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빈센트 나의 빈센트-정여울의 반 고흐 에세이 를 읽다

숨그네 2022. 9. 21. 12:14

몇년전 일기장에 빈센트의 이 그림 슬픔을 책에서 오려 붙여두었었다. 그리고 암스테르담 미술관에서 딸과 함께 본 이 작품의 참담한 슬픔과 아픔이 고스란히 다시 전해진다. 최근에 친구가 선물한 정여울의 빈센트 고흐의에세이를 읽다 다시 만난 그림. 그녀의 말 처럼 슬픔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실감나게 하는 작품이다. 축쳐져 늘어진 젖가슴과 웅크리고 앉은 두 무픞과 파고들듯이 수그린 머리와 늙은 팔다리의 모습은 가난의 흔적과 불행의 상처, 제대로 사랑받지 못하고 버림받은 시간들이 온전히 전해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거리의 여인이었던 연인 시엔을 그린게 아닌가 싶다. 그녀의 사생아까지 사랑으로 키우며 가정을 이루고자 애썼던 빈센트. 부모의 냉대와 심한 반대의 모욕감을 견디며 고흐는 고통받는 이 여인의 곁에서 서로의 상처받은 삶을 다시 일으켜세우고 사랑하며 살고 싶었을 것이다. 결국은 파탄으로 끝나버린 관계였지만 빈센트가 위로하고 싶어했던 가난한 사람들과 버림받은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공감은 늘 관계에서 힘들어했던 그를 머물게 하고 시선을 붙잡아두며 단순한 사물을 예술의 오브제로 삼는게 아니라 작품마다 그들의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들려준다. 정여울의 말처럼 빈센트는 탁월한 여성, 주목받는 여성이 아닌 고통받는 여성, 고립된 여성을 그림으로써 오히려 여성을 진정한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여성의 몸과 얼굴을 넘어서 여성의 마음과 삶의 흔적을 그리고 있다. 그림에 대상의 본질적인 모습을 붙잡아 두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빈센트의 애씀이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과 공감을 끌어내고 있는게 아닐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그린 <성경이 있는 정물>은 또 다른 빈센트의 내면을 작품에 사용된 오브제, 성경과 에밀졸라의 소설을 대비시키면서 그려낸다. 아버지로 상징되는 대타자와의 원만한 관계란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빈센트. 아버지의 요구대로 안락한 목사관에서 목회자로서 살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세상에 벌거숭이로 던져진 자신과 타자들과의 힘겨운 관계맺기를 통해 성경속 예수의 희생적 삶을 닮아가기 위해 분투했던 그는 본질적으로 아버지와 불화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 부모의 인정과 조건없는 사랑을 갈구할 수 밖에 없었던 고흐의 외로움과 그 외로움을 책읽기를 통한 그림그리기로 극복하려 했던 그. 결국은 그림으로 부모과 화해하려 했던 빈센트의 닿지 않은 시도와 실패는 아마도 내면의 폭발적인 광기를 더욱 증폭시키지 않았을까. 정여울의 말처럼 성경에 비해 가로로 바닥에 깔려있는 소설은 천상의 가치와 대립하는 지상의 가치로 보이기도 하며 천상의 이상적인 믿음을 지향하기보다 지상의 울퉁불퉁한 현실을 받아들이겠다는 빈센트의 무의식적 열망을 엿보게 하는 작품인것 같다.
전면에 크게 놓여있는 성경은 그와 평생 불화하며 살았던 아버지의 존재가 얼마나 육중하고 감당하기 어려웠는지를 실감나게 한다. 결국 자식은 부모의 인정과 사랑을 죽을 때 까지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주기를 자신의 세계에 작은 문이라도 달아서 그 곳에서 그나마 한결 바람으로 소통할 수 있기를. 그래서 덜 외롭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