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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것을 너에게 줄게 -정여울 글

숨그네 2022. 9. 1. 13:12

친구가 선물해준 정여울 작가의 심리치료 에세이 집이자 멋진 사진들이 함게 들어있는  이 책을 며칠사이 읽었다. 그의 글을 좋아해서 몇권을 읽었는데 이번에 읽은 이 책도 무척 마음에 들어 밑줄 그어 둔 문장들을 기록해 둔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니” 나 자신에게게도 친절하자. 내가 편을 들어 주지 않으면 이세상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을 자 자신을 위하여. 오늘도 스스로에게 친절을 베풀고 용기를 북돋으며 치열한 삶의 전쟁터로 나설때면, 나는 그렇게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내가 사랑하는 문장을 어루만진다.
“낯선 사람을 박대하지 말라. 어쩌면 그는 변장한 천사일지도 모르니. 이 문구는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서점의 주인이 가난한 작가들에게 서점문을 활짝열어 얼마든지 책을 빌려갈수 있도록 했다 한다. 헤밍웨이를 비롯한 수많은 작가들이 이서점의 변장한 천사들이었다.
“휠체어를 탄 할머니에게 버스기사가 신속하게 뛰어나가 승강장치를 펴서 버스에 오르게 하고 할머니는 버스기사에게 고맓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를 보고 고맙다는 말을 할 필요조차 없는 상황이 정상적인 것이 아닐까 생각.  그야말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구분업싱 누구나 대중교통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건강한 사회이다. 장애인에게는 이동권이 있다.
기적은 늘 디테일 안에 있다. 쓰기 이전에 읽기가 있다면, 읽기 이전에 ‘타인에 대한 공감’이 필요하다 텍스트로 전달되지 않은 원초적 사랑의느낌.
나의 문해력은 어려운 타인의 책을 끝내이해하기 위한 몸부림에서 잉태. 내개 중요한 모든 책들은 소름끼치게 어렵지만 눈부시게 아름답기에 사랑했고, 그렇게 어렵게 얻은 사랑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문학을 사랑하는 것은 사려깊고 풍요로운 지성과 감성의 우주 속으로 진입하는 티켓이디ㅏ. 기적은 늘 디테일 안에 있다.

어린시절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마음속에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뿌리깊은 편견을 지워내기 어렵다. 그래서 미움받는 것은 당연해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쌓이다보면 나에게 친절하게 잘해주는 사람들조차도 믿지 목하게 된다. 학대는 자기혐오로 이어지고 자기혐오는 자기징벌을 가져오며 자기징벌은 곧 타인을 향한 끝없는 불신으로 치닫는다.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상태. 여행가방에 갇혀 고통뿐인 삶을 마감한 아홉살 소년의 말없는 외침 그것은 예뻐해주세요 저를 저버리지 마세요. 저를 사랑해주세요. 제곁에 있어주세요 ….

당신은 미투를 오해하고 있다.
타인의 슬픔에 공감을 표현하는 언어에는 필연적으로 수많은 상처의 흔적들이 스며있다. 당신이 아프니 나또한 아프다는 ㄱ넛. 당신이 지금 느끼는 슬픔이 내가 과거에 느꼈던 슬픔과 똑 같다는 것을 표현하는 따스한 공감의 언어가 바로 미투다. 미투의 핵심은 공격적인 폭로가 아니라 연대와 공감의 표현이다.

원하는 것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원하는 것을 말했을 때의 실패를 지나치제 두려워하게 된 나의 이 소심함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그 뿌리에는 엄마와의 삐꺽거리는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너무 많은것을 기대하는 공의존의 사슬로부터 풀려나 각자 가장 아름다운 삶을 개척해나가고 있습니다.
자기혐오를 멈추고 자기공감의 따스함을 회복하는 것.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지혜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비약적 글쓰기는 바로 뼈아픈 상실감에 빠져드는 시간이었다. 그에게 글쓰기는 ‘내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고 느낄 때마다 이 가혹한 쌍을 향해 던지는 간절한 화살이었다. 소로는 소총에서 총탄이 발사되듯 저절로 뿜어져나오는 글쓰기를 했다.
마음속에 그 누구도 침투하지 못할 풍요로운 상상의 방을 만드는 것. 가슴속에 그 누구도 빼앗지 못할 열정의 씨앗을 뿌리는 것.

그 상처는 나를 죽일 수 없어
페르소나는 원래 가면이라는 뜻으로 자신의 그림자를 숨기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성찰한 심리학자 칼 융의 개념이다. 페르소나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그림자이다. 그림자는 숨기고 싶은 또다른 나다. 페르소나가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나라면 그림자는 남들에게 숨겨야 할 것 같은 부끄럽고 끔찍한 내 모습니다. 그림자 속에는 트라우마와 콤플랙스, 지우고 싶은 아픈 기억,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나의 어두운 면들이 모두 포함된다.하지만 융심리학의 혁신성은 바로 이 그림자와의 고통스러운 만남이 좋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상처와 고통은 나를 죽일 수 없어라는 자기인식.페르소나가 에고(사회적자아)에 가깝다면 그림자는 셀프(내면의 자기)에 더 가깝다. 타인과 잘 지내것 것도 좋지만 나와 잘 지내는 것 또한 중요하다. 내가 아프다. 내가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기인식으로 부터 정신적 문제의 치유가 시작된다.
발포공포증이 있다는 강박관념이 있었고 그 콤플렉스를 끝내 벗어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내 그림자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 그림자와의 대명 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존재야맑로 ‘개성화’의 주인공 곧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 마음의 기나긴 여정을 떠날 수 있는 전사가 될 수있다.
고흐는 부모님의 냉대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랑한다는 애틋한 표현의 흔적을 남겼다. 고호는 분노속에 살았지만 그 분노를 사랑으로 갚았다.

사람이 육체에 주는 음식이 밥이라면 차는 사람의 마음에 주는 음식이다. -김소연 “마음사전”
대저받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모두가 과도한 노동과 필요 이상의 서비스로 부터 자유로와진 평화로움 그 고요함. -무인 카페
돌봄에 대해
우리는 서로를 돕지 않으면 서로을 돌보지 않으면 결코 생존할 수 없는 집단적 주체이며 각개격파나 각자도생 같은 냉혹한 생존논리가 아닌 따스한 공존과 촘촘한 연대가 필요하다. 시장과 가족에만 의지하는 돌봄은 희망이 없다. 시장에 이존하는 돌봄은 모든 소중한 보살핌의 일거리를 돈으로 환산해버리고, 가족에 이지하는 돌봄은 가족 구성원에게 가장 약자이머가 책임감이 강한 사람에게 노동이 집중되어 한 사람의 하드캐리로 돌봄을 더욱 타자화 시킨다. 그렇다면 사회적 돌봄의 형태가 필요할 것이다.

자존감- 높지 않아도 괜찮아
“자존감을 지나치게 과도하게 강조하는 문화 자체가 현대인을 괴롭힌다.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나는 하루 얼마나 권태롭고 획일적이며 단조로운가. 자존감은 꼭 높지 않아도 된다. 자신감을 가지라는 조언도 때로는 고통이 된다.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나’에게 지나치게 집중되는 에너지를 타인과 세상 속으로 넓혀가는 것이 훨씬 지혜로운 선택이다.
“자아는 우리의 훌륭한 아군이자 가장 무서운 적이며 우리가 살면서 마주치는 가장 큰 역경은 대부분 직간접적으로 자아의 산물이다.
“아들러”는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서 ‘타인을 행복하게 하기’라는 새로운 과제에 도전해 볼것을 제안했다

죽음과 삶의 경계선이 우리 사이를 날카롭게 가로막아도 , 아직은 괜찮다. 당신과 나 사이에 책이 있다면, 당신과 나 사이에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면.

자기만의 방을 넘어서 우리 모두의 방으로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이 홀로 자기 꿈을 이룰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을 갖기 위해 연간 500 파운드 이상의 고정수입이 있어야만한다고 선언했던 시대에 비하면 우리는 엄청난 자유아 권리를 얻었다. 하지만 자기만의 방일 때 우리는 또 다른 결핍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이제 뭔가 생각하고 꿈을 꿀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을 갖긴 했지만 그 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대답을 아직 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 홀로 고독할 권리를 넘어 연대하고 창조하고 향유할 수 있는 다체로운 축제의 공간으로 확장되는 공간, 나는 그런 공간을 꿈꾸며 우리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 자유를 찾아 헤맨 전사들의 글을 찾아 읽는다.

미국 드라마 <워킹 데드>의 에피소드중 “길가에 박힌 돌”이라는 이야기 은유.. 소녀가 결국 그 돌을 무작정 바위를 파내어 치웠을 때 황금자루가 선물로 주어졌다.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는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