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월의 제주여행 첫째날-이타미 준 미술관에 가다

숨그네 2023. 2. 15. 15:29

 

이타미 준 미술관이 새롭게 개관했다. 주소는 제주시 한림읍 용금로 906-10.
제주 저지면에 있는 현대미술관, 김창열 미술관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 '이타미 준'이라는 예명으로 더 알려진 건축가 겸 예술가 유동룡. 그는 1937년 재일 교포로 태어나 40여 년간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경계에서 활동했다. 이 두나라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경계인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그는 물질과 근본, 관계성을 주장한 '모노파'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건축활동을 시작했다. 자신을 '세상에 마지막 남은 아날로그 건축가'라고 부르며 끝가지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했도, 자연과 본질에 집중한 건축으로 세상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서예, 회화, 조각등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연구도 멈추지 않았다 한다.
수없이 많은 세계적 건축물을 남겼는데 제주에 오면 볼 수 있는 수풍석 박물관과 포도호텔, 방주교회, 핀토스 비오토피아. 본태미술관 등이 있다. 이번에 새로 개관한 이타미 준 유동룡 미술관에 갔다.

 "나는 풍토, 경치, 지역의 문맥속에서 어떻게 본질을 뽑아내 건축에 스며들게 할지를 생각한다. 조형은 자연과 대립하면서도 조화를 추구해야 하고, 공간과 사람, 자신과 타인을 잇는 소통과 관계의 촉매제여야 한다. "

"흙과 돌, 나무, 소재가 무엇이든 예술작품은 현실의 온갖 것들을 연상시키며 그것들을 한없이 무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무'에 한없이 근접하여 ㅅㄹ아 있는 실재와 같이 느껴지는 예술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전율로 다가온다.  마치 로봇과 같아서 존재를 느낄 수 없는 그림자와 같은 건축이 있다면  문병 그것은 우리에게 공포의 대상이 될 것이다. "

그의 예술관을 보여주듯 제주의 현무암 돌들의 조각들이 아무렇게나 아니 무로 향하듯 그러나 또 다른 의미로 열려있듯 입구에 자연스럽게 놓여 있다.

"문득 주거의 본질은 그 내부에 있음을 깨닫는다. 모든 것은 시간을 필요로 하고 그 속에 생명이 깃들어 삶을 영위해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 

둥근 창을 내고 그 앞에 소박하고 단순한 나무의자에 앉아 자연이 빚어낸 나무들과 풀떼기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무심히 바라본다. 지긋이 낮고 조용한 자세가 필요하다. 

" 내 마음은 언제나 밝음과 어둠, 긍정과 부정 사이를 오가며 어렴풋한 빛을 추구한다. 어쩌면 이 어두운 상자는 나에게 있어 도시라는 바다에서 표류하는 상처 입은 배와 같은 미묘한 기분이 든다. "

사각으로 복도 끝에 위치한 창문으로 빛이 스미듯 들어온다. 빛은 도처에 있으나 빛 속에 있으면 느끼지 못한다. 이렇듯 어두운 곳에 스미듯 들어올 때 문득 아 빛이 있었구나 이렇게 느껴지며 마음이 따뜻해진다. 

 

"나는 건축에서 기능을 배제하고 싶지 않을 뿐더러 디지털과 컴퓨터 그래픽에 의존해서 공간을 구성하는 가사의 건축상을 따를 생각이 전혀 없다. 어디까지나 손의 흔적과 신체성을 고집하며 나만의 독자적인 모더니즘, 또는 나만의 장르로 단정 지을 수 있는 세계를 구축하여 밀고 나가고 싶다.. 현대 건축에서 결여된 온기와 야성미를 묵묵히 일깨우는 "멋"이라는 말의 정신적인 의미의 심오함과 세련됨, 무의 깊이를 건축에 도입하고 싶다. "

그의 드로잉은 그의 손의 흔적을 쫒는  아날로그적 신체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그것 자체가 예술임을 느끼게 한다. 

 

먹의 공간

" 벚나무와 대나무의 건축이랄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비 내리는 밤, 불빛 속에 드러난 건물은 마치 벚꽃을 위한 연극무대의 배경처럼 보였다. 철판과 종이, 철판과 나무의 대비와 조화를 통해 공간에 신선하고 긴장된 관계를 연출해 보였다. 자연스럽게 내 방식대로 하얀색과 검은색을 통해 먹의 세계에 접근한 것이다. "

그의 건축은 한편의 시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건축에 작가의 감성과 자연에 대한 태도가 그대로 묻어난다. 단일하고 반듯반듯 네모진 기능적인 역할만을 제공하는 현대인의 아파트 살이를 생각하면 감성을 담은 그의 주택철학이 그저 부럽고 멀리서 향유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현대인은 너무나 집과 멀리 떨어져 살고 있다. 아니 요즘은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재테크의 대상이 되고 있으니. 공간이 사람의 생각을 담는다고 했는데..

 

 

"제주도의 지형이 타원형에 가깝다는 의식 때문인지 스케치 또한 자연스럽게 타원형을 그리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름다워야 했고, 지역성과 역사성을 의식한 자연과의 조화, 대지와의 공명이었다. 

아파트들이 밀집해 있는 수직의 공간에 사는 우리가 오름과 넓게 펼쳐진 목초지, 곶자왈을 안고 있는 제주의 수평공간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아마 본능에 가까워지려는 것일 까. 우린 뽀쪽한 수직에서 공포와 불안을 생리적으로 느끼는 것은 아닐까. 평등과 평화는 둥근 모습일 것이다. 마음에 드는 파랑색의 드로잉.

"바람도 공간도 무심히 지나쳐 온 자연과 기억을 연상시키고자 한 공간이다. 오두막 개념으로 설계된 나무 상자는 한쪽 입면이 화러럼 홀ㄹ 그리고 있다. 나무판의 틈새로 바람이 통과하면 소리를 낸다. 바람이 강한 날, 판과 판 사이에서 마치 현을 문지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는 것은 뜻밖의 놀라움이었다. 그곳에 놓여 있는 돌 오브제는 의자로, 바람소리를 듣는 명상의 공간이기도 하다. "

가장 단순한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그리고 고도로 심오하고 철학적이다. 

"<석 미술관>은 하나의 사유이자 시적인 환상이 있다. 돌의 공간은 단단한 상자 안, 그것도 암흑 속에 의도적으로 빛의 구멍을 내어 인공의 꽃으로 삼았다. 그 구멍을 통해 쏟아져 들어와 이동하는 빛을 주연으로 연출한다는 환상. 그리고 관람하는 사람에게 제한 없이 무엇인가를 연상시키는 공간이기도 하다. "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에서 주인공 제롬을 사랑했던 그녀가 멀리 걸어 돌아온 그를 데리고 가서 맞이한 곳은 아무 장식도 가구도 없는 텅 빈 방이었다 한다. 이 글을 소개한 철학자 김진영은 존재의 집은 빈 공간이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 같다. 수풍석 박물관을 가보지 않고 미술관에 전시된 그의 드로잉과 이타미 준의 딸 유이화 씨가 엮은 그의 글들을 읽고 상상하는 건축물들에 대해 상상해 본다. 바라건대 그이 자연과 합일하고자 했던 철학이 건축으로 탄생했는데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있어서 마음껏 향유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수풍석 박물관은 듣기론 몇 개월 전에 미리 예약을 해야 하고 마치 금단의 공간처럼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는 다녀온 이들의 평이 있었다. 아쉽다. 

모든 우아한 장식들이 사라진 기능만으로 만들어진 나무의자가 왜 이리도 단순하면서 아름다운가. 이타미 준을 보고 있는 듯하다. 그의 공간들이 좀 더 열려 있는 곳에 있으면 좋겠다. 무심히 놓인 이 나무의자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