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독서 모임에서 미국작가 필립로스가 젊은 시절 쓴 소설 <울분>을 함께 읽고 토론 시간을 가졌다.
작고한 철학인문학자 김진영이 쓴 < 상처로 숨 쉬는 법>에서 언급한 <울분>은 일상을 살아가는 소시민적인 평범한 가족들이 겪게 되는 사소하면서도 중대한 일생의 결단을 내리는 모든 과정에서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무시무시한 객관적인 권력이 작동하고 있고 그로 인해 불가항력적으로 삶의 파탄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일련의 과정들을 소설로 엮어 내고 있다. 1950년대 미국 뉴저지의 주 뉴어크의 유대인 동네에서 정육점을 하는 아버지한테서 태어나 가족과 친척 가운데 처음으로 대학에 진학한 청년 마커스 매스너의 젊은 날을 그린 소설이다. 매스너의 대학시절동안 그가 마주한 대학교 기숙사 친구들, 그리고 학생처장, 첫 여자친구 올리비아, 그리고 부모님들과의 관계, 그가 속절없이 징병으로 끌려가 한국전쟁에서 사망하게 된 후 그의 짧은 생에 대한 회상으로 소설은 짜여있다. 그의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 같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현실의 우리의 모습을 반추하게 하는 서사의 야무지고 절묘한 묘사와 무게가 소설 속 인간들과 상황들에 몰입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되묻는다. 매 순간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운명을 쥐락펴락하는 운명적인 그물코는 그 정체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자신을 이 몽매하고 잔혹한 구도에서 구원할 수 있는가. 어떤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야지 사회적인 주요 권력구조에서 오롯하게 자신의 자유의지로 요망한 괴물 같은 그물코에 속절없이 구속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소설을 읽는 내내 궁금했다. 가족의 생계수단을 유지하기 위해 평생 피냄새를 맡으며 자식의 성공을 위해 살아온 매스너의 아버지가 자식을 대학에 보내면서 느닷없이 찾아온 정체 모를 불안함과 두려움은 그저 근거 없는 것이었을까.
소설에서는 분명한 원인을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세상을 움직이는 객관적인 권력의 손아귀에서 자식이 견뎌낼 수 있는 힘의 한계와 세상의 부조리함을 아마 삶을 살아오면서 매순간 ,힘없는 사람들이 알게 되는 무의식적 자각으로 짐작했을 것이다. 마치 물가에서 위태하게 놀고 있는 아이를 불안하게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처럼. 이미 품에서 벗어나 세상 속으로 걸어가는 아들이 직면하게 될 세상의 불합리성과 그로 인한 횡포와 상처를. 하지만 매스너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알고는 있지만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무력함을. 그래서 그는 아들을 그토록 집안에 잡아두고 문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결국자신의 불안과 두려움대로 매스너는 죽음으로 아버지에게 돌아온다. 울분을 번역한 정영목의 말처럼 “인간이 감당할 수 없어 갖다 붙인 모든 인공물을 벗겨낸 자연의 세계를 보는 듯한 느낌을 지을 수 없다. 그리고 깜깜한 밤에 번갯불에 드러나는 풍경을 보는 듯한 그 서늘한 순간이면 왠지 그전부터 계속 그 자리에 있었을 것 같은 로스의 부릅뜬 눈도 함께 보는 듯하다.” 이 소설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으며 지금 어디에 있으며 그리고 우리는 어떤 삶의 태도로 살아야 하는지 질문하게 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줄을 그은 부분을 옮겨본다.
나는 늘 자신을 밀어붙었다. 늘 어떤 목표를 추구했다. 부모를 절대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주문을 전달하고 닭털을 뽑고, 도마를 닦고 a를 받았다 아버지의 비합리적인 구속을 벗어나려고 로버트 트리트에서 학교를 옮겼다.
누가 말해줄 수 있을까. 사실 죽음이 끝없는 무가 아니라 영원히 자기 자신에 대해 숙고하는 기억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았다 한들 죽음이 덜 무서웠을까. 어쩌면 이렇게 영원히 기억하는 과정은 그저 망각으로 가는 대기실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 세는 기억이 없는 곳이 아니었다. 기억이 전부인 곳이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기억된 과거일 뿐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과거를 얼마나 더 감당할 수 있을까? 육체에서 분리된 채 이 기억의 동굴 속에 숨어서 , 시계 없는 세상에서 시곗바늘이 뱅뱅 돌도록 나 자신에게 나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하고 있으니, 벌써 백만 년이나 이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의 십구 년이라는 짧은 세월이 피할 수 없이 여기에 있다. 집요하게 존재한다.
흉터, 음주경력, 요양소, 연약함, 강인함 나는 그 모든 것의 노예가 되어 있었다. 그 모든 것의 영웅적인 면모에..
영어에 가장 아름다운 단어를 노래하고 있었다. ‘울 분.
올리비아는 순간 스위치를 내기 거나 플러그를 뽑아버린 것처럼. 폭풍 같은 우울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그 애의 얼굴이 그냥 꺼져버렸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는 처음으로 아름다움도 꺼져버렸다. 사라져 버렸다.
아버지가 논란의 여지없이, 압제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방식으로, 감정이 섞이지 않은 방식으로 사장이던 시절, 그리고 나는 그의 월급을 받는 사람으로서 놀라울 정도로 자유롭다고 느끼던 시절. 그렇게 믿던 사람이 이제는 매사에 수만 가지 걱정을 해. 그 모든 비극에도 메스너 집안 전체를 지탱해 온 사람이 말이다. 아버지에게 무슨 끔찍한 일이 일어난 거냐? 느닷없이 , 쉰 살에 , 내가 아는 것은 뭔가가 내 남편을 다른 사람으로 바꿔놓았다는 거야.
두려움과 공포..
아버지의 설명이 안 되는 변신, 도대체 어디서 재앙의 강렬한 암시를 받았는지 사람이 갑자기 완전히 변해버린 그 상황이 어떤 궤멸적인 힘을 발휘하는지.
흉터가 어머니를 사로잡은 것이다. 올리비아는 그것을 알았고 나도 알았다.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누가 다른 어떤 것에 관해 무슨 말을 하든지 그 말을 듣는 것 자체가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 아가씨는 안에 온통 눈물이야. 그 아가씨의 눈물과 맞설 수 있니, 마커스?
약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해를 주는 것이 아니야. 그 사람들의 약점이 바로 그 사람들의 힘이 될 수도 있어. 그렇게 불안정한 사람은 너에게 위험해.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와이스버그 대학의 도덕적 관습에 , 나아가 내 삶의 압제자인 독선에 말려들어 김 빠진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점이었다. 나는 사람을 옥죄는 그 독선이 올리비아를 미치게 만든 것이라고 얼마든지 결론을 내릴 용의가 있었다. 가족에게서 원인을 찾지 마세요. 엄마. 가엾을 정도로 관습적인 인간으로 여기 왔기 때문에 여자애가 자기를 빨아주었다는 이유로 여자애를 신뢰하지도 못했잖아요…
엄마, 아버지, 올리비아. 나는 당신들을 생각하고 있단 말이야
아무런 응답이 없다. 아무리 나 자신을 드러내려고 시도해도 아무런 응압도 끌어낼 수 없다. 내 정신을 제외하고는 모든 정신이 사라져 버렸다. 아무런 응답도 없다. 깊디깊은 슬픔.
그의 정신을 제외한 모든 것이 림보상태 (지옥과 천국 사이에 있는 지옥의 변방을 가리키는 말, 여기서는 죽음의 중간상태)에 있었다.
얘야? 마커스 제발. 문은 안 잠겨있어. 집으로 와 그러고 나서 그녀는 문. 그 지긋지긋한 자물쇠가 달린 문으로 가서 그것을 열었다. 활짝 열었다. 그리고 거기 서서, 소용없는 줄 알면서도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의 아버지만, 플러서만, 엘윈만, 코드웰만, 올리비아만 코틀러만… 아이었다면..
그래, 오래되고 도전적인 미국의 “좆 까, 씨발” 그것으로 정육점집 아들은 끝이었다. 그의 스무 살 생일을 석 달 남기고 죽은 마커스 매스너는 그이 대학 동기 가운데 불운하게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유일한 학생이었다.
매우 평범하고 우연적인 선택이 끔찍하고, 불가해한 경로를 거쳐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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