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히루키)를 읽다

숨그네 2024. 5. 30. 22:06

 

 
마르케스의 " 콜레라시대의 사랑"에서  산자와 죽은자의 경계를 필요로 하지 않았던  것처럼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현실이 아닌가. 벽은 존재할 지도 모른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니나 불확실한 벽이다. 경우에 따라, 상대에 따라 견고함을 달리하고 형상을 바꿔나간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1980년 하루키가 서른 초반에 도쿄에서 재즈카페를 하면서 구상하고 쓰기 시작한 미완성 소설이 40여 년이 지나서 그의 나이 일흔한 살에 완성했다는 소설 <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진실은 일정한 정지 속이 아니라 부단히 이행=이동하는 형체 안에 있다고 작가는 얘기한다. 

700여 페이지가 넘는 장편의 소설을 읽는 동안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마치 쉼 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따라가다 다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다른 지류를 만나 합수하여 흘러 결국 한줄기의 거대한 물줄기를 따라 아주 먼바다에 닿은 느낌이랄까. 주제는 선명하지 않았고 소재는 낯익으면서도 낯선 삶과 죽음이 뒤엉켜 있고 실재와 환상이 하나로 엮어있는 콜롬비아의 소설가 마르케스의 환상적 리얼리즘을 닮아있는 듯했다. 소설 읽기가 늘 그렇듯이 자신과 거리 두기를 하면서 읽기보다는 소설 속 상황과 인물들에 감정이입이 되거나 자기화시키는 경향이 있어서 인지, 나 또한 소설에서 설정한 가상의 공간과 시간에서 여러 날을 보내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어쨌든 현실에서 자신의 그림자를 데리고 하루하루를 사는 이에게 그 그림자를 벗어던지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한다면 갈 수 있는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도시로 진입하여 그곳의 주민으로 그림자 없이 살아가면서 또 다른 삶을 꿈꿀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매혹적이다. 
하지만 그 세계는 절대 유토피아적인 이상향이 아니다. 물론 디스토피아도 아니다. 다만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책속으로 들어가본다.

한번 선택해서 그 도시의 주민으로 하락되면 높고 불가사의한 힘을 가진  도시를 둘러싼 벽 밖으로 나오기는 쉽지 읺다. 벽은 치밀하게 쌓아 올린 벽돌로 돼있고 게다가 그 벽돌벽은 매일 조금씩  형태를 바꾸어서 도시의 전모를 파악할 수 없다. 아무도 그 벽을 넘어 밖으로 나갈 수 없고, 아무도 그 벽을 넘어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아주 특별한 벽이 있다. 그 도시는 시곗바늘이 없는 시계탑이 있고,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가 존재하지만 그들의 삶에 의미가 없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모래톱이 있고 외뿔 달린 과묵한 짐승들이 곳곳에 있고 사람들은 나무 잎사귀와 열매를 즐겨 먹지만 눈이 쌓이는 긴 겨울 동안 많은 개체가 추위와 굶주림에 목숨을 잃기도 한다. 
도시에는 아름다운 한줄기 강과 세 개의 돌다리가 놓이고 , 도서관과 망루가 세워지고 버려진 주물공장과 소박한 공동주택이 있다. 
주인공 그는 어느 날 마치 자신을 흘러가는 그림자 같은 것이고 실재하는 자신은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 있는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다는 소녀와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소녀는 그 오래된 도서관에서 사람들의 '오래된 꿈'을 읽는 사서자리가 한자리 비어있다고 그에게 소개한다. 

불가사의하게 그는 그 도시에  결국 들어가게 된다.  오래된 석조건물인 도서관에서 정말 오래된 꿈을 읽는 사서로 일하게 된다. 대신 그는 "눈에 상처"를 낸 뒤 도시에 입성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져서 그 상처를 치료해 주는 약초차를 매일 끓여 그에게 주는 소녀와 함께 있다.  그리고 소녀는 그림자와 함께 살았던 주인공의 세계에 대해 궁금증을 갖는다. 하지만 이 도시의 입구에서 그는 문지기에게 그림자를 맡겼다.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낡은 장화처럼 몸에서 분리된 그림자는 볼품없다. 하지만 본체 없는 그림자는 뿌리 없는 식물 같은 거라 오래 살지 못한다. 문지기는 도시민들의 그림자를 관리한다. 
오래된 꿈은 달걀처럼 생겼는데 크기와 색깔은 하나하나 다르다. 여러 종류의 동물들이 낳은 알 같다.  도서관에는 책이 한 권도 없다. 대신 달걀 모양의 오래된 꿈이 칸칸이 쌓여있다. 
도시의 문지기는 "만약 이 세상에 완전한 것이 존재한다면 바로 벽이야. 이벽을 누구도 넘을 수도 없고 부술 수도 없다"과 말한다. 그리고 도시의 거주민들은 말수가 적고 먹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언젠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과거에 사람들이 살았을 이도시에서 사람들은 도시를 버리고 떠난 것이다. 황급하게. 정치적 변혁이나 전쟁 역병과 같은 일이 있었을까. 아니면 스스로의 의지로 이주한 것이라. 아니면 강제추방. 그 누구도 설명하지 않는다. 그리고 과묵하게 이 도시에서 힘을 모아 그저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이 떠난 땅을 삼삼오오 배회하는 것은 단각수라는 동물들 뿐이다. 날카로운 외뿔이 달린 과묵한 황금색 짐승들. 아침이면 정연히 줄지어 도시 안으로 들어왔다가 밤이 되면 벽 바깥의 서식지에서 몸을 맞대고 잠든다. 
겨울이면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으로 짐승들이 연이어 목숨을 잃고 사람들은 가난하고 과묵하게 살아가는 곳. 책도 음악도 없고 운하는 메마르고 공동주택은 어두컴컴하고 다 쓰러져가고 공장은 가동을 멈추고 개와 고양이도 없는 곳. 

이도시로 옮겨지기 전 주인공은 소녀와 풋사랑과 같은 연애의 시절이 있었다. 청소년기에 찾아온 뜨거운 정열이 세차게 감정의 물살을 몰아  그를 그녀에게 집중시킨다. 그리고 그녀는  " 나 자신의 누군가의 그림자일 뿐이다"라는 말을 그에게 한다. 주인공은 소녀의 실체를 알기나 한 건가. 그저 그녀가 들려주는 벽에 둘러싸인 도시정도만이 그녀에 대해 확실히 알고 있는 정보이다. 이 도시거주민들은 문명의 세계와 달리 전기와 가스도 없이 유채기름으로 램프를 밝히고 요리를 한다. 난로는 장작불을 이용한다. 마치 현대문명의 바깥에서 배회하는 준석기 시대의 사람들 같다 할까. 그렇지만 그들은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주어진 자원을 절약하여 알뜰하게 생활을 유지할 만큼만 소비한다. 그리고 엄격한 벽안 생활에 대한 규칙을 지키며 산다. 그중 하나는 절대 남쪽 벽에 있는 웅덩이에 가지 않기. 그 웅덩이는 마치 먹이를 삼킨 뱀처럼 커다랗게 부풀어서 거대하다. 마치 무슨 질환을 앓는 거대한 호흡기의 헐떡임을 내는 물소리가 들린다. 바닥엔 거센 소용돌이가 있어 모든 것을 암흑 속으로 끌어들이는 곳. 이곳은 금기의 장소인 것이다. 

그림자가 사는 곳은 도시와 바깥세계의 중간지점이다. 주인공은 바깥세계에 나갈 수가 없고 그림자는 도시로 들어올 수 없다. 하지만 '그림자쉼터'가 있어 그림자를 잃은 사람과 사람을 잃은 그림자가 교류할 수 있다. 서로를 염려하고 그리워하는 곳. 그림자는 말한다. " 어쩌면 바깥에 있던 것이 진짜 그녀이고 이곳에 있는 건 그림자인지도 몰라요. 만약 그렇다면 모순과 거짓으로 가득한 이 세계에 머무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정말 벽 밖의 그녀는 세 살 때 본채와 떨어져 벽 바깥으로 쫓겨나 양부모 밑에서 자랐을까 그녀의 말처럼... 
그러나 그녀는 여름방학이 끝나고도 돌아오지 않고 주인공은 그녀에 대한 모든 단서를 잃고 만다. 그리고 그는 고독해진다.
그는 도시의 오래된 꿈을 읽는 자로 도서관에서 일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벗어놓은 그림자와 만나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눈다. 
" 분명 이 도시는 처음에 우리의 상상 속에서 태어났을 거야. 하지만 긴 세월 동안 스스로 의지가 목적을 갖게 된 걸 거야.
이도시는 구축물이라기보다 생명력을 지니고 움직이는 생물처럼 보일 때가 있어. 유연하고 교묘한 생물이야 
오래된 꿈을 읽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 아닐까. 
그림자는 말한다. 
" 오래된 꿈이란, 이 도시가 성립하기 위해 벽 바깥으로 추방당한 본체가 남겨놓은 마음의 잔향 같은 것 아닐까요. 본체를 추방하더라도 송두리째 모조리 들어낼 순 없고 아무래도 뒤에 남는 게 있어요 그 잔재들을 모아 오래된 꿈이라는 튼튼한 용기에 단단히 가둔 겁니다. "
잔향은 미처 제거하지 못한 마음의 작은 씨앗 같은 게 뒤에 남고 그것이 그림자의 내부에서 은밀히 성장해 가죠. 도시는 그것을 재빨리 찾아내서 전용 용기에 가둬두는 것. "
 
"마음의 씨앗. 그것은 인간이 품은 갖가지 종류가 감정. 슬픔, 망설임, 질투, 두려움. 고뇌, 절망, 의심, 곤혹, 회의 자기 연민등. 이도시에선 그런 감정은 무용하고 오히려 해로운 것이죠. 이른바 역병의 씨앗 같은 겁니다. "
"그래서 그것을 밀폐용기에 가두고 일반 주민의 접근을 금지하죠."그래서 도서관의 사서 역할을 그 오래된 영혼, 즉 마음의 잔향을 가라앉히고 소멸시키는 일이겠죠. 그림자들이 할 수 없는 작업. 공감이란 진짜 감정을 가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
그녀와 난데없는 이별 이후 그는 공허하고 힘든 스물 전후를 넘기고 단조롭고 고요하고 무엇보다 고독한 30대의 나이를 끝내고 마흔을 넘긴다. 변함없이 19살 때 만나서 급작스럽게 헤어진 그녀를 늘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한 채 산다. 마흔다섯 살 생일에 그는 구덩이에 쿵하고 난데없이 실제로 땅에 파인 구덩이에 빠진다.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서 죽은 짐승을 태우는 그 구덩이에 떨어진 것이다. 
그가 다시 그림자의 도움을 받고 위협적이고 마치 생물처럼 그를 두렵게 만드는 도시의 벽을 마치 헤엄치다시피 통과한다. 그것은 물질과 비물질 사이의 무언가로 만들어진 기묘한 감촉을 가진 벽. 시간도 거리도 없고 물컹거리는 장애물을 돌파하듯이 그는 그곳을 빠져나온다. 무엇보다 두려움을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 그림자의 말처럼 도시가 대단히 기교적이고 인공적이며 모든 존재의 균형이 정묘 하게 지켜지고 그걸 유지하기 위한 장치가 빈틈없이 움직이고 있고. 그 밸런스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도시는 공포심을 이용하고 있다. 즉 남쪽 웅덩이가 위험한 장소라는 정보를 사람들에게 세뇌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웅덩이가 도시를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그렇지만 마지막에 그는 웅덩이에 이르자 자신이 아닌 자신의 그림자를 도시바깥으로 보낸다. 

하지만 놀랍게도 현실로 돌아온 그는 그림자를 가진 본체이다. 그곳의 기억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그는 현실세계에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전철을 타고 회사에 출근과 그저 정해진 모양의 작은 톱니바퀴 같은 생활을 하다 결국 사직서를 내고 이런 생활의 레일에서 일단 몸과 마음을 내려놓기로 한다. 

그리고 후쿠시마의 작은 지방도시에 있는 도서관에서 난 구직광고를 소개받아 그곳으로 이주하게 된다. 이곳은 마을에서 운영하는 사립도서관이다. 이곳에서 그는 고야스라는 관장을 만나 인터뷰를 한다. 그리고 우연찮게 꿈속에서 본 것과 똑같은 베레모가 책상에 놓여있는 기이한 체험을 한다. 물론 고야스가 쓰고 있는 베레모이다.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의 설명에 의하면 관장직에 물러난 이후 고야스는 고문 같은 역할을 하면서 도서관일에 관여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그곳에서 주인공은 고야스 씨로부터 도서관장역할을 제안받고 수락한다. 
고야스의 복장 또한 기묘하다. 바지가 아닌 스커트를 입고 있다. " 스커트를 입고 있으면 왠지 내가 아름다운 시의 몇 행이 된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에..."
남색베레모에 랩스커트를 입고 다니는 도서관장 고야스. 그리고 명민하고 깔끔한 소에다. 가끔씩 소리 없이  도서관장실에 나타나 조용히 업무지시를 하거나 소에다와 이야기를 나누는 고야스. 그리고 그는 도서관으로 쓰이지 않는 어둑한 데다 복잡하게 얽힌 작업실로 그를 안내한다. 그곳에선 따뜻한 장작난로가 있다. 이 장작나무는 향긋한 향이 나는 사과나무로 땔감을 삼는다. 고야스 씨는 몸과 마음을 천천히 데워주는 그리고 영혼까지 데워주는 이 장작난로에 대한 애착을 표현한다. 그것은 환영 같은 게아니고 벽에 둘러싸인 그 도시의 도서관에 있던 것과 완전히 똑같은 난로였다. 예감은 정말 틀리지 않는다. 게다가 그는 바늘이 달리지 않는 손목시계를 차고 있다는 것을. 그 순간 그는 현실이 여기저기서 뒤섞이기 시작하고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을 느낀다. 드디어 고야스 씨는 자신의 신분을 고백한다. 그는 그림자가 없는 인간. 즉 이미 죽은 인간이었다. 잠시동안 육신을 얻어 입은 죽은 영혼인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영혼보다는 확실히 실제로 의지 할 수 있는 것은 의식과 기억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유령인 것이다. 일시적인 육체를 동반한 의식으로서의 유령. 그리고 시편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 사람은 한낱 숨결에 지나지 않는 것. 한평생이래야 지나가는 그림자입니다. "

고야스는 이 소도시 자산가의 아들로 일찍 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양조장경영권을 물려받아 운영하다가 우연찮게 아름다운 여성과 만나 사랑에 빠져 아들을 낳는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아들이 어린 나이에 죽고 이를 비관한 아내마저 자살로 생을 마감하자 고야스는 양조장을 정리해서 본인이 평소 좋아했던 책이 가득한 도서관을 건립하고 그 운영을 마을 이사회에 맡긴다. 이는 도서관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것이 오랜 꿈이었기 때문. 편안한 분위기의 특별한 장소를 마련하고 많은 책을 모아두고 ,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골라 읽는 것. 그것이 고야스 씨의 이상적인 소세계였던 것. 그의 소우주.
한참 동안 칩거하다 다시 세상밖에 나온 고야스 씨는 기행이라고 여겨지는 뭔가 다른 존재로 변해가는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랩스커트와 베레모를 착용하고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만의 삶을 살았던 것. 그러다 산책 중 심장마비로 쓰러져 허망하게 삶을 마감한다. 
그리고 그들은 도서관 깊은 곳에 있는 작은방에서 난로를 지피고 서로의 낯선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고야스 씨는 "마음이 원하는 일이면 불가사의한 일도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말로 그의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서 그림자 없이 살았던 이야기와 결국 그림자와 작별하고 벽을 넘어 웅덩이를 건너 현실로 돌아오고자 했는데 그림자를 대신 보내려 했던 마지막 시도가 이상하게 자신이 그림자와 함께 현실로 복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낯설지 않은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그는 고야스의 만남에 이어 도서관에서 마치 공기를 마시듯 책들을 맹렬한 속도로 흡입하듯 읽어내는 한 소년을 만난다. 그는 서번트 증후군을 갖고 있다. 수학이나 예술분야에서 종종 비범할 정도로 특출 난 능력을 발휘하는 증세다. 그는 일반고등학교에 진학을 못하고 하루 종일 도서관에 와서 방대한 양의 책을 읽는다. 물론 소년은 사회성이 부족하여 어울리는 사람은 극히 제한적이고 의사소통이 수월하지 않다. 
간혹 그는 고야스의 묘소을 찾아가  마치 겨울 아침의 어렴풋한 슬픔이 투명한 옷처럼 얇게 감싸고 있는 시간을 보내면서 마치 친구처럼  그에게 자신만의 비밀을 고해성사하듯 벽안의 도시이야기를 상세히 들려준다. 그에게 관심을 보였던 소년은 고야스 씨가 생전 대화가 통했던 친밀한 사이로 그에게는 영혼의 동반자였다. 소년 역시 고야스 묘지에 종종 오곤 했는데 우연히 고야스의 묘소에서 그가 묘사한 " 높은 벽에 둘러싸인 도시"에 대해 듣게 되고 거의 완벽하게 그곳을 묘사한 지도를 만들어 도서관에 있는 그의 책상에 놓아둔다. 
소년은 엘로 서브마린으로 불린다. 노란 잠수함이 그려진 초록색 파카를 마치 그의 독특한 퍼슨엘러티인것처럼 입고 다닌다. 소년은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영혼이 앓는 역병을 막기 위해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 그림자가 없고 도서관에는 한 권의 책도 없는 그곳에 가길 원한다. 그리고 그처럼 그곳에서 오래된 꿈을 읽고 싶어 한다. 
어쩜 가족을 포함해 그 누구도 소년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가 지닌 특별한 능력을 살려주지 못할 바에 그 도시가 소년이 살기에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이행에 도움을 주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은 일인지 그는 곤혹스럽다. 

고야스 씨와의 만남을 위해 묘소를 찾을 때 들르곤 했던 카페에서 그는 카페 여주인과 독특한 인연을 만든다. 그녀 또한 도시의 각박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남편과 이혼을 하면서 관계에 대한 신뢰와 확신이 없어지자 흔들리게 된다. 홀연히 짐을 싸서 낯선 소도시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해 생활한다. 같은 처지인 고야스에게 친밀감을 느낀 것이리라. 어쩌면 그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는 그녀가 걸친 방어벽 안쪽에 있을 평온함..

엘로서머린 소년은 현실에서 벗어나 그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로 이행하고 싶어 한다. 소년의 도시로의 이행에 그는 자신이 없다. 그의 심경을 들은 고야스는 말한다. 
" 그가 어느 쪽을 택하느냐를 두고 당신이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 그 애는 스스로 판단해서 앞으로의 삶을 선택할 겁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세계에서 확고하고 힘 있게 살아나갈 겁니다. 당신은 당신이 선택한 세계에서 , 당신이 선택한 인생을 살아가면 됩니다. "
이후 고야스 씨는 자신의 존재를 지우고 영원히, 완전히 죽음의 세계로 돌아간다. 
그리고 소년은 실종된다. 마치 자신의 허물을 벗듯 즐겨 입던 노란 잠수함 파카도 벗어둔 채. 가족을 비롯해 경찰이 나서서 사방을 수소문하고 찾아 나서지만 그의 종족은 묘연하다. 그리고 간밤에 그는  오두막을 찾아다니다 만난 소년이 자신의 귓불을 세게 깨무는 기묘한 꿈을 꾼다. 그리고 그 통증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그 불확실한 벽을 넘었다. 그리고 눈에 익은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한걸음 한걸음 내 디딜 때마다 그의 육체가 변화하고 있다. 피부가 건강해지고 팔다리가 날렵해지고 흉터가 지워진다. 젊어지고 있는 것이다. 의식과 기억은 현재의 그이지만 육체는 시간을 역행해 소년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모래톱에서 열여섯 살 모습 그대로의 그녀가 그곳에 있음을 본다. 
" 너는 여름풀 위에 주저앉아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작은 새 두 마리가 상공을 나란히 재빠르게 가로지른다. 네 옆에 앉아 왠지 신기한 기분이 든다. 마치 수천 가닥의 보이지 않는 실이 너의 몸과 나의 마음을 촘촘히 엮어나가는 것 같다. "
그리고 그는 깨닫는다. 자신의 그림자가 사라져 버렸음을. 그렇지만 두려워하지 않는다. 결국은 그림자가 돌아올 것임을 그는 확신한다.
그녀는 말한다. " 이제 알겠어? 우리는 둘 다 누군가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아."
그 도시에 거주하면서 그는 강건너에서 그를 눈으로 쫓아오던 소년의 모습을 보게 되면서 귓불의 통증을 동시에 느낀다 
소년이 온 것이다. 그리고 소년은 그림자를 버리고 왔지만 눈에 상처를 내지 않고 왔다. 도시에 머무는 것이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몰래 눈에 띄지 않게. 소년은 그를 찾아와 자신은 오래된 꿈을 읽는 사서가 되고 싶다고 부탁한다. 그리고 왼쪽 귓불을 깨문 것이 그였듯이 오른쪽 귓불을 꺠물면 그와 하나가 되어 꿈을 읽는 사서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와 소년이 하나가 될 수 있음을. 그가 소년이고 소년이 그임을. 그리고 드디어 소년은 나머지 한쪽의 귓불을 깨문다. 
꿈이었을까. 그는 현실에서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이후 그는 오래된 꿈을 읽을 수가 없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건 소년이었다. 오히려 소년은 그들이 들려주는 세세한 부분까지 정확히 알아듣고서 자기 안에 착실히 쌓아나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잠 속에서 그는 옐로소년을 만난다. 그곳은 의식의 깊은 밑바닥. 그들이 만나서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곳. 다만 촛불이 꺼지기 전에.
그가 오래된 꿈을 손으로 덥혀껍질 밖으로 이끌면 소년은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해독한다. 
소년은  그가 도시밖으로 밀어낸 그림자와 하나 되기를 은밀히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가 진심으로 원한다면 바깥으로 갈 수 있음을 확신시킨다. 그리고 소녀와의 작별을 한 후 낙하하듯이 촛불을 단숨에 몸속의 힘을 모아 끈다.
그리고 무엇보다 깊고 부드러운 어둠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