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에브리맨 을 읽다

숨그네 2023. 7. 27. 12:09

살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드디어는 죽는 것이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나가는’ 것처럼  특별할 것이 없지만 그러나 또한 죽음의 서사는 늘 기묘하면서도 섬뜩하게 다가온다. 너무나 익숙한 한 인간의 죽음의 이야기. 아니 특별할 것이 없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
영혼불멸을 믿을 수도 없고 있을 수도 없는 제한된 생명을 갖고 태어난 우리들이 죽음을 타자화시키면서 삶에 애착을 갖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우면서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가족이나 친족, 그리고 지인들, 존경하는 사람들과 멀지만 가까운 이웃들의 죽음과 지구촌의 무수한 익명의 죽음들을 거의 매일같이 겪으면서도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고 싶지 않은,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불안. 사후 세계에 대한 미지의 두려움보다는 현재 자신의 의식의 소멸에 대한 공포가 더 크지 않을까.
나이 들어 읽는 필립로스의 소설 에브리맨은 여러모로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구절들이 많아 짧은 중편소설이지만 한달음에 읽지 못하고 여러 번 책을 접었다 폈다, 생각이 많았다. 그리고 현재의 나의 삶과 다가올 삶과 종국에는 다다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읽는 동안 밑줄을 그어 둔 그의 글을 옮겨본다.

그의 장례식
다른 여느 장례씩 로다 더 흥미로울 거도 덜 흥미로울 것도 없었다. 그러나 가장 가슴 아린 것. 모든 것을 압도하는 죽음이라는 현실을 한번 더 각인시킨 것은 바로 그것이 그렇게 흔해빠졌다는 점이었다.
물론 누가 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비통해했지만 , 어떤 사람들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거나 자기도 모르게 안도했다.
매우 관습적인 데다 모험을 싫어해서 미술학교를 나온 뒤에도 스스로 앞길을 개척하며 그림을 그리고 잡일을 하면서 들어오는 돈으로 먹고사는 쪽을 택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그는 너무 착한 아들이었다. 부모의 소망에 부응해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았고 안정된 생계를 위해 광고계에 진출했다.                                                    
그는 특별하고자 한 적이 없었다. 다만 나약했고 공격에 무방비 상태였고 혼란에 빠져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한 평범한 인간으로서, 인생을 반을 발광상태로 살지 않으려다 보니 죄 없는 자식을 에게 큰 박탈감을 안겨주었을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자신도 사면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확신했다.
에브리 멘 보석상. 이 가게는 그의 아버지가 일흔셋의 나이에 도매상에 재고를 팔고 은퇴 하 때까지 그의 충실한 고객이 된 유니언 카운티 전역의 보통 사람 무리에게 그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세 번 결혼을 했고 애인들과 자식들과 성공을 안겨준 흥미로운 일자리를 가졌지만 이제 죽음을 피하는 것이 그의 삶에서 중심적인 일이 되었고 육체의 쇠퇴가 그의 이야기의 전부가 되었다.
이 모든 수술과 입원 때문에 그는 퇴직 첫해보다 훨씬 더 외롭고 자신감이 결여된 사람으로 변했다. 그가 소중히 여기던 평화와 고요도 스스로 만들어낸 고독한 감금의 형식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는 끝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에 시달렸다.
“ 자신을 돌볼 수 없다는 것. 궁상맞게 위로를 받아야 한다는 거….
노인이 되어서야 그는 질투하는 사람에게서 평온, 나아가서 심지어 현실적인 태도까지 빼앗가 가는 감정 상태를 발견했다.
그의 딸 낸시
순수하고 분별력 있는 아이였다 유일한 결함이 있다면 그 무조건적인 관대함이었다 순진하게도 그녀는 자신에게 귀중한 모든 사람의 결함을 지워버림으로써, 지나친 사랑으로 사랑함으로써 불행으로부터 숨으려 했다. 마치 건초를 꾸리듯이 용서를 꾸렸다.
이제 모든 형태의 위로는 사라졌고 위안이라는 항목 밑에는 황폐만이 있었으며,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이질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이질감. 이것은 그의 언어에서는 그에게 낯선 어떤 상태를 묘사하던 말이었다. 한때는 나도 완전한 인간이었다.
노화는 전투가 아니라 대학살이다
그는 가족의 해체를 완료해 버렸다.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없애버린 모든 것을 깨다자, 자신에게 한 번도 가혹하지 않았던 , 늘 그르르 위로해 주고 도와주었던 형에게 가혹했던 것을 깨닫자, 자신이 이제 단지 신체적으로만 전에 원치 않았던 모습으로 쪼그라 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깨닫자 , 그는 주먹으로 가슴을 치기 시작했다.
목적 없는 낮과 불확실한 밤과 신체적 쇠약을 무력하게 견디는 일과 말기에 이른 슬픔과 아무것도 아니 ㄴ것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일. 결국 이렇게 되는 거야. 이거야 미리 알 도리가 없는 거지.

심장마비. 그는 이제 없었다. 있음에서 풀려나,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처음부터 두려워하던 바로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