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는 사회적 자아라는 외피와 남들이 모르는 자기 자신이라는 본질 사이에 넉넉한 공간이 있었다. 그 안에서 당신을 자유롭게 표현했다. 상냥하면서도 냉소적이었고 예민하면서도 대범하였으며 두루뭉실하게 넘어가면서도 꼬장꼬장했고, 가끔씩 스스로 정이 넘쳐서라고 생각하는 거칠고 심술맞운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그런 모습은 사실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던 약해지는 마음. 그것을 다잡을 때 짐짓 내보이는 모습이었다. -19쪽-
며칠전 친정엄마를 모셔오면서 나에게 끊임없이 다짐을 했던 건 며칠 만이라도 평화롭게 내 자신의 판단적인 자아를 죽이고 엄마를 그대로 받아들이자. 내 자신에게 언젠가부터 박혀있는 가시돋힌 말들과 염산처럼 독한 정서적 반응들을 없애고 단 며칠 만이라도 편안하게 서로 잘 지내보자 이렇게 자신을 다독이며 이제 할머니가 된 엄마를 모시고 왔다. 물론 비비안 고딕의 너무나 평범하지만 가장 어려운 엄마와 자신의 관계에 대한 회고록에 나온 엄마는 여러면에서 나의 엄마와 너무나 다르지만 그렇다해서 완전히 다른 모녀관계라고도 할 수 없는 측면들이 많다. 지리멸렬하면서도 너무도 명징하게 삶에 관섭하고 자신의 자아 한 부분을 쥐락펴락하고, 관계를 규정해버리는 모녀관계에 대한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성찰들이 생생하게 묘사가 되어있어서 나는 꾹꾹 웃기도, 때론 날선 신경이 팽팽해지기도, 이건 문화적인 차이일 수 있겠다며 뭔가 생경하고 어색한 우리 문화권에서는 경험되지 않을 것들에 대한 껄끄러움까지 공감하면서 그의 회고록을 읽어냈다. 마더존스 의 평처럼 지독할 정도로 솔직하고 은밀하며 과감한 글쓰기. 분명하고 독창적이고 빛나는 문체로 인간 보편의 내적 외적공간을 자극하고 확장한 비비안 고딕의 문장들이 쉼없이 연필로 밑줄긋기를 하게 만들었다. 공산주의자 였던 고딕의 엄마와 아빠. 아빠에 대한 로맨틱한 사랑에 자신의 독자적인 사회적 삶을 포기하고 숨어버렸지만 그 사랑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며 자신의 권테와 불안을 보상받는다.
-아빠가 죽고나자 엄마의 비애는 너무도 원초적이엇 생활을 전부 지배하였고 슬픔은 공기속에서 산소만 빨아들였다 집에 들어설 때마다 머리와 몸이 돌덩이처럼 무거워져 그저 원치 않는 곳으로 질질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
비비안 고딕은 엄마와의 치밀하면서도 권태스러운 관계의 그물망들을 촘춤히 엮어내면서 자신의 성장과정에 밑그림을 그려나간다.
특히나 엄마와 결투하듯 서로 찌르는 말들을 교환하면서도 애정과 연민을 놓치치 않는다. 이런 대화
“ 외롭겠지. 우리처럼. “ 엄마는 작년인가부터 속을 알 수 없는 오묘한 태도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허공을 바라본다.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는 듯한 아득한 표정속에 혼자 머문다. 그러나 이번의 혼자는 내게 무척 익숙한 그 혼자. 얼굴을 냉소적이고 불행한 가면으로 만들어 그 뒤에 숨거나 당신의 아픔과 실망을 하염없이 헤아리고 있을 때의 혼자와는 다르다. 이혼자에는 슬픔이 아닌 온화함이 깃들어 있다. 호기심과 흥미는 있어도 자기연민은 없다. -
이런 고딕의 통찰은 우리가 한번 쯤은 예전과는 다른 엄마의 모습을 갑자기 접할 때, 뭔가 단지 엄마와 자식이라는 관계에서 오는 감정을 넘어서서 한 인간으로서 저 멀리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나 또한 20 대 초에 자취방 창문너머를 망연히 보고 있는 엄마를 몰래 보면서 야릇하고 묘한 느낌을 받은 기억이 생생하다. 그것은 나와 생리적인 관계에 있는 엄마가 아닌 그저 나이들어 가는 60대 여인이 겪고 있는 쓸쓸함과 외로움이 묻어있는 표정이어서 당황스러우며서도 낯설지만 좋았다.
확실히 고딕의 엄마는 남편보다는 피붙이인 자식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고 자식의 삶을 보살피며 자신의 삶을 희생하거나 양보하는 우리나라의 엄마와는 사뭇 다른 구석이 많다. 그녀는 옷을 갈기갈기 찢으며 죽은 자를 애도하며 통곡한다는 중동의 장례식 모습처럼 남편의 죽음을 극적으로 자포자기하듯 통곡하고 비통함에 빠져 자식들에게 애도할 기회를 주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감정과 사랑 삶에 충실하다. 이 지점에서 나는 멈춰서서 잠시 생각에 잠긴다.
지난한 엄마와 주변 사람들과의 롤러코스트를 타는 듯한 어지러운 관계에서 고딕이 안정감을 찾는 곳은 <자기안의 직사각형 공간>이다.
- 그 속에서 빛과 공기가 들어오기 시작하고 그곳에서 사고가 명징해지고 언어가 풍부해지고 지성이 작동을 개시한다. 외로움. 불안. 자기연민으로 가득했던 내면의 공간이 확장된다.-
우리가 그렇듯 작가 고딕은 대학에 입학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그의 말처럼 대학은 그의 머리에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삶을 심고 영양분을 주어 그를 반역자로 길러냈고 그의 사람들 사이에서 살았으나 더이상 거기에 속한 사람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 곳에서 속으로 ㅅㅁ기는 생각과 겉으로 표현하는 생각의 차이를 처음 소개받았고 하나씩 익혀 나가기 시작했으며 그렇게 각자의 집안에서 불순분자 되어간 것이다. 대학은 모두의 해방구가 된 것이다.
내가 엄마를 비롯한 가족들과의 원초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선 내게 중요하고 절실했던 실존적인 이야기를 한번이라도 나눠보지 못한 것. 관계가 메마르고 이야기가 먹고 잠자는 생존적인 것 너머를 가보지 못한 것이 어쩌면 가족들을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사람들로 만들지는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우리에게 익숙한 일들 - 엄마를 분노로 떨게 하고 우리 사이를 갈라놓은 건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엄마는 학교에 간다는 게 곧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는 뜻이라는 것. 조리있고 당당하게 자기 생각을 표현하게 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충격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이런 문장. 결혼을 이상화시키지 마. 결혼이 끝나버리니까. 공허감은 스스로 채울 수 있는 거야. -
- 엄마는 당신의 악착스러운 불행이 어떤 면에서 상대방에 대한 비하이고 판단이라는 사실을 읽지 못한다. -
여든의 엄마와 함께 있는 고딕
- 나는 엄마의 인생 저장소야. “
“ 만약 지금이라도 아빠가 일하러 가지 말라고 하면 안 할 거야?
“ 지옥으로 꺼지라고 하겠지 “
“ 이게 네 복이다. 너도 더 좋은 엄마 밑에서 태어났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세상천지 하나밖에 없는 엄마가 이것 밖에 안 되는 사람이야.”
“오랫만에 맞는 말 하셨네”
- 내 생각엔 더도 덜도 말고 딱 1분이라도그저 이세상에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기울 일 수 있을 정도로 그 긴긴 세월을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우리 두사람 모두 다 감격하는 듯했다. 이 안정적인 관계가 언제 휘발될 지 모르지만 어쩌면 끊임없는 변화, 유동적인 상태야말로 우리가 날마다 맞닥뜨리는 진실이 아닐까한다. 이 불안정성이야말로 그 자체로 놀라운 일이었다. 인생의 신비와 약속을 관통하는 진리가 아닐까한다. 서로 얼굴을 가까이 맞대지 않고 어느정도의 거리감이 영구적으로 성취되었다. 엄마는 그럼에도 인생에서 누릴것이 아빠의 사랑밖에 없었다고. 그 사랑을 사랑했다고. 아니면 뭘 어쩔 수 있었겠냐고. -
“ 엄마는 그냥 아빠의 사랑이라는 개념안에 머물고 싶었던 거잖아. 그게 미친 짓이었다고 엄마의 30년 사랑이라는 개념안에서 살았다니까. 엄마도 삶이라는 걸 살 수 있었어. “
“ 그러면 엄마랑 좀 멀리 떨어져 살지 그랬니? 내 인생에서 멀리 떠나버리지 그랬어. 내가 말릴 사람도 아니고”
“ 안 그럴 거 같아. 엄마. “
그렇다. 안 그럴 것 같다. 깨달음이 삶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더욱이 엄마와 자식의 관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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