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이야기

소전서림을 다녀오다

숨그네 2022. 5. 21. 15:41

 

5월 17일. 서울 소전서림.. 청담동에서 내려 현대아이파크 아파트 앞 도로변 건물들 사이에 있는 하얀색 건물. 기하학적인 건축물로 현대건축의 미를 한껏 살린 건물이라지만 걸개광고물 때문이었을까.아님 별반 차이가 없는 도시의 무심한 건물들 사이에 끼여 있어서일까. 소전문화재단소속 서점이 갖는 독특한 형태적인 건축미는 글쎄...

 

차단막이 있는 계단이 서점을 막아서고 있다. 반일 입장권이 3만원이라.. 이건 뭐지?

입장권으로 차단막을 넘어 이렇게 기하학적인 지하계단을 내려가면 책을 열람해 둔 공간이 나온다. 그리고 상주작가들(?)과 초대작가들이 하는 북클럽활동용 세미나실이 한두어개 보이고 스탭룸이 있다. 

 

미로같은 계단 끝에 드디어 열리는 곳. 이곳은 책을 사고파는 서점이 아니라 열람된 책들을 읽는 도서관에 가까운 곳이랄까. 책을 대여해주는 곳은 아닌 듯. 반기는 사람도 없고 안내하는 이도 없다.개인 서가 같은 분위기랄까. 책은 종류별로 잘 배열되어있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드문 책도 볼수 있어서 좋긴했다. 하지만 조용히 마련된 개인용 독서대와 독서의자가 칸칸이 몇개 놓인 걸 보면 여긴 개인적으로 조용히 쉬면서 책을 골라 읽는 곳이다. 왁자지껄까지는 않더라도 소곤거리며 책을 고루고 서로 이야기 나누는 것 마저 눈치보이고 소심해지는 느낌은 뭐랄까 감시아닌 감시를 받고 있는 듯한 부자유와 억압을 받는 느낌. 굳이 사적공간이 아닌 공유공간으로 서점을 오픈했을 텐데 아이들 공부방처럼 이런 공간을...책이 사람을 지긋이 작게 만들고 주눅들게 하는 곳은 내가 바라는 서점의 모습은 아닌 듯. 장 부르디외가 「구별짓기 문화」에서 말한 것처럼 고급문화를 독점하고 향유할려는 문화권력의 느낌이 이럴까. 이런 생각. 마르크스의 자본론 을 책장에서 보면서 묘한 이질감과 모순을 느낀 것은 ..

양귀자의 <모순>을 오랫만에 서점에서 보라색 도서전 설명지가 붙은 책으로 다시 만났다. 색을 감각하다는 도서 큐레이션 테마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리히터의 <FARBEN> 색체 견본집에서 영감을 얻어 각 색깔이 갖고있는 기표와 어울리는 책을 책장 이곳저곳에 배치하고 찾아서 소개하고 읽게 하는 이벤트인듯. 예를 들어 레드는 불, 심장, 피, 그래서 욕망, 사랑,죽음을 이야기하는 문학과, 블르는 우울과 애도의 글들을, 초록은 자연과 의 관계, 위태로운 시래와 경이의 역사를, 노랑은 장애와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적인 고찰을, 오렌지는 다채로운 공동체에 대한 성찰을 , 무지개색은 그런 다양하고 다체로운 무수한 존재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문학을 테마로 해서 색깔을 입힌 소개지를 붙여 놓았다. 의도는 좋았지만 글쎄. 책은 엄청 개인적인 경험이라 어느 하나의 정서와 교감하는 것은 아닐텐테. 그리고 그 경험을 개인이 아니라 이런 공유공간이라면 책이 반향시키는 감정들과 개인경험들을 서로 나누면서 이야기하는 이벤트를 같이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뭐 이런생각을...

함께 책방을 간 내 친구의 말에 따르면 효과적인 북토론을 하기 위해 적합한 참여자의 수는 10명을 넘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사방에 책과 고급스러운 그림과 피아노, 그리고 개인용 텀블러를 사용하면 무료로 제공되는 티와 커피, 안락한 의자. 한쪽 켠에 놓인 계단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공간),북토론을 위한 공간적인 아름다움은 완성품인데 뭐랄까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건강에 해롭지 않지만 인공적인 맛이 있어 꺼려지는 엠에스지 음식이랄까. 잘 꾸며지고 너무 정돈이 잘되어 있는 친구집에 놀러가면 뭔가 놀면서도 불편하고 주변을 정리하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아이 이게 뭐야 하면서 산통이 깨지는 듯한 느낌이랄까. 담배냄세가 희뿌연한 비좁고 무질서해 보이는 책들이 사방에 놓여있고 바닥에 주저앉아서 이야기나누거나 강의를 듣고 있는 프랑스의 지식인 카페가 겹쳐지는 이유는 뭘까. 

그래도 존버애거의 책을 만나 잠깐이나마 그가 죽은 아내를 생각하며 그린 그림과 사진들 ,애도의 글을 조용히 조용히...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