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최은영 소설을 읽다

숨그네 2024. 1. 29. 12:03

 
「 깊은 애정과 투명한 미움이 복잡하게 얽힐 때 한 시절 내가 건네받은 사랑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될 때
스스로의 몫을 고민하며 온 마음으로 써 내려가는 7편의 긴 편지..」
 
「 최은영은 정치적 치열성에 걸맞은 빈틈 업는 서사의 힘을 구사하는 보기  드문 작가이다. 그의 문장은 외로움과 다정함, 로컬과 글롤벌, 분노와 체념의 살얼음판이다. 우리의 일상이 여기 있다. 긴장과 부드러움이 교차하는 그의 문장에 잠겨들 무렵 ,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운다.-정희진 」
 
<밝은 밤 > 이후 두 번째 그녀의 소설을 읽었다. <밝은 밤>에서는 몇 세대에 걸친 긴 서사를 끌고 가는 그녀의 깊고 안정된 호흡과 역사흐름의 큰 틀에서 실핏줄처럼 살아 숨 쉬는 도처 한 민초들의 삶을 되살리는 현장감 넘치는 묘사와 치열한 작가정신에 놀랬다. AI와 영상매체가 글을 대신하는 이 시대에 자기 계발도서도 아닌 소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요즘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는 질문이다. 문학의 죽음을 섣불리 외치는 사람들에 편승해서 소설과 시 읽기의 무모함과 몰가치성을 이야기하는 걸까. 
우리는 피와 살 그리고 마음을 가진 실존적인 존재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살피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마음을 살피는 것이 관계의 기본이고 관계의 기본을 알아야 우리는 소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소통의 부재는 온갖 편협함과 몰이해 그리고 더 나아가 편집증적 집착과 적대적인 반감 그리고 고립을 겪을 수밖에 없다. 
소설 읽기는 특히 요즘처럼 직접적인 관계가 시들해지고 그 틈에 비대면 소셜미디어와 OTT영상에 대한 과몰입으로 인해 관계성이 모호해지면서 사람살이가 흔들릴 때, 더 나아가 자아마저 상실할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를 가만히 책 속의 인간군상들과 대면하게 하고 그 대면에서 자신이 겪은 외로움과 설움 그리고 말 못 할 억울함과 분노를 함께 나눌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비로소 소설 속 타인의 삶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을 설득하고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얻게 된다. 
더 나아가 내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차별적인 자아에서 동질적인 인류로 나아갈 수 있는 좀 거창하지만 그런 매개가 소설 읽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너의 고민이 나의 고민이 되고 나의 아픔과 고통이 너의 아픔과 고통이 될 때 우리는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고 힘이 될 수 있지 않은가.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생각을 형성하고 있는 잘못된 편견과 오해 그리고 잘못된 인식을 걷어내는 가장 긴밀하고 직접적인 매개가 난 소설과 인문서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부조화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의 삶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봐야 이런 글들이 가능할까. 최소한 인간에 대한 애정과 관계에 대한 깊은 사유가 기본이 되어야 만이 한 편의 글이 완성될 것이다. 최은영의 7편의 단편은 한 편 한 편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아픈 채찍과 따스한 아침햇살이 동시에 있는 아름다운 소설이다. 인류는 아무리 문명적으로 발전하고 혁신된 사회에 살게 되더라도 근본적으로 인간이 겪게 되는 오만가지 감정의 파고는 선사시대 이래 동일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은행에서 일하는 화자는 영어로 글을 읽고 쓰는 수업에 참여한  대학교 학사 3학년 편입생이다.
 
" 나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지만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 언어화될 때 행복했고, 그 행복이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던 종류의 감정이라는 걸 가만히 그곳에 앉아 깨닫곤 했다. 가끔은 뜻도 없이 눈물이 나기도 했다. 너무 오래 헤매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
 
우연히 그녀의 수업을 이끄는 강사가 쓴 책을 읽게 된다. 마치 스크류바를 먹는 순간만큼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처럼 아프고 폭력적인 순간들을 무심하고 무정하게 묘사하는 그녀의 글 속에는 자신이 경험했던 국가폭력의 상징적인 사태인 용산이 있다. 무정해 보였던 화자의 글과는 반대로 그녀는 수업시간에 대책 없이 화자의 말을 자르고 함부로 평가하려고 하는 이에 대해 단호히 사과를 요구하는 그녀. 때로는 편향된 관점을 지녔다고 비판받을까 봐 안전한 글쓰기를 택한 더 용감해지길 주저했던 그녀의 글을 맹렬히 비판하는 동료들의 날 선 날에 그녀는 균형감 있는 글이 아닌가요 라며 변호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화자는 나약한 자신을 보게 된다. 그녀는 말한다. 어떤 사안에 대한 자기 입장이 없다는 것은 그것이 자기 일이 아니라고 고백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기득권에 대한 능동적인 순종일 뿐이라고.
그녀는 발표자의 글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에요.라고 에둘러 말하면서 모욕감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를 보이나 이미 화자는 자신을 보게 된다. 
 
"기억하는 일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영혼을, 자신의 영혼을 증명하는 행동이다"
정교수가 아닌 그녀에게 은연중 쏟아졌던 학생들의 모욕을 견뎌내는 그녀에게서 화자는 이렇게 되뇐다. 
 
" 자신의 조건을 탓하지 않고, 자신이 겪는 부당함을 인지하면서도 인정은 하지 않으려는 마음 같은 것. 그 마음이 그녀를 지켜주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동의할 순 없지만 ,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라도 생각한다. 지금은."
 
결국 그녀는 어딘가에 있을 그녀를 생각한다. " 이미 사라져 버린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그려진 세상이 자신이 지금 살고 있는 세상보다도 언제나 더 가깝게 느껴졌다고. 그럴 때면 벌어진 상처로 빛이 들어오는 기분이었다고. '더 가보고 싶었다.'라고 말한 그녀처럼 화자도 더 가보고 싶다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빛. 그 빛나던 강사는 화자가 찾을 수 없는 이가 되었지만 그 모습이 흩어지지 않도록 어둠 속에서 그녀는 잠시 눈을 감는다. 
 
나에게 빛을 던져주었던 과거의 수없이 아름다웠던 이들의 얼굴과 이름들을 가만히 호명해 본다. 그들의 삶 속에 희미한 빛으로 그리고 나의 삶에 희미한 빛으로 남아있을 삶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불의에 저항하고자 했던 그들의 헌신적인 젊음.
때로는 힘든 삶에서 비켜나 자신의 성공에 투신했던 이들이 지금에 와서 좌빨이라는 유령 같은 말로 그들의 삶을 더럽게 매도하고 근거 없는 모욕을  퍼붓지만 우리 모두는 그들의 빛에 힘입어 어둠을 뚫고 터널을 건널 수 있지 않았던가. 
가슴아리고 아픈 단편이지만 그 희미한 빛을 간직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어 희망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다. 
 
<몫>
대학 편집부 수습기자였던 나 그리고 편집부 선배였던 정윤, 용욱, 희영의 이야기.
 
정윤: 수습세미나 간사. 폭력적인 사회적인 이슈가 학내에 들끓었고 그것들을 취재해서 건조하고 정연한 문장으로 표현하곤 했던 리더. 늘  수습기사였던 당신을 응원한 그녀. 시류를 읽어야 된다며 대학원에서 일어난 교수 성희롱 사건분석글을 쓰겠다던 희영을 당황하게 만든 용욱에게 이건 일개 여성문제가 아니라 대학원 사회의 기형적인 권력구조에 대한 문제라며 희영의 주제를 수면 위로 올려 회의를 통과시킨 그녀. 하지만 그녀는 약간은 교조적인 관점을 가진 용욱과 결혼한다. 그리고 현실로 뛰어들어가 자신이 품은 이상을 실현시키고자 했던 희영과 결별한다. 
 
희영: 타고난 관찰력과 자기 생각을 끝까지 끌어가는 용기,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 해주는 지력... 그녀는 타인의 상처에 깊이 공감했고, 상처의 조건에 대한 직관을 지니고 있었다. 글쓰기에서는 빛날 수 있으나 삶에서는 도리어 해가 되는 재능.
희영과 정윤은 가족주의와 가족폭력방지법 제정운동의 역사를 같이 정리하고 여성폭력과 관련된 사건을 취재하고 글을 쓴다. 어떤 측면에서는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이지만 정윤은 희영을 통해 여성문제도 오랫동안 남자들이 시선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미군에게 살해당한 기지촌 여성의 추모집회에게 미군을 성토하며 외치는  범죄는 모국에서 강간은 미국에서 라고 외치며  번져나간 미묘한 웃음들. 그리고 자궁에 미국 콜라병이 꽂힌 참혹하게 살해당한 여성신체의 전시..
희영과 나는  현장에서 얼음장이 된다. 폭력적인 언사로 폭력을 제압할 수 있을까. 여성, 그것도 기지촌 여성문제에 접근하는 폭력적인 방식에 경악할 수밖에..
희영은 이후 그렇게 멸시하고 인간 취급도 안 하던 사람을 민족의 누이라 부르는 이 형용모순을 해석해보고 싶어 한다. 
단지 정윤과 편집부원이 생각했던 구조적인 모순, 기지촌은 민족모순과 계급모순 아래에서 배태된 문제라는 것을 떠나 여자들이 맞고 강간당하고 죽임 당하는 것이 민족이 분단되고 기지촌에서 일하는 계급의 문제 때문만은 아닐 것이기에 희영은 여성의 문제에 더 깊이 천착하고자 한다. 단지 여성문제가 그런 큰 구조속에 포섭된 지엽적인 것이 아니기에.
희영과 정윤의 갈라섬은 정윤이 희영의 계급성을 지적하며 인신공격하듯 말하면서부터일 것이다. 이후 정윤은 사학과 대학원에 진학하고 희영은 조용히 기지촌 활동가가 된다. 희영이 언젠가 당신을 초대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었어,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나는 어느 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 털어버리고 사른 사람들.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정의롭다는 느낌을 얻고 영영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 편집부 할 때 나는 그런 사람이었던 같아. 내가 그랬다는 거야." 희영은 외로운 사랑을 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희영은 병마와 싸우다 외롭게 죽는다. 정윤에겐 "내가 언니에게 관대하지 못했던 것을 용서해요. 그렇게 사랑하고 싶었으면서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거..... 아주 오래 보고 싶었어요. 잘 지내요"
 
뜨거웠던 젊음의 한 시절을 통과해서  어느새 사회의 기득권이 되었다. 점차 옅어지고 하나둘 희미해지거나 잃어버리거나 어쩌면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의도적으로 놓아버리는 올바름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정치의식. 희영이 되기 싫어했던 사람. 읽고 쓰는 것 만으로 내 몫을 다 했다 그리고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정의롭다고 느끼는 부류가 되고 종국에는 정치허무주의와 냉소주의자로 전락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 희영의 때 이른 죽음과 그녀의 곡진한 삶의 흔적과 여린 사랑법이 우리를 울린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있는지 아프게 묻고 있다. 
 
<일 년>
풍력발전소 3년 차 정직원과 인턴 사이로 만난 두 사람. 우연찮게 함께 카풀을 하면서 둘은 가까워진다. 지수와 다희
지수는 팀원들이 간혹 쏟아내는 무의미하고 진부한 말들을 참을 수 없다. 현재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지 자랑하는 말투, 자기가 느끼는 감정을 다 드러낼 수 있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생각나는 대로 다 할 수 있는, 자기 특권을 과시하는 사람들의 행태를 지수는 못마땅해한다. 그들과 쉬 섞이질 못하는 것이다. 다희는 직원들 사이에서 외계인 같다. 사소한 주제라도 사적인 대화를 꺼리는 정직원들, 마치 공기처럼 존재하나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취급하는 그들 사이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법을 습득한다. 겉돌지 않고 그들의 세계에 그녀의 방식으로 진입한다. 덜 상처받기 위해 자신의 루트를 발견한 것. 그리고 마치 가끔씩 벌을 주듯 폭음을 하고 대낮의 사무실에선 웃으며 환하게 대화한다. 때로는 다른 입사동기들과 차별해서 자신을 인정해 주는 정직원의 말에 위로를 받기도 하고 안도와 기쁨을 느끼기도 하는 그녀. 끊임없이 이어지는 존재의 계층 사다리에서 뒤 따르는 이들은 나의 존재를 받쳐주는 물적 존재들인가. 
 
다희만의 인턴 생존법에 다소 불편함을 느끼는 지수. 그녀는 다희에게 어떤 일에서도 서운함을 느끼지 않으려 노력한다.
 
" 서운한다는 감정에는 폭력적인 데가 있었으니까. 넌  내 뜻대로 반응해야 해라는 마음. 서운함은 원망보다도 옅고 미움보다는 직접적이지 않지만, 그런 감정들과 아주 가까이 붙어 있으니까. "
 
사람을 자신 가까이 두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어쩔 땐 소행성들 간의 거리만큼 어려운 것이 타인과의 관계 맺음일 것이다. 서로의 사회적 위치, 입장, 감정표현 방법, 언어의 한계, 취향과 해석의 차이등등
다희와 지수의 관계에서도 그런 모습이 보인다. 가까워지고 쉽지만 상처 줄까 봐 상처받을까 봐 서로 유예하고 연기한 모든 말들과 행동들은 실현되지 못하고 겉돈다. 
 
"상대가 자신의 진심을 들었다는 이유로 상대를 증오하기도 하니까. 애초에 그녀는 같은 이야기를 할수록 서로 가까워진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는 말도. 그렇지만 다희가 그녀로 하여금 말하게 했고, 그 사실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말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에게서 멀어지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는 사실도. 하지만 그녀는 그중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
 
"아무리 누추한 마음이라 하더라도 서로를 마주 볼 때면 더는 누추한 채로만 남지 않는다. "
 
하지만 그들은 서로의 삶에서 비켜나 있었다. 누추하지만 누추한 대로 서로 바라봐주고 서로의 거울에 비친 모습이 아름답지 못할지라고 그 추함과 비루함을 품어줄 수 있는 관계가 얼마나 될까. 상처받은 채로 아물지 못하고 여전히 상처에서 진물을 흘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내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아니 나는 얼마나 더 시간이 흘러야 허물을 벗을 수 있는가. 
 
< 답신>
어리고 슬프고 , 고립되고, 힘이 되어줄 사람하나 없는 자기편하나 없는 자매. 어린 엄마가 떠나고 고모할머니와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맡겨진 자매. 그들 중 동생은 자라면서 결코 타인에게 호감을 살 수 없는 사람 멸시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이상한 믿음을 갖게 된데 그럴수록 남들에게 더 맞춰주고 남들이 자기를 좋아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매번 고민하고 , 남들이 하자는 대로 끌려다니고 남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느라 애쓰는 , 그리고 누군가의 짐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된다. 언니는 알바를 하며 고등학교를 다니다 교사와 교제를 하게 되고 임신해서 결혼하게 된다. 지지받고 사랑받지 못한 언니에게 남편은 거절하거나 흠잡거나 반항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던 언니는 결국 자연스럽게 남편의 신체적인 폭력과 폭언 그리고 부적절한 성적인 일탈과 외도를 묵인하고  진실을 외면한다. 생존이 실제적인 진실을 가린다. 
형부의 부적절한 학생과의 성적인 접촉을 목격하지만 동생은 언니에게 말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언니의 집에서 형부의 모욕적인 언사와 언니의 오해로 인해 형부와 심한 몸싸움을 하고 그녀는 법정에서 결국 동생을 외면하고 거짓된 진술을 한 언니로 인해 형이 집행되어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그녀는 말한다. " 있는 일을 없는 일로 두는 것. 모른 척하는 것. 그레 우리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대하는 우리의 오래된 습관이었던 거야. 그건 서로가 서로에게 결정적으로 힘이 되어줄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방식이기도 했지, 그렇게 작기 자신을 속이는 거야. 다 괜찮다고. 별일 아니라고. "
 
그리고 "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범죄자가 되어 감옥에 있는 시간이 차라리 홀가분헀던 거야. 그게 내가 치러야 할 대가라고 생각했을까. 내가 지르는 것보다 더 큰 벌을 원했어, "
 
자기 처벌의 심리를 알 것 같다. 위악스러움도 아니고 기만행위도 아닌. 그저 누군가의 호의나 작은 관심에도 마음이 활짝 열릴 정도로 정이 고프고 외로운 마음이 무엇인지 아는 이들의 마음에  거짓을 아무런 죄책감이나 부끄러움 없이 말하고 진실을 왜곡하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 그들을 설득하고 자신의 진실을 주장하기에 너무나 약한 마음들. 
가난은 어쩌면 물적인 부족함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면 당연히 누려야 할 존엄과 그 존엄을 지켜줄 사람들의 부재, 그래서 심리적으로 자기를 엄호할 수 있는 방패가 처음부터 부재한 그런 상황들이 더 두렵고 무서운 것일 것이다. 거기다 힘센 이들의 위력과 권위에 쉽게 심리적으로 억눌리고 저항할 수 없는 상태로 전락하게 되며 이 소설 속 자매들처럼 자신들은 멸시받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되는 그럴만하다고 생각하는 위악적 상황을 겪게 되는.  
세상에서 당연히 부당하게 멸시받고 천대받는 사람은 절대 없다. 절대 없어야 한다. 읽는 동안 내내 너무 가슴 아팠다. 
 
<파종>
세상에 잘 적응못하고 늘 겉도는 사람. 천진하게 웃고 있지만 슬픈 사람이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게 하는 사람.  어릴 적 아버지의 가혹한 구타와 폭언으로 무너지면서 눈만 찡그리던 사람. 하지만 아픔을 가진 사람에게 가만히 자신의 곁을 내주고 밥을 해서 먹이고 직접  텃밭에서 거둔 채소로 음식을 해서 먹일 줄 아는 사람. 실망했을 거야라며 자신의 무능을 자책하는 이에게 "넌 지금 살아 있잖아"며 말해주는 사람. 늘 져주고 아무리 잔인하게 대해도 참고 견뎌줘서 때로는 무례하게 함부로 말해버리게 하는 사람.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 그래서 다른 이에게 준 마음을 갚을 방법이 없어 마음이 막막해지게 하는 사람. 상처로 난 흉터, 흔적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랄 정도로 진심으로 고통을 위로하고 안쓰러워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 그는 햇볕과 비와 바람과 작은 벌레를 기다리며 우리를 무청이 무성한 텃밭에 오랫동안 무릎을 세우고 앉아있게 하는 사람일 것이다.  아름다운 사람.
슬픔은 슬픔을 알아본다.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엄마는 나를 낳아주고 나를 키워준 이. 치맛자락을 부여잡거나 품으로 기어들어  10대의 끝무렵에 알게 된 사라진다는 것, 죽음의 공포를 이기게 해주는 이. 학교에서 하교할 때 오늘은 집에서 팥죽을 해줄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 들면  10대 사춘기의 왠지 외롭고 불안하던 마음들이 팥죽 한 그릇에 팔팔 끓여져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들게 했던 이. 병든 아빠가 심심산골 고향으로 불치의 병으로 돌아가 마침내는 무덤에 갇히자 사라지는것이 땅속에 묻히는 걸로 생각해 무서워 콧물 눈물범벅 울던 쪼그만 꼬마가 유일하게 기대야 했던 어른. 어린 4남매를 키우며 곱던 얼굴로 뭇 사내들의 시선을 다 받아내야 했던 이. 생계를 위해 남자를 받아들였다며 말하는 엄마가 미워  어느 여름 폭풍우 불던날 집 나가 바닷가 폐선 옆에 쪼그려 앉아 울던 나를 나를 찾아내 ‘엄마 죄송해요’라며 통곡하게 했던 이. 사춘기 어린 나의 꿈이 온통 성공해서 엄마의 삶을 비천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라고 다짐하게 했던 이. 등록금 때문에 서울에 있는 대학을 포기하고 지방대학을 가면서 혼자 연탄가스로 혼절하기도 했던 자치방에서 울게 했던 이. 20대에 접었을 때 남도의 끝자락에 있는 항구도시의 후미진 골목에서 선술집을 하던 이. 무턱대고 찾아간 어는 한날 차비를 지어주며 얼른 가라고 등 돌려 큰 걸음으로 가버린 이. 그런 엄마가 가여워 울음을 삼키며 살게 한 이. 외아들이 차사고로 죽자 충격으로 쓰러져 며칠을 울다 지쳐 자다 울다를 반복하던 이. 가난과 울분이 범벅되어 삶의 다른 아름답고 윤기 나는 것들을 볼 수 없었던 이. 어린 자식들을 무릎가까이 앉히고 불행했던 날들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가슴을 치며 울 때 그런 엄마가 무섭고도 안쓰러워 함께 울게 만든 이. 철들어 결혼한 딸들이 자신의 불운과 미처 놓쳐버린 꿈들이 엄마 때문이라도 되는 듯 비난하게 했던 이. 자식들을 고아원에 맡기고 재가하지 않아서 고맙다고 하면서 하지만 집에 들락거렸던 두어 남자들 때문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며 원망하게 만든 이. 이제 힘없이 늙어가는 아흔을 바라보는 엄마에게 다정하고 살갑게 말을 건네고 보살펴 주고 싶은데 마음과는 달리 왜 그런 것들이 이렇게도 힘든지 모른다며 울게 만든 이. 친정엄마의 품이 따뜻한 것뿐일까. 그래야만 한다며 강박을 느끼는 나는 얼마나 외롭고 복합적인 감정으로 힘든가. 
 
기남은 어렸을 때 가족한테 버려져 어느 가정의 식모살이를 한다. 권사장네 가족에게 소속되고 싶어 어떤 심한 일을 하던 어떤 험한 일을 하던 다 참아낸다. 그렇게 자신을 속이는 일이 자신이 완전히 혼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보다는 쉬워서였다. 기남은 딸이 두 명이다. 진경과 우경. 큰 딸 진경은 알코올중독자이다. 우울증과 자기 파괴적 연민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에게 누구보다 다정하다. "자신을 향한 진경의 사랑에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슬픔이 섞여 있었다. 커단란 존재를 향해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 같은 것이 자신을 향한 그 애의 사랑 안에 존재했다." 유학을 한 둘째 딸 우경은 친정식구들에게 차갑다. 무엇보다 진경을 경멸한다. 친정엄마보다는 시어머니와 결이 더 맞다고 여기고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 우경은 자신의 존재 자체에 묻은 얼룩 같은 것  결정적 결점을 발견한 것일까... 기남은 그것을 알 수 없었다. "기남은 우경의 안사돈과 결혼식에서 만났을때 자신이 노력하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게 아닌 무언가가 있다고 느끼고 그녀의 딸 우경을 영영 놓쳐버린 듯한 느낌을 갖는다. 다정한 포옹 한번 없이 서로 그렇게 나이 들었을 것이다. 기남은 우경의 초대를 받아 홍콩을 간다. 그러다 우연히 혼자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핑퐁을 하는 여자들을 만나 탁구를 하게 되고 낯선 타인들과 꼭 껴안는다. 오랜만의 포옹. 예상치 못한 따스함.
기남은 수십년이 지난 어느 날 언니인 사람의 초대를 받고 어릴 적 자신을 버렸던 가족들과 재회한다. 하지만 그녀에게 너무나 싸늘하고 냉정하게 대하는 엄마. 
'기남의 마음에는 사라지지 않은 방들이 있었다.언제든 그 문을 열면 기남은 그 순간을 느낄 수 있었다. 식기, 중식당의 냄새, 노인 옆에 있던 젊은 남자. 사람들의 표정. 기남은 살면서 수시로 그 문을 열었다. 문을 열 때마다 기억의 세부는 조금씩 사라져간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던 마음의 통증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여전히 그 문을 열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차갑고 단단하고 무거운 무언가가. 여전히.  "
 
서걱거리는 둘째 딸과의 만남. 그리고 우연찮게 발견한 부끄러움. 남편에게 단 한번도 맞서지 못하고 살았던 시간이. 그런 모습을 아이들이 보고 자란 것이....... 기남은 부끄러웠다.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했던 자신의 존재가. 하지만 그 사랑을 끝내 희망했던 마음이. 
그런데 손자가 말한다. " 부끄러워 해도 돼요. 부끄러운 건 귀여워요." 사랑스럽게 말한다. 처음으로 기남은 그 말을 잊을 수가 없다. 
 
엄마도 낯선 곳에서 길을 잃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을 것이다. 어린 자식들 앞에서 가슴 치며 통곡했던 것도 아마 막막하지만 살아보기로 한 자신에 대한 통렬한 다짐이기도. 말이 통하지 않은 자식들 앞에서 무너지는 처참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엄마도 어린 사람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아닌 나와 같은 그저 사람인 것을 우린 너무 늦게 깨닫는다. 
그리고 건널 수 없는 강앞에서 막막하게 서 있을 뿐이다. 
 
작가의 말처럼 결핍을 안고서 너무 미워하지도 , 너무 가여워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슬프면 슬프다는 것을 알고 화가 나면 화가 난다는 것을 알고 사랑하면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 나를 계속 지켜보는 일 그런 일을 나도 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