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4월의 제주

숨그네 2022. 4. 26. 22:47

베케( Veke) 서귀포 효돈로 생태정원 

핀크스와 비오토피아 생태공원을 설계한 김봉찬님의 작품인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이국적 이름인 베케는 쟁기로 농사짓던 시절에 밭을 일구다 나온 돌들을  아무렇게나 밭의 경계에 쌓아놓은 돌무더기를 일컫는 제주방언이다. 제주의 지형적인 특성상 어디에나 있는 현무암돌들을 그저 자연스럽게 배치하고 이색적인 꽃나무들을 친구삼아 무심히 옆에 둔 정원은 인간의 삶에서 자연이 어떻게 함께 가야하는가 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닫게 만든다. 나무들 사이사이 놓인 글씨가 지워진 나무푯말과 혼자 앉아있고싶은 나무벤치들의 고적함. 정원입구에 자리한 지하를 활용한 비대칭 구조의 카페, 이끼낀 돌무더기 베케를 창밖으로 내다보며 앉아서 커피나 차를 마시는 인간들이 아름답고 정답게 느껴지는 일은 인간이 한일이면서 자연이 한 일이기도 하다. 

 

4월의 무꽃 (군산오름)

제주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아담한 군산오름( 서귀표 안덕면)을 오르다 보면 왼편에 유채꽃보다 더 아름다운 연보라빛 무꽃이 한 밭 가득 피어서 시선을 사로잡는다. 잠자리 노래에서 "잠자리 날아다니다 장다리 꽃에 앉았다" 그 장다리 꽃이 무꽃이란다. 무꽃은 서늘한 기운을 좋아해서 4월에 피는 꽃이고 기온에 따라 꽃눈이 생긴다고 한다. 꽃잎에서는 은은한 향이 나고 꽃잎을 씹으면 알싸한 덜익은 무를 씹는 맛이 난다. 흐드러진 꽃들의 향연에 정신을 놓고 있을 때가 가장 천진스러운 시간이다. 모두들 가장 순진한 얼굴로 새삼 잃어버리고 살았던 미소를 건져올려 무꽃에서 사진을 찍는다. 

 

  아르테 미술관

서귀포에 있는 빛의 벙커 미술관에 이어 두번재로 방문한 영상미디어 미술관 아르테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미학, 철학,신학,정치경제학까지 인문학적사유의 전방위적인 사상가 였던 (발터벤자민 1984-1940)은 새로운 현대의 기술이 어떻게 전통적인 예술개념을 전복시키며 기술에 의해 지배되는 사진과 영화발전이 전통예술의 아우라를 어떻게 대체하는가를 사유했다. 아르테와 벙커미술관에서 실험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미술의 영상미디어로의 전환과 음악과의 만남, 더 나아가 관람객이 몸으로 체험하는 가상현실까지 뉴욕의 모마미술관과 유럽의 유명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미술품들을 영상으로 재현하여 그저 몇천원을 내고 미술속으로 걸어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메가 전자미디어 시대의 대중화된 미술체험관람을 벤야민이라면 어떻게 사유할까.. 

빛의 속도로 진화하고 있는 삶의 다양한 방식들에 미처 따라오지 못하는 영혼들이 저 멀리서 주저하며 서성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가파도 청보리와 자전거 올레

빚을 갚아도 그만, 마라도 그만.... 그렇게 기억하는 이름,가파도. 몇년전 마라도에 다녀온 후 거의 10여년만에 찾은 마라도와 나란히 누워있는 섬. 인구227명 126호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유인섬이 가파도라 한다. 청보리가 피어있는 섬이라..... 4월 18일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어 그동안 갇혀지내던 사람들이 봇물터지듯 여행길에 올라서인지 가파도행 여객선 티켓을 어렵게 여행사를 통해 구한 행운으로 간신히 다녀온 것... 배를 타기 전 봄이 제철인 자리돔 물회와 맛있는 갈치조림을 근처 모슬포항 덕승식당에서 먹고 바로 옆 불링불링한 이름의 글라글라 하와이 디저트카페에서 금방 식사한 것이 무색할 정도의 식욕으로 당근케익과 뜨끈 달짝지근한 롤빵을 게눈감추듯이 먹어치웠다. 역시 여행은 뜬금없이 발견한 밥집에서의 맛있는 식사와 예기치않은 부조화의 맛있는 디저트, 이런것들이 양념처럼 있어야 제맛인것 같다. 가파도는 해수면과 땅이 너무 가까와 여름장마와 태풍, 혹은 쓰나미라도 오면 금방 섬이 잠길것 같은 모양이어서 보는 내내 어떻게 이섬은 침수되지 않고 살아남았지. 이런 쓰잘데없는 걱정을 하고 다녔다. 청보리밭을 끼고 덜컥거리는 중고 자전거를 빌려 타고 달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검은여 를 보면서 씽씽달리다가, 엉컹퀴 꽃이며 용설란, 고냉이돌을 슬쩍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관람객이 귀찮다는 듯이 홀로 바닷가에서 해초를 뜯는 아주머니, 그리고 초등학교 담벼락옆에 섬마을 특유의 낮은 슬레이트 지붕을 인 가난한 살림의 홀아버지가 벗어던진 장화며 빨랫줄에 걸린 허름한 옷두어벌.. 그리고 무심하게 놓인 4.3 의 흔적들. 가파도는 다시 한번 조용히 한번 더 오고 싶은 나의 섬으로 등록..

 

김창렬 도립미술관 (저지 예술인 마을)

파파사이트 (저지 예술인 마을)

봄비 내리는 4월의 제주는 우리를 제주가 품고 있는 또 다른 인문학공간으로 슬쩍 데리고 들어간다. 저지예술인마을에 있는 김창열 도립미술관. 물방울을 주요 오브제로 삼아 삶의 비의를 동양의 한자와 한지문화를 활용해 풀어내는 그의 작품들의 추상성을 감상하기에는 나의 심미적인 세계관이 비좁아 따라갈 수 없었지만 촘촘히 무질서하게 박힌 제주돌의 정연한 돌담의 구성이나 미술관 건축의 조형미는 우리 모두에게 있는 심미적 감수성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우산을 받혀들고 계단을 휘돌아 비오는 숲그늘에 고요하게 있는 파파사이트를 무심하게 방문했는데 의외의 감동이 그 곳에 있었다. 바로 고동우 작가님의 작품들을 만나게 된 것. 발달장애인인 작가님은 본인에게 정서적인 연대와 치유를 가능하게 했던 고양이들의 생태를 그리면서 동물과 인간의 친근성과 더 나아가 인간과 동물의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생태환경적인 보호라는 주제로 더 깊숙히 파고드는 작품들을 단순하면서도 울림이 깊은 색체와 구성으로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곳의 벽에 걸린 의자걸개그림의 작가가 아무래도 파파사이트의 주인인것 같은 데 이작가는 아이들과 장애우,그리고 애완견과 고양이의 출입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파파사이트를 운영한다고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예술창조의 현장에서 감상자들을 소외시키지 않고 그 장소를 즐길 수 있게 하는 예술가들이 제주에 있어 많이 행복하고 가슴 따뜻한 순간들을 가질 수 있었다. 

 

엉또 폭포 (서귀포시)

"뿌라비다" 모임의 마지막 여행지 엉또 폭포.

엉은 바위그늘집 보다 작은 굴 또는 입구 라는 제주방언이라 한다. 바위그늘집 보다 작은 굴 이지만 여름철 큰비가 쏟아질 때면 폭포위에서 잠들어 있는 물용이 포효하는 소리를 내듯 폭포수가 쏟아져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작은 비는 얼씬도 못하게 하고 큰비만이 폭포를 깨워 그 위용을 자랑하는 좀 자만심이 강한 폭포인가보다. 어쨌던 마지막 여행지에 잠깐 들른 엉또폭포의 위엄은 폭포수가 없어도 장대하고 늘 푸른 나무숲들이 너무 호캐했다. 자기손으로 직접 짓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심리학 역작을 탄생시킨 칼 융이 만든 아담한 돌집이 생각나는 무인커피판매대와 방문스티커들이 붙어있는 작은 돌집도 인상적이다.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언젠가는 다시 찾아와 그 때를 회상하면서 추억을 이어가고 싶다는 염원이 아닐까. 여행은 함께 하면서 쓰는 공동의 기억장치이기도 하지만 우리몸과 마음이 따로 있듯 혼자서 각자 써내려 가는 혼자 펼치는 일기장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