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3. 5월의 제주여행 -사려니 숲길, 에코랜드, 절몰오름 한라산 생태숲길 (3박 4일)

숨그네 2023. 5. 18. 13:09

5월의 제주는 메밀꽃과 철쭉 그리고 산딸나무꽃과 때죽나무 꽃이 피고 지는 계절이다.
첫날 사려니 숲길의 초입인 비자림숲에서 걷기를 시작한다. <고고학으로 제주도 여행하는 법,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제주여행>의 작가 황윤에 따르면 제주는 참 오랜 기간 삼국시대의 백제와 고려, 몽골 그리고 조선시대에 걸쳐 수없이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이제껏 버텨온 곳이었다. 제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섬나라라는 뜻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이번의 여행동반책 <나 혼자 제주여행>에서 알게 되었다. 탐라국으로서 독립된 나라로 존립한 시절부터 고려에 복속되기까지 제주는 참으로 많은 역사의 부침을 받았다. 고려시절 무신정권의 사병역할을 하며 권력을 쥐락펴락했던  삼별초가 제주에서 일으킨 난을 비롯하여 몽골에 공물로 바치던 말을 키운 몽골출신 묵호가 최영장군과 몽골군의 연합군에 맞서 싸운 묵호의 난에 제주민들이 동원되며 겪은 고초와 역경들이 현재 제주의 곳곳에 유적으로 남아있다. 

제주시 봉개동 절물오름 남쪽 비자림로에서 물찻오름을 지나 한남리 사려니오름까지 약 15킬로의 숲길이 사려니 숲길이다. 사려니는 신성한 숲이라는 뜻이다. 물찻오름은 당분간 숲의 복원을 위해 입산이 금지되어 있다. 작년 오랜만에 열린 숲길, 시험림길을 따라 물찻오름 초입까지 와서 붉은오름으로 내려갔었는데 새삼 그때가 아련하다. 

내 인생 최악의 날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고
눈물마저 고갈되어
내 몸이 바싹 마른 물항아리처럼
텅 비었을 때
나는 문 밖으로 나가
레몬 나무 옆에 섰다.
그리고 엄지손가락으로
잎사귀 하나의 먼지를
문질러 주었다.
그런 다음 그 서늘하면서도 윤기 나는
잎을 빰에 대었을 때
소스라치게 놀란
그 강렬한 생의 향기!
-엘런 바스
 
 

나무들이 잎을 꺼내고 있다.
무언가 말 하려는 듯이.
새로 난 싹들이 긴장을 풀고 퍼져 나간다. 
그 푸르름에 어딘지 모르게 슬픔이 있다. 
나무들은 다시 태어나는데
우리는 늙기 때문일가? 아니다. 나무들도 죽는다.
해마다 새로워 보이는 비결은
나무의 나이테에 적혀있다.
여전히 매년 오월이면 있는 힘껏
무성해진 숲은 끊임없이 살랑거린다.
작년은 죽었다고 나무들은 말하는 듯하다.
새롭게 시작하라고. 새롭게,새롭게
-필립 라킨
 

차가운 땅에 떨어져 힘없이 뒹구는 꽃잎, 그리고 잎사귀.
때죽나무의 별꽃처럼 가느다랗고 앙증맞게 귀여운 꽃잎이 거친 길에 떨어져 있다. 
옛 조상들이 때죽나무의 가지를 삶아서 더러운 옷을 깨끗이 빨 때 사용했다 해서 때죽나무라 했다던데.
거무튀튀한 줄기에 하얀 꽃들이 피어 사방에 향기를 내뿜는 때죽나무 꽃.
꽃들의 죽음은 처연하면서 아름답다. 가던 발길을 돌리게 하고 가만히 들여다보게 한다. 

빗물이 고여있는 마가렛꽃잎이 활짝 우리를 반긴다. 5월 제주의 둘째 날은 여지없이 비가 내려 자꾸 디딜 곳을 찾아 바쁘게 움직이는 발들을 가만가만하게 만든다. 중산간지대 너른 목초지와 곶자왈에 위치한 에코랜드의 테마기찻길옆에 이렇듯 다소곳하게 고운 마가렛이 피어있다. 

마르고 거친 것들은 바스락거리며 우리의 신경줄을 건드리지만 촉촉이 비에 젖어 길섶에 부끄럽게 고개를 내밀 듯 피어있는 보라색 청포는 아련한 슬픔과 그리움을 소환하면서 자꾸 그 옆에 오랫동안 있고 싶게 만든다. 

에코랜드의 두 번째 정착역에서 내려 루피너스 꽃의 황홀한 넘실거림에 그저 넋을 잃는다. 루피너스는 수년 전 로키산맥을 여행했을 때 숲길 어디에나 지천으로 피어있던 낯설면서도 기이한 느낌의 꽃이었다. 그 이름을 기억해 둬야지 하며 여행기록공책에 슬며시 적어뒀었는데. 요즘은 순천만 국가정원이나 에코랜드의 테마공원에도 이렇듯 자태를 뽐내고 있다. 반갑고 너무 사랑스럽다.

에코랜드에서 포레스트 트레인이라는 협괘열차를 타면 이렇듯 라벤더 그린티 로즈가든역, 피크닉가든역, 레이크사이드역,
에코브리지역, 메인역을 돌면서 곳곳에 숨겨진 보석 같은 자연경관을 볼 수 있다. 제주가 올레를 비롯한 오름을 하면서 얻게 되는 즐거움과 보람도 있지만 에코랜드가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자연친화적인 조성물과 동시에 자연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된 여행의 즐거움이었다. 

찔레꽃피면 
내게로 온다고
노을이 지면
피리를 불어준다고
그랬지
찔레꽃 피고
산비둘기 울고
저녁 바람에
찔레꽃 떨어지는데
너는 이렇게
차가운 차가운 땅에 누워
저기 흐르는 
하얀 구름들만 바라보고 있는지
너는 이렇게
차가운 차가운 땅에 누워
나도 그렇게 네가 있는 나라
보았으면 좋겠다
좋겠다
-양희은 찔레꽃 피면
 

삼색 버드나무. 
작년에 내가 반한 이 나무를 데려다 아파트 베란다에 화분에 심어 놓았더니 한 해를 살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마치 가지에 분홍꽃들이 화사하게 피어있는 듯 하지만 실은 나무잎사귀다. 4월 봄을 지나 오뉴월 여름까지 자태를 자랑하는 너무도 사랑스러운 삼색 버드나무. 

자식들 돌보고 가족들 아침저녁밥상챙기느라 애쓰면서 살았을 중년의 아주머니들. 그들의 고단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친구들과 함께 빨간 바지를 입고 나와 손주들 업어주고 안아주던 어깨와 손이 가볍게 입가에 차오르는 함박웃음을 실어 나른다. 


여행 둘째 날. 어제저녁부터 쏟아지는 비가 연일 계속된다. 오전에 에코랜드 테마 공원에 들렀다 작년에 와 보았던 빛의 벙커에 다시 왔다. 이번에는 세잔전이 펼쳐진다.“세잔의 그림은 어떻게 사물이 사물이 되는지, 어떻게 세상이 세상이 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사물의 피부를 깬다. 그러므로 그림은 아무것도 아닌 것의 광경이 됨으로써만 어떤 것의 광경이 되는 것이다. -메를리 퐁티
세잔은 그림을 비우기 위해 분투했다. 우리가 일상적이고 , 친밀하고, 관습적으로 보는 시각계의 표면을 뚫고 사물과 사계를 신선하게 끄집어낸다. 세잔은 이를 위해 자신의 이미지를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역설적이게도 그의 그림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인 것이다. 


세잔은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불린다. 20세기 후반부터 세잔의 색채 그리고 자연과의 연관에 주목하게 되면서 이성과 언어를 넘어서는 색체의 중요성이 널리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가 살았던 삶의 공간이 재조명되었고 세잔은 진정한 "지역작가"였기에 세계적인 대가가 될 수있었다. 세잔이 즐겨썼던 오랜지색은 그가 출생한 프로방스 엑스의 흙색깔이라고 한다. 전영백의 저서 "세잔의 사과"는 줄리아 크리스테바를 비롯한 현대 사상가들이 세잔의 그림을 분석하는 글들을 소개하고 있다. <크리스테바와 멜랑콜리>장에서는 세잔의 특별한 초상화를 통해 그의 초상화와 세잔의 심리상태를 연결짓고 있는데 크리스테바는 세잔의 초상화는 어색한 형태와 이상한 색체 그리고 그것에서 발하는 슬픔이 세잔의 그림 전체에 배어있음에 주목한다. 세상과의 분리감과 무관심이 그의 회화를 관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초상화에서 보이는 극도의 심리적 단절과 상실, 공허감은 그가 멜랑콜리의 화가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림은 마음의 기록이라 했던가. 그의 마음에 깃든 멜랑콜리가 어떻게 그림에 반영되어 있을까. 세잔은 아내를 비롯한 인물들의 초상화를 무관심하고 소원하게 그려낸다. 
 

세잔의 푸른색은 사물들의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존재, 그리고 본유적인 영속성을 표현한다. 그리고는 도달할 수 없는 먼 거리에 그것을 내려놓는다. 
푸른색은 이중적인 업무를 수행한다. 그것은 그림의 상상적 공간을 채우면서 , 또는 특정한 본체로서 주체-객체의 대립, 정체성의 위상들, 경계선의 해체를 허용한다. 그러나 또한 그것은 말로는 거의 규명하지 못하는 욕망의 얇은 , 채색된 연무를 확장시키는 거리감을 창조하거나 유지시키면서 뒤로 후진한다. 세잔의 생빅투아르 산에 대한 애착은 유명하다. 유화완성작만 14점이 넘는다고 한다. 그의 가장 든든한 정신적 후원자이자 그를 변함없이 사랑하고 이해해주던 어머니의 장례식 날에도 화가는 화구통을 메고 생빅투아르 산을 찾았다고 한다. 
 

공허를 채우는 색채-푸른색 닿을 수 없는 거리감을 표현하는 -
세잔은 분명 우울한 사람이었다. 바로 아버지와의 갈등관계였다. 독재적이고 냉정하며 부를 축절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던 구두쇠 아버지는 고지식한 아들과 처음부터 소통할 수 없는 사이였다. 아버지가 바라던 은행가 되기를 포기하고 화가의 길을 선택한 세잔. 세잔의, 감정에 쉽게 휘말리는 성질, 길고 우울증 및 멜랑콜리는 그를 다루는 전기라면 어디에나 익숙하게 나오는 용어이다. 특히 세잔은 신체적인 접촉에 대해 히스테리컬 한 공포를 느낄 정도로 인간에 대한 혐오감을 가졌다한다. 하지만 투박하고 거친 태도에도 불구하고 세잔을 아는 사람들은 그를 "진정한 화가"로 인정했다. 

흔히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한다. 우울한 마음의 상태를 떠올려보면 가장 핵심적인 특징이 분리감이다. 크리스테바에 의하면 주체가 언어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과정인 모성과의 분리가 이워져야 한다 그러나 멜랑콜리아에서는 이것이 완성되지 않는다. 모성과의 분리가 성공적이지 못하고 원초적 나르시시즘의 온전치 못한 기능으로 형성되는 멜랑콜리아에는 슬픔이 압도한다. 나르시시즘적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의 대부분은 외부 대상과 맺는 관계가 여의치 않은데 그들에게 유일한 대상은 슬픔이고, 이것이 대체대상으로 자리 잡는다고 설명한다. 세잔이 결론적으로 안착하는 모티브가 있다면 그것은 상실 그 자체일 것이다.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을 부인하거나 극복하지 않으면서도 이를 승화시키는 방법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세잔의 회화는 그 넉넉한 색채의 공간성 속에 근본적 상실을 안전하게 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세잔은 자신의 미학적 목표가 "감각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 화가에게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눈과 정신인데 이는 각각 서로를 보조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양자를 상호적으로 발전시켜 가면서 작업할 필요가 있다. 눈으로는 자연을 봄으로써, 그리고 머리로는 조성된 감각의 논리로써 작업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표현의 방법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는 "감각의 실현은 언제나 고통스럽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어떠한 인위적인 노력보다는 "단순히 자연을 따라 실현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세잔은 색채의 작가이다. 색채가 형태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모두가 그를 좋아한 것은 아니다. 에밀졸라는 "불안정하고 나약하며 우유부단하다"는 평가를 했고 국립미술관에 소장하는 것을 반대하는 정부관료는"프랑스 미술을 모욕하는 쓰레기"라고도 했다. 세잔의 그림이 보여준" 체험된 시각"이라는 새로운 표현에 그와 동시대의 대다수 미술계 인사들은 심한 분개를 느꼈다고 한다. 이처럼 "체험된 시각"은 메를리 퐁티에 의하면 세잔이 진정으로 분투한 것은 시각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침묵의 상태와 그 내면의 절실한 의미를 추출해내려 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메를리 퐁티에 의하면 세잔의 그림은 생각의 습관들을 멈추게 하고 인간이 갖고 있는 비인간적 본성의 기반을 드러낸다. "낯섦"의 느낌이 세잔 회화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감정이라고 했다. 
 

"세잔의 사과는 먹을 수 없다?"
사과의 매력에 사로잡힌 세잔은 정물을 대하는 화가들의 관습적인 태도에 근본적인 회의를 가졌으며. 그가 제기한 질문은 "인간 본위의, 인간의 필요에 따른 정물화가 아닌, 정물을 위한 정물화를 그릴 수 있을까?"였다. 그러니까 사과를 볼 때 입에 침이 고이지 않고도 사과가 가진 오브제의 본질을 눈으로 포착하려 한 것이다. 한마디로 세잔은 "먹을 수 없는 사과"를 그리려 했다. 세잔의 사과는 사람의 감정과 사과를 섞지 않으면서 사과가 분리된 실체 자체로 존재하도록 만드는 하나의 진정한 시도다. 세잔의 위대한 노력은 말하자면 사과를 그로부터 떼어내어 그것 자체로 살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로렌스라는 작가가 말하는 세잔의 사과성이다. 즉 실제 존재로서의 사물, 그 자체로 사는 사과. 보통의 작가와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클리쎄"와의 끔찍한 싸움. 비워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라캉은 거울이미지의 덫을 도덕적이고 합법적인 포획이라고 말한다. 유혹 기만 덫으로 작용하는 거울 이미지가 유아에게 오히려 위안을 주고 자신감을 부여하는 것이다. 스스로가 획득했다고 미든 자신감과 주체인식은 전적으로 타자에게 달려 있다. 최초로 주체가 독립하는 순간이야말로 타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순간이라는 역설. 거울단계이론은 기억의 저장고 속에 깊숙이 숨겨져 있던 비밀을 언어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나 결국 거울단계 구조는 눈으로 확인되어야 할 것이다. 이 거울단계 이론이 가장 잘 적용되는 것이 자화상이다. 세잔의 자화상이 제시하는 창의적인 시각구조는 거울단계의 환영과 그것이 내포하는 소외사이의 필연적 관계가 얼마나 눈으로 거부하기 힘든가를 인식해야 진정 알 수 있다. 라캉의 "오브제 아" 개념은 자기로부터 완전히 구별되지 않고 또한 타자로서 완전히 포착되지 않는 대상이며 이처럼 의미의 잔여로 정의되는 오브제 아 는 특히 주체의 구성에서 상실된 자기의 부분을 지칭한다. 
"당신은 결코 내가 보는 곳으로부터 나를 볼 수 없다. " 이것은 자기와 타자 사이에 영원히 일치하거나 소통할 수 없는 시각의 갭을 말하는 것이다. 라캉에 의하면 주체는 상실을 두 번 경험한다. 첫 번째 상실은 출생의 순간으로 어머니와의 분리에서 온다. 두 번째 상실은 언어를 습득하기 바로 이전에 경험된다. 비록 이 과정은 주체가 상징적 질서로 동화되기 이전에 일어나긴 하지만 문화적 개입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라캉이 응시이론을 통해 전달하려 한 것은 우리가 세상을 볼 때 "맨눈"으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누구의 눈에든 색안경이 씌워져 있고 이렇게 색안경을 통해 볼 수밖에 없는 것이 주체의 한계이다. 이러한 인식은 비단 주체의 시각계를 넘어 사회, 문화적 의미로 확장된다. 

제주 여행 마지막 날. 어제 내린 시원한 여름비로 깨끗하게 씻긴 제주의 숲은 원시의 냄세를 그대로 내뿜고 있다. 제주의 숲은 어디를 가나 걷는 즐거움을 선사하면서 일상에서 쌓인 피로와 공허, 관계에서 오는 필연적인 인공의 냄세를  깔끔하게 씻어준다.  절몰오름에서 바로 옆길로 시작되는 장생이 숲길 15킬러를 걸으려 했지만 출입금지가 되어있어 대신 우람한 편백나무숲이 있는 한라생태숲길을 왕복해서 10킬로 걷기로 한다. 
 

가끔 나는 돌 하나를 바라본다.
돌이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돌을 나의 누이라고 부르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대시니 나는 그것이 하나의 돌로 존재해서 기쁘다.
그것이 아무것도 느끼지 않아서 좋다. 
그것이 나와 아무 관계도 아니어서 좋다. 
때로는 바람이 부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느낀다. 바람 부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태어난 가치가 있구나.
 
-페르나도 페소아<사물들의 경이로운 진실>중에서

노루생태숲길이 따로 있는데 매번 한라생태숲에 오면 보게되는 노루. 작년엔  노루가족을 다 보았는데 이번엔 이 녀석 한마리만 보인다. 너무 반가운 귀한 손님처럼 한참을 웃음지으며 바라본다. 

절몰오름에서 한라생태숲길을 우회하여 5킬러정도 가다 한라생태숲길 주차장쪽에서 다시 절몰오름으로 되돌아오다보면 개오리오름에 이르게 된다. 가오리처럼 생겼다해서 지어진 오름이름이다. 가파르지 않고 그저 언덕배기를 오르듯이 하면서 오르면 자연스럽게 이르게 되는 작은 오름. 

절몰오름에 있는 장생이숲길은 다음 제주여행에 꼭 가야할 곳으로 눈에 담아둔다. 소요시간이 3시간 30분으로 되어있다. 

여행맛집을 찾아다니는 미식가가 아니지만 "생이 소리"라는 식당을 우연히 발견하고 비행기 타기전 점심겸 저녁을 먹었는데 저절로 감사합니다 한끼 식사를 이렇게 맛있게 해 주셔서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아주 맛있는 제주 향토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