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이야기

서울 책방순례 2- 서점 리스본, 썸북스,번역가의 서재, 진부서점,북스토어 17, 땡스북스

숨그네 2023. 7. 10. 14:53

'그 해 비 내리는 부산에서 우산도 돈도 없이 홀로 걷고 있을 때 서점은 나에게 홀연히 나타난 셀터이자 성전과 골목과 미로로 덮인 하나의 거대도시, 우주 정거장, 영원히 젊게 만드는 묘약이 담긴 성배로 가득한 고고학적 유적지였다. 
책방에서 책을 사든 말든 뻔질나게 드나들다 보면 우리는 점점 달라질 것이다. 그것이 고독 위에 흩뿌려지는, 서점의 매혹적인 노란 불빛이다.' -정해윤 CBS 피디-
한겨레 책방강좌 마지막 주에 강좌에 참가한 미래의 책방지기들과 함께 서울에 있는 몇 군데 책방을 둘러본다. 강좌를 듣는 동안 내내 과연 책방을 여는 것이 가능한가. 그리고 어떻게 운영을 해야 하는가라는 실제적인 질문들을 하면서 갈팡질팡 희망과 절망사이에서 오갔던 시간들. 하지만 누구의 말처럼 '존재이유가 분명하면 어려울 때 버틸 수 있다.'는 좌표로 책방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 한편이 뭉클해지면서 노란 불빛이 켜지는 서점의  존재이유를 찾으면서 단단해지고 싶어진다.
첫 번째 서점 리스본. 아마 서점주인은 "리스본의 야간열차"에서 책방이름을 가져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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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찮게 책방에 비치된 책, 202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니에르노 와 미셀 포르트의 대담집인 "진정한 장소"가 눈에  띄어 뒤적이니 "책은 신성하다"는 글귀가 적혀있다. 우연이지만 기분 좋은 우연. 간판 로고도 책방의 성격을 그대로 담고 있는 듯, 단정하고 과하지 않게 정제된 글귀와 형태 그리고 책방의 이름은 우리를 머나먼 실제 하는 도시이지만 유토피아처럼 잔잔하게 그곳을 그리워하게 하는 조용하고 매력적인 끌림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3층으로 된 단아한 전문책방이라는 것이 맘에 든다. 1층은 좁지만 뺴곡하게 제목만 읽어도 너무 좋은 문학서적을 비롯한 인문과학책이 진열되어 있고 

칠판에 흘림채로 쓰인 책방소개글도 개성이 있다. 무심한 듯 도심에 깃든, 현란하게 장식하지 않고도 주변의 시선을 머물게 할 수 있는 단아함과 단단함이 있다.

아무런 저항 감 없이 누구나 드나들어 한나절을 보내면서 이 책 저책을 쓰다듬고 펼쳐보며 여기 지금이 아닌 다른 어딘가에 가서 오랫동안 산책을 하거나 잠깐 거주하고 올 수 있는 도시유랑민들을 위한 서점..
리스본의 서점은 거대한 빌딩과 로고로 압박하는 왠지 소외감이 느껴지지 않은 서점의 외양을 가졌다. 

"기차는 여덟 시에 떠나가네"
리스본에 잠깐 갔을 때 Agalia Rodrigues 가 부르는 "어두운 숙명"이라는 포르투갈 민요, 파두가 실린 음반을 샀었다. 먼바다로 사랑하는 사람이 항해를 떠나면 남겨진 이들이 그들을 그리워하며 불렀다던 깊은 슬픔이 느껴지는 애잔한 음악. 파두가 생각나게 하는 리시본 서점의 2층 독서테이블이 있는 곳. 마치 사적인 서재가 공적인 공간이 되길 꿈꾸는 내 책방의 미래가 보이는 듯. 

공간 자체가 인문학적으로 탄생하는 곳이 있다. 이곳도 아마 그런 장소의 한 곳인듯하다.  특히 많은 책방들이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을 꿈꾸면서 진행하고 있는 북토크와 글쓰기와 글낭독회 그리고 다양한 이벤트 행사들 중이 있는데 리스본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생일책 코너는 독특하고 주인장과 책방지기들의 지난한 노력과 독서력이 느껴지면서 독자들을 정성으로 품어내고자 하는 열정이 담긴 듯하다. 

직각과 정면이 아닌 서가의 배열 그 흩뜨려짐이 헐렁한 자유와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 아닐까.  책은 인터넷과 오프라인 판매를 동시에 하고 있다고 한다. 방송작가이기도 한 주인장이 직접 작가초청 북토크를 매주 진행하고 할인과 적립은 없으며 정기구독제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달의 책과 생일책을 큐레이션 하고 있다고 한다. 
 
두 번째 서점. 썸북스.
대화형 AI에 대한 거부감이 든다.  마치 내가 러다이크(18세기 산업혁명당시 기계파괴운동)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요즘은 쳇지피티에 대한 공포가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기술혁명이 가져올 혁신보다는 돌이킬 수 없는 반인 간 적인 부작용에 더 마음이 쏠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갈수록 다양한 책방들이 주변에 생겨서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한 영역이나 재능 아니면 관심분야에 눈길을 주고 함께 사람들과 시간과 공간을 나누는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중 만난 썸 북스는 그림책을 공부하고 만들어가는 공방이자 기존에 출판된 멋진 그림책과 전시회를 거친 멋진 그림들을 구입하거나 살 수 있는 공간이다. 


세 번째 서점. 번역가의 서재.
서점주인의 직업과 성향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매우 독특하면서 정감이 있는 서점. 본인이 번역한 책을 비롯해 주인장이 큐레이션 한 다양한 문학과 인문서적들 그리고 꾸준히 하고 있는 독서토론모임. 이곳에서는 책표지를 입혀준다. 너무 따뜻하고 복고적인 느낌의 책표지가 있는 책. 나는 오랜만에 버지니아울프의 책 한 권을 구입한다. 
이곳은 책이 그 자체로 훌륭한 인테리어다. 

네 번째 서점. 진부책방. 
시간이 부족해 앉아서 가만가만 책을 골라 읽으면서 차 한잔 할 수는 없었다. 아쉽지만 쓱 둘러보고 나온다. 꽤 많은 젊은 친구들이 폰이 아닌 책을 앞에 두고 차를 마시며 책장을 뒤적거리는 모습이 낯설지만 감동적이랄까. 그래 아직 책은 살아있어. 독서량으로 봤을 때 세계최하위라고 하지만 책을 좋아하는 인구는 여전히 존재한다. 주인장의 서가에서 나온 책들을 읽을 수 있고 판매하는 책도 있는 듯하다. 자세한 정보는 아직. 하지만 책방지기의 책을 서점에 내어 놓고 방문한 이들이 책을 읽게 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 인듯하다

다섯 번째 서점. 북스토어 17.
'저희 서점보다 더 싸게 파는 곳도 있어요. 그곳에서 구입하세요' 
이런 멋진 말을 손님에게 할 수 있는 주인장이 몇이나 될까. 특히나 도서구입인구가 급감해서 영세자영업인 서점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는 데. 하지만 단연코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을 체크할 수 있는 바로미터는 다양한 주제의 작은 동네책방이 자금난에 허덕이지 않고 상생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해 주고 도서정책을 마련해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껴본다. 이곳은 자신만의 색깔을 고집하는 예술전문서점이다. 한 권의 가격이 10만 원을 호가하는 책이 있고 흔히 대형서점에서 볼 수 없는 사진, 디자인, 미술, 패션 책들이 빼곡하다. 책방주인님이 해외 북 거래처에서 직거래하는 책이 많단다. 예술에 전문적으로 종사하는 분들과 공부하는 학생들이 종종 와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고 서로 전시회를 기획하기도 하는 콜라보가 가능한 책방. 너무 멋지다. 표지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책이 예술이 되는 책방.
 

여섯 번째 서점. 쌩스북스.

'더 나은 인간으로 , 더 나 다운 인간으로 '

마지막 강좌시간에 감동 깊게 들은 이야기 하나. 일본의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삿포로에서 3시간 떨어진 인구 30만의 소도시에 있는 작고 소박한 곳이지만 일본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동물원이란다. 가장 방문객이 많은 아사히먀마 동물원은 그곳만의 독특한 매력이 단연 있을 것이다. 거리와 상관없이 가고 싶어서 여러 불편을 감내하고 찾아가는 장소. 그런 장소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지혜와 내공이 부럽다. 오랜 세월 동안 쌓여온 삶의 지혜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을 것이다. 
지나가다 들린 곳이 아니라 찾아가는 곳.
 

2011년도에 개점해서 현재까지 12년째 운영되고 있는 단행본을 판매하면서 수익을 내는 도심 책방. 1층이라 접근성이 좋아서일까. 오랜만에 책방에 사람들이 들락날락, 책을 보는 모습이 아름답다. 

쇼인도 전시. 선정된 책 속에 있는 문장들을 골라 404개의 문장들로 다시 엮은 흔들리는 모빌처럼 공중에 매달린 종이 건축물이 있다. 독자가 문장을 탐색할 수 있도록 하는 문장수집가 시리즈의 공간적 장치라고 한다. 하지만 글쎄. 장식적인 효과는 있지만 책밖으로 나온 문장들이 갈길을 잃은 모습 같다 할까. 의도와는 뭔가 다른 느낌이랄까. 문장은 문장부호하나라도 그곳에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낫지 않을까. 

동네책방에서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전략들이 다양하면서도 차이가 조금씩 있는 듯. 이곳에서는  책갈피 ( Thanks Paper)를 이용해 책을 간단하게 소개하거나 리뷰를 손글씨로 직접 써서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매주에 한 번씩 주제별 코너를  소개하는 책을 선정해 전시하기도 한다.  

썡스북스 서점은 사람들의 왕래가 잦고 분주한 도심의 중심, 1층에 위치해 있다. 서가의 배치가 사선으로 되어있고 책등이 아닌 책표지를 볼 수 있도록 책이 진열되어 있다. 허리높이보다 높은 매대에 어깨를 걸칠 수 있어 서서 책을 편안하게 뒤적여보고 큐레이션 된 책들을 살펴볼 수 있다. 책은 따로 분류표를  붙이지는 않았다. 
 

서점에서 책 외에도 구입가능한 물건들.  문구들과 에코백, 엽서등 다양한 굿스들이 있다. 서점과 어울릴 수 있는 굿스들이 무엇일까. 고민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