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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여행일지 5

숨그네 2024. 12. 24. 17:05

10월 19일 토요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개 같은 가을이 -최승자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들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이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 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있는 기억의 폐수가
한 없이 말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스스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 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Self-knowledge is achieved not by focusing at yourself, but by paying attention to others and to your environment’ - Chasing windmill
 
이번 여행의 메인인 프랑크푸트트 도서전에 가는 날이다. 
도서 관련 전물가들의 도서전 참가는 16일부터 이미 시작되어고 일반일들이 갈 수 있는 날은 19일과 20일이다. U반을 타고 Messe로 간다. 사람들로 여느 날보다 북적 거린다. 마치 구름 떼처럼 몰려가는 것처럼 역터미널이 남녀노소 사람들로 꽉 찬다. 머리서 Check in 하라는 연락이 와서 디지털 체인을 하고 Booclub Senior Member로 등록했다. 
개인맞춤형 프로그램을 추천해 주고 안내해 준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쨌든 미리 사둔 온라인티켓으로 입장하는데 성공. 괜한 걱정을 한 것 같다. 나는 괜찮지만 내 친구는 온라인 티켓확인문자도 없었고 온라인체크인을 하지 않아서 걱정이 되긴 했다. 
입구에 포룸과 도시 전시홀에 대한 안내도가 엄청 크게 벽면에 걸려있다. 그리고 큐알 코드가 있어 디지털 안내를 받을 수도 있다. 일단 Messe 공간 사방으로 건물이 둘러있고 바로 전철이나 버스로 연결되어 있어 교통 편의성이 있어 참가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 
규모에 일단 질린다. Agora, Congress center, forum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단 3층에서 열리는 아시아 도서 파빌리온을 보러 간다. 서둘러 한국관을 찾아간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특별 이벤트나 전시를 하고 있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왠 걸 
노벨문학상수상이라는 현수막만 걸려있고 그녀의 작품이 한 작품도 없다. 대신 아동미술 관련 책을 파는 부스와 한국음식 관련 도서를 파는 독립출판사 한 두어 개 가 전부다. 실망. 
필리핀, 싱가포르 등 다른 아시아권 도서전과 비교해 보면 형편없이 초라하고 빈약한 전시내용이다. 고려연 출판사에서 나온 그림책을 두어 개 찜해 두고 한국에 돌아가면 준하에게 소개해 줘야지 하며.. 고려연 오승연 대표가 비 플랫폼 내러티브 강의를 온라인으로  한다고 하니 그 정보도 챙긴다. - 나중에 다시 와 보니 <책 읽어주는 할머니> 그림책은 팔리고 없다. 
시간대별로 출판사와 작가가 관련된 주제강의를 한다. 10시에는 필리핀 작가 두 명의 강의가 있다. 내용은 Dragon hauntings , Fantasy and Speculative Fiction From Asias>라는 주제로 강의가 있다. 강의를 듣는데 꽤나 흥미롭다. 1시간 정도 진행이 되었다. 스페인 식민지를 경험한 이들이 그들의 다양한 원초적 신화내용을 되살려 기독교적인 신의 개념과는 다른 신화적 세계를 복원해 기독교적인 내러티브와 다른 그들만의 원형적인 신화세계를 그들의 언어로 내러티브 한다는 것이 흥미로왔다. 청중들도 진지하게 듣고 강의가 끝난 후 질의응답시간을 갖는다. 
Explore the mythical worlds of Asian fantasy and speculative fiction, where dragons reign and come alive in myths both ancient and modern. Asian literature intertwined cultural heritage with fantastic narratives.
터키관으로 이동해 화려한 금장으로 장식된 코란에 눈이 꽂혀 보고 있는데 잘생긴 두 청년이 다가와 열정적으로 코란과 이슬람에 대해 설명하는데 공감되는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짧은 시간에 이슬람에 빠져들기는 무리. 이메일 남기고 서둘러 다른 도서전으로 발길을 옮긴다. 칠레 에쿠아도르, 이라크 이란 이집트등 책으로 만나는 세계 여행을 하는 듯. 잠시 아고라도 나오는데 축제 분위기다. 만화 캐릭터 옷을 입고 코스프레하는 젊은이들, 음식을 파는 부스, 그리고 공연장. 야외 포럼이 진행되고 있지만 가진 못했다. 일단 태국음식을 먹어본다. 
다시 6ㅊ응로 가서 이탈리언 파빌리온으로 간다. The honor of invitation이 이탈리아여서 독립된 건물 한 층을 전부 이탈리안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바닥에 앉아 오늘의 강연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다. 
문화자본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사회동력일 것이다. 얼마 전 마치 현대판 분서갱유처럼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의 작품들, (소년은 온다를 비롯해 작별하지 않는다 )를 좌파니 종북작가니 하면서 학교 도서관과 공공도서관에서 거둬들였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부끄럽고 참담하던지. 우리나라가 아니라 다른 나라들이 그녀의 작품세계를 인정하고 한국 근현대사의 잊을 수 없는 폭력적 트라우마를 시적언어로 형상화했다고 극찬하며 아시아 최초의 여성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지명했는데도 몇 줌의 극우 분열론자들은 여전히 스웨덴 대사관에 몰려가 수상을 철회하라고 농성한다고 하니. 그들이 겪고 있을 인지부조화가 가히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잠시 그림책저자들이 모여서 강연을 하는 곳으로 옮겨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The gravity of world issues of our time, climate change, wars, human rights violation,- How is it reflected in children’s book and their art? Have children’s books in Asia ceased to be books of innocence and delight?
싱가포르 출신 그림작가의 역사그림책 이야기는 흥미롭고 시사하는 점이 강했다. 
서양인의 관점이 아닌 전쟁에 참전한 식민화된 나라의 전쟁 영웅들의 이야기는 왜 들리지 않는가?라는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싱가포르의 비극적인 근현대사의 그림자를 자국민적인 시점에서 풀어내 역사그림책을 만든 이야기를 진진하게 나눈다. 
세 번째 콘퍼런스의 내용은 한국발표자가 역시 없없지만 흥미로왔다. “Queering the text” Queer Literature & Story telling in South Asia”.
싱가포르 출판업자와 필리핀 작가가 발표를 했다. 
This panel aims to promote the visuality and recognition of queer literature by exploring  the current state, challenges and possibilities of queer writing from across SA.
Different historical and cultural contents that helped shape the queer experience in SA. raging from coming of age stories to social critiques.
( 퀴어문학의 가시화와 사회적인 인정은 동아시의 문화권에서 하나의 도전이자 가능성이며 여러 다른 역사 문화적 배경을 가진 그들의 서사를 주류문화권으로 편입해야 한다)
 
필리핀 전시관에서 Chasing Windmill을 쓴 저자 메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그녀는 1983년 마르코스 독재시절, 네덜란드에 마치 독립지사처럼 필리핀의 혹독한 독재정권의 탄압과 민중들의 억압을 알리기 위해 파견된 저항운동의 특사였다고 한다. 그로 인해 네덜란드에 오래 머물며 그곳에서 정착해 시의원으로 정치활동도 하고 그녀의 그간 삶을 책으로 엮어냈다고 한다. 이제는 말이 느리고 낮은 할머니 작가가 되었지만 눈빛은 형형하고 맑은 그녀의 책을 읽어봐야겠다. 
<빈센트 반고흐> 그림책과 그의 글이 나란히 놓인 책을 두권 구입한다. 횡재. 이게 마지막 남은 것이라 하니. 
돌아오는 길에 빌리브란트 거리에서 내려 금세 어둑해진 거리를 거닌다. 하우프만 바헤 카페에서 이곳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한다. 시저스 샐러드와 생강차 그리고 슈니첼과 매구 한잔을 마신다. 
긴 여정이었지만 잠이 쉬 오지 않아. <락파 셰르파> 다큐를 보고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든다. 


 
10월 20일 슈투트가르트.
 
5일째 모마 블록에서 머문 프랑크푸르트 여행을 마치고 이제 슈투트가르트로 간다.
10시 50분 기차가 11시 18분으로 딜레이 됐다. ICE 573 1등석 코치.
아쉽지만 숙제를 마친 가뿐한 기분도 든다. 내가 좋아하는 기차를 타고 탁자가 놓인 곳에서 여유 있게 앉아 커피를 마시며 밀린 여행기를 정리한다.  슈투트가르트는 바덴뷔르 템베르크 주의 주도로 상공업의 중심지이자 철도교통의 요지이며 벤츠와 포르셰 박물관이 있는 곳이란다. 나는 자동차 마니아가 아니어서 별로 관심은 없다. 
이틀정도 머물 예정이다. HBF바로 근처에 숙소인 스테이겐베르거 호텔 ( Steigenberger Hotel) 가까워서 다행. 먼저 걸어서 슐로스 광장 ( Schlossplatz)에 가본다. 사람들의 안식처와 여행객의 휴식처란다. 푸른 잔디밭이 여느 다른 광장보다 더 넓다. 신궁전의 군사퍼데이드 장소였단다. 광장중앙에는 독일제국을 건립한 벨헬름 황제 기념비가 있는데 통치 25주년 기념, 1841년에 세운 것이라고. 
이곳의 강은 뷔르템베르크 강. 구궁전 ( Altes Schloss)을 잠깐 들어가 본다. 14세기 뷔르헴베르크왕국의 거처를  슈투트가르트로 옮기면서 지은 궁전인데 주립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빙 둘러 복도시 회랑이 있는 게 인상적이다. 그리고 실러 광장. 이곳은 확실히 광장문화이다. 독일의 시인. 괴테가 좋아했던 시인 쉴러. 쉴러는 진보와 개혁성향이 강한 시인으로 이후 독일문호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독일 고전주의의 2대 문호.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바탕으로 1800년과 1848년 혁명기의 독일인의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에 정신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베토벤 제9 교향곡 <환희의 송가>. 3부작 <빌헬름텔>이 그의 작품이다. 그는 시인, 철학자. 역사가 문학이론가였다. 가나나한 하급군의관 아들로 출생했으나 사관학교, 법학, 의학을 공부했고 이곳에서는 하급군의관으로 일했다고 한다. 
<군도>는 독일귀족계급의 횡포에 대한 반항적 작품으로 1782년 만하임에서 초연되었고 이를 계기로 저술금지령을 피해 네덜란드로 이주하기도. 괴테와 친분을 쌓았으며 공동작업을 하기도 했단다. 바이마르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이곳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단다. <Coffreez>라는 곳에서 커피 한잔. 고맙게도 명란이 잃어버린 지갑을 손님이 주워 분수대로 가고 있는 우리를 불러 세워서 돌려준다. 이렇게 고마운 일이….
St. Everhard에서  현대적인 예수상을 보았다. 인상적이다. 이곳에서도 안전한 여행을 비는 촛불을 밝힌다. 
이곳저곳에 국가사회주의 나치에 의해 희생된 자들을 추모하는 공간이 많이 있다. 
그리고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젊은이들이 희생자의 사진과 소지품을 앞에 놓고 빙 둘러 원을 만들어 추모음악을 들으면서 한참을 애도하는 광경을 본다. 감동적이다. 
<불고기퀸> 한국간판이지만 중국인이 운영하는 상당히 괜찮은 음식점. 간단하게 soysauce를 곁들인 치킨윙과 진로소주를 두어 잔 마시면서 저녁을 대신한다. 
오늘 아쉬웠던 것은 헤겔 하우스 (Museum Hegel Haus)에 갔는데 이미 문이 닫혔다. 
길모퉁이에 삐쭉 나와 있는 그의 집은 어쩐지 대학자의 집치곤 초라해 보였다. 젊은 시절 그 어려운 헤겔책을 읽어보겠다고 덤볐으나 너무 난해하고 어려워 기억에 남은 게 별로 없다. 
헤겔은 베를린에서 생을 마감했으나 1770년에 태어나 18년 동안 이곳 슈투트가르트에서 살았다. 헤겔하우스에는 그의 베레모, 친필편지, 사진 흉상. 서적등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10월 21일 슈투트가르트, 튀빙겐
 
날씨가 맑다 못해 인디언서머처럼 따사롭다. 배낭을 가볍게 매고 오늘은 튀빙겐으로 간다. 
S1으로 8시 30분경에 Herrenberg까지 이동한다. 간발의 차이로 Platform 102를 놓쳐서 30분 뒤에 오는 RB63을 타기로 하고 근처에 있는 카페에 들러 차와 커피를 마신다. 케이크가 놓인 곳에 벌이 웅웅거린다. 조용한 소읍인 듯… 책자에 이렇게 소개되었다. 
튀빙겐은 네 카이 강을 면하고 있는 대학도시로 타도 시에 비해 연령대가 상대적으로 낮을 정도로 대학생들로 구성이 되어있고 철학자 헤겔과 시인 휠덜린이 1477년에 설립된 슈서기은 튀빙겐 대학교의 대표 졸업생이다. 구시가지는 중세의 반목주 (Half-timber) 외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고 좁은 골목들은 하나같이 운치 있고 정감이 간다. 헤르만헤쎄가 점원으로 일했던 서점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튀빙겐은 바덴뷔르템베르크가 심장이다. 바덴의 수도였던 슈투트가르트에서 44킬로  떨어진 곳에 있다. 
기차에서 내려 여행자안내소로 간다. 영어로 된 지도와 소책자를 3유로를 주고 구입.
조금 걸어 내려가니 숨 막히게 아름다운 숲길이 네 카이강변으로 펼쳐져 있다 
네 카이섬 ( Necharinsel)
네카어강 가운데 떠있는 약 1 킬러의 길쭉한 섬. 플라타너스 그림같이 서있다. 19세기에 조성되었다. 이곳 사람들의 산책로란다. 아이고 부러워라. 강 주변에 우뚝 솟은 형형색색의 중세건물들이 운치를 더한다. 탄성이 저절로 나오면서 도파민이 솟구친다. 강변에 가만히 놓인 쪽배들도 그림처럼 예쁘다. 건너편에 있는 아름다운 건물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뻗어있는 숲길을 심호흡을 하며 되도록이면 천천히 걷는다. 이 시간이 끝나지 않기를 염원하며..
마르크트 광장 (Marktplatz)에 간다. 가는 곳마다 그림액자에 그대로 넣어둬 될듯한 풍경들이 펼쳐진다. 1435년에 지은 시청사건물은 창고와 법정 시의회 역할을 동시에 했단다. 다채로운 파사드로 1876년까지 거슬러 가는 중세건물.  Coat of arms(문장: 새로 배운 단어)과  1511년에 만든 천문시계, 대학설립자인 Eberhard 초상화가 조각되어 있다. 
광장에 있는 카페에서 차르 마시는데 이곳 할머니들 계모임인가. 잘 차려있고 햇볕을 쬐며 오랫동안 앉아 차를 마시면서 정담을 나누다 우리를 힐끔거리며 쳐다본다. 
호헨튀빙겐 캐슬에 오른다. 비탈길이다. 성들이 요소로서 기능을 했기 때문이다. 
해발 321미터. 튀빙겐의 전망대. 1037년에 지어졌고 16세기까지 확장을 하며 완성되었다. 1997년 튀빙겐 대학교의 연구시설과 박물관으로 이용되기 시작되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청아한 가을 하늘을 의자에 덩그러니 누워서 구경한다. 이 캐슬은 사방 4개의 윙으로 둘러싸여 있고 중앙에 코트야드가 있다. 18세기 후반까지 여러 전쟁을 겪으면서도 대학교로 기능을 하였고 이곳의 영주 에버하드는 이미 독일 여러 주에 대학이 있음에도 이곳에 대학을 설립하고자 했으며 이후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었으나 18세기 이후 바덴뷔르헴배르크의 수도가 슈투트가르트로 옮겨지면서 동반 발전을 한 후 대학도시로 튀빙겐이 안정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명판에 의하면 DNA를 발견한 곳이 이곳 대학이고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와인저장고 (winebarrel)이 캐슬 Cellar에 있다고 한다. 
홀츠마르크트 광장( Lumber Market)은 과거 목재시장이었다 한다. 과일, 채소를 팔고 있는 시장이 있어 검은 자두를 몇 알 사서 먹는다. 그리고 성 게오르그 교회 계단에 앉아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젊은이들이 있는 곳을 간다  교회와 대학건물로 사용되었다는데 이곳은 시민들의 정치적 집회가 열리곤 했던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바로 코 앞에 해쎄의 고서점이 있다. 오늘은 문을 열지 않아서 들어갈 수가 없다. 젊었을 때의 헤쎄 사진이 걸려있다. 
Short Stories라는 곳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는다. 싱가포르 보울스가 있는 베이식 보울에 따뜻한 소스와 타핑은 선택해서 자신이 원하는 보울을 만들어서 먹는 채식식당이다. 
가게 주인에게 물어 관광브뤄숴의 표지그림인  Krumme Brucke Square로 향한다. 
Crooked Bridge 즉 구부러진 다리를 기진 광장이다. 다리 아래에는 Ammer라는 작은 개천이 흐른다. 도시의 남북의 경계선이 없이 흐르면서  화재, 배수, 농업에 이 물을 이용했다고 한다. 
Ammer Camel 위에 있는 Crooked bridge는 옛날 장인들, 농부들, 와인브루어들이 살던  Lower Town을 비공식적으로 구획하는 라인이었다고 한다.  Green 건물은 현재 양로원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Judengrassse는 튀빙겐에서 1477년 처음으로 정착한 유대인 주거지를 보여주는 곳인데 이들은 1477년에 추방되었다가 19세기 두 번째 공동체로 정착하면서 시나고그를 짓고 이곳에서 다시 재정 착했다고 한다. 1938년 11월 이틀에 걸쳐 나치치하에서 공식으로 승인한 “Crysteal Night”기간 동안 유태인 주거지들이 거의 파손되고 약탈당했으며 유태인들은 추방당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Bruge Lane. 가파른 길. 처음 지어진 중세성이다.
네 카이 섬에서 강변가에 노란색 원통모양에 뾰족 지붕을 얹은 휠덜린 탑이 있는 곳으로 간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활갈색의 나무와 붉은 담쟁이덩굴, 가만히 가라앉은 공기, 잔잔한 강물과 아름드리나무들이 가득한 숲,  강가에 세워진 낮은 담장에 걸터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 젊은이들. 고즈넉한 곳에 놓인 벤치에 앉아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며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할머니들. 언덕 위에 있는 작은 카페에선 사람들이 커피와 차를 마시며 여유롭게 가만가만 정겨운 이야기를 나눈다.
37세의 짧은 생을 살다 간 시인 휠덜린. 그가 이곳에 머물렀다고 이곳을 휠덜린의 탑이라 한다. 
그를 기념하며 지금 이곳은 박물관으로 사용된다고. 늦은 시간이라 안은 볼 수가 없다. 
강변에 작은 정원이 가꾸어져 있다. 1807년까지 이 탑의 한 곳에 그가 살았고 정신병환자였던 그를 그가 사망한던 1848년까지 가족들이 돌봤다고 한다. 
도시성벽의 성안과 성 밖 사이에 있는 공간이라는 뜻으로 이곳을 “Zwingel”이라 불렀다고 한다. 
탑은 도시의 요새역할을 하기도 했고 그가 헤겔과 함께 프로테스탄트 세미나에서 1788년에서 1793년까지 공부했다고 한다. 프리랜스 작가와 개인과외교사로 활동을 하다 1806년 튀빙겐 대학의 병원에 정신적인 문제로 입원을 했다고. 병원치료의 효과를 보지 못하자 그의 가족들은 휠덜린 탑으로 그를 데리고 왔다고 전해진다. 
그의 작품을 기회가 된다면 읽어봐야겠다. 
하루 종일 튀빙겐에서 지내다 오후 5시 30분경에 RB와 Sbarm을 타고 숙소로 돌아온다. 저녁식사로 근처 식당 불고기퀸에서 김밥 한 줄을 사서 명란이 만들어준 컵라면과 김을 먹는다. 넥플릭스에서 테라코파 전사에 대한 다큐, 여백서원을 운영하는 전영애 씨에 대한 다큐를 잠시 본다. 내일은 뮌헨으로 돌아간다. 




<10월 22일 화요일 다시 뮌헨으로 >
ICE 593을 타고 슈투트가르트에서 다시 뮌헨으로 돌아온다.  바람이 없고 찬기운이 느껴지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청명한 가을 날씨다. Hochland Kaffe에 와서 카푸치노를 주문했는데 명란이 백팩을 숙소에 두고 왔단다. 그래도 헐레벌떡하지 않고 HBF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숙소가 있어 다행스럽게 찾아온다. 호텔은 아주 코지한 곳이었다. 엑셀시어.
마지막 여정 이틀 동안은 호텔에서  조식을 먹을 예정이다. 예쁘고 단정하고 고풍스러운 아름다운 호텔이다 호텔 앞이 공사 중이라 도로가 좀 복잡하긴 하지만 분수도 있고 이곳저곳 골목에 순찰 경찰이 순찰을 하고 있어 중앙역 근처라 해도 안전상의 문제는 없을 듯.
오늘 오후엔 전혜린이 살았던 슈바빙에 갈 것이다.. St. Emmeram에서 17번 트램을 타고 National Museum /Haus der Kunst라는 곳에서 내렸는데 거의 300 미터 내에 영국정원이 있다. 바로 그곳에서 슈바빙이 시작된다. 슈바빙은 특정한 장소라기보다 영국정원이 있는 곳의 사방일대를 일컫는 말인 것 같다. 도로표지판에 슈바빙이라고 쓰여있긴 하다. 
영국정원(English Garden)은 독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도시공원 중의 하나다. 슈바이네바흐 강이 흐르는 아름다운 공원. 특히 다리 아래에서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어 사람들이 바글바글 구경을 한다. 물살이 강해 서핑하기 좋은 곳이라 이것을 즐기는 사람들의 명소라 한다. Meadow의 규모에 놀랐지만 슈바이네바흐강의 물 살고 풍부한 유량과  급물살에 더욱더 놀란다. 높은 산맥이 주변에 있는 것도 아닌데 이 많은 양의 물은 어디에서 오는가. 
넓은 메도우에서 산책하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게를 산책시키거나 한가로이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곳에 날마다 오고 싶은 마음. 어떤 이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옷을 다 벗고 전라로 강에 잠수하는 사람도 있다. 
간판을 읽어보니 식물의 다양성 (biodiversity)을 위해 잔디 깎기가 최근에 줄었다고 한다. 200년 동안 이곳에 있었던 영국정원. 여러 갈래길과 소롯길과 트레일 그리고 자전거전용길이 수없이 펼쳐져 있다. Valuable habitat의 보존을 위해 기존의 길들 만을 이용해 주라는 당부의 말도 적혀있다. 슈바빙거리를 거닐면서 “Imbiss”라는 카페를 발견했다. 젊은 카페주인에게 전혜린이라는 한국작가의 발자취를 찾아 슈바빙에 왔다 하니 흥미로워한다. 
그곳에서 Tegernseer Hell이라는 맥주를 마셔본다. 정원이 예쁜 카페인데 야외 정원에서 시간을 보내본다. 6시경에 Gtselastrase에서 68번 버스를 타고 Haupbanholf까지 온다. 오는 길에 약국을 들러 엄마에게 줄 피부약을 산다. 약사가 친절하게 설명을 잘해준다. 이곳 약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병원 가까이 있지 않고 지하철과 동네에 약국이 있다. 처방전 없이 파는 약들이 엄청 많다. 
저녁식사를 위해 가까운 식당을 찾아 헤매다 Turkish Kebab을 샌드위치로 만들어 파는 곳에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숙소로 가져와 먹는다. 양이 너무 많다. 


 
<10월 23일 수요일>
가는 비가 내린다. 마지막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마음이 섭섭하다. 처음 여행을 시작할 땐 너무 긴 일정인 것 같아 조금 걱정도 되고 집이 많이 그리울 것 같았는데 의외로 하루가 번쩍번쩍 지나간다. 그리고 많이 아쉽다. 아직도 가보지 못한 곳이 너무 많은데..
아침부터 보슬비가 내린다. 오늘은 호텔에서 아침을 먹는다. 호텔식 커피는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커피다. 처음 뮌헨에 왔을 때의 기억을 복기하면서 다녀보기로 한다. 
구시가지가 시작되는 입구에 자리한 커다란 분수가 있는 광장, 카를 광장. 길 건너 건물은 법원 광장 중앙에 있는 문은 카를문 (Karls Tor: 도시개발계획으로 3명의 악사조각을 마리엔 분수에서 여기로 옮겨와 문 장식에 사용했다고 한다. 귀엽다.) 이곳 사람은 슈타호 스라고 부른단다. 그리고 노이하우저거리, 성미하헬성당과 프라우엔교회가 왼편에 있고 쇼핑몰이 오른편에 있는 300 미터에 이르는 보행자전용도로다. 
프라우엔교회에 들어간다. 
뮌헨을 상징하는 교회. 1471년에 쌍둥이 탑이 완성되었단다. 양파모양의 탑은 예루살렘의 구시가지에 있는 바위돔 교회를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85개의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있어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 교회내부에 장식된 돌조각상 ( The woman, the Mother, The patron)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숭고미가 있다. 
성모교회는 1468년에 건축되어 Parish Gollegiat church와 비텔스바흐가문의 무덤으로 사용되었단다. 1821년부터 지금까지 뮌헨 대주교성당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너무나 경이롭도록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각각 다르게 채색된 스테인드글라스가 교회의 4개 wings에 있는데 그 모양과 색깔이 각기 다르고 형형색색 모양이 다채롭다. 세계대전 때 파괴되었다가 다시 교회가 재건되면서 모던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다시 제작되었다고 한다. 
내가 타인의 신성을 발견하기를, 선한 목적으로 선한 행동을 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촛불을 밝힌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호프브로이 하우스로 간다. 성과 속이 뒤섞여있는 도시.
16세기부터 이 자리에서 있었다는 유서 깊은 주조장.
옛날엔 왕가의 양조장이었는데 19세기부터 일반에 공개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 
뮌헨이 가장 상징적인 식당은 비어홀이라 한다. 맥주와 함께 소시지, 빵 학센등을 시켜놓고 한바탕 웃고 떠드는 것이 일상의 문화였다고 한다. 
가경은 맥주 500리터 기준 5유로 정도. 소시지는 5~15유로. 그렇게 비싸지는 않다. 
오리지널 뮌헨 소시지도 개와 호프브로이 오리지널 다크 비어를 주문한다. 
코믹하면서 익살스럽고 거침없는 술꾼들을 그려놓은 채색천장화가 너무 재밌다. 서빙하는 사람들은 전통의복을 입고 있다. 거기다 전통악기를 10분 간격으로 계속해서 연주해 준다. 흥이 저절로. 약간의 취기가 돈다. 오고 가는 사람들로 북새통. 걷다 보니  가장 오래된 거주지인 ( THe first Residence of the Alte Hof)에 와 있다. 1319년으로 기록된 거주지. 도시민의 폭동이 있을 경우 공작들이 도망갈 수 있도록 요새화된 마을이 바로 모퉁이에 있었다고 한다. 이곳은 루드비히 바바리언 로마 독일왕과 신성로마제국의 로열레지던스로 사용되었고 세계대전으로 파괴되었는데 2003년에 복구되었다고 한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마지막 날이라 약국을 한 군데 더 들러 눈영양제를 2 박스 더 구입하고 아들을 위한 선물과 남편과 준하 남자 친구 에이머스를 위한 선물을 산다. 
숙소로 돌아와 카라바조에 대한 유튜브를 잠시 본다. 
“Vanity 바니스타. 덧없음. 허무. 모든 게 덧없다 죽음 앞에는. 하지만 덧없음으로 하루하루 기쁘게 살려고 애쓰는 게 인생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아이러니하다. 
 


10월 24일 목요일. 여행마지막 날
 
잠시 짬을 내서 짐을 숙소에 맡기고 카를 광장으로 향한다. 다시 가니 그전에 보이지 않던 자살한 일상들이 보인다. 여기서도 군밤을 파는 거리의 포장마차가 있다. 그리고 병아리 떼처럼 종종걸음으로 도시 구경을 나온 유치원생들이 있다. 천천히 걷는다. 그리고 성미하헬 교회에 다시 간다. 이곳에 비극의 왕 미치광이 루드비히 2세가 잠들었다고 한다. 
1597년에 지은 바로크 양식의 흰색 교회, 노이하우저 거리 중간쯤에 있다. 반 종교개혁의 선봉에 선 교회란다. 아치형 천장은 독일 최고의 규모라고. 
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된 모습과 그때의 공습으로 인한 피해상황과 이후 복구에 대한 과정들이 펼침막으로 전시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촛불을 밝힌다.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해주신 신께 감사드린다. 
이제 LH 718편으로 4시경에 인천으로 갈 것이다. 독일 여행을 다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