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떡과 도너츠
제주 동문시장에 가면 십여년 전에도 포장마차에서 빙떡과 호떡을 파시던 곱디곱게 생긴 할머니들이 지금도 빙떡과 호떡을 파시고 계신다. 세월이 무색하리만큼 고운 얼굴빛과 야무진 손맛으로 빙떡을 빚어주시면 그 맛이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그저 좋아서 먹었던 추억으로 제주를 갈 때 마다 꼭 들르곤 했다. 이제 알아보니 빙떡은 매밀과 무로 만들어진 밀전병이다. 이효석의 매밀꽃 필 무렵이라는 작품에서 만난 매밀... 실제 제주를 비롯한 곳곳에서는 매밀꽃밭을 가꾸어 정원을 개방하기도 한다. 매밀은 강원도와 같은 척박하고 가문 곳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라 한다. 단백질과 식이섬유등 필수아미노산이 많이 들어있어 뇌졸증을 예방하는데 좋은 음식이지만 찬음식이어서 알레르기를 일으키기도 한단다. 예로부터 조상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인데 매밀국수며 전병을 만들어 먹었다 한다. 제주도에서 본 매밀꽃도 예뼜지만 이 매밀을 곱게 갈아 반죽을 걸죽하게 한뒤 전을 붙여 그 위에 달고 소화가 잘되는 채썬 무를 고명으로 넣어서 전병을 만들어 새참걸이로 주로 먹거나 제사상에 올렸다고 한다. 맛은 슴슴하고 깔끔하다. 밀가루처럼 찰기가 있지 않아서 한입 베어 먹으면 뚝 끊어지면서 익힌 무와 함께 독특한 식감을 선사한다. 이번에 잠깐 들른 동문시장의 빙떡거리는 바로 코 앞에 온갖 모양새와 색깔을 뽐내는 도너츠 가게가 생겨서 사람들이 할머니 빙떡집 앞에 한가로움과 대조적으로 줄을 서서 도너츠를 사고 있었다. 할머니는 "도너츠는 뭘 모르는 젊은이들이 그저 모양새로 먹는 것이고 빙떡은 세월을 산 아줌마들이 먹는 음식이제" 이렇게 말씀하신다. 색색이 예쁘고 보기에 촌스럽지 않고 먹음직스러워 냅다 종류별로 5개를 급하게 사는 와중에 뒤에 사람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줄도 깜빡했는데 일행중에 한분이 개념없다는 말을 하는걸 듣고 나는 진짜 무개념녀가 되버린 형국이어서 그 뒤 내내 마음이 찜찜하고 섭섭했다. 역시나 돌아와서 맛본 도너츠는 찜찜한 경험때문일까 어찌나 느끼하고 맛이 없던지. 한입씩 먹어보다 결국은 다 버렸다. 겉모양으로 속내를 판단해서는 안되겠다는
새삼스러울 것 없는 생각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할까. 겉은 화려하지 않지만 빙떡처럼 슴슴하고 가만가만한 사람들이 늘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역시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