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부터 전국지역서점에서 문화행사를 만나기 어려워질 것이라 한다. 문화관광부 지원으로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공모하여 진행하던 문화활동사업과 관련된 내년도 예산이 편성되지 않았단다. 그 외도 파주 출판도서 지원 전액삭감, 인문학강연, 출판사 창업지원 프로그램도 사라진다고 한다. 독서동아리 지원 및 책의 해 지원도 증발한다니 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암흑의 시대가 온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인공지능시대를 가능하게 한 것도 인문적 상상력을 키워낸 독서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던가. 더더구나 갈수록 영상 및 미디어가 우리의 자발적인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시간들과 역량들을 잠식하고 있는 시대에 책과 독서를 장려하는 정책의 증발은 21세기형 지적미개인들을 만들어 AI 주도산업에 종속적인 존재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 아닌지.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영혼을 돌보고 자발적인 결정을 내려 삶을 살아가려는 내적인 추동력을 가진 존재다. 분서갱유로 책을 태우고 디스토피아 시대에서 책을 소지한 사람들에게 사형을 선고한다고 한들 정신적인 힘을 책에서 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잘익은언어"라는 아주 독창적인고 의미 있는 이름을 가진 전주의 이 책방의 존재는 그곳에 있는 것 만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춤주지 않고 지나는 하루는
그 하루를 제대로 살았다고 할 수없고
웃음이 동반되지 않은 진리는
진짜 진리라고 할 수 없다. "
-프리드리히 니체
좁은 골목을 휘돌아 가다보면 신발집, 기름집, 포목집, 떡방앗간, 문구점, 그리고 작은 책방이 있고 우리와 함께 늙고 낡아 가는 집들이 처마를 마주하고 있었던 시절은 지났지만 아파트 앞의 대형마트로 바로 통하는 곳의 삭막함과 일방통행이 아닌 오래된 집들과 골목이 아직은 따뜻한 온기로 남아있는 곳에 잘 익은 언어들을 우리에게 선물처럼 준비해 둔 고마운 책방.
한가한 모습이 너무 낯설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일까. 잘 익은 쌀 낟알을 수확하듯이 잘 익은 언어들을 수확하는 눈 밝고 영혼이 맑은 이들이 그립다.

이곳저곳으로 발품까지 팔아 책을 납품해야 겨우 책방을 유지할 수 있는 시대. 그것마저도 독서지원비 예산이 삭감되는 불감과 불통의 시대에 가능할는지... 우울한 마음이 들지만 책방지기는 씩씩하고 싹싹하게 하루를 준비하고 손님들을 기다리며 분주하다. 손끝에 와닿는 작가의 영혼이 촘촘히 박힌 종이, 그리고 페이지를 넘길 때 나는 종이 냄새, 잘 디자인된 책표지감상. 우주의 먼지이면서 소우주이기도 한 인간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느끼는 좌절과 외로움 공포 그리고 불안함을 잠재우고 닮은꼴인 종들에게 같이 느끼는 공감, 그리고 연대. 책이 아니고서 어디에서 느낄 수 있는 걸까. 그리고 온전히 혼자서 마음대로.

" 좋은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은 구성원들의 생명을 보호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사회는 구성원들이 굶지 않도록 해야 하며 그들을 폭력적 죽음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공산주의자들은 이 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요구한다. 사람들에게 과거의 상위문화를 교육의 기회와 자유를 제공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기초적인 요구를 무시하는 문화, 기회를 거부하고 인간의 욕구에 무관심한 문화는 솔직할 수없고 유익할 수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인류의 구원의 신이자 죽음의 신이라 불리던 오펜하이머. 캘리포니아 공산당 교수 위원회에서 발간된 팜플렛에 실린 글이다. 당원은 아니었지만 그는 물리학자이기 전에 소설과 시 인문사회과학책을 두루 섭렵한 인문학자였다. 그렇기에 그의 삶의 방향은 언제나 사회정의와 불의에 맞서게 된 것이다. 비록 본인이 참여한 원자력 개발이 인류에 엄청난 파국을 일으키게 되는 결과를 낳았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정의롭고 따뜻한 인본주의자였다.

"비밀책" 책방지기의 손글씨로 비밀책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말을 적어두었다. 자신이 신망하고 좋아하는 이에게 책을 선물 받는다면 그것도 마음 설레게 하는 말들이 손끝에서 살아난 꿈틀대는 글씨들로 다가올 때 책은 책이라는 물성을 벗고 외롭게 멍든 마음의 빈 곳에 반가운 손님처럼 올 것이다.

"어려움을 겪은 이들이 어려운 이들의 등을 두두릴 수 있다. " 고난의 삶을 겪지 않은 사람들의 위로는 거짓 장광설이거나 오히려 외설스럽다. 남해의 바닷가에서 오늘도 잘 지내고 있을 남해의 봄날 책방지기가 책을 채워 줄 손수 만든 책장을 선물했다는데 고마움이 그대로 묻어있다. 책방지기의 말대로 돈은 못 벌어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벌었다고 한다.

다락방을 오르락거릴때 쓰일 것 같은 사다리는 높은 책꽂이에 숨겨져 있듯 꽂혀 있을 책들을 조심스럽게 애타는 마음으로 찾을 때도 쓰일 것 같은 로망. 책방지기는 죽은 사물이 아닌 살아있는 책들로 쌓인 바벨탑과 같은 책장을 놓아두었다.
그가 큐레이션한 책들은 다양한 주제와 담론들을 담고 있는 듯하다.

웃어야 할 일이 있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야 살것 같아서 웃는 웃음은 강한 페이소스가 느껴진다. 책과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시절이 살아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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