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에 무심히 떨어져 있던 밤송이들은 어느새 품고 있던 알밤을 누군가에게 빼앗기고 헐겁게 뒹굴고 있다. 여름내 무성했던 나무 잎사귀들의 섹시한 풍성함과 내밀한 속삭임들은 이제 기운을 잃고 60을 바라보는 관절염 앓는 여인네의 바스락거리는 무픞소리를 닮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마른 잎사귀들이 내는 소리와 냄새는 훨씬 달콤하고 영혼을 차분하게 정화시키는 것 같다.

다리. 계곡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 그것도 나무다리가 주는 묘한 향수와 까닭 모를 슬픔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예쁜 다리와 자연과 잘 어울리는 나무의자를 들여다보면 세상사 험한 일들을 겪으면서 심하게 상처받거나 인간성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던 것들이 어느 정도 회복되는 느낌이다. 오늘도 나는 이 다리를 설계하고 노역을 들여 다리를 놓는 일을 하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