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든 놀이터는 사소한 일이었다.
다른 사소한 일들과 같은 전철을 밟게 될 수도 있죠. 황폐해지거나 거창한 계획 때문에 사라질 수도 있겠죠.
우리가 만든 것이 영구적인 기념물이 아니에요. 어떤 목표를 위해 매일 애쓰는건지 확신할 수 없는 날들이 찾아오면
무엇보다 일상에 지쳐 오랜 시간 내 발목을 잡았던 그런 상태로 당신도 움추려들면
우리의 작은 놀이터가 완성된 순간 느꼈던 소박한 보람을 떠올려 보길 바랍니다. "
영화 어떤 인생의 로드니 윌리엄스가 같은 부서에서 근무했던 신입공무원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과 같은 편지글이다.
이 영화는 오랫동안 하루같이 똑같은 일상을 마치 그의 별명이었던 좀비처럼 무감각하게 살고 있던 시청공무원이었던 나이 든 윌리엄스가 어느 날 암선고를 받고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며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 이리저리 헤매기도 하고 방황하기도 하고 일탈을 해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마지막에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릅니다.
이 과정에서 보여주는 윌리엄스의 모습은 죽음을 앞둔 노년의 외롭고 비참한 모습만은 아니다.
깨달음은 왜 마지막 순간에 오는 것일까. 죽을 때까지 변화지 않고 지속될 것만 같았던 일상의 일들이 죽음 앞에서 재조명됩니다. 책상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쌓여있던 민원서류들. 언젠가는 해결되겠지라고 생각하며 미루어뒀던 서류들은 이웃들에겐 절박하고 시급한 문제라는 것을 그저 책상머리에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윌리엄스는 알게 된다. 빈민가의 버려진 우범지역 같은 곳을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로 재개발해달라는 여성단체의 요구를 오랫동안 자기 부서가 할 일이 아니라고 다른 부서로 돌려보내는 탁상공론식의 관료적 일처리 방식에 대해 윌리엄스는 드디어 결단을 한다 부서직원들을 이끌고 직접 현장을 답사하고 더러운 물 웅덩이에 바지를 적시면서 현장조사를 한다. 그 과정에서 다른 부서의 협조를 얻어내는데 채면 불구하고 간청하기도 하고 자신의 모든 자존심을 내던지면서까지 놀이터를 만들기 이해 동분서주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드디어 빈민가의 염원사업이었던 놀이터를 완성하게 된다.
윌리엄스는 싱글대디로 아들을 키우고 그 아들내외와 함께 살아가지만 자신의 시한부 인생에 대해 결국 진솔하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여느 부모들처럼 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마음이기도 하고 아버지의 삶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고 자시들의 일상에 매몰되어 있는 자식들과의 온전한 대화가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더구나 아들내외는 윌리엄스가 직원 중 한 명인 옛날 여자직원과 만나 윌리엄스가 그동안 좀비처럼 활기 없이 쌓인 서류더미 뒤에서 일하는 자신과 달리 명랑하고 활동적이며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여직원의 활기를 몹시 좋아했다는 것을 그녀에게 얘기하고 잠시나마 자신도 그녀처럼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어 그녀와 차를 마시고 영화를 보는 것을 알게 되며 윌리엄스를 오해하게 되고 윌리엄스를 부끄러움과 체면을 모르는 부도덕한 사람으로 여기며 윌리엄스가 그들에게 자신의 시한부 여생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마저 잃게 만든다.
윌리엄스는 그토록 마지막 에너지를 모아 숙원사업이었던 놀이터를 완성하고 눈 내리는 그네에서 어렸을 적 고향에서 불렀던 노래를 부르며 행복하게 추위에 얼어 생을 마감한다.
기차를 함께 타며 매일 런던시청에 함께 다니던 직원들은 윌리엄스의 마지막 모습을 회상하며 장례식에서 돌아오면서 윌리엄스가 마지막에 보여준 모습처럼 민원들을 최선을 다해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절대 서류더미에 얹히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결국 그들은 오랫동안 익숙하게 해온 관행을 극복하지 못한다. 다만 신입사원만이 윌리엄스가 그에게 남긴 편지를 다시 읽으며 그를 그리워한다.
우리도 너무 늦은 시간에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윌리엄스의 결단처럼 미뤄두었던 일을 하나라도 의미 있게 완성할 수 있을 것인지. 그의 말처럼 우리가 하는 일이 대단히 거룩한 일이 아닐지라도 다른 사람들의 일상에 긍정적인 변화와 행복한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지. 윌리엄스가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주인공 역할을 했던 빌 나이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4,50대 이상의 성인이라면 한 번 쯤은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죽음이 다가올 때, 나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라고. 그리고 살아갈 날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되면 남은 시간을 어떻게 잘 보낼지도 고민할 것이다. "
나지막하고 고요하게 들렸던 하지만 너무 슬프게 들렸던 윌리엄스의 마지막 노래를 적어본다.
내 소중한 나무야
고향과 어린 시절이
마법처럼 얽힌 가지
첫봄을 알리던 너의 잎새
당당한 여름 같던 꽃 봉오리
모든 시골에서
가장 아름 다웠던 나무였다네
네가 펼친 그늘에 앉아 있었지
아이들은 네 주위를 뛰어놀며
네 붉은 열매로
목걸이를 만들어 걸었지
저기 보이는 나의 어머니
어린 지니와 제이미를
무릎에 앉히고
우릴 보며 미소 짓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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