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무니없는 반중시위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오늘은 오랜만에 중국인들이 단체로 무비자 입국을 해서 소상공인들에게 모처럼 경제적 난관을 극복해 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탄핵 이후 윤어게인을 외치는 극우 집회참석자들이 반중시위를 하며 가짜뉴스와 혐오를 퍼트리면서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은 너무나 섬뜩하고 기괴하다. 차별과 혐오 그리고 편견과 배재적인 정서는 전 세계에서 맹위를 떨치는 반민주주의 세력들의 공통전략이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반중과 혐오와 차별인가. 이제는 멈춰야 한다. 영국에서도 극우주의자들을 막아서려고 하는 노우 파사란( No Pasaran)., 여기서 멈춰라는 운동이 다시 불을 지피고 있고 서울에서도 맞불시위로 연대와 공감 친절함을 내세우는 반파시즘 운동이 시작되었다고 들었다. 다행이다.
얼마 전 읽은 제국의 충돌을 다시 꺼내 재독 하면서 요약해 본다.
중국은 어떻게 미국의 기업들응 대리 로비스트로 모집하고 조종했나
외교정책 엘리트와 기업의 목소리중 어는 것이 더 강한가
지국적인 정치권력의 지형은 어디로 향하는가
중국의 현실돠 레코릭을 어떻게 구분할 것이다
ㅡ중국 정치 경제분야의 선도적인 전문가 홍호평의 작품
1장 지구적 갈등의 정치사회학
2010년대가 되어 미국과 중국이 무역과 기술, 남중국해, 타이완을 비롯해 많은 문제를 놓고 대결하는 국면이 늘어나자 "신냉전"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았다.
2012년부터 워싱턴 당국은 미국과 동맹국들이 남중국해를 공해로 간주하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이 해역에서 미 해군의 주둔을 늘리는 아시아로의 회귀 정책에 착수했다.
이 책에서 나는 국가 간 지정학적 경쟁가 기업 사이의 자본 간 관계로 연결시켜 1990년대와 2000년대 미국과 중국의 공생관계 및 2010년 대 그 공생관계가 경쟁으로 변화한 원인들을 검토할 것이다.
2장. 공생
1.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케인주의적 시장 규제로 고임금, 고복지, 고소비 성장 모델을 추구하면서 선진 자본주의 세계를 주도했다. 그러면서 장기간의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1960년대 훕 스태그플레이션 위기가 도래한 기업의 수익성이 하락하면서 장기간의 호황은 끝났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신자유주의 혁명을 1980년대 일으켰다. 핵심은 노조 와해와 긴축통화정책을 통해 조직화된 노동을 길들이는 것이었다. 선진국 노동자들이 해외가 저임의 , 무노조 노동자들과 경쟁하도록 강제한 자유 무역 정책은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하는 노동의 힘을 억압하는 또 다른 핵심 요인이었다. 미국의 제조업체들은 저임금 국가로 대거 옮겨갔으며, 그곳에서 소비재를 제조해 미국으로 다시 역수출했다. 그러면서 글로 법 공급망의 부상을 촉진했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미국은 항상 최종 소비자역할을 했다. 미국은 거대한 소비 시장은 세계 다른 나라들을 자유시장으로 끌어들이는 중요한 지레 대 역할을 한다. 미국은 소비를 억재 시키는 부가가치세가 없는 유일한 나라다.
또한 세계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가치를 고려하면 재정 및 경상수지 적자를 충당하기 위해 더 많은 화폐를 찍어낼 수 있는 세계 유일의 경제체다. 개발도상국을 미국의 신자본주의 지구화에 끌어들이기 위해 국제적인 부채 위기를 이용했다. 미국 달러화 채무 불이행위기에 처한 다수의 개발도상국과 러시아는 IMF와 세계은행이 개입해 이나라 들이 파산하지 않도록 긴급대출을 제공했다. 이는 사유화, 자본시장 자유화, 수출촉진등 채무국의 구조조정 개혁 추진데 대한 조건부 대출이었다.
1980년대 시작된 미국 주도의 지구화 프로젝트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수익성 위기에 대한 구제책이었다.
2. 세계 자유시장을 향한 중국의 여정
1980년대 중국의 시장 개혁은 주로 농업 부분의 탈집체화와 지방 정부가 운영하던 향진 기업 및 농촌 산업의 부상이 주도한 것이었다.
클린턴 정부는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의 국제무역 체제 속에서 최혜국 지위와 중국의 인권 향상 문제를 연결시키는 것이었다. 중국과 미국이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한 1979년 미국은 중국에 체혜국 지위를 부여했다.
3. 초국적 기업 월가, 클린턴의 대중국 정책
중국의 경우 로비활동의 최전선에 선 것은 개별적인 초국적 기업들이었다. 결국 기업과 월가의 힘이 우세했다. 1994년 클린턴은 중국의 인권 개선을 고려하지 않고 중국의 체혜국 지위를 갱신할 것을 발표했다.
4. 워싱턴에서 중국의 보이지 않는 손
중국은 미국 내 기업들을 대리 로비스트로 적극적으로 모집하고 조정했다.
중국과의 무역 자유화에 가장 큰 이득을 얻은 기업 중 일부는 1993년 로비 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애플과 월마트다.
클린턴 행저우의 외교 정책 엘리트 들은 중국의 인권개선을 위한 수단으로 무역을 우선시했다. 중국 공산당과 국가는 가장 강력한 미국 기업 중 일부를 자신들의 대리 로비시트가 되도록 동원해 미국정책을 흔들었고 민주다 ㅇ정부가 정치적 자유하보다 중국과의 자유무역을 우선시하도록 만들었다.
중국은 큰 규모의 달러 외환보유고를 가장 안전하고 유동성이 풍부한 미국 국체에 투자했다. 이 투자로 인해 미국은 늘어나는 재정 적작에 자금을 조달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중국의 미 재무부 채권보유량은 2001 이후 외환보유고 증가와 더불어 늘어났다
중국은 2008년 세계 최대의 미국 국체 보유국이 되었고 2008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동안 중국의미국 국체 보유량은 두배로 늘었다.
3장. 자본 간 경쟁
1. 당-국가 자본주의 대 미국 기업들
중국이 세계 시장에 편입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 국가는 국유기업의 형태로 경제 전반을 통제하고 있다. 사유재산권이 완전히 확립되지 않아 국가가 모든 토지 자산의 최종 소유자이며 민간 자본가는 토지 사용에 대한 일시적 권리 이상을 가질 수 없다.
화웨이와 알리바바와 같은 다수의 명목상 민간 대기업들이 기업의 당 위원회와 당내 권력을 가진 파벌과 의연 줄을 통해 중국 공산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중국의 국가자본주의는 경제에서 중국 공산당의 힘이 국유 기업을 훨씬 넘어선 다는 면에서 여느 국가 자본주의 와는 다르다. 당-국가 자본주의로 개념화된다.
2012년 시진핑은 집단지도 체재라는 협치의 방식에서 전제적 통치방식으로 전환하며 의사결정 권한의 집중을 위한 일련의 시책을 실시한다. 장기적 중앙집중화가 가속화된다. 임기제한을 폐지하면서 시진핑은 사실상 종신 권력가가 되었다.
2. 중국 기업들을 상대로 한 미국 기업들의 소송
국가주의적 경제 정책의 중심 목표는 미국을 희생양으로 중국의 기술 고도화를 달성하는 것이었다 지식 재산권에 대한 보호가 부족한 것도 지방의 혁신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중국의 기술 자립도의 부족에서 드러나고 있다. 중국이 해외 특허와 저작권에 대해 외국 기업이 중국에 지불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3. 베이징의 대리 로비스트에서 반 중국 기업 반란으로
1999년가 2001년 사이에 중국으로부터 수입품이 밀려들어오면서 미국에서 200만 개 이상의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졌다. 이 충격으로 인해 2000년대에 반중 무역연합은 활기를 되찾았다.
2000년 미국 기업들은 중국의 환율 조작과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 부과 문제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상태였다. 2010년대에 들어와서는 지식재산권 및 시장 접근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 기업들 사이에서 중국에 대한의구심이나 적대담이 더욱 확산되었다.
캘리포니아 마이클론 테크놀로지 같은 기업들이 기술탈취에 대해 중국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라는 로비 외에도 미국 철강 노동조합 등 주요 노동단체들 역시 중국 정부가 미국 노동자와 제조업자들을 희생하면서 보조금, 투자 노동자 권리 및 무역정책에 관한 국제 규범을 계속해서 위반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면서 중국의 지상 접근 및 기술 이전 정책에 반발하는 로비활동을 지속하고 있었다.
4. 비즈니스 로비와 지정학으로의 회귀
2010년 이후 매파적 입장의 지정학적 주장이 정책 결정 과정에서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오바마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의 해군력 강화와 재배치들이 남죽국해에 군함을 보냈다. 중국의 안보와 관련되었다고 여겨지는 중국의 민영 첨단 기술 대기업인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정책 변화다. 화웨이는 가치사슬을 타고 올라가 첨단 통신 분야의 글로벌 기업으로 기업으로 미국의 기술 기업들과 호혜적인 관계를 구축했다.
2012년에 백악관과 미국 하원은 화헤이의 잠재적인 안보 리스크를 지적했고 2013년 워싱턴 당국은 미국 정부 기관 조달에서 화웨이를 금지했다. 화웨이와의 협력에서 금지로 돌아서면서 미국은 새로운 방향으로의 전환이 시작되었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와 미중 자유무역의 개방 이후 노동계와 비판자들이 예측한 대로 제조업의 대규모 해외 이전과 대량실업을 경험해 오면서 노동자들의 처지는 계속 밑바닥으로 떨어졌고 이들은 왼쪽의 버니 샌더스부터 오른쪽의 트럼프까지 반자유무역을 주장하는 정치인들의 지지하는 강력한 투표블록을 형성했다.
4장. 세력권
1. 자본수출국으로서의 중국의 부상
대부분 중국의 공식 금융기관이 제공하는 차관으로 이뤄진 중국의 대외 원조가 개발도상국에 대한 자본 수출의 주요 형태가 되고 있다. 전체적인 수준에서 중국의 해외 대출은 미국과 세계은행의 직접 대출과 비슷해졌다.
중국의 자본 수출은 중국 상품 및 기업이 현지 기업이나 그 외 외국 기업에 비해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중국의 세력권을 형성했다.
2. 남반구에서의 신 종속
브라질에서 대두 재배에 쓰인 토지 면적은 1990년에서 2005년 사이에 두 배가 되었다. 이는 환경적으로 민감한 아마존 유역 깊숙이 농지를 개발하느것으로 이어졌다. 2000년 초반 브라질 대두 수출의 43프로를 차지했던 중국의 수요는 이러한 대규모 토지 개발을 추동했다. 2018년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해 더 많은 중국의 수입업자가 브라질에 의존하게 치솟았다. 이 점유율은 80퍼센트까지 치소았다.
칠레 및 기타 라틴아메리카 국가의 구리 광산업도 같은 처지로 크게 확장되었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는 경쟁력을 갖춘 국내 광업 기업이 부족하고 자원 채굴을 외국 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 국유 기업들은 종종 다른 초국적 광업 기업과 암묵적인 협력관계를 맺고 광산에서 원자재를 선적하는 항구에 이르기까지 전체 상품 사슬을 소유하고 운영한다.
2010년 이후 중국의 건설 붐이 지지부진해지자 원자재 수요는 감소했고 그동안 중국 호황을 누렸던 많은 원자재 수출 국가는 심지어 불황을 겪어야 했다. 2010년 브라질과 베네수엘라의 경제위기가 대표적이다.
채무불이행이라는 리스크를 고려해 다수의 중국 해외 차관에는 담보물에 대한 조건이 포함되어 있어서 채무불이행 시 중국이 전략 시설을 장악할 수 있었다. 스리랑카 정부는 인도양의 분주한 항로를 감독하는 연해 전략 도시인 함반토타에 새로운 항구를 건설하기 위해 중국의 차관을 받았는데 이후 적자를 내고 채무불이행이 되자 2017년 중국의 국유 운영 업체가 향후 99년 임대로 항구의 통제권을 장악했다.
3. 후기 제국주의와 그 불만들
불안전한 민주주의와 군부 독재와의 진동,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미얀마의 불안전은 부분적으로 이 지역을 둘러싼 미중 경쟁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싱가포르, 한국 필리핀 타이완 베트남 및 그 외 많은 아시아 국가도 중국광의 경제적 통합이 늘어나면서 이익을 얻는 동시에 미국과의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유대관계를 강화했다. 이 지역들은 미중이 세력 경쟁을 벌이는 전쟁터가 되었다. 아프리카에서는 중국은 우리에게서 원자재를 가져다 다시 우리에게 공산품을 파는 전형적인 식민주의를 보여준다고 경고하고 있다.
4. 미국 제국에 대한 도전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 다자간 경제 기구, 미국의 글로벌 군사 우산이 지배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한 중국의 지정학적 영향력의 투사는 제한적이다. 이에 대해 베이징 당국은 미국과 경쟁할 수 있는 달러에 버금가는 글로벌 통화 시스템, 다자간 기구 안조-군사 부분에서의 하드 파워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수출 지향적 제조업 강국으로 부상한 것은 달러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달러의 신뢰성 훼손 이후 중국은 위안화의 국제적 사용을 장려하면서 중국의 대외 무역과 투자 유출입이 달러 대신 위안화로 점차 정착될 수 있기를 바랐다.
다자간 기구의 추구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확장을 다자간 합의로 포장하고 있다.
5장. 결론. 돌아온 제국 간 경쟁
자본주의 역사는 경쟁과 전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본주의적 근대가 시작한 이래 그 근대성이 궁극적으로 우리를 영구 평화로 이끌 것인지 아니면 주요 자본주의 강대국들 사이의 대전쟁으로 이끌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있어왔다. 20세기로의 전환기에 기존 자본주의 강대국인 영국이 후반 주자인 독일과 일본으로부터 도전에 직면했을 때도 이런 논쟁이 있었다.
냉전 종식 이후 세계질서의 구성은 여전히 유동적이지만 1990년대 미국과 중국 사이의 공생관계가 부상했다가 최근 몇 년간 이 관계가 미중의 경쟁관계로 대체되면서 많은 사람이 두 강대국이 전쟁을 향해 가고 있는지 아니면 더 조화로운 관계로 돌아갈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1970년대 미국은 수익성 위기에 대해 해결책으로 지구화를 추진했다. 중국과의 무역 자유화를 추진했다. 1990년대 초 미중 무역자유화를 위해 로비하려는 미국 의 노력은 주로 베이징 당국이 미국 기업을 동원해 자신의 대리 로비스트 만들려는 노력에서 비롯되었다. 이 무역자유화는 2001년 중국의 WTO 가입으로 가는 길을 닦았으며 2000년대 초반 차이메리카의 전성기가 도래할 것을 예고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09년 엣 2010년 중국의 국유 부문의 초대형 경기부양책의 여파로 중국에서 미국 기업들이 직면한 비즈니스 환경은 크게 악화되었다. 중국기업들은 과잉생산 능력과 수익성 위기에 직면했다. 국가의 재정적 지원으로 중국 ㅣ기업들은 중국 시장에서 미국 기업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해 나가고 미국 기업의 기술을 도용하는데 더 공격적으로 나섰다.
중국기업은 국내 시장에서 외국 기업을 압박하는 것 외에도 국가의 지원을 받아 다른 나라에 과잉자본을 수풀해 자신들의 과잉 생산 능력을 극복하고자 했다. 자본 수출에 대한 중국의 열망은 기업에 중국 상품과 건설업자들에게 광대한 새로운 시장을 제공했다.
요컨대 미중의 자본주의 불균등 발전이 결합되면서 두 나라 사이의 자본가 경쟁으로 이어졌다. 이 자본 간 경쟁은 중국을 지정학적 상대로 상정하려는 워싱턴 당국의 경향을 촉발시켰으며 주변국가들로 경쟁관계가 확대되었다.
<위기에 빠진 중국의 성장 모델>
중국 부동산 개발업 헝다의 위기. 중국의 빈 아파트는 프랑스, 동일 이탈리아의 전체 인구를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록 추정된다. 이러한 발전 모델이 ㅓ떻게 그리 오랫동안 고속 정장을 지속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왜 이제 와서 실패했을까
<중국 호황의 종말>
세계적인 수요에 힘입어 민간 기업과 외국기업이 지배적인 수출 부문은 거대한 외환보유고를 축적해도 이는 중국 공산당이 통제하는 금융 시스템이 신용을 크게 확장하는 데 기반이 되었다 하지만 1990년 후반부터 중국공산당의 지도자들은 부채와 과잉생산능력에 대해 경고해 왔다. 2017년 말 사이에 중국의 미 상환 부채는 148퍼센트에서 250 퍼샌트 이상으로 치솟았고 이 부채의 대부분은 새 아파트, 석탄 화력발전소, 제철소 기반 시설 프로젝트에 자금을 조달하는 데 사용되었다.
<두 개의 자본>
1990년 금융자유화와 민간 소비 증대 등 부채 기반의 과잉생산 능력 문제에 대해 다양한 해법이 제시되었으나 지난 10년간 침체기에 다른 종류의 재조정 정책인 국진민퇴가 등장했다.
국유부문의 수행능력은 국가가 절대적인 토지 소유자라는 사실에 기초. 1950년대에 주욱 공산당은 사유재산을 폐지하고 스스로를 인민의 대표제로 규정하는 당-국가를 모든 자산의 유일한 소유자로 확립했다. 중국 당국은 토지뿐만 아니라 핵심 부문에서도 국유 기업의 지배적 지위를 절대 놓지 않았다.
시진핑의 국가주의적 전환은 민간기업에 대한 억압적 조치들에서 사례를 들어볼 수 있다. 알리바바에 대한 반독점 과징금 부과, 기술 회사들의 데이터 수집과 서비스 제공 자격에 대한 엄격한 제한, 영리 목적의 사교육 회사 금지, 국유 기업의 민간기술 기업 주요 자산 인수 허용.
<헝다와 중국 자본주의의 미래>
생활수단의 완전한 상품화, 모든 경제활동에서 이윤 추구 원칙의 확산, 모든 토지의 국가소유와 기타 사유 재산 형태에 대한 약한 보호, 국유 기업의 지배적 지위등 중국은 국가 자본주의 혹은 당 -국가 자본주의이다.
헝다의 위기는 당-국가가 중국 경제에서 가장 큰 부동산 개발 업체 중 하나를 국유화하여 국가의 실질적인 토지 소유권을 다시 분명히 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중국의 시진핑이 사회주의를 부활시킬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국은 마이크로칩 분야에서 미국이나 미국 동맹국에 의존해 있다. 이에 대한 트럼프의 제제는 중국 기술기업들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중국 시진핑이 주욱 최고 지도자의 임기제안을 폐지함으로서 종신 독재자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국유기업에 대한 대출은 과잉생산과 부채와 관련된 문제를 낳았다. 경기부양책으로 인한 과잉생산의 악순환이다.
중국 내 민간 기업에 대한 단속 및 통제에 비해 국유기업에 대한 지원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10년간 중국에서는 독립적인 노동조합이 없었기에 전국적으로 수많은 비공인 파업과 산발적인 노동 소요가 발생했다.
<제국의 충돌: 홍호펑과의 대담>
글로벌 차이나의 부상은 지난 수십 년간 지속된 경제적 지구화의 결과이며 중국과 미국과의 상호의존적인 경제구조의 발전과 낙관론에 근거가 되어왔으나 코로나 팬데믹과 더불어 중국광의 무역 불균형을 바로 잡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몇 년간의 격동의 시기를 지나며 새로운 무역전쟁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신냉전은 미국과 중국 간의 자본 간 경쟁이다.
국가중심적 접근법인 베버주의와 막스주의 관점에서 제국의 충돌을 기술하고 있다. 미국의 세계 권력과 위신을 유지하려는 베버주의적 강박에 따라 미국의 외교 정책 엘리트들은 1990년 대 초 냉전의 종식 이후 중국을 지정학적 경쟁자로 보고 있었다. 2010년 이후 미국 기업들의 이해관계와 국가의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중국에 대립적인 방향으로 일치하고 나서야 미국의 대중국 정책은 완전히 대립의 방향으로 전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