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문장은 여전히 사물의 경계안과 밖을 서성이면서 언어화 되지 못하는 숱한 것들을 부유하듯 데리고 다니며 우리의 불명확한 사고의 틀을 뒤흔든다. 오히려 언어화되려 애쓰는 그 모호함이 훨씬 명징하게 다가온다. 소설책 뒤에 군말이라는 부록으로 남긴 한편한편 아름답고도 깊은 단편의 탄생일기를 작가는 친절하게 적어두었다. 그는 나이들어 갈수록 세상사의 후미진 곳에 있는 아픈 진실들을 외면하지 않고 두려움과 절망감을 느끼면서 그만의 차갑고 냉정한 서사구조와 무채색의 냉정한 언어로 세상밖으로 그들을 소환하여 말랑거리고 물러진 우리의 의식을 뒤흔든다. 그의 시선은 아직 삶쪽으로 향해 있어 그의 이웃들이 외롭지않을 것이다.
그가 말하고 있듯 고통과 절망을 말하기는 쉽지만 희망을 설정하는 일은 늘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희망쪽으로 섣불리 사람들을 호도하지 않고 담담하게 다큐처럼 그들의 삶을 드러내 준다. 하지만 작가의 참견과 헛된 희망을 설정하는 것 보다 사실적으로 드러난 소설속 이야기들의 담담함이 오히려 글 읽는 속도를 늦추고 우리를 멈춰세우며 공감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언젠가 수필에서 그는 김소월의 시 진달레에서 나오는 싯구처럼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는 꽃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하면서 생각없이 이리저리 군중에 휩쓸려 다니면서 자신을 잃어버리는 현대인들 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마치 사명처럼, 보이지 않는 신과 언약한 것 처럼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쓸쓸하면서도 감동스럽다. 2010년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의 발족으로 광복 이후 전쟁과 분단 , 개발독재와 군부독재,유신과 쿠테탈의 시대를 거치면서 벌어진 학살과 고문 인권침해를 조사한 결과를 종합보고서로 발간했는데 이 보고서가 증언하는 수없이 많은 국가 범죄의 야만성을 남북분단의 비극성을 상징히는 작은 어촌에 사는 이춘재라는 어부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엇비슷한 사건들이 정권의 안보논리로 활용되는 일은 지금도 여전하지 않은가. 오늘 한겨레 신문에서는 박정희 정권이 고문조작한 간첩단 사건, 인혁당원 이창복 선생의 글이 실렸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명예회복되고 국가로 부터 8년간의 징역살이와 고문에 대한 10억원의 손해배상을 받았지만 다시 과다배상에 대한 반환소송을 국가가 하면서 이자까지 합쳐 15억을 돌려줘야하는 빚고문으로 지금껏 고통받아 오다 역설적으로 문재인 정부가 아닌 보수정부의 법무부장관이 화해권고안을 수락하여 집을 팔아 5억원의 빚을 청산하게 되어 빚고문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말문이 막히는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부도덕한 권력의 힘은 강고하다. 한 시민으로서 감당해야 할 것들은 이렇게도 몸서리쳐지게 무겁고 끈질긴 것인가 보다. 존경하는 소설가 김훈선생이 건강하게 오랫동안 사시면서 힘들지만 펜을 놓지않고 세상의 아픈 곳들을 들여다보고 그의 상상력의 힘으로 그들을 다시 세상속으로 소환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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