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쨍한 햇빛이 갯고랑의 물고리를 흐리게 하고 잠깐 외출나와 어슬렁거리는 칠게를 숨게하는 여름의 순천만. 청정한 여름갈대의 짙푸른 녹색의 명랑함이 철지난 갈대의 쓸쓸한 노곤함과 잘 어울려 아름답다.
세상사람들이 이러이러한 일이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연쇄의 마지막 고리라는 자리 덕에 가장 두드러진 고리가 되었다는 것만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카이사르가 루비콘강을 건너기 전 주저하는 사이에 어떤 나팔수가 지나가던 목동들의 피리를 뺏어 쨍쨍하게 나팔을 불자 그때 카이사르는 "자 강을 건너자. 주사위는 던져졌다. "라고 명령한다. 만약 나팔을 불던 그 이방인들이 옆에 없었다면 카이사르는 루비콘강을 건너지 않을 수도 있었다. 상황이 우리 기질의 도움을 받아 우리 모두의 계획을 짜준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내 인생의 전환점>- 마크투웨인
개발공약과 그것을 쫒아 집값상승을 바라는 대도시 시민들의 욕망과 자기배반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라 생각도 못하고 그저 대세에 끌려다니는 다수의 생각없는 서민들과 그들의 부동산관리인과 같은 지방선거후보자들의 떠들썩한 굿판으로 지방선거가 끝났다. 광주의 낮은 득표율과 섬처럼 민주당이 우세한 유일한 전라도와 제주도를 보면서 서러웠다.그들의 절망과 패배감이 아픈 살처럼 느껴졌다. 다행스러운 몇몇 진보적 기초의원들의 당선말고는 무기력하다. 약탈적 지대추구가 모든걸 압도하는 현실 앞에서 그나마 원칙있는 민주주의적 원칙들이 무너지고 기득권세력은 거대자본과 개발주의자들과 무탈하게 결탁하고 또 그걸 가능하게 하는 법을 무리없이 만들고 통과시킬 것이다.
본디 대의 민주주의는 엘리트가 지배하는 과두제적 형태로 일탈할 가능성을 얼마간 품고있다. 정치 진입장벽이 높은 탓이다. 그 정도가 심하면 다수 유권자들은 소수 특권세력의 숙주로 전락한다. 뻐꾸기 새끼가 제 새끼들을 둥지밖으로 떨어뜨린 것도 모르고 열심히 벌레를 물어다 먹이는 어미 딱새처럼 . 대의 민주주의는 탁란 민주주의로 불러야 할 지경이다. 철학자 테오도오 아도르노가 말한 '객관적 권력'의 이데올로기가 깊숙이 내면화된 상태이기도 하다. 객관적 권력의 울타리 안에서는 싸울수록 객관적 권력의 가치만 공고해진다. -안영춘 한겨레신문 칼럼.
모든 것이 사진에서는 즉각적으로 주어져있다.
하지만 미래에 벌어질 일들을 감춰둔 채 보여준다. 한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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