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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의 초대

숨그네 2023. 4. 19. 13:30

록사겐 캡슐-위산 분비 억제제 -이 약의 투여로 인해 위함의 증상이 은페될 수 있으니 악성종양 여부를 확인하고 투여합니다.  룩스펜정 -비스테이로이드성 소염 진통제
크린세프 캅셀 -세균 감염에 이한 증상을 치료하는 항생제.
친절하게 세세한 약명과 약의 효능, 그리고 유의사항까지 들어있는 복약설명서를 처음으로 받아본다. 오랫동안 의사의 복잡한 전문의료용어로 된 진단명과 무슨 약인지도 모르면서 처방된 약을 의심없이 먹어온지라 낯설지만 내몸에 덜 미안하고 왠지 믿음이 간다.진작 이렇게 투명한 진료처방약이 있어서 환자가 좀 더 명확하게 알 권리가 주어져야했을텐데 늦게나마 반갑다. 그리고 우습다. 인지와 효능이 상관관계가 있을리도 없는데도 그럴거라 믿는 것. 플래시보 효과도 있지 않은가. 위약효과. 인지가 사람의 뇌를 속이는.
오래된 지병인지라 통증도 그러려니 하고 참고 미루어뒀는데 건강검진 결과 의심소견이 있어 준종합병원에 가서 이차진료를 받고 처음으로 무시무시한 엘알아이를 쵤영하고 입원치료후 내막에 있는 이상증식세포덩어리를 제거했다.

질병은 사소한 것 부터 심각한 것 까지 일상을 흔들면서 심리적인 입박감과 불안 그리고 최종적으론 인간의 무한성에 기인한 죽음까지 잠시나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아무렇지도 않다고 일상적인 일을 게을리 하지않고 루틴을 이어가려하지만 어느새 마음은 저 아래로 가라앉아 있다.

나의 몸을 나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마음과 몸을 분리해서 마음을 몸 보다 더 우위에 두며 살지 않았나. 모든게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하지만 인간이 마치 두려워서 열지 못하는 판도라의 상자처럼 마음과 달리 노화를 조용히 겪고 있는 몸의 비밀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하면 화들짝 놀라며 부산을 떤다. 몸의 진실을 받아들이며 알아서 더 고통스러워 하기보다는 차라리 모른채 어느날 노화의 학살처럼 다가오는 것을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더 현명할지도 모른다는 어느 선배의 말은 글쎄 나는 더 위험하고 경솔하게 느껴진다.타인의 고통에 민감할려면 본인이 겪고 있을지 모를 몸의 경고음에 좀 더 예민해지고 겸허해져야 하지않을까. 그래야 내가 악소리내며 신음하듯이 다른 이들도 악소리를 내며 반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까. 우리가 그렇게 유약하니까. 미구에 닥칠 죽음이라는 것에 통채로 잡히기 전에 몸에 겸손하게 도리를 다하는 것이 좀 더 인간적이지 않을까. 이래저래 우리는 몸을 빌어 살고 있으니까. 콜레스테롤 수치를 비롯한 고지혈 당뇨 혈압등 건강지수가 괜찮다고 하니 안심이 든다. 소심하고 겁많은 인간종인 나는 수술 후 휴유증이 오래가지 않기를. 꽃이 만발한 정원을 어서빨리 걸을수 있기를 바래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