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Λαϊκός Ορθόδοξος Συναγερμός 라오스에 가면 도대체 뭐가 있을까

숨그네 2023. 4. 5. 16:45

“ 행복을 찾는 일이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면, 여행은 그 일의 역동성을 그 어떤 활동보다 풍부하게 드러내준다. 여행은 비록 모호한 방식이기도 하지만, 일과 생존투쟁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여행에서 철학적인 문제들, 즉 실용적인 영역을 넘어서는 사고를 요구하는 쟁점들이 제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여행할 장소에 대한 조언은 어디에나 널려 있지만, 우리가 가야 하는 이유와 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 힘들다. 그러나 실제로 여행의기술은 그렇게 간단하지도 않고, 또 그렇게 사소하지도 않은 수많은 문제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우리는 여행의 현실이 우리가 기대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익숙하다. 그러나 일단 현실은 기대와는 다르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진실에 좀 더 가까울 수 있고, 좀 더 보람도 있을 지 모르겠다“-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라오스 여행을 오랫동안 꿈꿔오지는 않았다. 일상의 계획이 차질을 빚고 그 빈 시간을 공허하게 보내지 않기 위해 막연하게나마 좀 덜 개발되어 인간의 원초적인 삶과 인간적인 냄새를 간직한 곳이면 족하다는 생각으로 라오스 여행을 급하게 떠나게 되었다. 오랫동안 여행지를 탐색하고 관련된 책과 영화 그리고 정보를 수집하곤 했던 기존의 방식을 과감하게 버리고 싶었다. 나의 지식이 나의 본능적인 느낌과 직관들 그리고 경험들을 방해하지 않기를  빙자하며 나의 게으름을 탓하지 않기를.  여행사를 선택하고 날짜를 잡고 경비를 계산하는 그 모든 사소하지만 필요한 일들을 친구에게 떠넘기면서까지. 이기적이고 게으른 여행의 시작. 어쨌거나 코로나 안전규제가 해제된 후 첫 여행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공항에서 “ 라오스 프랜즈”라는 여행안내책자와   그전에 구입해둔 무라야미 하루키의 :” 라오스에 가면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라는 책을  비행기안에서 읽기 위해 가져간다. 여행지에 대한 기본 정보를 아는 것은 최소한의 여행자로서의 그나라에 대한 예의와 경의라고 생각하니까.
역시나 뒤늦게 알게 된 것이지만 여행의 최적기는 우기가 시작되는 4월이 아니라 서늘한 기운이 도는 건기 시작 시점인 11월과 2월 사이라는 것. 우리나라와의 시차는 2시간. 그리고 고맙게도 라오스는 무비자로 30일까지 체류할 수 있단다. 비행시간은 5시간 40분 정도. 통화는 Kip이며 1만 킵이 한화로 약 1400원 정도. ATM이 많지 않아서 신용카드는 거의 사용할 수 없고 현지 화폐 혹은 달러를 사용한다는 것. 라오스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아닌 인민민주주의 공화국 즉 사회주의 체제이며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받아들인 것이 불과 얼마 안 된다. 메콩강이 남북으로 종단하고 있고 이 강을 중심으로 베트남과 태국 미얀마와 국경이 맛대어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한 내륙국으로 바다에 면한 부분이 없다. 그 대신 메콩강이라는 큰 강이 국토를 가로지른다. 국민의 78프로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단다. 종교는 불교신자가 거의 67 % 여서 라오족은 남성이라면 한 번은 승려로 수행하는 것을 삶의 가치로 여긴다고 한다. 경제규모로 따지면 GNP가 5700 달러정도니까 라오스 인들의 생활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겠다.
란쌍왕국(백만의 코끼리라는 뜻)이 최초의 독립국가였다 1574년경 버마의  속국으로 있었으며 이후 3개의 왕국으로 분열되었다가 프랑스가 베트남전역을 점령하고 인도차이나를 설립한 ( 1862년)까지 프랑스 보호령, 즉 프랑스 식민정부의 지배를 받는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제3세계에 속한 아시아권 나라들이 겪는 역사의 질곡을 거의 비슷하게 겪었다. 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에 맞서 1945년에 독립선언을 하지만 프랑스가 무력으로 임시망명정부를 해체한다. 이후 1953년 라오스 왕국으로 완전독립을 하게 된다. 1956년 라오스왕국과 라오스 공산당이 휴전하여 연립정부를 쉷하나 미국의 선거개입과 공산당원체포 탄압으로 내전이 심화되었고 이후 통킹만사건으로 벌어진 베트남 전쟁 (1964년 -1973년)을 10년 동안 치렀고 이 과정에서 30만이 넘는 라오스인이 죽음을 당한다. 결국 10년 전쟁을 승리한 후 미군이 철수하고 휴전협정이 조인된 후 빠텟라오(라오스 인민혁명당)이 1975년 인민사회주의 공화국을 출범시켰고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비슷한 근현대사를 가진 분단국가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그나마 제국주의의 식민통치와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라가 분단되지 않고 통일된 국가로 살고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수영장이 딸린 5성급 호텔에서 잠시나마 머물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관광객이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기도 하겠다. 하지만 배낭을 매고 대다수 현지인들이 살고 있는 곳, 지근거리에서 삶을 들여다보고 함께 하는 것도 해보고 싶은 일정이었지만 이 여행은 패키지이다. 편하지만 개인의 선택이 제한되는 .  이곳에 10년 가량 살고 있는 라오스 여행가이드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라오스에 오신 이유가 불편함을 감수하기 위한 것 아니었나요?” 물론 호텔숙소는 근사하다. 너무나 아름답고 잘 가꾸어진 열대의 나무와 꽃들이 피어있는 정원, 멀리 보이는 메콩강. 호텔을 떠나 불편함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뜨거운 여행을 시작해 본다.

왓 씨무왕 사원이 처음으로 방문한 비엔티엔 사원.  첫 독립왕국을 세운 란샨의 셋타티랏 왕이 수도를 비엔티엔으로 천도한 후 세운 사원으로 이곳에서 사람들이 소원을 빌면 성취된다고 알려져 있어 방문객들이 많다. 라오스에서 왓(Wat)은 사원을 뜻한다.

첫날의 일정은 백단향의 도시, 혹은 달의 도시라 일컬어지는 라오스의 관문이자 수도인 비엔티엔에서 시작한다. 1563년 셋타티랏왕이 구왕국의 수도였던 루앙프라방에서 수도를 천도한 곳.  1828년 씨얌 (태국)의 침략과 약탈로 많은 건축물이 파괴되었고 1990년 후반까지 세상과 단절된 채 가난한 라오스 나라의 수도로 자리잡은 비엔티엔. 도시의 수없이 많은 사원에 사람들이 공양을 들일 때 사용하는 프라쌋  프앙. 바나나줄기에 꽃을 장식해 만든 탑모양의 꽃다발. 이들의 삶은 종교와 생활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삶의 고단함과 불편함 그리고 가난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영원한 영생과 윤회를 얻을 수 있는 불교와 토착신앙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그들의 고요하고 침착한 친절함 또한 사람들에게 공덕을 쌓고 신들에게 봉양을 하여 더 좋은 삶을 받아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종교적인 위로와 확신이 있기에 더욱 더 가능한 것이 아닐까.

수도인 비엔티엔은 다른 도시와 시골에 비해 도로가 그나마 잘 정비되어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신호등이 없고 버스와 모터싸이클 그리고 자전거와 톡톡이 ,픽업트럭이 앞다투어 가기 때문에 안전에 유의해야한다. 스님들도 오토바이와 차를 구입하면 가까운 사원에 가서 스님들이 하얀실로 그것들을 연결해서 안전을 기원해 주는 의식을 치룬다고 한다.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삶인데 모든 것이 합리와 이성적 판단만이 능사가 될 수도 없고 모든 것을 수렴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런 종교적인 의례와 의식이 갈 수록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

여행 둘째날 찾아간 첫번째 방문지 COPE ( coperative Orthotic and Prosthetic Enterprise) 즉 정형을 위한 저지대와 보철 협력사업으로 전쟁피해자를 지원하는 재활센터 ( Rehabilitation Center)다. 베트남 전쟁 ( 2차 인도차이나 전쟁 ) 10년 기간동안 미국이 퍼부은 폭탄물 투하로 30만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그때 투하한 폭발물이 거의 2억 5천개에 달했으며 그중 2억개가 불발탄 ( Unexpected Ordnance)으로 곳곳에 남아 있어 예기지 않은 곳에서 폭발이 되어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센터에서 피해자들에 대한 의료지원과 재활활동을 펼치고 있다.

불발탄으로 만들어진 조형물  모빌을 보면서 천문학적인 전쟁비용과 그 전쟁수행의 목적의 비인도적 속성, 그리고 전쟁피해자들의 끝나지 않은 상처와 트라우마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치뤄야 하는지. 결국 평범한 그리고 더욱 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역사적인 희생자들로 언제나 남는것 같아서 씁쓸하고 안타까워 마음이 무거웠다. 지금도 막강한 경제력을 앞세워 자국의 이익을 위해 자유수호라는 미사어구를 동원해가며 국민들을 기만하고 현혹시켜 자기 나라가 아닌 제 3국의 군사기지를 확보해서 초대형 연합군사훈련을 하는 전쟁광들이 있지 않은가. 그 뒤엔 군사시설 및 무기판매를 통해 천문학적인 경제적 이득을 얻고 있는 군산복합체가 있을 것이며, 그 힘을 이용해서 정권을 유지하며 국민들을 두려움과 전쟁공포에 떨게 하는 이기적인 세력들의 야합이 있을 것이다.

불발탄을 가지고 천진하게 놀다 폭발하여 다리와 손, 사지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많다고 한다. 아름다운 라오스의 산과 밀림 그리고 삶의 터전인 밭과 논두렁에 무수한 공포와 무고한 죽음을 예고하는 불발탄은 전쟁의 비극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리고 원인불명이라지만 전쟁 무기의 살포로 인한 유전적인 기형인 club Foot를 가지고 태어난 5세 이하 어린이가 2천명이 넘는다고 하니 전쟁의 실상을 소름끼치게 느끼게 한다. 그나마 이런 Non profit Organisation (NGO)가 있어 피해자들의 의족 및  재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Cluster Munition (무더기로 발견되는 불발탄)을 찾아내고 그 위험에 대해 지역민들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기하고 있다하지만 10년 전쟁으로 라오스 전역에 (지도의 빨강색 부분) 흩부려진 불발탄의 위험은 너무도 생생하다.

코프 방문으로 인한 무거운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근처 씨앙쿠안 (Xieng Kuan) Budda Park 에 들른다. 씨앙쿠안은 영혼의 도시라는 뜻으로 50 미터가 넘는 와불상을 포함해 2백여개의 종교적인 조각상및 불상을 공원 곳곳에 전시하고 있다. 시멘트 불상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고 아름다운 불상들이 각각의 표정과 이야기들을 품고 여기저기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악마의 입처럼 생긴 이 조각상은 칼라신인데 사람들의 나쁜 기운을 다 빨아들인다해서 관광객들이 이 거대한 악마의 입속으로 들어가 좁은 계단을 타고 꼭대기까지 오르곤 한다. 나는 가지 않았다. 왠지 으시시해서 그냥 사진만으로.. 참고로 이 조작상을 만든 루앙푸는 라오스 공산화 이후 태국으로 건너가 작업활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아이와 엄마가 평온하게 낮잠을 자고 있는 조각상이 맘에 들어 가만히 옆에 앉아 본다.

원숭이, 코끼리, 나무, 꽃, 불상, 인간, 힌두의 수 많은 신들이 어느 사원에 가든지 만날 수 있는 평화로운 공존. 신화의 세계속으로 들어온 듯한 생각으로 마음이 평온해진다.

부겐빌리아, 개, 고양이, 원숭이 , 조각상 , 불상, 이야기, 사원 그리고 시간. 시간의 흐름이 걸음을 멈춘 듯한 고요함. 사람의 마음을 곱게 어루만지는 정지된 시간.
풍경에는 소리가 있고 감촉이 있다. 특별한 빛이 있고  특별한 바람이 분다. 그런 풍경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쓸모가 있는지 모르겠다. 결국 대단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한낱 추억으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원래 여행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라오스의 불상과 조각상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압도적인 힘 같은 것이 없다. 진득하게 시간을 들여 바라봐야 한다.


점심식사 후  LCR 기차를 타고 비엔티엔에서 루앙프라방으로 왔다. 이 기차덕분에 10시간을 비포장도로로 덜컹거리며 가야했던 세계문화유산도시 루앙프라방까지 2시간이면 도착하게 되었다고 가이드가 말한다. 하지만 중국의 돈과 인력 장비 기술을 몽땅들여 만든 이 일대일로 거대 기차 프로젝트는 라오스의 실제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지만 지켜볼 일이다. 우연히 결혼을 앞둔 신부가 사진촬영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어 한컷. 신부가 입은 옷이 이곳의 정통복장이다.

루앙프라방은 란쌍왕국이 처음으로 독립왕국을 건립한 후 1354년부터 수도를 비엔티엔으로 천도한 1563년까지 라오스의 수도였다. 라오스의 북쪽에 위치한 도시 전체가 사원들을 품고 있는 세계문화유산지정 도시다. 신성한 황금불상인 파방(프라방)을 크메르 제국이 선물로 보내면서 루앙프라방 (위대한 황금불상)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태국의 침략을 두차례 받아 파방이 약탈되었다가 태국의 라마 4세가 다시 라오스로 돌려보냈다고 전해진다. 이곳에서 제일 유명한 왓씨앙통 ( Wat Xiang Thong)은황금도시의 사원이다. 셋타티랏왕때 건설되었다. 그가 비엔티엔으로 수도를 옮기기 전 마지막으로 건설한 사원이다. 메콩강과 칸강이 만나는 곳에 있는 너무나 화려하고 수려한 사원이다. 이곳 대법전에 있는 “ 삶의 나무”라고 불리우는 한쪽면의 벽장식은 모자이크로 유리공예 조각으로 만들어진 너무나 화려하고 아름답다. 힌두교와 불교에서 말하는 우주론을 표현하고 있다지만 지식이 짧아 다 알수 는 없고 그저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넋을 잃었다.

루앙푸라방의 대표적 볼거리는 사원인데 란쌍왕국 시절에는 60개 이상의 사원이 있었으나 현재는 32개의 사원에서 약 1000명의 승려가 수행중이라 한다. 왔씨앙통과 왓마이가 가장 중요한 사원이다. 유명사원들은 입장료 ( 1만에서 2만 킵)을 받는다.

대법전은 루앙프라방 사원건축의 모델이라 한다. 나지막이 내려앉은 지붕이 지면을 향하고 있는데 마치 새들이 날개를 편듯한 모양처럼 우아하고 독특하다. 유리공예의 황금색으로 채색한 벽화까지 화려하게 장식된 대법전에서 예불을 들이고 있는 장면을 슬쩍 엿본다. 붓다의 가르침을 띃하는 법륜( 둥근수레 바퀴)가 천정에 동일한 패턴으로 그려져 있고 검은색 바탕에 금색을 칠했는데 물감을 찍어서 만든 스탠실 기법으로 만든 벽화라고 한다. 수도원에 갈 때도 그랬지만 법당에서도 종교와 무관하게 인간을 숭고하게 만드는 분위기가 좋아 한참을 그저 무념으로 앉아있고 싶어진다.

와불법당(예배당)이곳은 붉은 예배당. 라오스 사람들의 일상생활, 꽃, 나무 , 동물들을 위트엤게 조각. 청동와불상이 안치되어있다. 라오스 사람들은 수많은 곳에 그려져 있는 그림들과 조각작품 그리고 불상들의 이야기들을 거의 다 알고 있다한다.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함께 공유하며 대를 이어 그 이야기들을 후손들에게 들려주고 함께할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공동체의식과 일체감을 갖게 하는 것 아닐까. 부럽다.

라오스에 간다고 했을 때 아들은 “엄마 그곳에는 들개들이 너무 많아서 위험하데. 조심해야돼”라며 당부의 말을 건냈다. 하지만 라오스에 실제 오면 개팔자가 상팔자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날 정도로 가장 편안하게 낮잠을 즐기고 사람들 사이에서 어술렁거리는 동물이 개다. 라오스 인들에게 개를 비롯한 닭, 동식물은 살생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대상인듯하다. 함께 평화롭게 살아간다. 그래서 개는 전혀 위험하지 않다.

여행 셋째날. 아침 일찍 5시경에 탁밧에 참여하기 위해 루앙프라방 왓씨앙통이 있는 긴 대로변에 앉았다. 탁밧( Tak Bat)은 스님들의 탁발수행으로 일종의 종교의식인데 600년 동한 하루도 빠짐없이 치뤄지고 있다. 맨발로 스님들이 아침일찍 줄지어 지나가면 옆에 가지런히 맨발로 앉아 시주음식인 싸이밧 ( 대나무통에 담겨진 찹쌀밥)과 과자를 스님들의 바랑에 넣으며 소원을 비는 종교의식이다. 오랜 세월 동안  탁밧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맨손으로 무릎을 꿇고 했는데 한국인을 비롯한 관광객들이 화장을 한 탓에 먹는 음식이 냄새가 나서 이제는 위생장갑을 끼고 무릎을 꿇거나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서 하는 것이 허용이 되었다고 한다. 이건 아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대목이다.  대스님부터 동자스님까지 차례로 지나갈 때 마다 찰밥을 조금씩 떼어 바랑에 넣는데 바랑이 넘치면 옆에 비치된 큰 바구니에 넣어 이것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나눈다고 한다. 왠지 경건하고 차분한 느낌이 들면서 종교의식에 참여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싸이밧. 탁밧을 할 때 스님들에게 공양하는 대나무 찰밥.

아직 잠이 가시지 않은 모습으로 아침일찍 탁밧수행을 하는 동자스님에게는 사탕이나 비스켓을 바랑에 넣어준다. 라오스의 탁밧의식은 단순히 스님들의 수행의식만이 아니라 함께 음식을 나누고 배를 곪지 않으려고 하는 함께 살기의 의미도 큰 것 같다. 그래서 라오스는 굶어죽는 거지가 없는 것이다.

루왕프라방의 사원 어디에서나 아침나절 일찍 행해지는 탁밧이라는 탁발 수행이 있어서 인근에 사는 가난한 아이들이 먼길을 걸어와 스님들과 탁밧행사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주는 음식을 거둬간다고 한다. 아이들이 왠지 안쓰럽고 짠한 마음이 든다.

라오스의 최대 명절 인 신년축제 (4월 ?) 빠마이 라오를 준비하기 위해 행사 설치물을 준비하고 있는 왓마이사원.
새로운 사원이라는 뜻이다. 루앙 프라방에서 오래된 사원중 하나이다. 불교계의 최고 큰스님(프라 쌍랏)이 머물던 곳이라 라오스 불교의 총본산이다. 황금불상인 파방이 안치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신년축제 기간에는 파방을 이곳에 3일간 안치한다. 물로 파방을 씻기며 새로운 해의 행운을 기원하는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5층 지붕으로 된 초기 사원양식의 건물이다.

탁밧을 이른 아침에 마치고 왓마이 사원을 둘러보면서 마당을 쓸거나 행사장 지붕에 올리는 띠를 분주하게 옮기는 어린 동자승들을 보았다. 이곳 라오스에서는 20세가 되기전 불교에 스님으로 단기간 들어가 수행생활을 하는 것을 통과의례로 여긴다고 한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은 먹는 입을 줄이기 위해서도 어린 아이들을 입적시키기도 한다고 들었다. 그들의 생활이 고단해 보이지만 외부인의 시선으로 정확히 알지 못하는데 무어라 할 것인가. 어쨌던 노동은 값진 것이다.

루앙프라방에서 8인승 픽업트럭 오픈카를 타고 털털거리며 도착한 꽝씨 폭포 ( Kuang Si) 루앙푸라방의 4월 날씨는 우기가 시작되는 시점이라 39도를 넘나드는 더위다. 무엇보다 야산에 불을 피워 화전을 일구는 사람들이 많아 그 연기로 공기가 매캐하여 기관지가 안 좋은 분들에겐 여간 견디기가 쉽지 않다는 점.  꽝시폭포는 루앙프라방에서 남쪽으로 35킬로 떨어진 곳에 있다. 석회암 지대를 흐르는 폭포라서 청명하고 물은 약간 회청색 빛깔을 띤다. 탁 꽝시 전설에 따르면 어느날 노인 한분이 땅을 파서 폭포를 발견했는데 폭포가 있는 곳에 사슴이 큰 바위 뒤에 살았다. 이 폭포소리가 얼마나 웅장한지 중국까지 물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초입에는 곰 보호센터가 있어 야생에서 구조된 20마리의 곰을 보호하고 있다. 엔지오라 셔츠를 사서 관람객이 도네이션을 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설사나 말라리아 관절염에 좋은 약초로 사용되는 나무들을 비롯해 라오스의 거의 모든 숲에서 자생하는 Mai Inhpher ( Altonis scholaris), Ton hai ( Ficus Altissima)와 같은 거대한 줄기와 뿌리를 가진 우람한 나무들이 많이 있다.
초입에는 곰 보호센터가 있어 야생에서 구조된 20마리의 곰을 보호하고 있다. 엔지오라 셔츠를 사서 관람객이 도네이션을 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LCR을 타고 두번째 장소 방비엥으로 이동한다 약 1시간이 소요되었다. 방비엥은 한적한 쑨강과 석회암산으로 이루어진 카르스트 지형이 만들어낸 수려한 경관이 한폭의 그림이다. 베트남 하노이의 하롱베이를 연상시킨다. 배낭여행족의 천국이어서 밤낮 시끄러운 파티와 매년 익사사고로 인해 라오스 정부에선 강변의 술집을 철거했다고 한다. 라오스에서 롱테일을 타고 쑨강을 따라 내려간다.

쑨강의 풍경은 물결이 얕으막해서 카약이나 롱테일 보트가 강바닥을 쓸고 갈 정도인 곳이 있기도 하고 수심이 아주 깊어 물놀이를 할 수 없을 정도인 곳도 많다. 그래서 이곳에 큰배들이 다닐 수 없나보다. 친구는 20여년전에 롱테일 보트틀 타고 7시간에 걸쳐 태국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쑨강에서 강가에서 평화롭게 물을 마시는 물소들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신기하고 놀라왔다.


쑨강에서는 민물고기와 다슬기를 잡는 여인네들과 한가롭게 수영을 하는 동네 아이들, 비어라오라는 쌀맥주를 마시며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노는 젊은이들, 그리고 이렇듯 빨래방망이질을 하며 빨래를 하는 여인네까지 다양한 모습들이 공존한다. 삶의 현장이다.

방베이. 열대의 원시림과 폭포, 그리고 넓은 강과 높은 산이 있어 액티브한 활동을 할 수 있다. 요즘 젊은이들의 여행지로 각광을 받는다 한다. 얼마전 꽃보다 청춘 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블루라군이 소개되어 더욱더 한국관광객들로 붐벼서 이곳 사람들은 왠만한 한국어는 이해하고 할 줄 안다. 깍아지른듯 절벽처럼 생긴 카르스트지형 석회암 산둘레를 8개의 짚라인이라는 와이어로 이용해 숲속을 이동하며 자연을 체험하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이곳까지 오는 길이 비포장도로라서 만만하지가 않다. 그러한 지형인지라 버기카 또는 4륜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하기도 한다.

탐짱 (Tham Chang) 동굴. 전쟁 때는 주민들의 피난처로 이용된 곳이다. 종유석, 석순등을 이런 튜브를 타고 줄을 잡은채 이동하며 구경할 수 있다. 하지만 물이 그렇게 깨끗해 보이지 않아서 처음에는 주저가 된다.

블루라군. 밀키블루의 석호. 블루라군이 이곳만이 아니라 여러군데가 있는데 그중 가장 넓다는 곳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수영을 하며 더위를 식혔다. 물론 다이빙 하는 인공물이 설치되어 있어 강심장인 사람들이 다이빙을 하면 주변의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즐거워했다. 물속에 커다란 잉어들이 노닌다. 나는 블루라군에 별 관심이 없이 왔다. 하지만 꽤나 방송을 통해 많이 알려진지라 요즘은 한국인들이 주 관광객이라 한다.

여행 사일째 마지막 날이다. 아침 식사 후 방비엥에서 블루라군과 집라인타기를 마치고 버스로 비엔티엔으로 이동했다. 독립박물관을 보지 못해 유감이었다.  그곳에선 라오스의 근현대사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는데. 어떻게 라오스 여행에서 이런 중요한 곳 방문이 빠졌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패키지여행은  본인이 관심있어 보고싶은 곳을 볼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인것 같다.
빠투싸이 (Patuxai) 승리의 문. 1969년에 건설되었고 사회주의 수립이전 프랑스와의 독립전쟁에서 사망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건설되었다 하는데 프랑스의 개선문을 풍내낸듯한 느낌이어서 아이러니하다. 비엔티엔 공항 활주로를 건설하기 우해 미국에서 지원한 시멘트를 사용했다 한다. 라오스양식으로 불상, 라마야마 (힌두신화) 이야기가 조각되어 있다. 주변은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넓은 광장이 있다. 빠뚜싸이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는데 그곳에선 8차선 도로인 란쌍거리를 볼 수 있다.
주변건물은 교육부, 통신부, 관광부와 같은 관공서와 유엔, 아시아 개발은행, 프랑스 문화원 건물들이 있다.

탓 루앙 (That Luang) : 위대한 탑. 승리의 문 근처에 있는 라오스의 상징이자 가장 신성시되는 종교적 건축물이라 한다. 연꽃을 형상화한 탓 루앙은 1566년 쎗타티랏 왕때 건설했다. 1995년 인민민주주이 공화국 탄생 20주년 때 황금색을 입혀 탑을 완성했다고 한다. 콘크리트 건물에 450 킬로의 금도색이라. 탓루앙축제가 11월 대보름에 열리는데 탁밧의식과 탑돌기 그리고 바나나줄기에 꽃을 장식한 프라쌋 프앙이라는 꽃을 들고 탑주변을 도는 종교의식이 거행되는데 장관이라고 한다.  또한 행사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물에 색소를 넣어 서로 물세례를 하는 이벤트가 있어 색깔이 있는 옷을 입고가야 난감한 일을 당하지 않는다 한다. 다시 와야하나. 이 거대한 와상은 길이만 5미터가 넘어 보였다. 딱히 감동은 오지 않았지만 크기가 압도적이다.

라오스는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라서 식재료가 그리 풍부하지 않아 음식문화가 인접국가인 태국이나 배트남에 비해 덜 발달되어 있다. 씰국수와 밥이 주식이다. 야시장이나 관광지 주변, 또 시장통이나 노점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거리음식으로 닭고기를 이용한 삥까이가 대중적이라 한다.  삥은 숯불에 구은 음식이다. 생선은 삥빠라고 한단다.찰밥과 땀막홍(라오스에서 가장 대중적인 음식으로 파파야 샐로드로 알려져있다. 음식자료를 절구에 넣어 만드는 것이 특징인데  생선소스가 강해 맵고 신맛이 강하다고 한다 )먹어보진 않았다.

넴느엉 일종의 미트볼로 돼지고기를 둥굴게 만들어 석쇠에 구운 음식. 요 라는 스프링롤 은 향신료가 강한 허브와 민트를 넣어 한국인의 입맛에 맞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물갈이로 인한 배앓이가 걱정돼 선뜻 먹어보지 않았다. 여행지에서의 음식체험은 무조건인데.

용과, 구아바 , 패션푸릇,파파야, 캔탈루플몬, 망고, 자바나 망고.

제일 맛있게 먹은 현지식. 불쇼를 하듯 고기를  구워 식탁에 올려줬다. 돼지고기 맛도 좋고 소스도 너무 맛있었다. 소스를 여기서는 째우라고 하는데 모르겠다 정확한지. 약간 고소한 땅콩맛이 나는 소스.

기억에 남는 음식은 여러번 식탁에 올라왔던 팍봉파이댕 ( Fried Morning Glory)라는 나물인데 고추와 마늘을 넣고 볶아서 밥반찬으로 한국식 나물과 비슷했다.  이건 다진 고기를 살짝 데쳐서 생선소스 , 고추 마늘 허브 민트와 함께 버무려 먹는 “랍” 인것 같고 가운데 있는 것은 맑은 국물에  Clear Soup 이라고 하는 “ 깽즛” 인듯. 이음식은 향신료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생선소스 간장 후추로 간을 해서 담백한 맛으로 괜찮았다. 무엇보다 라오스는  어디에서나 광고판에 걸려있고 아무데서나 팔고 있는  ” 비아라오“라는 맥주다. 일종의 국민맥주다. 체코기술로 만들어졌으며 라오스 맥주시장의 95 %을 점하고 있다. 정말 끝맛이 쓰지 않고 약간 달콤한 맛있는 맥주다. 데리고 오고싶은 맛.
라오스 커피가 꽤나 유명하다고 들었으나 여기는 커피숍이 한국만큼이나 골목 어디에나 있는 것이 아니다. 쫄쫄 커피를 굶어가며 여행하기가 힘든 일 중의 하나.  나 같은 커피중독자는 가능하다면 텀블러에 호텔이나 커피숍에서 커피를 몽땅 담아서 다니는 것이 좋을 듯. 봉지커피가 있긴 한데 약간 더 묵직하고 쓴맛이 강함. 라오스 전통 커피는 “카페 라오”라고 부르는데 맛이 묵직하고 강해서 연유를 듬뿍 넣는 것이 특징이라 한다. 체에 커피가루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내리기 때문에 맛이 투박하다고 한다.

해질 녁 저녁시간에 타논 씨씨왕웡 거리에 생기는 기념품 시장. 야시장. 꼭 보고 싶었던 몽족의 수공예품들. 아기자기하고 독특한 아라베스크 문양 같은 장식을 손바느질로 만들거나 ( handwoven) 물레로 짜낸 몽족의 제품. 하지만 요즘 야시장에 나와 있는 물건들은 대부분 태국이나 중국에서 대량 생산된 것들이 많다고 한다. 상업화된 시장이라 일단 절반 정도를 흥정해서 깍아야 한다 해서 그렇게 해 보았다. 계산기에 물건값을 서로 찍어 가며 흥정한다.

야시장에서 구입한 동전지갑과 실내화 그리고 인디고 염색의 식탁보와 치마.  가격은 너무 싸다. 야시장이 아닌 옥폽똑 이나 TAEC 라는민속학 박물관에서 운영하는 숍에서 판매하는 소수민족이 생산한 제품은 품질이 더 좋다 한다. 물론 조금 더 비싸겠지만 그들의 생계도 도움이 되는 공정무역 가게라 하니 한번 가봤으면 했으나 기회가 없었다.
라오스 여행을 다시 할 수 있을까. 만약 다시 하게 된다면 그때는 자유여행으로 차를 렌트해서 최소 보름은 이곳에서 지내고 싶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여행이어서인지 다음여행을 꿈꾸게 된다.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라오스 인들의 삶을 어떻게 며칠 여행한 것으로 다 알 수가 있을까. 그건 불가능에 가깝다. 내가 살고 있는 우리나라의 사람들도 다 이해가 안 되는 터에. 어쩌면 하루키의 말처럼 무심히 흘러가는 메콩강에 흔적하나도 남기지 못하고 떠내려가는 나뭇잎의 생으로 살아가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다른 삶을 보며 자신의 삶에 대해 겸손하게 들여다보는 것이 여행인지도 모른다. 라오스 여행의 불편함은 마음의 편안함으로 귀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