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저 출생율 풀 해법? 차별해소! -하종강칼럼에서
「북유럽 국가들처럼 대학교수와 대학교 경비의 연봉에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사회, 의사와 기술직 노동자의 소득에 차이가 별로 크지 않은 사회, 사회임금 비중이 높아 생계비 중에서 자신이 직접 벌어 감당해야 하는 비중이 낮은 사회가 되면 충분히 가능하다. 즉 노동조건에 차별이 없어져야 출생률이 높아져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청년취업률 및 사회적인 격차를 줄일 수 있다는 것. 대학교수의 아내와 배관공 남편, 용접공 아내와 의사남편 부부가 살았다고 한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것을 두고 하는 말이이다. 지금처럼 대기업 공기업 정규직은 젊었을 때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 누리는 당연한 특권이고 비정규직은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 받는 마땅한 형벌 처럼 여기도록 가르치는 사회에서 출생률 저하 문제는 개선될 수 없다. 기회의 평등 못지 않게 결과의 평등이 중요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노동자들 내부에서의 차별만 살펴봐도 이러할 진데 하물며 장애, 성별, 나이 용모 등에 따른 차별에 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이 철폐돼야 하는 이유는 그들도 인간답게 살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만이 아니라 차별이 없어지는게 사회 전체에 심지어 사회적 강자에게도 유익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못한 채 문재인 정부가 막을 내렸다. 」
깊게 공감되는 글이다. 한동훈 자녀의 약탈적 저널을 이용한 논문 유료 게제 및 정부 고위관료 및 경제적 상위계층 자녀들의 특권적인 스펙쌓기를 통한 대학입시 및 대기업 입성으로 이어지는 사회경제적인 세습구조를 이제는 국민의 눈치도 보지 않고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발언들이 권성동을 비롯한 정부인사들의 입에서 버젓이 나오는 세상이다. 경제적인 능력이 있으면 그럴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단지 경제적인 능력을 넘어서 부당한 편법도 부모의 재력이 뒤받침되면 가능하다는 초법적인 발언아닌가.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들의 인식이 이러한데 무엇을 기대할까. 오랜 인고의 시간들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