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어느 수집가의 초대 를 받다-불청객의 불편한 독백

숨그네 2022. 5. 22. 00:19

5월의 서울 나들이라니.. 30여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명퇴 후 처음으로 5월에 서울 구경 3일 일정 중 둘째날에 들른 국립중앙박물관 별관. 고이건희 기증 컬랙션전에 갔다. 며칠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하는 이건희 걸랙션에 딸이 갔다가 1시간 넘게 줄을 서 지쳐 포기했다는 말을 듣고 온라인 예약을 하지 않은 터라 조마조마했지만 10여분 길지 않은 줄을 서서 12시 관람권을 사서 기증 컬랙션전을 관람할 수 있었다. 아침부터 부슬부슬 봄비가 내렸다. 고궁을 가든 아님 외국 유명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가든 언제나 내 마음 한켠을 불편하게 하는게 뭘까. 삼성재벌가의 비리 못지않게 천문학적인 자본력으로 수만점의 예술수집품들을 사모아 사회에 기증하는 것으로 한국사회가 들썩들썩. 그걸 보기 위해 아침부터 줄을 서고 인터넷예약을 서둘러 해서 전국적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모여드는 나와 같은 이들의 관람욕망. 그래도 외국에 팔려나갈 수도 있었을 예술작품들을 수집해서 예술가들도 살리고 우리문화유산도 간직하고.. 다행스럽잖아. 그 의도가 예술적인 진가를 알아보는 그들의 심미적 고급취향이든 아님 탈세목적으로 사들였을 사업가적인 욕망이든 일반인들이 이렇게라도 볼 수 있으니.. 아이러니라 할까. 어쨌던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처럼 조심스럽게 의아하게 건들건들, 하지만 내 눈을 즐겁게 하는 예술작품들을 만나기위해 벅수부터 만난다. 

내 눈길을 잡아 끈 첫 작품은 이수근의 이 그림. 고 박완서님의 나목이라는 소설속 화가. 미 8군 소속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렸다는 가난했던 화가.이수근의 작품은 생각보다 작은 호수의 작품이었다.그처럼 가난했던 전쟁통의 시난고난한 삶을 살았던 여인네들과 노동에 찌든 서민들의 일상을 화폭에 담았던 이수근의 순정성이 사람들이 그를 사랑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이중섭의 「가족」

일상의 소소한 재미와 놀이를 그린 만화와 같은 그의 작품들은 나중에 객사하듯 죽은 작가의 일생이 환기되면서 마치 한국의 빈센트 반고호와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제주 서귀포의 이중섭 거리에 가면 그의 유작들을 만날 수 있고 그와 그의 일본인 아내 미시코, 그리고 그의 아이들을 그리워 하며 현해탄 너머 이곳에서 천진무구하지만 왠지 우울감이 느껴지는 그의 작품과 일기, 편지글들을 볼 수 있다. 이중섭.그는 네델란드 화가 빈센트와 가축들을 모아 동화적인 세계를 그린 러시아 화가 샤갈을 연상시킨다. 

모네의 수련이 있는 정원을 이곳에서 만난다. 빛의 사냥꾼인 그가 시력을 잃은 아픔을 딛고 세상에 내놓은 수련 연작 250점 중 하나. 베에토벤이 청력을 잃고 걸작을 만들어냈듯 빛의 화가인 모네는 시력을 잃고 역작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 새삼 가슴을 울리며 오랫동안 이 그림앞에 머물러 있게 한다. 예술의 기법과 작가의 심오한 의도를 어떻게 다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을까. 그곳에 있었던 작가의 마음과 삶, 그의 눈길과 손길이 머물렀던 사물들과 예술적 대상이 우리에게 건네는 이야기들에 감응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닐까. 그래서 여기 이곳에서 거기 그곳에서 살았던 이들과 조우하게 되면서 나와 예술작품과의 특별한 개인적인 만남이 가능하게 되는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