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에드워드 호퍼전에 가다 -길위의 날들

숨그네 2023. 8. 20. 12:43

도시의 소음을 차단하려고 문을 닫는다. 더위는 참기로 한다. 때론 길에서 벗어난 고립된 방구석이 안전하고 평화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문 밖 세상에서 펼쳐지는 일상의 일들이 궁금하고 염려되기도 하고 자신과 닮아 있거나 아니면 차이가 나는 인간군상들을 무심히 스치듯이 만나고 싶을 때가 있다. 길 위의 삶이 허상이더라도 길 위로 나서는 것이 실존적인 삶의 조건이 되기도 하니까. 길 위에서 만나는 서울 시립미술관 주관 에드먼드 호퍼의 그림들의 초대에 기꺼이 발품 팔아 찾아든다. 호퍼전이 열리는 마지막 날이라 생각보다 사람들이 미술관에 꽉 차 있다. 혐오를 팔아 정치하는 이들에게 지친 영혼들이 문화적인 위로를 받고 싶어서일까. 

호퍼는 19세기말 1882년 파리에서 큐비즘을 시작한 피카소와 1년 차이를 두고 미국 뉴욕의 나이엑에서 태어났다. 케이프 토드 (  Cape Code) 여름 별장을 자주 들르거나 했지만 미국 횡단여행을 하며 작품을 구상하고 작업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미국 뉴욕의 아파트에서 살았다. 1924년 둘 다 40세의 나이에 결혼했고 그의 아내 조세핀 메르스틸 호퍼는 호퍼와 같은 미국뉴욕예술학교 출신으로 평생을 자신의 미술활동보다는 남편의 그늘에서 그의 작품의 이름을 붙이고 모델이 돼주고 작품 해설을 쓰고 하는 일로 보냈다.  즉 평생 매니저이자 작품관리자이자 비평가로서 불가결한 존재였다.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사고와 보수적 편견을 가진 호퍼 때문에 둘 사이는 불화가 잦았고 얼굴에 생채기를 낼 정도로 서로 할퀴고 심한 몸싸움을 하거나 폭력적인 대결을 자주 했다고 한다. 조세핀은 자신을 억압적이고 지배적인 남편 밑에서 힘들어하는 , 좌절된 예술영혼의 이미지로 그녀의 일기에서 표현했다고 전해진다. 평생 서로 조롱하며 비하하면서도 예술의 파트너로 의존하며 살았다는 그들의 이중적인 모습이 이 사진에서도 여실하게 드러난다. 호퍼는 정면을 응시하지 않고 귀찮다는 듯이 시선을 돌리고 있다. 그는 말 수가 없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고 하니 조세핀도 어지간히 외로웠을 성싶다. 
 

              < 푸른 밤> 수채화 휘트니 미술관, 뉴욕
 
제목은 ' 여름의 푸른 밤을 따라가라'로 시작되는 프랑스 시인 랭보의 1870 년의 시 '감각'에서 온 것이라 한다. 
그림에 있는 여섯 명의 캐릭터는 호퍼가 파리에서 잠깐 거주할 때 그곳에서 그렸던 사기꾼, 낡은 베레모를 쓴 몽마르트르의 예술가, 군인, 얼굴을 하얗게 분장한 피에로, 그리고 잘 차려입은 커플이다. 중앙에 진한 화장을 한 여성의 모습 또한 그로데스크 하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멜랑콜리하다. 이 그림 이후 호퍼는 파리에서 받은 후기인상주의 영향을 벗어나 미국적 사실주의 스타일로 바뀌었다고 한다. 어쨌든 가운데 앉아 있는 저 피에로는 호퍼 자신을 상징적으로 표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호퍼는 현대 도시를 그린 화가로 알려져 있다. 호퍼가 동경한 파리의 다체롭고 잘 정돈된 문화도시와는 달리 19세기말 미국 뉴욕의 도시는 산만하고 거칠고 산업화로 인한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인 삭막하고 황량한 곳이었을 것이다. 호퍼는 그런 도시의 밑낯을 동경의 시선이 아니라 무표정의 모습 그대로 그렸던 것 같다.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이라는 책을 쓴 이연식은
호퍼는 수직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철로나 도로를 따라 흘러가는 도시의 모습을 그렸고 그것은 마치 닻이 없어 표류하듯 하염없이 흘러가는 배처럼 흘러간다고 표현한다. 
내가 본 호퍼의 도시 풍경은 사람들이 삭제된 물상으로 만 남은 차가운 건물로 표상된 곳이랄까. 내리쬐는 차가움. 

호퍼는 케이프 코드라는 곳을 좋아해서 그곳에 여름 별장을 지었다고 한다. 일화로는 동네 사람들이 호퍼부부를 초대하곤 했는데 평소 한마디도 하지 않은 호퍼의 무뚜뚝함에 질렸다고도 한다. 호퍼는 "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그림의 소재가 되지 않으며 그릴 필요가 없다"라고 했다. 케이프 코드의 그림은 차가운 콘크리트 건물로 상징되는 도시의 차가움과 너무 대조적으로 자연과 함께 따뜻하고 자기 충만적이다. 

                   철길의 석양 : Railway Sunset>
 
도시의 이곳저곳을 이어주는 지하철이 생기기 전 호퍼가 살던 뉴욕에서는 고가 철도인 엘 트레인이 있었다고 한다. 호퍼는 나이엑에서 맨해튼까지 엘 트레인을 타고 다니며 철도의 주변 풍경을 그림으로 여러 점 남겼다고 한다. 미국 횡담여행을  몇 달씩 하면서 작품을 구상했던 그에게 철도와 호텔방, 카페, 주점, 주유소등은 주요 소재로 사용되었을 것 같다.  이 그림을 그린 1929년 호퍼는 아내와 함께 뉴욕을 출발하여 사우스캐롤라이나, 매사추세츠 메인주를 기차로 여행했다고 한다. 
철도는 시작도 끝도 없는 여정. 어스름은 철도에 얹혀 지나간다. 석양에 마치 점령당한 듯한 철길의 모습이 너무 황홀하고 섬뜻하다. 
 

    < 햇빛 속의 여인  A Women in the Sun 1961>
 
그림 속 여성은 호퍼의 아내 조세핀이다. 호퍼는 여성을 그릴 때 아내 조세핀을 모델로 삼았는데 이 그림 속 조세핀은 78세였다고 한다. 여든 전의 조세핀. 그림 속 여성은 고목 같다. 벌거벗은 누드화의 대상으로서 여성은 언제나 남성화가들의 주요 소재로 사용되었다. 성적인 대상물로서 때로는 결여와 결핍을 상징하는 남성적인 시선에 사로잡힌 존재로, 젊고 풍만한 아름다운 육체를 가진 여성이나 늙고 병들고 초췌한 마른 장작처럼 깡마른 여성이든 남성의 팔레트 앞에 서 있는 벗은 여성의 모습은 불편하고 성착취적이다.  <오전 11시> <도시의 아침> <호텔 방>등 호퍼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은 왜 굳이 벗은 몸으로 대상화되었는지, 그건 자기반성이 없는 시대적 산물일까. 
이 그림에서도 호퍼가 그리고 싶어 했던 창문으로 흘러들어온 빛이 그려졌다. 호퍼는"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집 한쪽 벽에 드리운 햇빛을 그리는 것이었다. "라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 말은 그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고 한다. 
미술평론가 박상미에 의하면 햇빛이 인간이 만든 벽을 만나 음영을 만들 때 인간은 미학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고 한다. 모든 것이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말이 없던 호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상의 신비로움, 그리고 말로 드러낼 수 없는 인간관계의 긴장과 무의식적 대립, 외로움, 권태를 재현하는 문제에 천착한 듯하다고 했다. 

                                                                                                  <여름 저녁>
 
집은 호퍼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 중의 하나로 그의 대부분에 등장한다고 한다. 집은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세계를 나타낸다. 특히 그의 고향 나이액의 집들은 다양한 형태로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곤 한다  그의 고향 동네의 특징적인 베란다는 에로틱하고 긴장이 가득한 만남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특히 나이엑에 위치한 에드워드 호퍼생가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사이코>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약간 그로테스크한 이 집에서 유령이 출몰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호퍼가 좋아한 숲의 모습이 짙고 어두운 표정으로 하얀 집과 대조적으로  나란히 놓여있다. 걸프 퀴스터가 쓴 에드워드 호퍼 A to Z에서 그는 호퍼에게 숲은 우리의 내면세계를 바라보게 하는 수단이며 마치 숲의 이미지가 우리 안의 무의식을 건드리는 듯하다고 했다. 그가 존경하고 좋아했던 프로스트와 괴테시에 등장하는 숲처럼 단순하고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숲을 이루는 본질적인 요소들만 그림에 담으려고 한 것 같다고...
 

호퍼는 잡지 연재소설, 연애소설, 범죄 스릴러소설, 모험소설 제1차 세계대전 이야기들의 삽화를 그렸다. 그는 포스터도 디자인했으며 일러스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초창기를 보냈다. 삽화가로 일하면서 본격적인 예술 작업을 할 때 어떻게 모호하지 않은, 관객에게 낯설지 않은 장면을 그릴 수 있는 지를 배웠다고 한다. 이야기성을 갖고 있는 그의 삽화가 매력적이다. 우린 감각적인 즐거움을 위해서 미술관을 찾지는 않는다.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는 무엇을 어떻게 느끼며 살았는지를 알고 싶은 것이다. 
 

청교도적인 엄격함과 성실성으로 유명한,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이었던 호퍼. 그림 습작 노트가 보여주듯  그림에 대한 단상이 꼼꼼하고 세심하게 기록되었다. 한 장의 그림이 그저 천재적인 손놀림으로 그냥 탄생하지는 않는다. 
1933년 < 회화에 대한 노트>에서 호퍼는 이렇게 썼다. "회화에서의 나의 목표는 자연에 대한 나의 가장 사적인 인상을 가능한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이었다.

호퍼전에서 보지 못했던 그림 중 내가 좋아하는 호퍼의 그림 몇 점을 책에서 찍어 올려본다.

    <철학 으로의 도피>
회피가 아니라 결연한 의지를 보이며 여기만 아니면 어디든 상관없다는 듯이 어딘가로 떠나기를 바라는 남자. 아니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남자. 그의 옆에 놓인 책은 철학책일까. 함께 여행하는 여성은 노골적으로 엉덩이를 훤희 내 보이며 등을 돌리고 누워있다. 둘 사이에 놓인 긴장이 팽팽하다. 서로 다른 요구와 생각의 차이는 함께 있는 공간을 더 할 수 없을 정도로 숨 막히게 한다. 공존의 비극. 
 

                  <철길 옆의 호텔>
미술평론가 박상미의 말처럼  현대 추상미술이 상실해 버린 서사성을 호퍼의 그림들이 되살리고 있다는 것을 호퍼의 그림들을 보면서 새삼 느낀다. 무심히 그려 놓은 일상의 파편과 같은 그림들 속에서 함께 있지만 각자 따로따로인 단절감과 고독 그리고 긴장감.  함께 있음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하는 그림들. 오래된 부부를 그린 호퍼의 그림은 내밀함이 쌓인 자리에서 생겨나는 부유물 <?>을 보여준다고 이연식은 말한다. 서로의 시선을 피하면서 한 공간에 있어 생기는 답답한 공기가 너무도 강렬하게 느껴진다. 

        < 뉴욕의 방>
"평온한 일상이라는 권태"
남성은 소파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고 여성은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누른다. 부부. 음소거 부부처럼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고 서로를 바라보지도 않는다. 남자는 의도적으로 신문에 몰두하듯 코끝에 바짝대고 어색한 공기의 무게를 밀어내려고 하는 듯하다. 여자의 비스듬한 어깨 선에 불만스러움이 그대로 묻어있다. 자신의 생각이나 요구를 입 밖으로 끌어내기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어려울 때가 있다. 우린 너무 가까워서 때론 너무 멀다.
 

               <찹 수이>
후기 인상주의 그림을 너무 많이 보고 좋아해서 일까. 나는 이 그림을 좋아한다. 그림의 제목은 중국 식당의 이름일 듯하다. 식당 안의 꾸밈새도 이국풍이고 창문에는 부적인지 메뉴인지 모를 글자가 선명하지 않다. 시선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생각은 어딘가에서 길을 잃고 떠돈다. 진한 화장은 가면 같다. 모두가 서로 어긋난 채로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다. 잘려나간 사진처럼 담배를 피우는 남자와 함께 앉아 있을 수도 있는 사람은 우리의 상상 속에 있다. 호퍼는 이와 비슷한 구도로 된 그림을 많이 남겼다. 임의의 공간에 임의로 남겨진 시간 속에 임의의 존재로 남아 있는 고독한 현대인의 모습을 호퍼는 잘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몇 안 되는 호퍼의 그림이어서 애정이 간다. 
 

  < 바다 옆의 방>
빛이 파도가 일렁이는 어둡고 두려운 바다에서 쏟아져 들어 온 걸까. 그림에서 왼쪽으로는 도 다른 방이 보이고, 그 안쪽에는 소파와 옷장, 액자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니까 바다를 향한 문이 이 집의 입구. 빛은 방문자다. 
호퍼식의 구도가 또 보인다. 감추어진 또 다른 공간에 대한 상상은 우리의 시선을 잡아 끈다. 하지만 사선으로 쏟아져 들어 온 빛의 구도에 오랫동안 시선을 빼앗긴다. 아직 빛이 있구나. 안도한다. 

<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 나이트 호크>
1942년에 제작된 나이트 호크 는 현대 도시 생활의 단면을 가장 잘 묘사한 작품으로 여겨지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뒤러의 <기도하는 손> 얀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만큼 유명하다. 이미 팝아트가 된 작품. 영화와 광고에서 수없이 패러디되고 변형되고 인용된다. 짙은 화장을 한 빨간 머리의 여자와 남자 커플, 동행이 없는 나마 그리고 마치 숨으려는 듯 몸을 구부린 바텐더, 밤이지만 식당 안은 눈부시게 환하고, 실내의 빛이 아무도 없는 거리의 어둠 속으로 파고든다. 식당 내에서 일어나는 일과 그 외부 그리고 관객을 분리하는 유리창의 존재는 특별하다. 리얼리즘은 영화 속 현실처럼 과장된 현실이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관계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생성할 수 있다. 이연식에 의하면 호퍼는 인물들을 마치 레고처럼 이리저리 끼워 맞추며 화면을 구성하고는 관객의 반응을 시험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치 이 그림은 음이 소거된 영상을 보는 것 같다고 한다. " 멀리 서는 차가 지나가는 소리, 구급차나 순찰차의 사이랜 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그러나 관객은 인적 없는 거리에 서 있다. 레스토랑 바깥이고 액자 안쪽이다. 이중의 적막이다. 숨이 막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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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퍼는 1967년 5월에 세상을 떠났다. 이년 전에 그린 유화 두 희극 배우는 생애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이다. 무대에서 관객에게 인사를 하는 두 희극 배우는 호퍼 자신과 아내다.  왜 희극배우인가.  자신이 화가로서의 작업이 연극 공연 같았다는 것일까. 우리 모두는 인행이라는 무대에서 공연을 하다 죽음으로서 연극을 마치는 배우와 같다는 메시지 일까?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을 쓴 이연식 씨에 의하면 렘브란트는 남이 알아주건 말건 시대를 초월한 예술적 목표에 사로잡혔던 예술가였지만 그와 달리 호퍼는 세속적인 예술가였으며 결국 그는 은둔자였지만 자신의 작품이 어떤 식으로 보일지 늘 신경 쓰면서 살았다고 한다. 
어쨌든 호퍼의 아내 조세핀은 호퍼를 먼저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1968년 3월에 그의 작품을 정리하고 세상을 떠났다. 
호퍼가 사랑했던 시인 폴 베를렌의 시를 적어본다. 
 
거대하고 부드러운
고요함이
내려올 것 같다
하늘에서
무지갯빛 달 빛에....
아름다운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