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속초

숨그네 2023. 8. 20. 12:55

1년 전 속초의 동네서점인 동아서점과 설악산 그리고 자작나무숲을 보러 왔었다.  두 번째 속초여행. 동아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속초 도슨트 김영건 씨가 쓴 "속초"라는 책은 좋은 길잡이가 되어줬다. 그이의 말처럼 속초는 실향민의 도시에서 가장 트렌디한 도시로 변화하고 있는 중이었다. 
설악산과 동해를 병풍처럼 두른 도시 속초. 산과 호수 바다를 동시에 만날 수 있는 보석 같은 땅. 속초. 속초에 있는 영량호와 청초호는 원래 바다였지만 파도에 의해 모래톱이 건너편 육지에 닿게 되어 생긴 짠물로 된 석호라 한다. 이번에는 영랑호를 저녁에 느긋하게 걸어 다녔지만 다음에는 관동팔경의 하나라는 청초호 둘레를 꼭 걸어봐야지. 
속초라는 지명의 유래는 풀을 묶다는 뜻이란다. 속새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이는 강원도 이북 습지에서 많이 나는 풀이란다. 
 
 

1951년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 남한의 일대로 수복되었던 이곳은 수산업이 주업인 피난민들이 거의 인구 구성의 70퍼센트였다고 한다. 어장을 따라 이북 고향에서 맨몸으로 피란 온 실향민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몰려들어 근근이 삶을 이어갔다고 한다. 명태는 휴전 인근에 황금어장을 형성했으나 1968년 11월 어로 한계선 남하로 명태황금어장을 잃고 이후 명태는 동해안에서 점점 사라져 가고 2000년대 이후 붉은 대게가 속초의 대표 어종으로 부상했다고 한다. 피난민들의 생활터전이자 분단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아바이 마을길을 간다.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피란민들은 아예 이곳에 터를 잡을 수밖에 없었고,  흥남철수작전 때 미군 군함을 타고 부산에 내려온 사람들 역시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고향이 가까운 속초에 주저앉아 망향을 하며 삶을 이어갔다고 한다. 
 

<가을 동화>라는 드라마에서 은서의 집이 있었던 곳.  속초 7번 국도가 생기기 전까지 청호동과 속초시내(중앙동)는 단절되어 있었는데 청호동에서 시내로 나가려면 다름 이 갯배를 타고 청초호를 건너갔다고 한다. 7번 국도 위를 자동차가 달릴 수 있지만 여전히 갯배를 타고 물길을 건너는 사람들이 많고 더구나 갯배는 속초의 관광자원으로 이용되고 있단다. 

속초에 오면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왔던 곳. 생각나는 건 수평선이 보이는 동해바다와 오징어다. 오징어를 사러 중앙동 시장에 왔다가 말로만 듣던 갯배를 타본다. 청초호와 중앙동을 잇는 뗏목처럼 생긴 객선으로 35명 이상된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던 갯배는 이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간혹 장난기가 많아 보이는 중년의 아저씨가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들에게 배 가운데 놓인 쇠줄을 끌어당기게 한다. 지금은 소문으로만 남은 섬진강구례강변에서 건거편으로 공중에 매달린 줄을 당기며 조그만 조각배를 타고 건너던 젊었을 적이 생각난다. 세월 속으로 사라져 버리지 않고 살아남은 것들이 자아내는 알싸한 추억의 냄새는 찐하고 강하다.

갯배를 타고 건너편 아바이 마을에 왔다. 옛날에는 유독 함경도 출신의 실향민이 많았다던 속초. 이곳은 함흥냉면, 독특한 아바이순대와 아마이젓갈, 가자미식해, 명태식해라는 실향민 음식문화로 여행객의 발길을 끄는 곳이다.

속초민속박물관에서 제공한 사진들이 갯배 선착장에 전시되어 있다. 그 당시  괴나리봇짐을 싸서 이고 지고 전쟁통에 살만한 곳을 찾아 나섰던 피란민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 가난한 사람들의 고단한 생활이 여실하다.

추운 겨울날 언 강을 망방이로 두들겨 식구들의 옷가지를 망태에 담아 와서 보채는 어린아이를 등에 업고 갯가에 쭈그려 앉아서 빨래를 하는 여인들. 그때 그 시절의 어머니들은 지금의 어머니들보다 훨씬 강인하고 짠해 보인다. 그들의 일상이 쌓여서 속초의 오늘이 있었겠지. 

마른 명태를 싸리로 한 쾌에 20마리씩 꿰는 작업을 관태라고 한단다. 지금은 명태잡이를 할 수 없는 속초의 관태작업은 먼 과거가 되어버렸다. 오징어잡이로 만선이 되어 돌아오는 선창가는 그때나 지금이나 어민들에게는 풍어의 기쁨으로 어장들이 들썩들썩했겠지. 

설악산은 흔들바위, 비룡폭포, 비선대로 알려진 탐방로가 속초에 있다. 설악동에 대규모 관광단지가 조성되면서 설악산을 찾는 등산객들로 사시사철 북적이는 곳. 설악동에서 곤돌라를 타고  권금성산장에 올라가 본다. 더운 날씨에도 사람들이 남녀노소 설악산 비경을 잠시나마 보기 위해 가뿐 숨을 들이쉬며 산에 오른다. 

 

속초 관광수산시장은 속초인들에게는 중앙시장이라고 불린다. 청호동(아바이마을)과 시내를 이어주는 주요 교통수단이었던 갯배선착장이 가까이 있으면서 동명항과 청초호의 사이에 위치한 중앙동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 수밖에 없었단다. 오징어를 비롯한 싱싱한 해산물과 새우튀김, 닭강정, 아바이순대 등 속초의 다양한 먹거리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 중앙시장이다. 옛날에 비해 너무도 단정하고 깔끔하게 정비된 중앙시장통에는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빈다. 이곳에서 튀김을 튀기고 닭강정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은 어느새 외국노동자들로 채워지고 있는 듯하다. 속초는 젓갈 중에서도 아주 독특한 식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식해"라는 건데 생선을 소금이 아닌 곡식으로 발효시킨 음식이다. 가자미식해와 명태식해가 대표적인 것이라 한다. 

속초에는 오징어순대가 유명하다. 오징어에 다양한 속재료를 집어넣어 만드는 오징어순대 외에 실향민들의 음식으로 대표되는 아바이순대는 돼지 대창에 찹쌀밥과 부재료를 넣은 속초의 향토음식이라 한다. 그래서 중앙시장 가장 바깥쪽에 위치한 순대골목은 커다란 양은솥을 걸고 순댓국을 팔팔 끓이고 있어서 구수한 냄새가 진동한단다. 내가 먹은 아바이 순대는 새우젓이 풀린 오묘한 국물과 탱글탱글한 돼지머리고기 등 전혀 비리거나 역한 맛이 아니라 아주 고소하고 깊은 맛이 있어서 순댓국과 순대를 동시에 시켜서 아주 푸짐하게 먹었다. 

속초에는 김종순 가자미식해가 유명하다는데 이번에는 가보지 못했다. 종순 할머니의 비법에 따르면 가자미의 지느러미를 일일이 다 잘라내어 비린내를 없댄다고 한다. 그렇게 손질된 가자미를 소금에 재워 이틀밤을 보낸 후에 조밥에 담그면 점차 가자미식해의 모습이 갖춰진다고 한다. 여행을 하면서 맛집을 인터넷검색으로 찾아다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직접 현지에 사시는 분들에게 여쭤보는 것이 더 실속 있는 것 같아서다. 오징어와 황태를 구입했던 건어물상회 아저씨와 친분을 튼지라 그분에게 귀한 정보를 많이 얻었다. 가벼운 점심식사로 속초 막국수집을 소개해 주셨다. 진미 막국수집에서 파는 동치미 막국수는 진짜 진미다. 그리고 갯배 선착장 근처에 있는 벌봉생선구이집은 신선한 생선인 가자미, 임연수어를 맛볼 수 있는 맛집이다. 
 
 

북카페 완벽한 날들... 이번 여행은 속초 문우당 서림과 완벽한 날들 을 방문하는 것이 하이라이트. 책방방문기는 따로 작성하였다. 어쨌든 이 책방의 정체성은 쉼과 휴식. 그리고 무엇보다 북스테이를 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 동아서점 김영건 씨에 따르면 이 책방 주인은 게스트하우스를 끊임없이 청소하고 정리하고 손님맞이하기 위해 애쓰고 1층에 있는 책방의 책을 큐레이션하는 육체노동을 통해 오히려 삶의 균형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세상일로 고된 마음의 피난처 같은 곳. 도망치고 싶을 때조차 쉴 곳을 마련해 주는 곳. 그들이 혼자가 아니도록 느끼게 해주는 곳. 그런 곳이 완벽한 날들이라는 북스테이 카페라고... 나도 그런 공간을 꿈꾼다. 서로 기댈 수 있는 곳. 

칠성 조선소.. 부모님들이 해 오던 일을 자녀들이 새롭게 리메이크해서 지속가능한 사업으로 혹은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일은 참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다음 여행을 기획해 보면서 꼭 가보고 싶은 속초의 칠성 조선소 카페를 생각해 본다.
이곳은 현재 커피를 파는 살롱과 각종 공연 전시가 이루어지는 뮤지엄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선박제작과 디자인을 공부하러 미국에 갔던 자녀들이 돌아와 한물 간 부모님들의 조선소를 다시 리모델링해서 '칠성조선소 살롱'을 만들었다 한다. 배를 만들거나 수리하던 공간을 배를 전시하는 공간으로 바꾸고 봄에는 뮤지션들을 초대해 칠성조선소 뮤직페스티벌을 열기도 한단다. 3대째 칠성조선소를 만들어 가고 있는 백 년 가계 칠성조선소 살롱의 사람들이 보고 싶다. 그리고 그들이 내린 핸드드립 커피도 꼭 마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