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생각의 틀은 왜 그리도 견고할까. 거푸집을 만들 때 사용되는 콘트리트처럼 생각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지 않을 경우, 아마도 더 딱딱해지는 것은 아닐까. 딱딱한 것이 부드럽게 흔들리는 것들, 그것이 바람이던 바람이 흔들어놓은 갈대이던, 땅에 누워있는 잡풀이던 상관없이 내가 한없이 부끄럽고 서러워지는 것은 이미 그 딱딱함이 우리의 내면을 잠식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음이다. 5월 새별오름을 오르며.
오름을 오르고 내리면서 앞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거친 숨소리와 뒤틀린 근육들의 힘겨움이 그대로 전달되면서 왠지 안쓰럽고 정답게 까지 느껴진다. 친절함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닐 것이다. 힘든 밥벌이의 일상을 벗어나 아무것도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으면서 그저 와서 쉴 수있는 품을 내어주는 대자연 Mother Nature에 안기면 우린 서로에게 무한정 가볍게 친절해질 수 있다. 자기점검없이 작위적인 언어와 행위없이 자연스럽게 인간의 선한 내면을 경험하게 하는 것은 자연밖에 없는 것 같다.
관대하게 대하고 싶은 마음. 인내심 .. 모든게 그 간격 이후에 왔다. 모성은 타고난 것이 아니고 그 간격과 관계에서 학습되고 형성된다. 모성은 만들어진것이다. 그리고 그 간격으로 인해 둘째와 세째를 낳을 수 있었다. 그걸 가능하게 한 것은 엄마의 노동이었다- 황정은의 연년세세-
곶자왈-나무와 덩쿨이 얼키고 설킨 숲. 제주에서 볼 수 있는 숲. 화산암 사이사이 흘러내린 빗물이 세월의 부침을 받아 푹 주저않은 자리에 있는 숨골. 얼키설키 엉켜있는 곶자왈도 인생살이 같아서 사랑스럽고, 쉬어가라고 여름철은 시원하게 겨울철은 따뜻한 보금자리를 내어주는 숨골도 이쁘고 고맙고.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면 잊어. 그것이 정말 비결이면 어쩌지?
잊기위해 애쓰는 것들이 다시 말해 억압된 것들은 언제가는 귀환한다고 했던가. 용서할 수 없어 잊을려고 애쓰는 것들은 끈질기고 강하게 버려지지 않은 녹슨 궤짝처럼 우리곁에 놓여있다. 이렇게 말하고싶다. 잊는 것은 우리의 허약한 의지가 아니다. 시간이 씻겨내고 반들반들 모서리를 없애 함께 있어도 덜 아프게 만드는 것일뿐.
혼자 있으면 더 다정해져. 혼자일때 가장 사람다워진다. 해넘이를 하는 제주의 한담해변은 서늘하게 아름답다. 해변길을 다듬고 다치지 않도록 길을 내서 혼자서 혹은 둘이서 하루를 보내고 난 후 안녕하며 가뭇가뭇 붉게 하늘과 바다를 물들이며 작별인사를 하는 해를 마주보게 해준 사람들.. 고맙고도 눈물난다.
선창가. 모룽이를 돌아가듯 저너머까지 볼 수 없이 검은 여 들이 숨겨놓은 바다, 해변. 나지막하고 촌스럽게 화려한 해녀들의 슬레이트집들. 그들의 생활전선처럼 늘어져있는 전깃줄. 정박한 배 두어척. 하지만 카페와 고급음식점들이 눈치없는 불청객처럼 자리하고 있는. 한담해변은 더욱더 바다 가까이, 저 노을 속으로 걸어가라고 그곳에 있다.
행복한 척 하지 않기, 불행한 척 하지 않기, 정직하게 보기. 조언하지 않기. 그리고 섣부르게 위로하지 않기. 같이 앉아서 불편한 침묵을 견디고 멀리 바라보기.
우리는 우리의 삶을 여기서.
<다가오는 것들>에 등장하는 두인물. 피비앵과 나탈리는 선생과 제자로 만났다가 지적동욜로 우정을 이어가지만 화해 할 수 없는 가치관 때문에 종종 말다툼을 벌인다. 둘은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으랫껏 기대하는 클리쉐인 로맨스로 진행하지 않는다. 감독은 로맨스와 화해에 관한 기대를 , 그것을 기대하는 사람들을 적절하게 실망시킨다. 그렇지 않아도 삶은 지나간다 바쁘게. 울며 실망하고 환멸하고 분노하고,다시말해 사랑하면서. 그것이 다가오니까. 우리의 모두를 향해 일상이 다가오니까. 화순곶자왈의 숲은 늘 거기서 있어주길. 나에게 다가와 주기를. 지치고 삶이 심드렁해질때 마다 내가 다가갈 수 있도록..
서러움이 내게 말 걸었어요
나는 아무 대답도 안 했어요
서러움이 날 따라왔어요
나는 달아나지 않고
그렇게 우리는 먼길을 갔어요
눈앞을 가린 소나무숲가에서
서러움이 숨고
한순간 더 참고 나아가다
불연듯 나는 보았습니다.
한사람 지나가기 빠듯한 산길에 아카시아 우거져 드문드문 햇빛이 비쳤습니다. 길은 완전히 막힌 듯 했습니다. 이러다간 길을 잃고 말거라는 생각에, 멈칫멈칫 막힌 숲속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렇게 몇번이나 떨면서, 가슴 조이며 우리는 산길을 내려왔습니다. 언제나 끝났다고 생각한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었지오.
- 이성복<그 여름의 끝>시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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