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2일 토요일 상수시공원, 포츠담 >
아침 9시 50분경에 M1을 타고 Bahnhof Berlin- FriedrichStrase에서 포츠담까지 가는 S7으로 갈아타고 30여분을 달려 포츠담에 도착한다. 여기서 695번 버스로 오늘의 목적지 상수시 ( 걱정 없는 도시) 궁전에 간다. 이 궁전은 프로이센 국왕이었던 프리드리히 대왕을 위해 만든 로코코양식의 대표적 궁전이라 한다. 그들의 여름별장으로 이용되었고 궁전 끝자락에 그가 묻혀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후 유해가 소련군에게 약탈될 것을 염려혀 히틀러가 베른테로테의 소금광산으로 유해를 옮겼다가 전후 미군이 그의 유언대로 상수시 궁전 계단에 그의 유해를 안치하려고 했으나 포츠담이 등독 관할권으로 되자 마르부르크성에 임시로 안치했다가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얼마 전 방영된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상수시공원이 주인공 커플의 신혼여행지로 나오면서 유명관광지로 한국인에게 알려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정보 없이 오게 되었다.
1747년 프리드리히 대왕이 포츠담에 세운 여름별장 상수시.
이곳은 1990년 유네스코 문화유산목록에 포함되었다. 먼저 티켓팅을 했는데 전체공원과 궁전을 볼 생각으로 1인당 22유로짜리를 샀다. Timeslot이 있어 상수리 옛 궁전을 12시 50분에 신궁전은 2시로 볼 생각이었다. 사실 이 시간에 광대한 지역에 널리 퍼져있는 상수리 궁전의 모든 곳을 관람할 수 없다. 하루도 부족할 듯하다. 상수시 궁전을 보고 신궁전을 보기 위해 걸어서 숲길을 통과 약 1.4킬로나 되는 길을 계산해야 하는데 결국 뛰어가다 시 피해서 신궁전에 5분 늦게 도착했는데 입구에서 관리인이 야멸차게 1시간 투어로 진행되는 궁전입장을 할 수 없다고 한다. 대체나 티켓 아래에 In case of late arrivls, entr can’t be accepted”라는 문구가 있다. 우기고 우겨서 다시 Timeslot을 3시 30분으로 티켓오피스에서 바꿔 겨우 1시간 투어를 할 수 있었다.
1시간가량 되는 가이드투어를 마치자 4시 10분. 루벤스와 다른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Pictures Gallery를 보기 위해 왔던 숲길을 가로질러 다시 걸어서 1.4 킬러를 뛰어가서 잠시 화장실을 들러 갔더니 마지막 입장 시간이 5시. 1분 늦게 도착하자 여지없이 문은 무겁게 닫혀있다. 대한히 융통성 없고 엄격한 관료주의..
모든 궁전들이 그렇지만 화려하고 장식적인 세기의 가구들과 소품, 벽장식의 사치는 형언할 수 없는 별천지의 세계인 듯. 그들이 향유하고 살다 간 화려한 장소와 남겨진 유품들을 후세의 사람들이 보고 즐기고 있다는 것이 좀 이상한 느낌이 든다.
내가 본 것 중 제일 관심이 가고 특이한 것은 느닷없게 전시된 흑인노예흉상이었다. 그때 당시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대한 이국적인 관심이 폭증했던 증거일까. 이 그림은 인종차별과 노예, 식민지과거를 재현하는 방식에 대한 논란이 될만한 작품이 아닐까.
상수시 공원은 너무나 부지가 광대해서 이동수단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아침 일찍 온다 해도 하루 안에 다 볼 수 있는 규모가 아닌 것 같다. 차라리 숲 속을 정처 없이 거닐어 다니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신궁전은 7년 전쟁을 승리한 프러시아가 이를 기념하기 위해지었다고 한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프러시아의 영광과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대리석, 금장을 이용해 이 궁전을 만들었고 실제 거주 공간은 아리라 주요 왕가와 귀족들의 리셉션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200여 개의 방중에서 4개의 방은 집견실로 극장을 귀족인인 기능으로 사용했고 그 외 식당과 살롱 침실 갤러리 자녀들이 머무는 공간 -놀랍게도 1층에서 2층으로 가는 리프트도 있었고 욕실이 구비되어 있다. 이후 그의 아들 프리드리히 윌리엄이 사용하다가 11월 혁명 이후 빌헬름 2세가 왕위에서 퇴위하면서 신궁전은 2차 세계대전까지 뮤지엄으로 사용되었다.
소비에트 군에게 보물들이 약탈되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가구들이 왕이 망명한 네덜란드로 옮겨져 보관되다가 1970년 네덜란드가 다시 포츠담에 반환해서 2차 대전의 포격으로 파괴되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참고로 11월 혁명은 1918에서 1919년에 일어난 혁명으로 1 차세게대전이 끝나갈 무렵 노동자와 군인들에 의해 일어난 폭동으로 무혈혁명으로 독일제국을 무너뜨리고 의회공화주의자들이 소비에트 스타일의 의회공화국보다 우위를 점하면서 좌파의 패배가 바이마르 공화국이 건립되는 길을 열어주었다. 11월 혁명이 일어난 주요 요인은 전쟁기간 동안 독일시민들이 경제 정치 정으로 겪은 심한 좌절감과 고통이 너무 컸고 일반대중과 권위주의적 정권과 부르주아 엘리트 간의 사회적 갈등이 폭발한 것이다.



상수시공원


상수시공원



<10월 13일 일요일. 박물관섬의 구국립박물관, 프렌츨라우어 베르크 ,마우어 공원, 알렉산터광장>
아침부터 강한 바람이 분다. 숙소 주변에 있는 작고 예쁜 카페에 아침을 먹거나 차를 마시며 신문을 보는 사람들이 많다. 우연히 버스를 기다리면서 알게 된 동네 빵집 < Zeit Fur Brot>에서 시나몬빵과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먹는다. 오늘은 Alexander Platz에서 박물관섬에 있는 구 국립박물관에 갈 것이다. 인상주의의 그림 마네 모네 르느와르 전시를 볼 예정이다. 다행히 모든 관광지가 숙소와 가깝게 있다. 약 30분이면 족히 닿을 수 있는 거리다. 그리고 베를린 프란츠라우어 베르그에 가서 마우어 공원과 벼룩시장, 가능하면 Bunker Tour를 할 생각이다. 그곳에 베른홀트 브레이트의 활동상황을 지하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리스 신전을 연상케 하는 커다란 칼컴들이 건물 정면에 도열해 있고 건너편에 베를린 대성당과 마주하고 있다. 1866년 엣 1876년까지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슈틸러의 설계로 지어졌고 제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되어 1949년 부터늬 10개의 홀만 개방되었다가 대대적인 보수공사 후 10년 뒤 미술관 전체를 개방하고 있다고 한다 1층을 건너뛰고 메인홀인 인상주의 전을 하는 2층홀만 보기로 한다. 입장료는 1인당 14유로. 오 디어기이드를 받았으나 이전 박물관보다는 설명이 많이 있지 않고 약간 허술한 느낌이랄까. 끌로르 모네 작품부터 보기 시작 모네는 당시의 예술가들이 옛 거장들의 작품을 베끼거나 모방하는 데에서 그림을 시작했지만 그는 당대에 살던 주변세계에 대한 인식에서 주제를 찾았다고 한다.
전통적인 회화방식에서 벗어난 그의 화풍은 도시를 새로운 시각으로 그려넀고 색이 밝기, 색상의 강도, 빠른 붓질등으로 19세기 옛 중세도시의 모습이 아닌 근대도시의 변화된 모습을 그림 속에 담았다. 이후 그는 피사로, 르누아르, 마티스의 모범이 되었다. 19세기 후본의 나폴레옹 3세 치하의 파리는 심오한 변화를 겪었고 중세 건물을 허문 자리에 넓고 곧은 거리, 강장, 공원들이 들어써다. 화가, 그래픽디자이너 사진작가들이 도시공간의 변화를 그들의 작품에 반영했다. 모네는 도시가 아닌 시골 노르다 미 지베르니로 이주하여 스튜디오가 아닌 피사체를 앞에 두고 즉흥적인 스타일의 그림을 그렸다. 모네의 여름, 수련 그리고 마네의 작품, 르노와르 그리고 낯선 작가지만 인상적이었던 화각 한스폰마리의 Old wan selling oyster, Digging Man, 아몰즈 베를린의 THe hermit, The train of death, 가난한 사람들의 힘든 삶의 모습을 포착하여 그림으로 옮긴 푸리츠 폭우데의 작품들 그리고 맥스 리버만의 copper Wrokshop 등의 작품들이 마음에 든다.
M4로 S Hackescher Market에서 내려 걸어서 2분 정도 거리에 있는 Alexander Platz에 와서 Einstein Kaffee에 간다. 1805년 차르 알렉산더 1세가 방문한 것에서 이름을 따온 광장. 양모와 소시장으로 시작되었다가 나중에 퍼레이드를 하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교통의 허브이자 비스니스 및 엔터테인먼트 센터가 되었다가 세계대전 후 재건이 되어 확장되었다. 동베를린의 시위가 이곳에서 절정에 다 달았다고 한다. 수십만 명의 시위대가 모여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외치며 집회를 열었고 5일 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이곳에서 베를린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TV 송신탑과 만국시계가 있다.
양철북의 작가 귄터글라스가 자주 들렀다던 카페아인스타인에서 카푸치노와 빵을 먹어본다.
M2를 타고 프렌츨라우어 베르크를 향한다. 동독시절 국가의 공식 예술가강령에 반항한 자유로운 예술가들이 살았던 장소. 통일 직후 대학생들이 거주했지만 지금은 부유한 중산층들이 사는 깔끔하고 핸섬한 모습으로 탈바꿈한 듯하다.
식당과 카페 기념품가게 고급 수제품을 파는 곳이 즐비하다. 베르크에서 헤매다 우연히 독일거주 한인 아줌마가 운영하는 한인 식당을 발견하고 그분에게 마우어 공원에 대한 정보를 얻어 트램으로 두 구간을 이동해 마우어공원과 벼룩시장을 가 본다.
공원입구에서 길거리 음식인 약간 어묵 같은 것에 카레를 부어 만든 카레부어스트를 맛본다.
공원은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다. 거리의 부랑아 같은 이들이 곳곳에 있고 출입금지된 황폐하고 음산한 곳도 있고 왠지 마약을 거래하는 듯한 장면도 있는 듯하고. 벼룩시장에 나온 물건들은 그저 그렇고 건질만한 것도 없고 사람구경 물건구경.
베른하우스에 가서 운세 벨 텐 벙커투어를 미리 신청해야 지하벙커를 볼 수 있다고 하니 이건 나중에 할 수 있으면 하기로.. 오데르베르거거리 ( Oderberger Strase)를 약 1.5 킬러 걸어서 숙소와 가장 가깝게 있는 비건 중국식당에 가서 tofu를 삶은 soup과 두부 Pepper bells (고추 말린 것) 튀김, 피넛 칠리 등이 들어있는 Vigan Chicken Sichuan을 맛보았는데 나쁘지 않았다.



박물관섬 구국립박물관


박물관섬 구국립박물관

박물관섬 구국립박물관


<10월 14일 월요일 크로이츠베르크, 엔젤바르겐,플레너마켓>
아침 9시 40분경에 집을 나선다. Rosenthaler Platz에서 U8을 타고 Moritz Platz까지 가서 크로이츠베르크를 오전에 방문하고 남은 시간은 100번 버스를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돌 예정이다.
모리츠플라츠에서 내려 두리번거리자 어느 친절한 독일 남성이 우리가 있는 곳이 크로이츠베르크라고 한다. 쭉 도로를 따라가면 사람들이 많이 있는 핫풀레이스가 있을 거라고 하지만 지금은 관광하기에 너무 이른 시간이라고 말하며 웃는다.
친절함이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터키인들의 거주지가 이곳에 있는 듯. 가게들이 터키인들이 운영하는 곳이 많다. 그중 하나인 Segafred라는 소박한 카페에서 카푸치노 카모마일 맛없는 치즈빵을 저렴하게 먹어본다. 오라니엔 스트라쎄를 걷는다. 걷다 보니 너무나 예쁘게 조성된 공원이 있다. 호수가 있는 공원을 빙 둘러 걸어서 호수변에 위치한 예쁜 카페 Engelbargen에서 커피 한잔을 더 시키고 배터리방전 일보 직전인 핸드폰을 충전시킨다.
옛날 이곳은 베를린에서 운하를 통해 운송을 했었는데 도시민이 늘어 도시구역이 확장되면서 운하를 매립하고 공원을 조성헀다고 한다. 바로 근처에 있는 공원이 Green Park다. 공원입구에 있는 표지판을 읽어보니 1848년 운하 노동자들의 파업과 진압과정에서 10여 명의 노동자들이 사망했다는 글이 써져 있다.
크로이츠베르크는 학생, 예술가, 터키인들의 커뮤니티가 있는 곳. 독특한 베르크망 키츠 지역은 중고품 할인매장이 있는 편안한 분위기, 카페, 조경이 잘된 빅토리아파크로 알려져 있다. 무슬림을 위한 할례음식점이 있고 현대베를린의 대안 문화와 정치문화운동의 상당 부분을 상징하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은 좌파성향이 강한 녹색당이 구청장까지 싹쓸이하는 진보성향의 지역이라 한다. 젊은이들이 노는 곳 테크노클럽과 공연장 그리고 트렌디한 레스토랑, 술집이 몰려있다고 한다.
2010년 이후 오래 거주했던 원주민들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외곽으로 쫓겨나고 부유한 중산층들이 사는 곳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한다.
Görlitzer Park에 갔다. 여긴 좀 음산한 분위기의 공원. 노숙자들과 흑인부랑자들이 곳곳에서 삼삼오오 떼 지어 있어 긴장이 되고 걷는 동안 불안하다.
중세교회 앞 벤치에서 도시락을 먹고 알렉산더 광장으로 돌아와 잠시 스타벅스에 들러 화장실을 가는데 이곳 점원이 주는 전용동전을 가지고 가야 이용할 수 있다. 독일도 인간의 기본생리활동을 원활하게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러니 노숙자들을 비롯한 사람들이 거리 곳곳에 오줌을 싸서 지렁 내가 코를 후벼 판다.
아쉬운 마음에 대표 관광시내버스 100번을 타고 베를린을 다시 한번 눈에 새긴다. 타고 가다 비키니 베를린에 들러 기념품을 산다. 그곳에서 U8을 이용해 숙소 근처역 zionskide Kunsthan에서 하차한다. 그리고 베를린에서 마지막 식사는 첫날 방문했던 수풀림에 가서 다시 한번 새싹 비빔밥과 보쌈을 먹으면서 주인장과 작별인사를 나눈다.
왠지 아쉬움으로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가 뭘까. 아무래도 베를린은 다시 올 것 같다.
아참. 친절한 독일아저씨 덕분에 예술가들 전문 아트샵인 “Planner Market”에 들러 준하가 원하는 오일스틱과 오일팔레트 그리고 귀여운 스탬프를 몇 개 살 수 있어서 기뻤다.
내일은 프랑크푸르트로 향할 것이다.
잠들기 전 넷플릭스에서 니나시몬이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다시 한번 보고 싶다. 나중에.
한강의 노벨문학상 소식을 들었다. 놀랍고 놀랍다.
South Korean author Han Gang has won the Nobel Prize in literature for the intense poetic prose that confronts historical traumas and exposes the fragility of human life.
She devoted herself to music and art. Her work crossed boundaries by exploring a broad span of genres- these include violence, grief and patriarchy.
She won the international Man Booker Prize for vegetarian- a book which had been released nearly a decade before but was first translated into English in 2015 by Deborah Smith. It depicts the violent consequences for a woman who refuses to submit to the norms of food intake. She has a unique awareness of the connection between body and soul, the living and the dead.

크로이츠 베르크의 세가프레드 카페





마우어 광장

마우어광장 벼룩시장


마우어광장





엔젤베르크 카페



크로이츠베르크 작은 성당
10월 15일 화요일 프랑크푸르트
평온한 가을아침이다. 적당한 기온에 바람이 없는 아주 잔잔한 가을 아침. 여행하기 좋은 날이다. 이제 베를린을 떠난다. 친구도 왠지 베를린을 떠나는 것이 못내 섭섭한가 보다. 마치 애인을 멀리 두고 혼자 기차를 타고 떠나는 느낌이랄까.
M8을 타기 위해 짐을 끌고 중앙역으로 간다 ICE 1037을 플랫폼 14번에서 탈 것이다. 이번에도 ICE 플랫폼을 찾기가 힘들어 DB에 가서 직원에게 물어본 후 어렵게 출구를 찾는다.
플랫폼에서 미국뉴욕에서 거주하는 독일만 9번째로 여행하고 있다는 70대 후반 한인 노부부를 만난다.
잘츠부르크에서 이곳으로 왔고 프랑크푸르트 마인츠에서 며칠 보낸 후 프랑스까지 가신단다. 단출하게 백팩 하나 수케이스 하나. 여행 베테랑인 듯 보인다. 라인강변의 아름다운 마을을 영어여행안내책을 보여주시면서 소개해주신다.
여행 베테랑답게 이렇게 조언해 주신다. “돈 쓰는 것 무서워하지 말고 여행 다니면서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봐라. 인생 그리 길지 않고 별것 아니다. 건강하게 사는 것이 자식들에게 주는 가장 큰 유산이다. 육체적 정신적 독립이 가장 큰 선물이라고 “ 멋진 말이다.
여행안내책인 Rick Steve’s Germany를 들고 다니신다. 나도 사고 싶은 책이다. 아주 오래된 지금 디지털 세대는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다니지만 책을 보면서 여행지를 체크하고 정보를 얻는 것엔 왠지 낭만이 있다.
약간 실망스러운 것은 짧게 만난 사이에 너무도 많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하시고
여기서도 한국인들이 의례적으로 질문하는 출신지, 직업, 최종졸업학교등을 물으면서 그 사람을 프레임에 묶으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것. 좀 진부하다. 여행지에서는 낯선 사람과 처음 있는 일들만 처음처럼 이야기하고 싶다. 다시 한번 다짐한다. 무례하지 않은 사람으로 늙고 싶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방법은 그리 쉽지는 않지만 어렵지도 않다. 그냥 여기 그대로 모습을 인정하고 봐주는 것이 아닐까.
프랑크푸르트에서 U5에 승차한 후 Willy Brants Platz에서 내린다. U3로 환승한 후 Eschenheimer Tor에서 내린다. 환승할 때 좀 해 메었다. 짐이 합 4개인지라 끙끙거리며 계단 앞에 있는데 또 친절한 독일인들이 금세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이번에 50대 아주머니와 20대 청년이 계단아래까지 짐을 나누어 내려 주는 것이다. 얼마나 고맙던지.. 당장이라도 답례를 하고 싶을 정도로..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홀연히 가버린다. God Bless you.
북킹닷컴에서 미리 예약한 숙소를 향해 간다. 다행히 지하철역에서 멀지 않다. 숙소는 Bloc. 이곳도 contactless로 서로 얼굴볼 일이 없다. 좀 아쉽지만 코로나 이후 이런 형태가 정착된 듯하다. 좀 느낌이 이상하다. 익숙지 않다. 핀패드에 패스워드를 입력하고 갔더니 엘베가 없는 별관 뒷건물 4층이 아닌가. 어떻게 짐을 끌고 간단말인가. 다행히 전화를 해서 방을 엘베가 있는 본건물로 바꿀 수가 있었다. 숙소는 깔끔하고 중앙난방시설이고 화장실이 침실만큼이나 큰 현대적인 곳이다. 짐을 풀고 동네 한 바퀴를 할 생각으로 나선다.
골목마다 예쁜 카페와 동네 식당, 서점(무려 3개)이 보인다. 이 텔리 안 식당에서 피자와 샐러드를 시켜 먹는다. 웬 나이 먹은 동양인 여인네 둘이 이곳에서 피자를 먹는가 싶은지 주인과 종업원 이탤리언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중얼중얼 우리를 힐끔거린다.
그러든지 말든지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는 나이 듦이여. 늙음을 찬양한다.
이곳은 꽃가게와 자그마한 동네 식당이 있는 레지덴셜 지역인데 조금만 내려가면 고층건물이 즐비한 마천루와 중세건물이 함께 어울려 있는 하우푸트 바헤 거리 광장이 있다.
반갑게도 베를린에서 보았던 카페 Brot이 이곳에 있다. 프랜차이즈였구나.
시나몬빵과 허브차 (이름이 우덴 린덴 - caffeine -free organic tea , made of linden, elderflower and apple)를 마신다. 응 맛있다. 바로 코 앞에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중세건물 (에센하이머 탑 카페)이 찻길에 있다. 고층건물들이 사방으로 쭉쭉 올라가 있는데 웬 중세건물이지. 생경하지 않으면서도 조화롭게 서로를 배경 삼아 함께 존재하는 게 보기에 좋다. 1828년에 완성된 첨탑 5개 가 꼭대기에 예쁘게 있는 중세의 건물이 카페로 사용되고 있다. 몇 걸음 더 가니 하우프트바헤 광장이 있다. 이 주변이 프랑크푸르트의 교통의 요충지. 여기서 다른 교통편으로 환승한다고. 이란여성의 인권을 위한 가두시위가 열리고 있다. 경찰들이 호위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삶은 정치와 너무나 가깝게 있다. 살아있음이 여기도 삶이 계속되고 있음이 실감 난다. 중세적인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간직한 하우푸트바헤 석조건물이 지금은 식다응로 사용되고 있다. 참 실용적인 국민이다. 이곳에서 적절한 가격에 슈니첼과 애플와인, 아펠바인 바그너를 먹어보리라. 차가 없는 보행자 전용도로가 쭉 명품샵과 함께 펼쳐져있다. 이곳은 차밀거리.
하루 여정을 마치기 전에 REWE에서 장을 보고 돌아온다.


프랑크푸르트 하우푸트 바헤 광장

프랑크푸르트 하우푸트 바헤 광장


에센하이머 탑

프랑크푸르트 하우푸트 바헤 광장


프랑크푸르트 하우푸트 바헤 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