정원, 아케이드, 그리고 간이매점이 우리에게 아주 독특한 언어를 가르쳐준 파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우리를 에워싼 고독 사물의 세계로의 침잠 속에서 우리의 인간관계는 잠 속과도 같은 깊이에 도달하는데, 그곳에는 우리의 인간관계의 진정한 얼굴을 밝혀줄 꿈의 이미지가 기다리고 있다. 그날은 도시가 상상력 위에 어떤 지배력을 갖는지, 또한 사람들이 가차 없이 서로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약소, 전화, 회의, 방문, 연애질 생존투쟁 때문에 개인에게 어떤 명상의 순간도 허용되지 않는 도시에 대해 우리는  왜 기억을 통해 복수를 하는지, 그리고 왜  우리의 삶을 소재로 도시가 은밀히 만든 베일을 통해 사람들의 이미지보다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 혹은 우리 자신을 만났던 장소들의 이미지가 나타나는지를 알게 된 날이었다. 
책이 있으면 그 내용과 그 안의 세상이 손에 잡힐 듯 단번에 내 앞에 나타난다. 그래서 그 내용과 책 안의 세상은 책의 모든 부분을 변용시켰다. 즉 그것들은 책 안에서 불타올랐다.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살았다. 즉 우리는 책의 행간에 거주했던 것이다. 
어느 순간이 이미 살아본 과거처럼 의식될 때 오는 충격이란 대부분 소리의 형태로 다가온다. 

<벤야민 연구>
1. 발터 벤야민의 생애와 사상
19세기 파멸의 씨앗을 어린이의 시선으로 사회사나 정치사적 서술을 거의 쓰지 않은채 어린 시절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들을 응축해서 쓴 "1900 베를린의 유년시절".
빌헬름 제국시대의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학교생활, 이따금 집에서 있었던 손님들의 사교모임을 통해  집안의 사회적 지위등에 대한 기억들을 담고 있는 이 책에서 유년기의 무의식적 느낌들은 성년이 되어 유물론적 시각을 전유한 저자에 의해 마치 미래에 대한 예언처럼 읽힌다. 벤야민은 어린 시절 무의식적으로 느꼈던 것들에 언어를 부여하고 있으며, 기억의 상들은 변증법적인 식의 의미에서 읽어낸 상들이다. 부유한 유대인 시민 가정의 보호막에서 자라난 어린 벤야민에게 제국 말기의 계급적 갈등들은 대부분 은폐되어 있어서 파편적으로만 경험할 수 있었다. 
그는 유대 문화적 전통과 기독교적 유럽문화를 이원화시키는 근본주의적 시오니즘에도 속하지 않았고, 같은 유대인 친구인 숄렘이 취했던 문화적 시오니즘과 부합하지 않았으며, 전승된 시민 문화 속에서 자본주의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지탱해주는 역할만을 보고 그에 대해 무분별하게 적대적 입장을 취하는 행동파 공산주의자도 될 수 없었다.
나중에 지식인으로 점점 프롤레타리아화하는 역사적 과정을 겪으면서 벤자민은 자신이 뿌리를 두고 있는 자신의 정신적 작업의 한계를 규정짓고 있는 부르주아 문화를 부정하고 비판하는 그러면서 프롤레타리아트와 의 계급적 연대를 과시하는 지식인들의 자기기만과 감상주의적 계급의식을 역시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가 생각한 사회실천은 글쓰기를 통한 참여이고, 그가 촉구한 지식인의 자기반성과 이론적 작업이 정치에 대해 갖는 관계는 직접적이지 않고 매개된 관계였다.
카프카의 사후에 카프카의 수용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막스 브로트처럼 친구 숄램은 그 비슷한 역할을 하게 된다. 숄램은 이스라엘로 이주한다. 
스위스의 베른대학에서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비평 개념"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는다. 
벤야민은 프란츠 카프카에 대한 연구를 비롯한  미발표 작은 논문들과 에세이들은 나중에 벤야민의 지적 유산을 관리하게 된 후배 아도르노에 의해 출판된다. 
대학에서 교수 직위를 받지 못한 벤자민은 점차 무산계급 지식인으로 전락하고 1920년대 중반부터 1933년 나치 집권으로 베를린을 떠나 파리로 망명할 때까지의 시기는 특별한 직업이 없는 경제적 위기의 시기였다. 
그는 1920년대 인플레이션으로 몰락해 가는 독일 시민사회에서 받은 파노라마적 인상이나 자신이 그동안 해왔던 철학적 정치적 문학비평적 관찰과 성찰들 꿈, 여행기, 기억등을 몽타주로 엮은 철학적 아포리즘 책 < 일방통행로>를 출판한다. 
이후 벤자민은 글쓰기가 생존의 수단이었고 그가 취한 태도는 “좌파적 아웃사이더의 입장”이써고 이러한 비판적 입장에는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지식인들이 전통적으로 수행해 온 사회적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과 같은 정치성이 강한 글들을 쓸 때도 벤자민은 프루스트에 대한 에쎄이를 쓰고 카프카를 연구했다. 그의 신학적 사유와 유물론적 사유의 이중성이 그의 사상세계를 특징짓고 그의 수용사에 논란을 일으켜 온 부분이다. 
그의 정치적 신념은 교조저기지 않았고 아방가르드적 실험정신을 잃지 않았으며 초기의 신학적 태도와 미묘한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9세기의 수도 파리를 무대로 펼쳐진 자본주의의 ‘원사’를 서술한 <파사주> 프로젝트는 유리와 철제로 만들어진 지붕아래 집결된 상점가 (아케이드)로서 파사주가 갖는  19세기 중엽 상품의 대량생산이 본격화된 초기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있다. 
파시즘의 위협을 피해 미국행 비자를 겨우 구한 벤야민은 남쪽으로 내려오는 독일군에 쫒기다시피 프랑스를 떠난 스페인으로 넘어가는 국경 피레네 산맥에서 프랑스 정부가 발급한 신분증이 없다는 이유로 입국을 거절당하고 인근 마을 포르부에 억류된다. 그날 밤 그는 좌절감에 휩싸여 자살하고 만다.
 
<벤야민의 개념들>
1.유사성
벤야민의인식론은 지각, 경험, 기억의 이론이라 할 수 있는데 이때 유사성이 핵심개념으로 작용한다. 그에 따르면 경험은 살았던 유사성이다. 
그리고 그는  “미메시스 능력”을 인간의 원초적 능력으로 파악하며  인 능력이 역사적으로 퇴화하여 인간의 이성이나 여타 창조적 능력으로 대체된 것이 아니라 고도로 섬세한 언어능력을 진화했다는 테제를 제시한다. 그의 언어능력은 기호학적 읽기의 능력만이 아니라 ‘읽어내기’의 능력을 가리킨다. 사물 세계의 유사성, 특히” 비감각적 유사성’을 지각하는 인간의 능력은 인간이 지닌, 사물세계와 유사해지려는 미메시스 능력이 발전한 결과이다. 
어린 시절의 미메시스 능력은 고도의 언너능력으로 즉 언어의 매체 속에서 섬세하게 표현되는 유사성의 세계를 감지하는 읽어내기 능력으로 전화했다는 것이다. 
 
2.알레고리
서구의 예술철학을 지배해온 “ 거짓된 총체성”과 진보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역사관에 맞서는 파편과 몽타주의 사유가 이 알레고리와 연관된다. 알레고리는 17 세기 몰락의 시대였던 바로크 시대 비애글을 각인하는 예술형식이었고 신학이라는 틀 안에서 의미를 얻고 기능을 수행했다. 그 이후 19세기에 알레고리는 특히 보들레르에게서 다시 등장 하는데 상품물신으로 특징지어지는 모더니티가 알레고리로 등장을 추동한다. 엠블럼들은 상품으로 다시 나타난다. 알레고리는 현대의 기본 틀이다. 
“ 알레고리적 예술작품은 어는 정도 비판적 해체의 씨앗을 내부에 품고 있다. “라고 그는 말한다. 
3.아우라
벤야민에게서 아우라는 다양한 의미층을 갖고 있다 우선 아우라는 고전미학의 핵심개념으로 아름다운 가상의 의미를 띤다. 기술복제 시대에서의 아우라는 예술작품의 일회성, 진품성을 뜻한다. 이 시대에 아우라의 붕기를 필연적인 현상으로 인식했고 또 사이비 아우라의 출현을 경고해고 그것을 분쇄할 것을 ㄹ주문했지만 비 아우라 시대에 영화와 같은 새로운 매체가 열어 보여주는 시각적 무의식에 해당하는 새로운 아우라의 개념을 도입하지는 못했다. 
아우라에 대한 벤자민의 태도는 이중적이다. 아우라의 붕괴와 소멸을 그 빈적으로 긍정하고 환영하면서도 다른 한편 수집가로서의 그의 개인적 취향에서도 드러나듯이 아우라의 소멸을 아쉬워하는 측면을 보인다. 
4. 파괴/구성
벤야민에게 파괴와 구성은 변증법적으로 맞물려있다. 
그의 비평은 “구제비평”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상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을 그것이 전승되어 온 잘못된 연관, 거짓 총체성과 연속성의 맥락으로 폭파해 버려야 한다고 한다. 
즉 구성은 파괴를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5. 변증법적 이미지
그에게 모든 진정한 이미지는 변증법적 이미지, 즉 정지상태의 변증법이다. 
개인의 경우 죽음의 순간에 눈앞에 스쳐가는 전 생애의 응축된 이미지들 비자의적 기억의 상들이 그런 상들이다. 
5. 경험
벤야민에게 경험은 기억, 지각과 밀접하게 연관되는 핵심 개념이다. 인식에 의해 포착되지 않은 경험과 언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경험과 체험의 차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 경험을 체험과 구별시켜주는 것은 경험이 일종의 연속성, 연계의 관념에서 분리딜 수없다는 것이다. 체험에 주어진 강조점은 그 체험의 대상이 노동에서 멀리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그만큼 더 커질 것이다 노동은 체험에서 경험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특징지어진다. 
6. 기억
벤야민은 역사의 과학의 대상이기 이전에 기억의 대상임을 강조한다. 
“살았던 과거는 유한한 반면 기억된 과거는 무한하다. 기억은  그 실체와 의미가 완결된 는 어떤 과거의 사건들로 대상화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기억작업에 대해 열려 있고 살아 움직이는 실체이다. 
기억에서 중요한 것은 기억된 사실이 아니라 기억하기의 작업이다. 
7. 이야기하기/서사
벤야민에게 이야기는 경험을 말로 전달하는 구전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현대에 들어서 사람들에게서 이야기하는 능력이 소멸해 가는 것은 경험을 나눌 ㄴ수 있는 능력이 위축되고 상실된 데서 기인한다.  전통적인 아우라적 경험이 위축되고 그 자리에 충격체험이 들어서는 시공간으로서 현대를 서술한다. 
삶이 계속되는 한 이야기를 계속된다. 
은밀하고 멋진 온기로, 존속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어떤 뻔뻔스럽고 대담한 형식으로 존속할 것이라는 우려를 한다. 
8. 예술작품
벤야민에게 예술은 인간정신을 표현한 구성물로써 예술에 대한 그의 이해는 언어에 대한 통찰에 뿌리를 둔다. 
인간의 정신은 그것이 언어로 전달 가능한 한에서 , 언어 속에서 표현된다는 점. 더 나아가 예술작품은 존재해야 할 필연성을 지닌 나는 것. 
벤야민의 유물론적 미학은 한대 시민사회의 성장기에 사회의 계몽과 혁명에 기여했던 자율적 예술과 예술 작품은 기술의 발달이 이미 그것들의 영역적 성격이 해체를 가져온 변화된 역사적 조건 속에서 여전히 그 틀을 고수할 경우 반민주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 즉 정치의 심미화과 사회의 물화, 더 나아가 문명의 야만화에 기여할 위험이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 
8. 신화
아도르노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인간의 역사를 인간이 이성을 가지고 신화의 질곡에서 해방되어 온 계몽의 역사이자 동시에 이성이 목적합리적 -도구적 이성으로 발전해 오면서 계몽이 다시 신화로 퇴행하는 부정적 변증법으로 점철된 역사로 보고, 그 해결의 실마리를 이러한 이성의 역사에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에서 찾으려 한다.
벤자민에게 신화적인 것은 “상품물신과 그것이 빚어내는 마술환등특히 새로움이라는 물신, 마법적 아우라, 사이비 아우라의 가상, 작가와 작품을 엄밀히 구분하는 대신 작가의 생애를 그 작가 최고의 작품으로 보고 그 생애로부터 작품의 의미를 도출함으로써 작가를 신화화하는 모든 비평들이다. 
이러한 신화적 층위는 텍스트와 현실 도처에서 작용하고 있으며,’ 야만의 흔적이 없는 문화의 기록은 없다.”는 명제를 확인시켜 준다. 
지속되는 야만의 흐름을 정지시키는 것이 벤야민의 역사철학의 요체이다. 정지와 중단, 꿈과 깨어남의 변증법, 인용, 알레고리, 쓰이지 않은 것을 읽기, 몽타주기접, 파괴적 성격, 정지상태의 변증법등이다. 
9. 파사주
그에게 몽타주는 넝마들을 주워 수집하고 해석하는 것. 오히려 고매한 정신적 영역에서 떨어져 나오고 버려진 부스러기 들이고 잔재들이다. 
19세기가 근원적으로 발생했을 때의 인간의 원초적인 불안과 욕망등의 신화적 에너지들이 작용한 모습을 생생하게 재구성하고자 한다. 
10. 구제
구제비평적 태도는 거창한 종합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 낡은 것, 폐물에 경도해 있다. 
11. 혁명 
벤야민에게 혁명은 중단의 의미를 갖는다. 중단되는 것은 자동적인 진보에 대한 믿음을 비롯해 인간의 모든 사고 유형에 깃든 연속성과 총체성의 가상이다. 혁명이 계급 없는 사회를 목표로서 지향한다면 그 목표는 진보의 조착점이 아니라 오히려 그 진보의 중단을 통해 달성된다는 것이 벤야민의 혁명관이다. 
혁명은 대중을 덩어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외려 그 덩어리를 해체한다. 혁명이 대중을 결집하는 것이 아니라 오리혀 대중의 해체를 가져온다는 역설은 혁명이 결국 다양한 개인들이 다양한 성격을 발현할 수 있는 새로운 공동체의 형성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12. 수집가
벤야민은 열정적인 수집가였다. 실재장식의 거주자로서 수집가는 ‘사물을 미화하는 것을 자신의 일로 삼는다. 그에게는 사물을 소유함으로써 사물에서 상품적 성격을 벗겨낸다는 시시 포스적 과제가 주어진다. 그러나 그는 사물에 사용가치 대신에 애호가적 가치만을 부여할 뿐이다. 
13. 언어
언어는 사람들 사이에 약속된 기호들의 체계,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인 것이 아니라 사유의 구성적 조건이자 인간의 정신적 표현의 매체이다.
인간의 정신적 본질은 그것이 전달가능한 한에서 언어적 본질과 일치한다.  
말없는 사물의 언어에서 인간의 언어를 거쳐 ‘계시’에서 표현된 신적인 언어에 이르기까지 언어들은 그 밀도에서 차이가 있고 이 언어들 사이를 번여가는 일이 바로 무릇 예술을 위시하여 인식을 추구하는 모든 인간의 언어의 본질이다. 
 
< 발터벤야민의 인간학적 유물론>
 
벤야민은 자신의 역사적 유물론의 방법과 인식론을 스스로 ‘인간학적 유물론’이라고 했다. 
벤야민이 초기부터 중심적으로 추구한 것은 경험이었고 이 경험들은 종교적, 정치적  역사철학적 경험들이 서로 교차하는 것들이다. 그에 따르면 종교나 확증이 아니라 독서와 사유와 같은 일상적 활동이 “범속적 각성”을 동반하는 것이다. 
그리고 초현실주의자들이 끌렸던, 범속한 것 폐물, 잔해, 유행이 지난 것, 낡고 폐기된 사물세계에 숨겨진 분위기는 과학기술의 발달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 장 와 주체와 자유와 같은 휴머니즘적 윤리와 미학으로 무장된 상투적인 부르주아 문화사가 억압해 온 것이 무엇인지를 암시해 준다. 
벤야민이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암시했듯이 망각 속에 묻힌 과거로부터 작가가 우의지적 기억을 통해 깨어나는 순간에 대한 묘사에서 시작하고 있는 것처럼 19세기의 꿈에서 깨어난 순간을 기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지 공간>
언어는 이미지로 주어진다. 단순한 말이나 사실 또는 개념보다 이미지가 더 강렬하게 인간의 의식과 의지에 영향을 미치며 특히 꿈 이미지는 그 강도가 더하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집단, 어떤 대중인가?>
민족공동체는 각 개인들에게서 이들을 소비자들로 이루어진 군중 속으로 남김없이 용해시키는 시도를 방해하는 모든 것을 근절시키려고 한다. 이처럼 탐욕스러운 노력 중에 독점자본의 앞장이가 되는 국가가 그래도 직면하게 되는 유일하게 화해할 수 없는 적대자는 혁명적 프롤레 타리아이다 혁명적 프롤레타이아는 자기 계급의 현실을 통해 군중이라는 가상을 추방한다. 
1930년대 벤자민은 매체기술이 발달하면서 고급예술이 퇴조하고 대중문화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가급적 실체가 모호한 비정치적 ‘소비 대중이 전체주의 국가가 주조하는 정치적 민족공동체라는 이데올로기에 흡수되는 역사적 현실을 마주하고 있었다. 



전체주의는 은밀하게 작동하고 있다. 장 보드리야르가 <소비의 사회>와 <시물라시옹>에서 묘사했듯이 포스트 모던 미디어 사회의 자본과 국가의 권력들이 지어내는 각종 꿈과 환영들은 실재를 지배하는 전체주의적 힘으로 여전히 대중을 포획해 가고 있다. 
 
<미메시스란 무엇인가>
 
미메시스는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하는 개념이다. 한국어로는 모방, 흉내 내다. 모사의 뜻으로 쓰인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미메시스는 단순히 비생산적으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재현과 표현의 의미를 띠었음이 밝혀진다. 
20세기에 들어 미메시스가 새삼스례 거론되고 주목을 받게 된 배경에는 자연과학과 기술의 발달을 주도해 온 이론적 이서의 일면적 발전사에 대한 성찰과 비판의 의미가 깔려 있다. 미메시스론은 그에 따라 근대에 형성되어 온 학문의 체계를 ㅈ리배하는 인식론의 모델과 방법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연관된다. 
미메시스적 태도는 주체가 동일성 사고가 왜곡하고 빠뜨릴 수 있는 대상의 요소 이른바 비동일적인 것 비개념적인 것에 합당하고자 하는 노력을 가리킨다. 
이제껏 계몽의 역사에서 등한시되었던 현상들 이를테면 죽음.. 멜랑콜리, 비합리적인 것, 사소한 것 부차적인 것으로 폄하 되어온 현상들이 재평가되고 주목받게 된 것이다. 
벤야민의 베를린의 유년시절에 실린 단편에서 미메시스적 태도를 엿볼 수 있다. 
: 나는 낱말들에 나 자신을 감싸는 법을 배웠다. 나 자신을 모범적인 아이들과 유사하게 만드는 낱말이 아니라 집, 가구, 옷들과의 유사성을 만드는 낱말말이다. 나는 내 주변에 있었던 모든 것들과의 유사성으로 왜곡되어 있었다. 나는 이제는 속 빈 조개껍질처럼 내 앞에 놓인 19세기 속에 조개 안의 연체동물처럼 거주하고 있었다. 
즉 그는 사물을 개념으로 분류하는 대신 사물의 현상에 ㅅ유를 밀착시키고 더 나아가 그 사물의 꿈의 층위에 침투해 들어감으써만 그 사물에 대한 ㄹ변증법적 반전으로 인식을 얻어내는 미메시스적 태도를 유지한다. 
징표, 예감, 그리고 신호은 낮이고 밤이고 물결처럼 우리의 신체기관을 통과하고 있다. 그것들을 해석할 것이냐 아니면 이용할 것이냐 그것이 문제이다. 
자외선처럼 생의 책에 기록되어 있는 기억은 우리 모두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러나 예언처럼 텍스트에 주석을 다는 문자를 보여준다.
“정신의 깨어있음”은 위험의 순간에 자신을 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을 말한다. 
언어는 정보나 지식을 전달하는 단순한 매체가 아니다. 주체가 그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스스로를 인식하는 매체이다. 프루스트의 비자의적 기억의 매체 속에서 나타나는 기억의 이미지들은 언어의 매체 속에서 지각되는 비감각적 유사성의 이미지들이다. 
 
벤자민에게 언어는 사물의 정수이다. 

“프루스트는 이전에 어느 작가에게서도 볼 수 없었던 열정으로 , 우리의 삶이 마주쳤던 사물들에 충실할 것을 자신의 과제로 삼았다. 그는 어느 날 오후에, 어느 나무에, 양탄자에 비치는 어느 햇빛 조각에 충실했고 가구에 향수에 혹은 풍경에 충실했다.
벤야민은 프루스트의 대상을 관찰하는 태도가 이 세계와의 깊은 공범관계로 특징지어진다고 해석한다. 그의 미메시스적 태도는 윤리적인 것을 완전히 배제한다. 

 
프루스트가 그의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그리고 카프카의 일기에서 ‘나’라고 말할 때 그것은 똑같이 투명하고 유리 같은 자아이다. 그 자아의 방들은 고유한 색깔이 없다. 독자는 누구나 그 방을 오늘 들어가 살다가 내일 떠날 수 있다. 
 
미소와 흐느낌은 인간이 무언의 피조물에 이미 접근한 곳에서 언어의 여운을 포착하는 두 거울이다.
보들레르 시에 자주 등장하는 미소와 흐느낌은 결국 무상함과 충격 소외등이 각인된 현대 대도시의 비인간적인 측면을 보상하고 도시를 인간화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작가는 미메시스는 공부와 같다고 말한다. 공부는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공부는 하나의 과정이고 그것이 도달할 목표를 모른다. 
미메시스는 무자아성이다. 그리고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유사성으로서만 파악할 수 있다.
 
<발터벤야민의 사유에서 가족의 모티브>
벤야민의 유년기 기억은 서사적 연속성을 포기한 채 기억된 장소들, 학교를 비롯한 주변의 여러 공간과 시간에서 단속적 불연속적으로 펼쳐진다. 우선 유복한 부르주아 가정 에서 태어나 자란 벤야민은 비록 어렸지만 계급투쟁이 격화되던 당신의 억압적이고 가부장적인 문화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지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경험은 빌헬름 제국 말기의 계급적 갈등은 은폐되어 있었고 파편적으로 경험되었을 뿐이다. 
.. 그런데 나는 나중에 가난이란 자신의 노동에 대해형편없는 대가를 받은 치욕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는데, 이것이야말로 인식이 커다란 진보였다. “거지와 창녀”
카프카 작품 연구에서 벤야민은 가족의 폭력적 관계를 본다. 
아버지는 아들의 부양으로 연명하는 기생충과 같은 존재이면서 아들의 생존권마저 갉아먹는다. 그리고 아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기도 한다. 
카프카의 수치심은 그 수치심을 다스리는 삶과 사고보다 더 개인적이지 않다. 그 삶과 사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자기의 개인적인 삶을 위해 살고 있지 않다 그는 자기의 개인적 사고를 우해 사고하지 않는다. 그는 마치 가족의 강요 아래에서 살고 사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
카프카의 주인공들에게 끝날 줄 모르는 ‘소송’을 걸어오는 것이 어찌 부친의 세계뿐일까. 그 세계와 닮아있는 관리들의 세계와 사회도 그들에게 소송을 걸어온다.  죄와 속죄를 요구하는 이 운명은 그들에게 ‘법’을 내세우는 재판의 형태로 다가와 속죄를 요구한다. 
 
<꼽추 난쟁이>
베를린의 유년시절 마지막 단편 ‘꼽추 난쟁이’는 벤야민의 다른 글에서도 거듭 등장하는 형상이다. 도처에서 해코지를 하고 다니며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난쟁이는 벤야민에게 오곡과 망각의 알레고리이다. 이 꼽추는 벤야민에게 메시아가 오면 사라질 것이다. 
“ 폭력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세계를 조금 바로 잡을 그 메시아가 오면 꼽추는 사라질 것이다. ‘
‘비감각적 유사성’을 읽고 역사에서 ‘쓰이지 않는 것을 읽는’ 미메시스 능력 역시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미약한 희미한 메시아적 힘에 속한다고 말한다. 
결국 꼽추는 동화에 등장하는 형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현대에는 사회에 점증하는 소외와 물화의 과정에서 생겨난 역사적 형상이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