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 6 .제주여행
6월 3일 첫날. 사려니숲길( 서귀포 사려니숲 입구 붉은오름- 제주 사려니숲길. 10 킬로)

2024년 12월 3일,마치 백주대낮에 벼락을 맞은듯이 계엄이 선포되었다.
마치 긴 영화를 축약해서 주요장면을 보여주는 유투브 장면처럼 몇개월만에 우리는 숨가쁜 날들을 한꺼번에 번개처럼 겪어냈지만 그러는 동안 불면의 밤은 길었고 두려움을 동반한 분노의 날들 또한 길었다.시대착오적인 계엄선포 이후 수없이 많은 시민들이 계엄군의 국회진입을 막아내기 위해 국회로 달려가고 계엄군과 맨몸으로 맞서고 모든 시민들의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염원 속에 계엄해재 결의안이 의결되고 내란옹호당의 반대로 한차례 탄핵소추안이 결렬되었으나 결국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해서 악몽과도 같았던 수없이 많은 날들을 거쳐 헌법재판소의 탄핵심리가 끝난 후 목이 마르고 가슴이 타들어가는 시민들의 바램과 그 자체로 빛의 혁명이라 해도 무방한 저항의 힘과 기다림으로 무도한 윤석열이 탄핵되었다. 이후 사법쿠데타라 할 수 있는 지귀연 판사의 윤석열 석방, 아니 탈옥작전으로 시민들은 또다시 절망과 무기력의 나락으로 떨어졌으나 대통령탄핵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치를 수 있었고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뜨겁고 떨리는 마음으로 사전투표를 한 뒤로 본투표 결과를 기다렸다. 8시 방송3사의 출구조사발표가 있었다. 얼마나 긴장이 되던지 나도 모르게 환호성이 터져 나오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민주주의를 지켜내고자 하는 바램이 집회에 가기, 공론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귀 기울여 듣기, 비록 소극적인 저항일지 모르나 일반시민이 분노를 넘어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지 않다는 것에 무기력감을 느꼈다. 그렇지만 투표가 의회민주주의를 지켜내는 최선의 방책이 아니겠는가. 나는 작년 계엄선포 이후 거의 유튜브에 정신이 젖어서 살고 있는 듯하다. 온 신경줄이 뉴스에 다아있는 듯했다. 책이 읽히지 않았다. 드디어 오늘 그들을 빛으로 어둠 저쪽으로 밀어내는 혁명과도 같은 일이 시작되었다. 이번 제주 여행은 그렇게 가슴 벅차게 시작되었다.

사려니 숲길. 언제나 제주에 오면 먼저 달려가곤 하던 길. 무계획적으로 와서 발길 닿는 데로 걸어도 언제나 몸과 마음을 충만하게 해주는 곳이 제주라 이번에도 별 생각없이 왔는데 작년에 왔을 때도 일반개방이 안 된 물찻오름을 6월 3일 12시 30분까지만 예약접수받아 소수인원이 갈 수 있다는 정보를 우연히 알게 되어 부랴부랴 왔으나 붉은오름에서 물찻오름 입구까지 오는데 1시간 이상 소요되어서 결국 가지 못하고 아쉬움으로 입구에 걸린 현수막만 사진으로 남기고 다음에는 꼭 놓치지 않아야지 마음먹는다.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 수석대변인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이전에 뛰어난 문학평론가이고 뉴스공장 금요살롱 고정패널로 활동한 강유정은 다른 여성 활동가들과 계엄사태를 맞아 그들이 느끼고 경험한 일들을 글로 써서 묶은 책 < 다시 만날 세계에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터넷에서 지식을 얻던 세대에서 소셜 미디어 플랫폼으로 옮겨온 지금 청년세대들은 늘 어딘가에 접속해 있지만 정작 자기만의 알고리즘을 만들어낼 여유가 부족한 세대가 아닐까. 어쩌면 너무 많은 접속으로 고독해진 최소 연대의 삶이 바로 지금 청년 세대의 형편일지도 모른다고. 바보를 뜻하는 이디엇 (Idiot)의 어원에는 사적인 삶만 사는 자가 포함되어 있다. 사적인 삶만 있는 자가 바보이다. 한나 아렌트는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등장하는 악의 평범성은 그런 의미에서 악의 세속성이자 아긔 고독성이라 바꿔 부름이 더 적합해 보인다는 것. 무관계성 속에서 타인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 그래서 타인을 끌어내고 감금하고 고문하는 상상을 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 곁에서 동조하고 흥분하는 사람들. 사회와 동떨어져 연대하지 않은 자. 그들은 고독한 척 하지만 사실상 악한 자일 수 있다는 것.

강유정은 말한다.
" 무세계성에서 계급은 자존감의 매우 중요한 근원이 된다. 온라인에서 계급을 획득하는 데 중요한 요소는 결국 아래 등급의 확보이다. 문제는 가상세계를 벗어나 현실의 계급과 마주칠 때 발생하는데 무관계성 가운데 고독한 자들은 아래를 상상하는게 차라리 쉽다. " 중요한 것은 선택이다.
12월 3일 수많은 시민들이 국회의사당으로 달려온 것은 자유의 가치를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윤설렬이 입이 마르게 연설 때마다 말했던 자유민주주의는 혐오를 바탕으로 육성되고 공포를 주입시켜 모두를 얼어붙게 하여 종국에는 노예로 만들어 무사유로 살게 하는 파시즘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중국 민주 노동과 같은 단어들이 들어간 존재 자체를 악마화함으로써 존재 자체를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이념의 제노사이드.
그리고 사회필요노동에 종사하는 수많은 이들을 폄훼하고 소수 극우엘리트와 관료들을 우상화해서 신자유주의적 계급사회를 정착시키려 한 시도 아니고 무엇인가. 강유정의 말대로 극우는 신념이 아닌 복정을 요구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무세계성, 무관계성, 인간성에 대한 무고찰이라는 점에서 고독과 복종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있다고.

< 때죽나무: 나무줄기가 때처럼 까맣다해서 때죽, 혹은 꽃들이 옹성옹성 모여 때로 모여있는 중들 같다해서 떼중이라 불렸다가 때죽이 되었다고도 한다. 5월과 6월에 핀다. 때죽으로 만든 꿀도 있다. >
"자유란 무엇인가. 고독하게 혼자 복종하는 게 아니라 참여하여 관계 맺는 것. 그 선택을 바로 문화라고 부른다.
책을 읽는 자들이 집회에 나간다. 책을 읽는 문해력이 문화와 독재를 읽고, 자유를 갈망하는 집히가 문화와 연결되고 닿아 있는 것이다. 2030 여성의 문화 소비는 '가치 소비'로 요약된다.
광장에서 목격하는 것은 기존의 문화의 재현, 재연, 전유가 아니라 그 자체로 발생하고 연속되며, 덧보태고 확장되는 문화이다. 자유는 추상적이며 아스라하다.
12월 3일 육중한 물체성이 도로를 점거하고, 의사당을 점유했을 때 경계와 구분, 계층과 성별을 넘어 추상적으로 경험했던 자유가 박탈당할 위협을 느끼고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많은 시민들이 광장으로 모였다.
너, 너, 너희들이 하나둘 우연히 모여 시작된 2인칭 정치의 시작. 나보다 너를 향하는 정치, 나랗니 지켜보다가도 4인층의 시점에서 내려다볼 때 훨씬 더 아름답게 보이는 빛의 호위. 언젠가 결국 하나의 서사시를 쓴다면 그것은 연대의 광장 불빛이 될 것이다. "-강유정의 빛의 연대, 다정한 서술자들의 연대"
6월 4일 수요일 둘째날. ( 용눈이 오름, 다랑쉬굴)

남북으로 비스듬히 누워 부챗살 모양으로 여러 가닥의 등성이가 흘러내려 기이한 경관을 빗어내는 용눈이 오름. 등성이마다 왕릉 같은 새끼봉우리가 봉긋봉긋하고 오름의 형태가 용들이 놀고 있는 모습이라는 데서 유래한 용논이 또는 마치 용이 누워있는 형태라는 에서 용눈이 오름이라 했단다.
작년 가을에 왔을 때 이곳이 출입통제가 되서 가보지 못했다. 다랭이 오름을 몇 년 전 준하랑 오를 때 어떤 여행객의 소개로 알게 된 오름. 드뎌 가 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가파르지 않고 완만한 등성이들이 나란히 펼쳐져 있다. 미나리아재비, 꽃향유 할미꽃들이 등성이 마다 많이 핀다고 하는데 6월에는 엉겅퀴, 인동초, 억새, 뱀딸기꽃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야생의 꽃들과 풀이 어우러져 발길을 멈추게 한다.

수직의 가파른 것들은 경쟁과 과열 ,분열 그리고 계층을 떠올리게 하며 우리의 삶을 강퍅하게 만든다. 대표적인 형태가 도시의 아파트 아닌가. 제주에 오는 이유 중 하나가 본디 인간이 추구하는 수평적인 평화, 평온함. 둥글고 가만가만히 낮은, 뾰쪽함이 없는 완만한 것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굴곡진 곳 아래 아스라이 사라져 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는 것도 너무 좋다.
저 멀리 성산포인가. 사방이 다 보인다.

요놈들 때문에 진드기가 나한테 옮겨왔다. 너무 신기하고 이뻐서 근접촬영을 하다 한 녀석이 갈기를 휘둘리는 바람에 진드기가 바람에 실려 내 옷섶에 올라탄 게 아닐까 추정. 다행히 물리지 않아서 탈이 생기지 않았지만 기겁을 하긴 했다.
최근 읽은 김혜진 작가의 <경청>에서
"그녀는 트럭 아래 웅크린 그 고양이 (순무)에게서 자신이 처한 가혹한 현실을 상기하고, 자신의가여운 처지를 되새긴다.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길고양이에게서 자신의 슬픔과 비애, 비통과 울분을 발견하는 건 얼마나 시운지, 철저한 피해자 되기, 자신을 향안 이 연민에게는 끝이 없다. "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타자는 때론 지옥이면서 해방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언어를 가진 이들과 소통하는 자유는 뭔가 다르다.

매밀밭이다. 아 매밀꽃. 절로 탄성이 아련한 슬픔과 함께 우르르 쏟아진다. 함께 보고 느끼고 왁자하게 웃으며 떠들던 이가 이제는 우리 곁에 없다. 작년 제주항공기 사고로 이제 머나먼 세계로 별이 되어 떠나갔다. 언니. 그립고 그립다.
제주에 와서 매밀꽃도 보고 무꽃도 보고 수국도 보고...
이 시간들이 쏜살같이 지나가리라. 그리고 추억 속에 모든 것들이 아스라이 묻히겠지.

<새로 단장된 다랑쉬 굴 기념비로 가는 길>
중산간동로 손자봉교차로에서 다랑쉬오름을 지나 다랑쉬 북로로 이어지는 길이 정비되면서 오랜 세월 우리 기억 속에서 지워져 가거나 마치 없었던 것처럼 의도적으로 기억의 역사에서 삭제하고자 한 것처럼 용눈이오름 길 건너편에 황무지처럼 풀숲에 검게 버려져 있던, 눈에 띄지 않게 숨겨져 있던 4.3을 아프게 증언하고 있는 다랑쉬굴이 이렇게 다시 우리 곁으로 주변이 재정비되어 돌아왔다.
제주민들이 생생하게 겪은 국가폭력의 산 증인인 다랑쉬굴. 작년 그리고 그작년 제주에 올 때면 들르곤 했었을 때 나무에 손글씨로 새겨진 다랑쉬굴 안내목판이 마치 숲 속에 길을 잃고 날아다니는 풀씨처럼 너무나 처량스럽게 눈에 보이지도 않은 곳에 있었고 다랑쉬굴은 콘크리트로 봉인된 채 돌무기로 된 곳에 기념비로 새겨진 "이곳에 사람이 있었다....."가 눈물을 흘리게 했던 곳이 단장이 되었다. 너무 마음이 벅차기도 하고 그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더 많이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일대에 있는 다랑쉬 굴.
1948년 12월 18일 다랑쉬굴에 피신한 주민들이 발각되어 군경 합동 토벌대는 수류탄등을 굴속에 던지며 나올 것을 종용했으나, 나가도 죽을것을 우려한 주민들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에 토벌대는 굴 입구에 불을 피워 연기를 불어넣어 굴 입구를 봉쇄하였고, 굴속의 주민들은 연기에 질식되어 죽었다. 이곳 다랑쉬굴은 잃어버린 마을을 조사하던 '제주 43 연수고' 회원들에 의해 1991년 12월에 발견되어 1992년 4월 1일에 공개했다. 1992년 4월 7일 굴 입구가 다시 콘크리트로 봉쇄되었다.
1992년 제주도 구좌읍 중산간 지대에 있는 다랑쉬굴에서 유골 11구가 발굴된 사건은 제주 4.3 사건 당시 은신자에 대한 무분별한 작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유해의 주인공들은 1948년 12월 18일 제 9연대의 진압작전에 의해 희생된 도피 입산자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구좌읍 종달리와 하도리 주민들로서 그중에 여자 3명과 아홉 살 난 어린이도 포함돼 있었다 한다.
다랑쉬 굴속에는 플라스틱 안경, 흰색 단추, 혁대, 버클, 옷감, 고무신, 질그릇, 놋그릇, 항아리, 물허벅 놋쇠로 만든 제기용 그릇, 가위 요강, 주전자, 등의 생활용품과 낫, 도끼등의 연장류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외따로 떨어져 있던 유골 1구 옆에는 그가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철모, 군화, 철창, 대검이 놓여있었다. - 출처; 제민일보 43은 말한다.

<새롭게 단장한 다랑쉬굴 전망대>
다랑쉬굴 희생자드은 44년 만에 깜깜한 굴속에서 백골이 되어서야 세상에 드러났다고 한다. 유족들은 유해를 수습하여 양지바른 곳에 안장하길 원했으나 얼마 후 공안당국의 개입으로 유해는 한 달 보름 가량 지난 후인 5월 15일에 급히 화장되어 바다에 뿌려졌다고 한다. 다랑쉬 굴 유해 발견은 43의 참상을 전국에 알리는 계기가 되어 진상 규명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고 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그들이 현재를 구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그 당시 다랑쉬굴에서 질식해 죽임을 당한 이들. 그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드디어 이름을 호명받았다.


다랑쉬굴 유적지가 새로 단장되기 이곳에 있었던 돌무더기 기념물.
"여기에 인간이 있었다.
삶이 있었다. 우리는 죽은 자들. 죽었으나 죽지 않았다.
우리는 캄캄한 굴속 연기에 갇혀 연기로 떠도는 자들.
사라지지 않는 자들이다.
우리는 다만 살기 위해 깊이 들었을 뿐
마지막 숨이 막힐 때 까지 서로를 놓지 않았다.
엄마는 한줄기 숨을 아기에게 주었고
연기의 소리가 인간에게 닿기를 바랐다.
부디 우리를 기억해주길 바란다
우리의 그날이 당신의 존엄이기를
희망이기를 평화이기를
당신의 그자리, 서럽도록 아름다운 다랑쉬의 명예를
지켜주길 바란다.
이제 우리는 두려움없는 파도가 되었다
당신은 우리가 그토록 찾던 봄이다
그대 그러니 더이상 슬퍼하지 말기를
이것이 우리들의 전언이다.
-제주 4 3 연구소 제주 민예총 삼가 세우다
2022년 4월-
6월 5일 셋째날. 올레 12길 (무릉- 용수 올레) 총길이 17.5 킬로, 소요시간: 5~6시간.
평탄한 농로로 시작하여 녹남봉, 수월봉, 단산봉을 오른다. 바랑길을 걷는다.


걷는 것은 인간의 디엔에이다.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인간답다.
11코스를 마친 무릉외갓집에서 12코스를 시작한다. 폐휴교 초등학교를 활용해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는 곳 입구에 놓인 스탬프박스에서 스탬프를 종이 패스포트에 찍고 웹에도 올린다. 날씨가 어제와 달리 더 더워지고 햇살이 따갑다. 하지만 이제 새롭게 만날 풍경들에 마음이 설레고 들뜬다. 무릎이 꺾일 때까지 걸고 싶은 마음.
제주에 오면 내 눈길을 사로잡는 것 중에 하나가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으로 된 돌담이다. 이렇게 아무렇게 쌓인 돌사이 구멍으로 바람을 들이고 바람을 보내면서 든든하게 서있는 것이 돌담의 미학이자 도덕이다.

무릉2리는 중산간에 위치하고 있지만 경사가 완만하고 토양이 비옥하여 밭농사가 잘 되는 마을이다. 길 양쪽으로 사시사철 다양한 체소들을 볼 수 있단다. 요즘 6월에는 양배추, 양파, 마늘, 단호박 수확이 한창이다. 밭에서 삼삼오오 앉아 밭일을 하고 있는 이들의 태반은 이주노동자들이다. 낯선 말이 섞여있다. 그리고 새참으로 먹는 음식이 다양하다. 그들의 귀한 노동으로 우리의 밥상이 차려지는 것이다.

철새들이 찾아와 추운 겨울을 나는 자연습지가 신도생태연못 (도원연못)이란다. 둑을 따라 푹신한 풀숲길이 이어진다. 두루미 인지 백로인지 아님 다른 철새 인지 그림처럼 물에 발을 담그고 도도하게 서있는 물새들.

올레꾼들의 심리를 어쩜 이렇게나 잘 아는지. 본인들이 직접 길을 걸어봤기 때문에 올레꾼들의 지친 다리를 아마 알고 있는 듯하다.
고맙고도 고맙다. 그들의 새심한 마음으로 만들어진 쉼터가 지친 마음과 다리를 쉬게 하면서 힘을 얻게 한다. 올레는 길에서 길을 잇고 마음에서 마음을 잇는 인문의 길이기도 한 듯하다.

밭길을 걷다보니 녹남봉오름길이 나온다. 표고 100.4m의 낮은 오름이다. 녹남봉 정상에는 원형분화구가 있는데 이것을 가메창이라고 부른단다. 분화구 안에 삼나무로 울타리를 두른 감귤원과 밭이 있다. 옛날에는 아름드리 녹나무가 많아 녹낭오름-농낭오름-농나무오름으로 부르다가 한자로 표기하며 녹남봉이 되었다고 한다.

옛날 사람들은 녹나무가 귀신을 물리친다고 믿었는데 천연 향균기능이 있고 환경변화를 측정하는 지표식물이다. 일제강점기 때 그들이 군사요지로 활용하려 녹나무를 베어버려 사라졌는데 최근 녹남봉의 모습을 되살리기 위해 녹마무를 심고 있다고 한다.
일단 따가운 햇볕을 피할 수 있어 야트막한 산길로 접어드는 소로길이 너무 반갑다.
분화구안에서도 농사를 짓고 있는 곳이다.

정상을 둥글게 돌아 내려오면 마을 길로이어지고 산경도예를 지나 큰 도로에 닿는다. 그리고 신도 1리가 고향인 양용은 선수가 심은 녹나무와 안내판이 보인다는데 우리는 보지 못했다. 신도 1리의 옛 이름은 도원마을로 일강정(강정), 이도원(도원) 삼 번 내 (화순)라고 꼽힐 정도로 예부터 제주에서 두 번째 가는 비옥한 마을로 꼽혀왔단다.

신도포구까지 바당올레이다. 해안도로를 건너 바닷가 바위길로 난 마당올레를 걸으면 용암이 만들어낸 크고 작은 도구리 네 개를 볼 수 있다. 도구리는 나무나 돌의 속을 둥그렇게 파내어 돼니나 소의 먹이통으로 쓰는 함지박이란 뜻의 제주어란다.
도구리처럼 생겼다해서 이 지역을 도구리알이라고 부른다. 바위가 둥그렇게 파인 도구리 안에 파도에 휩쓸려 온 물고기와 문어 등이 보인다. 마을 사람들이 양식장 설치를 반대하여 바닷물을 깨끗하게 보존해 온 탓에 이런 도구리들이 그대로 보존되었다고 한다.

신도포구에 있는 하멜일행이 표류 중 당도했다는 곳에 세워진 기념비가 있다. 이곳에서 저 멀리 날씨가 맑으면 한라산이 보인다.

신도포구에서 바닷길이 잠시 끝나고 마을과 밭이 펼쳐진 포장로인 신도농로를 걷는다.이길은 듬성듬성 가로수로 소나무가 서있는 소낭길을 지나 수월봉으로 이어진다.
매밀밭이 넓게 펼쳐진 곳에 아담한 집들이 색색한 지붕들을 이고 고즈녁히 앉아있다. 이곳에서 밭을 기계로 갈고 있거나 건물을 올리기 위해 일을 하는 이들도 먼 타향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다. 그들이 반갑고도 짠하다.

걷는 것에 대한 각자의 생각들이 있다. 그 중 이런 생각도 있다. 공감.


바닷속 뜨거운 마그마가 물을 만나 폭발적으로 분출하면서 만든 고리모양 화산체가 일부가 수월봉이 되었다고 안내판에 쓰여있다. 수월봉에서 분출한 화산재는 기름진 토양이 되어 신석기인들이 정착할 수 있는 삶의 터전이 되어 주었다고 한다. 수월봉 정상에는 띠, 새, 억새와 더불어 해송, 까마귀쪽나무등이 서식하고 있다고. 가파른 절벽에는 물수리, 매, 바다직박구리 , 흑로, 가마우지등이 서식하고 있단다.

수월봉에는 고산기상서비스센터가 있다. 정자 수월정은 차귀도, 죽도, 눈섬, 당산봉, 산방산, 한라산까지 제주 서부지역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가 있어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곳이란다. 이날도 관광객들이 많이 모였다.

수월정에서 조금 가파른 길을 내려오면 깍아지른 듯한 절벽이라는 뜻의 '엉알'이라고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화산분출물이 겹겹이 쌓여 아주 신비로운 줄무늬를 보게 된다. 이 거대한 규모의 화산절벽을 따라가는 길이 엉알길로, 절벽을 따라 평탄한 산책로가 닦여 있어 아주 쉽게 걸을 수 있다. 저 멀리 보이는 섬이 차귀도와 와도 이다.

검은여를 볼 수 있는 엉앙길. 애머랄드 빛깔의 바다 빛을 더욱더 깊게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검은 바위들. 아름답다.

녹고 대.
엉앙길에서 보는 줄무늬 절벽들. 절벽 곳곳에서 솟는 맑은 샘물을 녹고물이라고 부른단다. 먼 옛날 수월이 와 녹고라는 남매가 몸져누운 홀어머니를 위해 오갈피라는 약초를 캐러 수월봉에 올랐다가 여동생 수월이가 절벽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동생을 잃은 슬픔에 녹고는 17일간 울었는데 , 이 녹고의 눈물이 바로 녹고물이라는 전설이 전해온다. 그래서 수월봉을 녹고물오름이라고 부른다

최근 세계지질공원으로 선정된 이곳은 고산리 유적지이다. 지질트레일코스가 있다.

전기자전거를 이용해서 지오트레일 코스를 연인들이 유유히 돌고 있다. 차없이 다닐 수 있는 자전거와 뚜벅이들을 위한 전용 해안도로다.


수월봉아래에는 침식굴이 여럿이다. 일본군들의 군사요새로 사용된 곳이 여럿있다. 갱도 진지라 하는 곳이다. 수월봉 해안 절벽 곳곳에는 다양한 크기의 화산탄(화산암괴)들이 지층에 박혀있고 지층이 휘어져 있는 탄낭구조를 볼 수 있다. 수월봉 화산체 지층의 다양한 특징과 학술적 가치로 인해 '화산학 백과사전에 소개되어 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은 수월봉 뿐만 아니라 제주도 전역에 수많은 군사시설을 만들었다. 제주도내 3700여 개의 오름 가운데 갱도 진지 등의 군사시설이 구축된 곳은 약 120여 곳에 이른다. 수월봉 해안은 미군이 제주도 서쪽 끝 고산지역으로 진입할 경우 갱도에서 바다로 직접 발진하여 전함을 공격하는 자살특공용 보트와 탄약이 보관되어 있던 곳이란다. 아직도 우리는 일제의 식민지 흔적들 속에서 살고 있다. 나쁜 놈들. 우리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완전히 군사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훼손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화산체 활동으로 이루어진 절벽과 바다, 그리고 해안에 피어있는 꽃들을 무심히 바라보는 시간들..

아름다운 고산유적지 화산체 절벽을 끼고 지질 트레일을 걷다 보면 이런 풍경들이 펼쳐진다.

녹고물이라 불리는 이 물은 실제로 해안절벽의 화산체 지층을 통과한 빗물이 화산체 지층아래 진흙으로 된 불투수성 지층인 고산층을 통과하지 못하고 흘러나오는 것이다. 이물은 식용수가 아니다.


차귀도와 와도를 지척에서 볼 수있고 그곳에 가는 유람선을 탈 수 있는 자구내 포구. 이곳 어민들이 집어등을 켜고 잡아 올린 오징어들이 볕에 말라가고 있다. 한 마리에 만원가량 하는 반건조오징어를 하나 사 먹어 본다. 맛있다. 이것이 화살오징어인가 보다.
이곳에서 보이는 섬 차귀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큰 무인도이다. 자구내 마을에서 배로 10여분 걸리는 곳에 있다. 지실이 섬, 와도 드 세 섬과 작은 부속섬을 거느리고 있는데 깎아지른 듯한 해안절벽과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며 섬 중앙은 평지란다. 섬에는 신우대, 들가시나무, 곰솔, 돈나무등 13종의 수목고 양치식물인 도깨비고비, 제주도에서만 사는 해녀콩을 포함하여 개쑥부쟁이, 천무동등 62종의 초본류 등 총 82종의 식물이 자란단다. 주변 바다에는 수심이 깊고 참돔, 돌돔, 흑돔, 벤자리등 어족이 풍부하단다. 바닷바람에 말린 화살오징어로도 유명하다.


지구내포구에서 바다를 드지고 당산봉을 향해 오른다. 해녀의 집에서 산 화산촉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오르니 오를만하다.
당산봉의 옛 이름은 당오름. 당오름 산기슭에 뱀을 신으로 모시는 신당이 있었는데 이 신을 '사귀'라고 했다. 이후 사귀가 와전되어 차귀가 되면서 차귀오름이라고 불렸단다. 바다에서 화산이 분출한 다음 육지에서 다시 한번 분화구안에서 새로운 화구구가 솟은 이중식 환산체이고, 북서쪽 벼랑에는 해식동굴인 저승국이 있다. 당산봉은 꽤 가팔라 다소 긴 계단길을 땀 흘리며 올라야 한다.

흙길을 따라 아름다운 바닷길 생이기정에 오르면 놀라운 풍광이 우리를 반긴다.
제주어로 생이는 새, 기정은 벼랑, 바당은 바다를 뜻한다. 생이기정 바당길은 새가 살고 있는 절벽 바닷길이라는 뜻. 바다 위로 솟아오른 절벽 위로 풀밭과 억새길을 따라 좁은 길이 이어지는 생이기정길. 저 멀리 보이는 차귀도와 와도.

겨울철새의 낙원으로 가마우지, 재갈매기 등이 떼 지어 살고 새들이 발밑으로 나는 신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 이 길에서 바라대 보이는 차귀도의 풍광은 기가 막힌다.

생이기정바당길에 놓인 또 다른 걷기 찬양글귀.
여행자들이여, 길은 따로 없다.
당신의 걸음이 길을 만든다.

언젠가 신문기사에서 본 적이 있다. 어부들이 무심히 던져버린 어망에 걸려 죽은 고래.
아쉽게도 파도에 실려 해안가로 밀려온 어망, 플라스틱 페트병. 그리고 쓰레기들. 이토록 아름다운 해안가에 오점처럼 박힌 쓰레기들.

6시간 반동안 12 올레 코스를 하다 보니 금세 오후가 한참 지나 저녁이 돼 가고 있다. 조금 있으면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도 있을 듯. 저 멀리 어선 한 척이 망망대해에 외롭게 떠있다.

생이기정 바당길의 마지막 바위를 빠져나와 한경해안로를 따라 종점인 용수포구에 이른다. 아 드디어 오늘의 올레를 마쳤다는 기쁨과 성취감으로 저절로 손을 들어 올려 너른 바다를 향해 포효한다.

용수포구는 눈앞에 차귀도가 그림처럼 펼쳐진 포구로 옛 이름은 지새개다. 지새개는 기와를 뜻하는 제주어로 옛날에 이곳에 기와를 굽던 도요지가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이곳은 용수마을 방사탑 2호이다.

제주올레 12코스 종점이자 13코스 시작점에 놓인 스탬프. 거의 18킬로를 걸어 당도한 곳이기에 나 자신과 친구에게 무한한 감사와
치사를... 언젠가 다시 이곳에 와서 13코스를 시작하겠지.. 그날이 멀지 않기를.
<올레와 함께 하는 것들.. 언제나>

인생이 푹신한 꽃길, 숲길만 걷는 건 아니다. 돌길, 사잇길, 풀밭길, 고랑길, 아스팔트길.... 올레가 그런 것이다.

하지만 숨이 넘어갈 듯 가쁜 숨을 달래주고 흐르는 땀을 닦아주고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다소곳이 가다듬을 수 있는 쉼의 순간이 분명 있다.

꿀맛 같은 휴식

자연스러운 것이 물론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인공의 손길이 때론 자연의 아름다움을 더 깊게 만든다.

누가 돌담에 붉은 열정의 칸나를 심어 불을 지르는가.

돌담에서 마치 피어나는 돌꽃 같은 다육이들. 어울림이 이런 것일 것이다.
6월 6일 넷째 날. 에코랜드

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수레국화. 이름도 이쁘고 색도 이쁘고 자태도 이쁘고..

데이지와 금계국

수례국화

에코랜드 협궤열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