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스턴트 봉지커피를 습관적으로 마셔온지 거의 30년이 넘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원두커피의 매력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원두커피의 깊은 향과 맛을 좀 더 알아보기 위해 커피공부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만난 이길상의 이 책은 커피에 대한 의미 있는 정보를 수없이 담고 있었다. 즐거운 독서였다. 책의 주요한 내용을 정리해 본다.
1. 커피의 탄생, 그 진짜 이야기
<공룡은 맛보지 못한 커피>
식물학적으로 커피나무는 속씨식물문, 쌍떡잎식물 강에 속한다. 지구상에 나타난 것은 중생대 마지막인 백아기 ( 1억 4500 만전) 후반이었다. 커피나무의 조상이 처음 나타난 곳은 아프리카다.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야생 커피나무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코페아 유게니오데스종이다. 아프리카 동부의 콩고,우간다,케냐, 탄자니아의 고산지가 원산지이다. 다른 하나는 코페아 카네포라종으로 서부 아프리카와 중부아프리카가 원산지이다. 카페인 함량이 더 높고 로부스타종 커피의 직계 조상이다.
자연 교배종으로 탄생한 것이 코페아 아라비카종으로 지금 우리가 마시는 커피음료의 70%를 차지하는 품종이다.
에티오피아 남서부의 카파, 케냐 북부 일대의 삼림을 원산지로 짐작하고 있다.
이후 1세기부터 10세기까지 아프리카 대륙 동쪽인 아비시니아(에티오피아)와 아라비아 반도 남쪽의 예맨을 지배했던 기독교 국가인 악숨 왕조 시대에 커피 씨앗이 아프리카에서 홍해를 거쳐 예맨지역으로 자연스럽게 전파되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커피나무는 15세기 중엽까지 아프리카 동부와 아라비아반도 남쪽 예멘지역에서 자라는 야생식물에 머물러 있었다.
<아라비아 펠릭스, 커피의 요람>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커피음료는 15세기 중반 예맨을 포함한 아랍 전역에 전파되었던 이슬람 분파인 수피교도들이 처음으로 마시기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이고 역사적 사실에 가깝다.
15세기는 세계 역사가 요동치던 시기였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이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자 유럽 기독교 세계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이후 지중해 서쪽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가장 먼저 인도로 가는 새로운 바닷길을 개척하기 시작했는데 그 계기가 된 것은 1492년 이룬 '레콩키스타(재정복"의 완성이었다 가톨릭 세력이 그라나다 알함브라를 함락하면서 700년 이상 지속된 이베리아반도에서의 이슬람 막을 내린 사건이었다. '
'커피'라는 새로운 음료가 등장한 것은 바로 이런 격동의 시기 15세기 중반 아라비아 반도 남쪽 끝 예맨이었다. 예맨은 농업이 가능했던 유일한 녹색지대였고 일찍이 동서양을 잇는 무역의 중심지 였다. 이집트, 물품들이 만나는 곳이 예맨이었고 그 중심지가 바로 모카항이었다. 모카항은 15세기부터 17 세기까지 유럽으로의 커피무역을 독점하면서 유명해졌다.
이슬람 지역에서 커피를 마신 최초의 실존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수피교 수도사 샤들리와 다바니다.
이렇게 커피는 이슬람의 음료로 탄생하였고 아랍의 포도주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커피가 유행하면서 이슬람교의 성지인 메카에 1500년경 세계 최초의 커피하우스 '카흐베 하네'가 등장했다. 아라비아 반도와 북아프리카에서 꽃피기 시작한 이슬람의 커피문화는 레반트 지역을 거쳐 1543년 오스만제국의 중심인 콘스탄티노플에 전해지면서 콘스탄티노플에 커피하우스가 처음문을 연 것은 1554년경이었다. 이후 600개 이상의 커피하우스가 생겨났다. 이후 커피는 17세기 중반 이전에 유럽인들의 사랑을 받는 음료가 되었고 17세기 중반경에 유럽도시에 커피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17세기 이슬람 세계에서 커피는 성별, 계절, 장소 사회적 신분의 제한 없이 누구나 어느 때나, 차별이나 부담을 느끼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음료였다. 17세기 후반까지 세계 커피의 주심은 유럽이 아니라 오스만제국이 지배하는 이슬람권이었다. 당시 개발된 튀르키예식 커피, 즉 체즈베라고 불리는 손잡이 달린 작은 용기에 물, 커피가루, 설탕을 넣고 끓인 후 천천히 따라 마시는 방식은 이후 19세기 중반까지 300년 이상 지속된 커피음용법이었다.
<커피, 드디어 경작 식물로 등극하다>
경작을 시작한 지역은 예맨이었는데 이 지역은 화산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미네랄이 풍부하고 겨울에도 서리가 내리지 않을 정도로 따뜻한 커피 재배에 적합하였다.
커피가 인류의 경작 식물로 등장한 것은 이슬람 지역에서 커피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한 16세기 중반 즈음이었고 최초의 경작은 예맨의 산악지대 혹은 에티오피아 동쪽의 하라 중 한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다.
2. 커피,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커피를 소개한 사람들이 대부분 의사이며 식물전문가 였다. 유럽에 소개된 커피는 치료 효능이 있는 의약품으로 소개되었다. 유럽인들에게 초기 커피는 무서움이었다. 마녀사냥 때문. 기독교의 권위와 성직자의 명예 긜고 의사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제물이 필요하였고 바로 이런 종교적 위기를 극복하는데 이용하기 쉬운 희생양이었다. 재판이 끝나면 마녀의 재산은 몰수되어 재판에 참여한 사람들이나 지역 교회에 배분되었다. 1570년에서 1630년까지 약 5만 명 이상이 희생되었다. 마녀사냥이 가장 극심했던 지역이 바로 남독일과 북이탈리아 지방이고 커피 이야기를 글로 전한 사람들도 모두 이 지역 사람들이었으며 그들 대부분이 마녀사냥의 타깃이었던 식물 전문가 들이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유럽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베네치아, 그리고 마르세유가 대표적인 항구였다.
<유럽에 커피를 전한 세가지 루트>
1) 영토확장을 통해서다. 1526년 오스만의 헝가리 점령으로 유럽에 커피가 전해졌다
1538년 스페인이 중심이 된 기독교연합 함대를 물리치고 오스만 제국이 지중해 해상권을 확보했다.
2) 공식적인 무역을 통해 전파
17세기 초반 1600년에 설립된 영국의 동인도회사, 1602년에 설립된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등이 아랍에 눈을 돌리기 시작 한 것이 출발이었다.
루이 14세가 처음으로 커피를 마신 것이 1664년이었고 17세기 중반 유럽의 여러도시로 커피를 실어 나른 것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였다
3) 외교관계를 통해서 전파.
<유럽 최초로 커피를 마신 마녀사냥 재판관>
유럽에서 가장 많이 커피를 소비한 곳이 영국 그 이유는
1) 지리적으로 오스만제국과 가깝고
2) 술을 대체할 음료로 커피가 관심을 끌기 시작
3) 청교도의 등장이다.
-영국인 윌리엄 하비가 최초로 커피를 마신 유럽인으로 기록되었고 커피가 안구건조증, 괴혈병의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기록되었으며 당시 커피는 의사들에게 만병통치약 수준의 약재로 여겨졌다.
3. 커피 하우스, 술에 취한 유럽을 깨우다
<유럽 최초의 커피하우스, 옥스퍼드일까 런던일까>
- 유럽 최초의 커피하우스는 1652년경에 런던에 있는 파스쿠아 로제다. 영국처럼 신분 구별이 뚜렷하고 위계질서도 엄격한 나라에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커피하우스였다.
"커피하우스의 규칙과 질서"라는 것이 있었는데 지위에 상관없이 더 나은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할 필요가 없다는 규칙, 욕을 하면 15펜스의 벌금을 내는 규칙, 성스러운 일을 주제로 삼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 영국의 금융산업도 커피하우스에서 탄생하였다. 커피하우스에 대한 이런저런 우려로 인한 찰스 2세는 " 커피하우스 금지령"을 내리기도 한다. 그 이유인 즉" 매우 사악하고 위험한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 "
<도시마다 등장한 카페, 맥주와 싸우다>
프랑스어 카페는 마시는 커피를 의미하기도 하고 커피를 마시는 장소를 의미하기도 하는 이중의 의미를 지닌다
이탈리아에서 커피가 전달 되는 통로였던 베네치아 공화국을 멸망시킨 사람은 바로 커피를 좋아했던 프랑스 군인 나폴레옹이었다. 1797년 그는 베네치아를 점령하였고 이후 베네치아는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지배를 반복해 받았고 1866년 독립한 이탈리아에 편입된다. 프랑스 최초의 카페는 르 프로코프다.
오스트리아를 침공한 오스만제국 부대가 실패하고 빈을 떠나며 남긴 군수품이 검은색의 낯선 곡물 커피를 콜시츠키라는 이가 확보해서 커피 판매사업을 시작하였는데 그 업체 명칭이 " 블루보틀이다" 요즘 커피 시장엣 제3의 물결을 이끌고 있는 미국의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했다.
빈의 영어식 표현인 비엔나 하면 떠오르는 비엔나커피의 원래 명칭은 카페 아인슈페너다. 한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뜻한다. 뜨거운 커피에 설탕을 넣고 생크림을 듬뿍 올려서 만든다.
맥주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수메르인들에 의해 기원전 4000년경 처음으로 만들어기지 시작했다. 커피가 독일인들의 맥주를 대체하기는 쉽지 않았다.
<음료가 아니라 무역품, 네델란드인들의 독특한 커피인식>
- 세계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회사를 설립한 이들은 1492년 스페인에서 종교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로 이주한 유대인이었다. 이 회사는 예멘의 모카항에서 암스테르담으로 최초로 실어 나른 것은 1640년이고 모카커피다. 암스테르담항으로 정기적으로 수출하기 시작한 것은 1663년이었다.
4. 유럽지식인들, 전설을 만들고 왜곡하고
<지적 호기심이 창조한 낙타 목동 전설>
염소목동칼디 전설로 유명한 커피 발견 전설의 원형이 남긴 흥미로운 사실은
첫째, 커피 전설의 원래 주농인공이 염소 목동이 아니라 낙타목동이라는 점
둘째, 배경이 아라비아 반도의 예맨이라는 것
셋째 커피를 발견한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고 이는 신의 섭리라는 것이다. 17세기 후반 서구인들이 즐기기 시작한 신비한 음료인 커피를 탄생시킨 것이 서구 문명이 아니라 동양 문명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서국인들의 문명관을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5. 생산은 검은 노예들이, 소비는 하얀 서구인들이
<자바에 커피를 옮겨 심은 한국학자 비첸>
-네델란드 동인도회사가 식민지였던 스리랑카 실론에 커피농장을 최초로 세운 것은 1640년이었다.
-자바커피의 탄새은 네델란드인 비첸이다.
<인도양에서 탄생한 커피 부르봉>
-프랑스어 부르봉은 영어 발음으로 '비번". 인도양에 있는 프랑스령의 작은 섬의 옛 이름. 이 지역에서 커피나루를 기른 것은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들이었다. 현재 우리가 마시고 있는 아라비카 종 커피의 2대 조상 중 하나가 부르봉종이고 다른 하나가 자바와 카리브해를 통해 퍼져나간 티파카종이다.
<18세기 브라질 커피 >
-커피는 검은 노예들이 생산하고 하얀 서구인들이 소비하는 잔인한 물품으로 점점 변해갔다. 아프리키인들을 대상으로 농예무역을 처음으로 시작한 나라는 포르투갈이다. 유럽 백인들이 초기 시작한 노예무역의 대상은 카리브해 원주민이었고 이들은 이베리아반도로 보내졌다.
탄자니아 잔지바르 스톤타운의 노예박물관
노예무역의 시작은 스페인이었지만 노예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나라는 영국이었다.
노예를 기반으로 한 커피농장대는 1703년 영국의 자메이카 1748년 스페인의 쿠바,
1750년 과테말라, 1764년 페루, 1779년 베네수엘라, 1790년 멕시코에 커피를 심었다.
생도밍고는 노예들의 저항으로 1804년 프랑스에서 독립하고 아이티공화국이 탄생했다. 커피나무가 홍해를 거쳐 동인도, 서인도, 대서양, 인도양으로 퍼져나가면서 커피나무가 지나는 길을 따라 폭력과 교역은 늘 함께했다. 커피보다 더 검은 인류의 흑역사이다. 그래서 커피는 검은 눈물이다.
새로운 커피생산지로 등극한 자바커피가 불과 20년 만에 모카커피를 추월하여 생산량에서 세계 1위가 되었다. 1731년 네델란드 동인도회사는 모카로부터 커피 수입을 중단했다.
6. 커피를 둘러싼 소동, 카페로 둘러싸인 도시
<독일>
커피 칸타타를 작곡하여 당시 커피 문화를 멋지게 표현한 요한 제바스타인 바흐와 베토벤은 독일의 커피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화를 남겼다.
칸타타는 성악과 기악 합주가 결합된 짧은 성악곡으로 이탈리아의 '노래한다'에서 유래한 음악장르이다 하루에 커피 30잔을 마실정도의 커피 애호가 바흐의 삶을 상징하는 작품인 동시에 18세기 커피문화를 보여주는 작품. 커피를 좋아하는 딸 리스헨과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그녀의 아버지 슐렌드리안의 갈등을 풍자와 해학으로 묘사한 곡이다.
"모닝커피가 없으면 나는 그저 말린 염소고기에 불과하다." 그이 말^^
괴팍한 천재로 알려진 베토벤은 정확히 60개의 커피콩을 갈아서 커피 한잔을 내려 마신 것으로 유명하다. "나는 아침식사에 나의 벗을 한 번도 빠뜨린 적이 없다"라고 할 정도로 베토벤의 하루는 커피와 함께 시작했다.
7. 혁명과 함께 한 커피, 커피와 함께한 영웅
< 커피는 애국, 차는 매국, 미국 독립운동의 커피>
미국의 커피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의 한 장면은 독립전쟁의 서막을 알린 <보스턴 차사건>이다. 영국 동인도회사가 18세기 후반 파산위기에 직면하자 이를 막기 위해 영국은 이 회사의 차 거래에 부과하는 세금을 파격적으로 감면해 준다.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 몰락하게 된 식민지의 차 수입상들과 밀매업자들을 중심으로 영국 동인도회사가 공급하는 차에 대한 불매운동을 일어났고 이는 들불처럼 퍼진다. 결국 배에 올라 차상자를 바다로 내던져 버리는 상황이 연출.
당시 미국인들의 심리 상태를 차=영국=나쁨. 커피=미국=좋음 이라고 묘사.
<바보들을 깨우는 커피 , 프랑스혁명의 기폭제>
몽테스키외를 비롯하여 볼테르 루소 등이 즐겨 찾던 장소가 지난 세기말 1686년 파리에 문을 연 카페 르 프로코프였다.
반복되는 전쟁과 세금 착취로 인해 프랑스의 일반 시민들은 피곤하고 곤궁한 삶에 더해 앙시앙레짐이라고 하는 구체제의 상징인 법복 귀족들은 시민들의 고통을 지속시키는 사회의 변화를 막았다. 깨어난 시민들이 마시는 음료는 커피였고 이들이 모이는 장소가 카페였다. 카페 푸아는 시민들이여 무기를 들라고 외치며 연설을 하는 언론인 카미유 데믈랭이 커피를 마시던 곳 카페가 시민 혁명의 기지가 되었다.
< 산업혁명을 도운 커피, 커피를 도운 산업혁명>
노동자는 커피의 도움으로 피로을 잊은 채 밤늦게 까지 일할 수 있어 좋고 자본가는 더 많은 이윤을 가져갈 수 있었다. 커피 덕분에 노동시간이 길어지면 이에 비해 임금이 늘어난다는 유혹이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나폴레옹이 유행시킨 가짜 커피>
18세기 후반 독일에서 개발된 치커리 커피는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으로 인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여러나나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8. 전쟁이 만든 커피 유행, 커피가 만든 대통령
18세기 후반에 세계 커피 생산을 지배하고 있던 곳은 자바와 생도밍고였다.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 이후 커피소비가 급감하면서 브라질이 새로운 커피의 생산국으로 자리매김했다.
브라질 커피가 유행한 이유는 1. 대륙봉쇄령 해제 및 산업혁명의 확산 2. 노예무역과 노동이 마지막까지 잔존 3. 커피에 적합한 떼루아 토양. 붉은 땅 테라룩사지역. 4. 1830년대 커피 가격하락과 신생독립국가인 미국의 커피 소비시장진입.
<애국심이 탄생시킨 아이스커피>
-프랑스 샤를 10세가 1830년 알제리를 침략했고 이 전투에 참여한 프랑스 군인들이 해안도시 마자그란이라는 작은 요새에서 전투가 길어지자 더위에 지쳐 커피시럽에 찬물을 넣어 마시기 시작했다. 이게 아이스커피의 시작
20세기 어느순간 아이스커피는 서양 대부분의 나라 커피 메뉴에서 사라졌다. 알제리에서 2세기 전에 만들어진 아이스커피가 현재 가장 유행하고 있는 곳이 한국.
<커피가 만든 불쌍한 대통령 링컨>
말수가 적고 성격이 뚱한 링컨에게 아내인 메리가 커피를 링컨의 얼굴에 뿌렸고 이후 링컨은 집을 나오 ㅓ돌기 시작하여 순회재판의 변호사가 되어 재판이 열리는 곳으로 이동하면서 생활 나중에 연방하원에 진출한다.
<남북 전쟁의 승자는 커피>
칼빈소총의 개머리판에 커피원두를 가는 수동 그라인더를 장착한 북군. 노예제를 폐지하기 위해 싸우는 북부군인들이 노예농장에서 온 커피로 힘을 얻어 전쟁을 하는 아이러니.
<커피가 만든 나쁜 대통령 매킨리>
남북전쟁시 매킨리는 총탄을 피해 가며 지친 군인들에게 커피를 따라주었다. 전쟁영웅이 된 그는 49세에 오하이오 주지사에 당선되었고 25대 대통령으로 취임. 하지만 이후 암살당한다. 루스벨트는 자신의 친구이며 매킨리의 고행 친구이기도 했던 윌리엄 태프트를 전쟁성 장관에 임명. 태프트 가쓰라 밀약의 그 태프트, 미국이 필리핀을,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는데 합의를 한 인물이 커피 대통령 매킨리의 친구이며 매킨리의 후계자 루스벨트의 친구이기도 했다. 이들이 만들어 낸 합작품이 1905년 을사늑약이다.
<파괴자 커피녹병, 자바와 실론 커피의 소멸>
-19세기 커피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은 '커피 녹병'은 인도네시아 자바섬 커피농장과 스리랑카의 자바 커피농장을 삼켰다. 이 병충해로 실론티로의 전환과 동남아의 로부스타종 커피 재배이다.
9. 커피 전쟁의 시대, 소비공룡 미국과 생산공룡 브라질의 싸움
16세기 모카, 18세기 자바 20세기에는 브라질의 항구 산토스가 있었다. 모카와 자바가 고급커피의 대명사라면 산토스는 저급한 커피의 대명사이다.
1880년대를 덮친 고급 커피의 실종과 높은 커피가격은 블랜딩 이라는 방식을 찾게 했다. 저렴한 브라질 산토스 산 커피를 베이스로 하고 여기에 두 종류의 중남미산 마일드 커피를 섞는 방식이다. 이 블랜딩 커피를 처음 내놓은 곳이 내슈빌에 있던 맥스웰하우스 호텔이었다. 이것이 멕스웰하루스 커피의 탄생.
<브라질의 길을 따르다 중남미 커피의 등장>
과테마라에 커피를 처음 심은 것은 스페인 지배하에 있던 18세기 중엽이다. 사유재산 개념이 부족하던 농임들의 땅을 국유화한 후 커피 재배를 희망하는 자본가들에게 판매하는 방식으로 땅을 잃은 농민들은 자신이 경작하던 땅에서 노예처럼 일하든지 산악지대로 숨어들어 반군이 되었다. 과테말라 정부는 부족한 노동력을 이민자로 채우고 편의와 세금 감면을 해주는 혜택으로 독일이주자들이 과테말라 커피농장을 접수했다.
과테말라 커피는 습식법으로 가공을 해서 생두 상태가 깨끗하고 깔끔한 산미와 풍부한 산미가 느껴진다. 엘살바도르도 커피농장은 정권이나 외국자본과 유착하여 원주민 출신 노동자들을 착취하였고 오랫동안 유지해 오던 공동체 중심의 생활양식을 해체시키고 모든 토지와 물질의 사유화를 촉진하였다 이 착취를 상징하는 것이 " 커피토큰'이다. 1808년에서 1826년 사이에 진행된 중남미 여러 나라의 독립 이후 많은 지역에서는 국가단위의 새로운 화폐가 등장하였지만 완전한 신용을 얻지는 못한 상태여서 이때 등장한 것이 커피 토큰. 노동자들은 농장의 주인이 만들어 놓은 농장상점에서 토큰으로만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농장주의 손바닥 안에서 경제가.
니카라과의 커피재배는 강제노동과 가혹한 환경과 처벌에 대한 원주민의 봉기가 있었지만 정부는 대규모 커피농장 체제로 토지를 강제로 수용하고 강제 동원 정책을 발표했다. 중남미 지역 전체 커피역사에서 폭력 착취 등 부정적인 모습이 비교적 적게 나타난 국가는 코스타리카 뿐이다 소규모 농장 중심의 커피재배로 커피 재배를 희망하는 농민들에게 땅을 무상으로 나누어 줄 정도로 정부의 평등주의적 의지가 강하다.
<커피를 사랑한 시인 랭보>
"지옥에서 보낸 한 철" 시집을 낸 프랑스 시인 랭보 는 에티오피아에 머물며 하라 커피를 즐겼다. 랭보가 모카항을 통해 하라 커피를 프랑스에 수출했다. 1891년 아디스아바바에서 생활하던 랭보는 관절염을 얻었고 커피가 유럽으로 들어오던 마르세유 항구에서 생을 마감했다.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커피는 1901년 선교사들에 의해 다시 고향인 에디오피아에 심어지기 시작하였고 2차 커피붐의 마지막 시기인 1920년대 들어와서야 본격적으로 세계 커피시장에 진입했다. 캐냐는 19세기 후반으로 영국인들이 커피나무를 옮겨 심었다. 뒤늦게 식민지 플랜테이션 커피농장 경영에 참여한 독일이 탄자니아를 대상으로 삼았다.
10. 커피가 맞서 싸운 적들; 가격폭락, 대용식품, 유해론, 찌꺼기
<커피가격경쟁, 브라질을 지지한 미국인 커피왕>
19세기에서 21세기에 걸쳐 붐엔 버스트 싸이클이 10년을 주기로 찾아왔다. 커피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던 브라질은 커피가격의 낙폭이 커지자 독일과 영국의 은행 브라질의 커피무역상들로 신디테이트( 공동판매 카르텔)를 구성한다. 커피 출하량과 재고량을 조절하여 커피가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려 한 것이다.
<성욕 억제제와 싸운 커피>
존 켈로그는 미국인의 아침 식탁을 점령한 시리얼 콘푸레이크를 개발한 사람이다. 결혼을 했지만 엄격한 금욕주의 신앙을 실현한 그는 육류 섭취가 성욕을 일으킨다고 해서 단백질 대용물인 옥수수 시리얼을 개발했다. 즉 시리얼은 성욕 억제제로 개발된 것. 또한 시리얼 회사 포스트는 커피에 들어 있는 카페인이 지닌 효과를 악마로 표현하였다. 반면 자회사의 지실얼 음료는 어린이의 두뇌 발달을 돕는다는 주장으로 성공하였다.
<커피 유해론과 싸운 커피>
커피열매에서 카페인을 발견한 사람은 1819년 독일의 과학자 룽게였다. 카페인은 합법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항정신성 중추신경계 각성물질이다.
디카페인 커피는 커피생두를 배에 싣는 과정에서 실수로 박스 하나를 바닷물에 빠뜨리는 실수를 했는데 ㅣ때 이 박스에 들어 있던 생두를 로스팅 하여 커피를 내렸는데 카페인이 모두 사라지 것이다. 로젤리우스는 염분이 함유된 물로 커피생두를 쪄서 카페인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특허를 받았다
<에스프레소와 종이필터의 등장>
지금 형태의 에스프레소는 1930년대 이탈리아 조반니 아킬레 가지아가 발명하였다.
종이필터를 이용한 페이퍼 드립방식이 등장한 것은 독일의 평범한 주부 멜리타 벤츠였다. 나치에 부역한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전후 강제노동 희생자들을 돕는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였다.
11. 커피 앞에 나타난 세계대전, 마피아, 대공황
전쟁은 전쟁 상황에 적합한 커피의 유행을 가져왔다 이것이 인스턴트커피다. 1차 세계대전시 미구산 인스턴트커피가 연합국 군대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어부지리로 탄생한 마일드커피, 콜롬비아 커피>
-미국과 브라질 사이의 커피전쟁에서 탄생
미국과 브라질 사이에 깊어지는 커피 갈등 틈새를 이용해 파고든 나라가 콜롬비아. 브라질보다 중남미 커피의 맛이 더 우수하였고 산토스 커피와 구분하면서 '마일드 '라고 표현한 커피가 다름 아닌 콜롬비아커피다.
행동주의 심리학의 아버지 존 왓슨이 광고회사에 입사하여 심리학적 기법을 광고에 적합하였는데 자신이 맡았던 맥스웰 하우스 커피 광고를 기획하며 '커피 브레이크'라는 개념을 대중에게 알림.
-대공황 이후 아프리카 케냐가 아라비카종 커피 생산을 확대하면서 아프리카가 200년 만에 다시 세계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함.
12. 아메리카노와 인스턴트커피를 탄생시킨 제2차 세계대전
<커피 같지 않은 커피'아메리카노'의 탄생>
제2차 세계대전 때 국가는 커피 배급제를 선택하고 커피를 연하게 마시는 습관을 선택. 적은 양의 커피에 많은 양의 물을 섞어 마시게 된 것이 아메리카노의 탄생.
에스프레소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밀라노의 카페 운영자 조바니 가지아이다. 스팀 압력대신 뜨거운 물 압력을 이용한 기술을 발명한데 이어 부드러운 크레마층을 만들어내는 "Lampo"라는 기계를 발명하였다. 이런 이탈리아 북부 지역의 에스프레스 문화가 라틴 계열인 프랑스, 스페인으로 전파됨. 무솔리니 시절에 출근길에 스탠드바 형식의 카페에서 선 자세로 급히 마시고 일터로 가는 문화가 등장하였다.
무솔리니가 커피역사에 남긴 역사가 바리스타의 탄생. 영어표현이 바맨으로 불렸으나 이를 이탈리아식으로 표현한 것이 바리스타. 그가 모카포트를 발명하기도 함.
2차 세계대전 시 유행한 인스턴트커피를 상업화 한 곳은 네슬레 연구팀이 만든 네스카페. 저급한 커피라고 외면받아온 로부스타 종 커피가 분말화 과정을 거치면서 쓴맛이 사라진 것이 결정이 요인이 됨.
13. 커피 제1의물결. 편의주의가 망친 커피의 품위
- 제 1의 물결: 제2차 세계대전 종전부터 스타벅스가 출현한 1980년대까지이고 이 시기는 질 낮은 커피와 상품커피로 상징된다. 대형 식품회사가 만든 인스턴트커피가 유행한 시기.
이 시기에 베트남이 세계 제2의 커피 생산국으로 등극한다. 맥스웰하우스에서 최초의 냉동건조커피 '맥심'을 내놓았다.
14. 제 2의 물결, 스페셜티 커피가 일으킨 파문
제 2의 물결은 스타벅스의 등장.
1971년 샌스란스시코 대학 동창생인 제리 볼드윈, 고든 바우커, 그의 친구 제브 시글에 의해 창설됨. 스타벅스는 허먼 멜빌의 소설 "백경"에서 나오는 항해사 이름인 스타벅에서 창안한 것임. 이들이 시애틀에 커피원두 판매점을 열면서 대형 로스팅 유통업체를 통해 공급하는 커피에 익숙한 미국의 소비자들의 입맛에 도전하며 최상의 생두만을 엄선한 후 강하게 로스팅하여 소비자들에게 공급하는 회사로 명성을 얻음. 창업 10년 후 1982년부터 자신들의 원두를 이용하여 커피음료를 판매하기 시작함. 스타벅스를 인수한 슐츠에 의해 세계 커피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만들어가기 시작함.
"커피를 갈아 황금을 만든다"는 신화를 만들어 가며 공정 무역을 통해 적정한 가격으로 매입한 생두를 일정량 사용함으로써 커피 생산 농가에 대한 도덕적인 책임감을 실천하고자 함. 우리나라는 1호점이 이화여자대학교 앞에 생김.
제3의 물결은 표준화나 규칙을 거부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흐름. 최고급 커피를 제대로 만들고, 소비하고 , 즐기고 감상하고자 하는 소비자와 생산자가 함께 이끄는 새로운 커피문화
제3의물결을 상징하는 이들 3대 로스팅회사이외에도 샌프란 시스코의필즈 오클랜드의 블루보틀, 샌타그루즈의버브, 포틀랜드에서 출발한 스텀프타운 이 있다.
15. 제 3의 물결, 음료에서 문화로
튀르크에 인에게 커피는 우정 사랑 공감의 상징이다. 한잔의 커피는 40년 우정을 만든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 아침식사를 카흐발티라고 하는 데 이 단어를 커피를 뜻하는 카흐와 이전을 뜻하는 아리가 합해진 커피 마시기 전이라는 뜻이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커피가 전파된 곳은 지금의 이탈리아 북부지역이다. 베네치아 공화국. 이탈리아에는 바르(bar)라고 하는 소규모 커피집과 커피를 제공하는 음식점인 '카페'가 공존
바르에서 카페라고 발음하는 커피를 시키면 적은양의에스프레소 커피가 나온다. 커피는 에스프레소다. 이들은 우유가 들어간 라떼 커피를 오전 11시 이후에는 거의 마시지 않는다. 우유가 소화가 안된다는 오래된 인식 때문.
바르에서 테이블에 앉아 편히 마시는 커피는 두 배쯤 비싸다.
물이 담긴 작은 잔이 안 오면 마시기 전 입을 깨끗하게 헹구고 그다음에 커피를 마신다.
산마르코 광장에는 1720년에 문을 연 '카페 플로리안"이 있고 수도 로마에는 1760년에 생긴 괴테, 스탕달, 키츠, 마크 트웨인 등이 다녀간 " 카페 그레코"가 있다. 나폴리엔 1860년에 문을 연 오스카 와일드 헤밍웨이 사르트르가 다녀간 그랑 카페 감브리누스가 있다.
프랑스의 커피문화로는 그들은 아침식사로 집에서나 카페에서 우유가 들어간 커피와 페스퓨리 종류의 빵을 함께 즐긴다. 오후에는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프랑스식 카페에서는 테이크아웃으로 커피를 주문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커피를 마시는 것이 여유를 즐기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
쿠바는 헤밍웨이와 체 게바라의 정취가 남아 있는 나라 . 우리나라와 아직은 수교가 안 된 곳. 18세기말에서 19세기초에 만들어진 쿠바 남동부 지역의 커피농장은 아주 독특한 문화적 경관을 창출하여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됨.
쿠바식 커피는 이탈리아식 에스프레소"크리시털 마운틴" 자메이카의 블루마운틴.
<커피공화국 한국의 커피문화>
10만 개 가까운 카페가 영업 중이고 커피수입국중 소비량이 6위다. 라틴아메리카 전체에 있는 스타벅스 매장보다 한국에 있는 스타벅스 매장 수가 더 많다. 한국인은 1인당 연 2.3 킬로그램을 소비하고 하루 평균 2잔 가까이 마신다.
국제적으로 공신력이 있는 CQI ( Coffee Quality Institute)에서 발급하는 자격증인 Q-grader를 소지한 사람이 전 세계에서 7000명인데 한국인이 1000명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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