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날들- 메리 올리버의 산문집을 책방이름으로 정한 이곳은 어떤 곳일까. 세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거창한 질문인 " 너는 여기 이렇게 살아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과 인생에 대한 따듯하고 예리한 통찰로 조근조근 들려주는 메리올리버.
"착하지 않아도 돼. 참회하며 드넓은 사막을 무릎으로 건너지 않아도 돼. 그저 너의 몸이라는 여린 동물이 사랑하는 걸 사랑하면 돼. 너의 절망을 말해봐. 그럼 나의 절망도 말해주지 그러는 사이에도 세상은 돌아가지. -기러기"
그녀의 삶을 책방으로 실현시키려 하는 책방이 있다. 속초의 완벽한 날들. 아파트와 오래된 동네가 함께 섞여 있는 곳에 구불구불 고샅길을 걸어야 겨우 자그맣게 간판을 달고 있는 책방. 굳이 두리번거리며 발품을 팔아 찾아야지 겨우 모습을 드러내는 완벽한 날들. 녹슨 간판에 새겨진 글씨가 이곳이 어떤 곳인지를 언뜻 짐작하게 한다.
주소도로명 주소강원특별자치도 속초시 수복로259번길 7구(지번) 주소동명동 421-2 (지번)이용| 11:00~19:00 접기
화려하거나 장식적이지 않아도 된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가만히 구석에 놓아두는 그런 책방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현란한 네온사인과 북적이는 인파들 속에서 정신없이 헤매는 곳보다는 구석진 곳에 마치 오래된 정비소처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여행객에게 이곳은 참 안온한 곳 같다. 책방 출입문에 붙어있는 문화행사 홍보지도 그렇고 그 옆에 영어책을 같이 읽어보아요 라는 작은 쪽지도 이곳이 목적지향적인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는 생각.
지구와 환경을 걱정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 그림과 책으로 사람들과 함께 이어지고 작은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기를 바라는 욕망으로 책방에 온기를 불어넣는 듯. 귀엽고 사랑스럽고 비폭력적이고 우호적인 책들이 전시되어 있는 느낌. 그러면서 단단하게 우리의 지성을 훈련시키는 인문사회학 도서들이 필요한 만큼 펼쳐져 있다. 서가는 빈틈없이 빼곡하게 들어차 숨이 막히게 하는 게 아니라 빈 공간을 두어 오히려 그곳에 진열된 책들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가 찬찬하게 볼 수 있는 여유가 있다. 동네책방이 지향하는 바가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고 각자의 방에서 나와 함께 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 일차적인 것이라면 이 책방의 공간은 충분한 것 같다. 뒤켠에 있는 탁자와 의자. 그리고 아름다운 그림액자들의 놓임 새가 품격이 있다.
나이 들어가면서 좋은 것 중 하나는 지금껏 할 일 없이 쌓아온 물건들과 놓고 싶지 않고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부질없는 생각들을 시나브로 조금씩 덜 서운해하며 놓아주고 빈 틈을 만들어 나가는 것. 이 책방의 서가 구성과 굿스 판매도 공간을 가득 채우지 않고 필요한 것만 배치하고 있어서 좋다. 마음이 다급해지지 않는 것.
왜 우리는 의자에 집착하는 걸까. 아니 나는 왜 의자 하나하나의 생김새와 특징에 현혹되고 매혹되는가. 기능적인 의자에서부터 디자인이 세련된 의자들을 보면 굳이 앉지 않아도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내면을 건드린다. 이 의자도 그러하다. 의자박물관이 있었으면 좋겠다.
책을 인공지능이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적으로 진화된 인공지능일지라도 사람들의 개별적인 생각들을 독특한 문체를 통해 구성하여 들려주는 글을 과연 써낼 수 있을까. 한 단어가 문장에서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서 오만가지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이 문학이 아닌가. 우리들의 영혼을 기계가 흉내 낼 수 없지 않을까.
우리는 간혹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다. 우리의 언어가 불완전하여 우리 영혼의 모든 것을 다 담아낼 수 없고 다 표현할 수 없어서 우린 극도로 외로울 수 있고 소통의 부재로 숨을 곳을 찾아 혼자 멀리 도망쳐 가만히 책 속에 머물고 싶을 때가 많다. 그리고 말이 아닌 글로 잊히거나 버려진 마음들을 찾으며 위로받고 싶다. 아 여기에도 이런 마음들이 있었네.
우린 왜 책을 읽을까. 마음의 문신과 같은 그 글자들을 들여다보며 우린 어떻게 위로를 받는가. 산을 옮기는 일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내가, 세상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묵묵히 책을 읽는가. 누군가의 말대로 사람들에게 덜 상처 주고 피해를 덜 주기 위해서인가. 우리의 생각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삶의 경험에서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면서 쓰인 책 속에서 그저 세상에 던져진 고아 같은 우리가 덜 외롭게 함께 나침판을 찾아가려고 하는 것일까.
최소한 우리 영혼의 설계자가 오류와 억지 그리고 폭력적인 억측으로 가득 찬 SNS와 반지성적인 매체가 아니기를. 그리고 메리올리버처럼 삶이 끝날을 때 평생 나는 경이와 결혼한 신부였다고 고백하려면 우리의 영혼이 사람을 황폐하게 만드는 거짓과 기만의 악귀들로 들끓게 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독서가 우리를 경이롭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검은 떡갈나무의 근력, 침묵, 굵은 수관은 업신여길 수 없는 삶을 이룬다. -메리올리버"
떡갈나무처럼 단순하고 헌신적이고 싶다고 메리 올리버는 말한다. 단순하고 헌신적인 모든 사람들에게 경의와 찬사를 보내기 위해 우린 얼마나 많은 순하고 독한 책들을 읽어야 할까.
나는 나를 넘어선 것들이 낯설고 두려울 때가 많다. 모름에서 오는 두려움과 경계심. 그리고 그 두려움을 넘어서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경험해 보지 않은 것들을 만나고 싶을 때가 있다. 간혹은 아니 자주 책에서.
완벽한 날들은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비좁지만 왠지 친근한 계단을 올라서 2층으로 가면 예술적임에 틀림없는 주인장이 가꿔둔 작은 정원이 있는 북스테이가 있다. 무엇보다 정갈하고 아주 작은 글씨로 이렇게 메리올리버의 "완벽한 날들"에 나와 있는 글귀를 방문 아랫녁에 새겨 두었다. 주인장의 마음의 결이 느껴진다.
단정하고 깔끔하다. 벽에 걸린 거울 하나. 방구석에 놓인 화분 하나 그 옆에 다소곳이 앉은 그림액자 하나, 그리고 간결하고 청결한 부엌집기 하나, 네모 반듯 탁자와 의자 어느 것 하나 그냥 대충이 없다. 완벽한 날들을 위한 콘셉트인가.
북스테이를 위한 책장 구성을 본다. 책을 쭉 빼서 아무 페이지나 읽어도 잠들기 전 고단했던 일상들이 다독여질 듯하다. '뒤라스의 말 '을 구입했다. 밤 새 읽는다.
편안한 의자와 탁자가 침실에 있다. 차를 마시면서 혹은 짐을 정리하면서, 혹은 하루의 일과를 되새기며 그저 앉아서 쉴 수 있는 단출한 공간.
부엌 창너머를 보다 아련하게 보이는 식물이 보인다. 깨진 화분도 괜찮아 보인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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