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초 문우당-책과 사람을 이어주고 담아내는 큰 숲을 담은 지역서점, 하루 종일 서가 정리에 여념이 없는 책방지기의 부지런함은 또 하나의 교훈이며 책에 대한 열정과 혼이 담겨있는 감각적이며 디테일한 큐레이션이 돋보인다. 속초의 백년지기 책방이며 복합문화공간이다.
문우당은 속초에 있는 또 다른 백년지기 책방 동아서점과 더불어 속초라는 관광도시를 문화도시로 거듭나게 한 견실하고 동네친화적이며 새로운 로컬 문화를 선도하는 책방인 것은 확실하다. 인구 7만 도시에 이토록 짜임새 있고 세련된 규모의 책방이 존재한다는 것이 너무도 부럽고 욕심이 나면서 다행이다는 생각이 든다. 책방 입구에는 문우당의 이력과 성격을 드러내는 안내판이 과하지 않으면서 뚜렷한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책과 사람의 공간. 그렇다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그들의 삶을 쓰담쓰담 해주고 지친 걸음을 멈춰 세우며 잠깐 쉼의 공간을 제공해 주고 여기에는 아직 없지만 언젠가는 가 닿을 자신과 공동체의 이상향을 위해 과거의 지성에서 동시대인의 지성까지 탐사해 볼 수 있는 아직은 인류세인 우리가 머룰 수 있는 지구의 한 정거장이다.

우리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고맙게도 귀찮아하지 않고 귀 기울여주고 모아주는 곳이 있다는 것만큼이나 고마운 것이 또 있을까. 갈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가 멀어지고 그 자리에 마치 영혼의 설계사인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채워지고 요란하게 범람하는 세상사의 이야기로 우리의 목소리가 지워지는 요즘. 따뜻하고 감동적으로 우리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곳이 있다니.

문우당의 시그니쳐가 될 정도로 독특한 등가리개 혹은 라이트 셰이드. 신박하다. 책에서 튀어나온 글귀들이 영혼을 감싸듯 등을 감싸며 자꾸 눈을 들어 천장을 보게 만들며 아래로 늘 향해 있는 겸손한 우리의 등을 밀어 올린다.


영혼의 그림이 되는 글들이 새겨진 걸게는 마치 흔들리는 마음의 풍등같다. 그리고 그곳에서 정처 없이 잠시 머물다 다시 세상의 불빛이 켜진 집들로 돌아가도 외롭지 않을 것 같다. 이 글들을 찾아서 쓰고 이렇듯 책 읽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이의 마음은 먼바다로 집어등을 걸고 험한 파도에 떠밀리며 오징어 떼를 기다리는 오징어배의 선원들의 그것을 닮았다.

계절별로 책을 큐레이션 해서 세상에서 4계절을 살아내는 지복을 누리는 우리에게 선사해 주는 센스쟁이 책방지기님들. 여름을 담아내는 책의 글들을 읽어보고 싶다.

책방은 겸손하다. 영국의 유명한 책방을 7월에 간 적이 있다. 옥스퍼드에 있는 서점이었다. 규모도 상당하고 서가도 오래되고 책들은 넘쳐나고 하지만 왠지 건물과 책에 압도되는 불편한 마음이랄까. 친절함이 없는 곳은 모든 의미가 퇴색된다. 맛집의 밥도 맛이 없어진다.

닻. 거친 세상에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도록 우리를 다정하고 든든하게 인도해 주는 벗을 소개해 줄 닻이라니. 참 친절하고 향기가 나는 책방지기님들. 감사할 일이다. 책을 사지 않아도 이런 작은 종이로 된 닻을 보기만 해도 안도가 된다.

예쁘고 기능적인 독서등과 편안한 의자와 책상 그리고 작고 앙증맞은 화분까지. 한 사람의 독서를 위해서 애쓴 마음이 보인다. 굳이 독서를 하지 않아도 잠깐 다리 쉼을 하며 조용한 침묵 속에서 혼자 오롯이 시간을 보내도 될 것이다. 언젠가 읽은 어느 책에서 그런 구절이 생각난다. 프랑스의 어떤 성당은 하루도 쉬지 않고 저녁이면 성당에 불을 밝혀두고 문을 열어두어 머물 곳이 없는 이들을 위해 나눔 공간을 제공한단다. 그 공간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집이 없는 사람도 그렇지만 집이 있는 이도 나를 위해 마련된 조용하고 평화로운 공간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으로 적요로운 마음에 훈훈함이 깃드는 것이다. 우리는 결국 존재론적으론 고아가 아닌가.

방명록이 아니라 "마음의 흔적" 참 좋다.
부피가 작고 가벼운 공책에 연필로 그날의 마음을 깨알같이 혹은 듬성듬성 기록하고 또 그것을 책방지기님들이 골라서 세상에 내보내는 벽에 옮겨주는 일. 수고롭지만 그 마음을 기억해 주는 이들이 책방에 있다면 마음 쓸쓸할 때 발길이 책방으로 향하지 않을까.

책과 서점은 어떤 의미와 역할로 존재해야 하는지를 문우당은 묻고 있다. 상생의 논리로 책방을 경영하려는 이들의 겸손하고 가치 있는 운영철학이 엿보인다. 일방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서로 함께 고민하고 의논하고 설계하는 서점은 미래지향적이고 가치지향적이다.

나에게 책이란?
숨구멍이다. 안전한 피난처이며 언제 어느 곳에서 실현될지 막막하지만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해 보며 오늘의 뻣뻣하고 답답한 일상을 건너가고자 하는 나만의 해방구.
그리고 또 다른 나만의 세상 거주민들이 모여 사는 제3의
세상이다.


문우당서림인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선정한 키워드를 중심으로 책을 큐레이션 해서 선보이는 곳.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책을 전시하고 파는 판매원이 아니다. 책방에 오는 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그들의 마음을 살피고 간혹은 좋은 글로 위로하고 그들의 앞날을 염려하고 격려하며 함께 조금씩 나아가기를 희망하는 상생인으로 역할을 하는 대화자들이다. 그들의 노동과 삶이 부럽다.


12개의 갈피. 문우당 책봉투에 매달리는 책갈피 12개. 선택해서 책을 가져올 수 있다. 각자 다른 12개의 색깔에 다른 12개의 생각들이 글귀로 매달려 있다. 그 무엇 하나 책과 사람을 위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 번거로움과 수고가 책을 읽기 위해 건조한 디지털 책방이 아닌 동네책방을 오게 하는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이어지고 싶은 거니까.

책 몇 권을 구입해 책방을 나오면서 단순히 내가 책방에서 책만을 구입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이유는 이곳에서 사람을 단지 구매자로만 생각하지 않고 따뜻한 마음을 얹어주는 문우당 서림인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속초에 사는 이들이 왜 이토록 부러울까. 나도 문우당과 같은 따뜻한 동네책방을 열고 싶지만 감히 엄두가 나질 않는다. 작고 진심인 책방 한 코너 정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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