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nus pro omnibus , omnes pro uno" 하나는 모두를 위해, 모두는 하나를 위해. 즉 한 국민은 모든 국민을 위해 모든 국민은 한 개개인을 위해라는 뜻. 스위스가 중요하게 여기는 모토가 새삼 마음에 와닿는 이유가 뭘까.
간략하게 스위스 여행 전 읽었던 이원복교수님의 "먼나라 이웃나라 주요 내용을 정리해 본다.
이나라는 익히 알려졌듯이 영구 중립국이다. 하지만 군대 의무복무 기간이 따로 있는 건 아니라 18세에서 49세까지 스위스 모든 남자들은 자기 집에서 근무하는 예비군들이다. 정작 동원령이 내려지면 수십만 명이 병사가 자기 집에 보관하는 무기 ( 실탄이 장전된 총이 있단다)를 들고 순식간에 집결한다고 한다.
스위스는 "세계의 공원, 유럽의 지붕"이라고 불릴 만큼 국토의 70%이상이 산이다. 가장 높은 봉우리 (4634m)와 가장 낮은 호수 (해발 196m) 4441m나 되는 곳. 산악지대이지만 스위스 교통맘은 촘촘하고 완벽해 세계 제일이라 한다. 국민의 대다수가 열차를 비롯한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있다 한다. 전체 인구의 5분의 1밖에 자동차를 가지고 잇지 않단다. 더 군다다 거의 모든 철도는 전기철도다. 스위스 연방철도 (SBB)가 실어 나르는 승객이 1년에 무려 3억 명이라니.. 스위스의 언어는 도이치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그리고 레코로망스 4가지다. 각각 나라명을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불리는 것이 많아 그냥 라틴어로 "헬베티아"로 정했다. 스위스는 프랑스어. 여러 개의 독립된 주로 구성된 나라에서 최초로 연합을 주장한 주가 슈비츠였기 때문에 '스위스'라는 나라 이름도 슈비츠에서 생겼다 한다.
국제적인 줄임말은 CH (Confederation Helvetica). 스위스와 국경을 맞댄 나라는 북쪽의 독일, 서쪽의 프랑스, 남쪽의 이탈리아. 그리고 동쪽엔 오스트리아. 하지만 스위스는 독일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아 전국민의 65.6 퍼센트 가량이 독일어를 사용한다.
26개의 주마다 공식언어 즉 주어 언어가 정해져있다. 스위스는 직접민주주의가 시행되는 대표적인 나라로 온 마을 사람이 한 곳에 모여 직접투표를 하고 결정을 내리는 곳이 많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보다는 자신이 사는 지역의 문제에 관심이 더 많다.
참고로 스위스은 행정단위가 연방 (Federation), 주 (Canton), 지역 ( Commune)으로 구성된다.
스위스의 인구는 840만 그리고 면적은 한국의 절반정도. 하지만 스위스는 국적 얻기가 가장 어려운 나라. 국민이 되는 조건으로 10억 원을 정부에 기부해야 되는 곳으로도 유명.
스위스에 최초로 정착한 민족은 켈트족인 헬베티아족. 이후 로마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500여년을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된다. 스위스 지방은 로마제국이 알프스 산맥 북쪽을 지배하는 데 중요한 군사기지 노릇을 했고 2000년 전에 로마 군대가 넘어 다니던 알프스 산맥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로마의 발자취를 보여주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알프스 산맥은 높이 4870미터인 몽블랑을 비롯한 마터호른, 융프라우, 아이거라는 영봉을 거느리고 있다.
스위스는 이탈리아와 도이칠란드를 잇는 대단히 중요한 통로이며 수천 년 전부터 북유럽과 남유럽을 잇는 다리의 역할을 하면서 수백 년 전부터 중립국이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나 중립국을 선언했음에도 나치의 히틀러가 동맹국인 이탈리아로 가는 지름길이 스위스였기에 스위스를 침략하려고 하자 알프스산맥에 있는 다리와 터널을 폭파시키겠다고 의름장을 놓아 결국 포기하게 만든다.
로마제국 멸망 후 북쪽에서 남하한 게르만족 특히 프랑크왕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스위스는 각 지역별 영주들의 독립적인 지배가 우세했고 대신 왕은 스위스지방의 군인을 바는 대신 봉토를 주고 각 지방을 다스리도록 허락하는 정도였다.
중앙유럽에서 세력을 떨치던 가문 중 신성로마제국의 주인이자 오스트리아 지방을 지배하던 가문 합스부르크 집안은 스위스에도 세력을 뻗혀 지배하였으나 집안싸움으로 1232년에 몇동강이로 갈라졌고 이틈을 타서 스위스는 역사적인 "자유서약서"로 스위스 역사상 처음으로 자유와 자치권을 도이치 황제로부터 인정받는다. 이때 슈비츠 유너발덴 우리 세주가 최초의 스위스 연맹을 표명했다. 이후 합스부르크의 또 다른 지배욕에 맞서 자유와 독립을 위해 스위스인들이 싸우기 시작했고 그 유명한 "빌헬름 텔이라는 전설적인 영웅이 등장했다. 이후 모르가르텐 대첩이래 스위스는 합스부르크를 물리치고 무장협화라는 철저한 원칙을 가지게 된다. 지금까지 내려오는 스위스 외교정책의 원칙은 다른 나라에게 간섭받지 않고 동의 없이 남과 동맹을 맺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후 자본과 경제력이 있는 취리히가 오스트리아와 연합군을 만들어 스위스 동맹군과 맞서는 내전이 있었지만 대패로 끝나고 합류한다.
스위스 군인들이 용맹함은 전 유럽에 널리 알려져 로마 바티칸시국에서 교황청을 지키는 교황근위대로 활동했고 프랑스 대혀경이 발발한 뒤 베르사유궁전을 떠나 파리 튈르리 궁전으로 강제로 쫓겨난 루이 16세의 경호를 맡았던 스위스 용병들은 궁중에 의해 몰살되었고 이 비극적인 사건으로 희생된 스위스 용병들을 추모하기 위한 조각상 " 빈사의 사자"가 루체른시에 있다.
유럽이 신교와 구교로 갈라져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할 때 스위스에서는 장 칼뱅과 츠빙글리 라는 종교개혁가가 있었고 특히 츠빙글리는 돈을 받고 싸우는 용병제도와 스위스가 알프스를 넘는 사람들에게 제공했던 여관업을 극도로 반대했고 이에 대한 군중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취리히를 중심으로 하는 츠빙글리 신교파와 산악지대의 구교간의 전쟁이 임박했으나 애블리라는 영주의 중재로 가까스로 전쟁을 한차례 면했지만 철저한 금욕주의자였던 츠빙글리 파는 결국 카펠이라는 곳에서 구교와 충돌하였고 이 전투에서 신교파는 전몰하고 츠빙글리도 사망했다. 츠빙글리는 비록 야망을 이루진 못했지만 스위스가 낳은 대정치가요 종교개혁가로 기억되고 있다. 이후 삼십 년 종교전쟁을 교묘히 피해 스위스는 베스트팔렌 조약의 결과로 도이칠란트는 신교파이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이후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영주국으로 독일은 산산조각 나고 알프스 로렌 지방이 프랑스의 차지가 된다. 그리고 네덜란드와 스위스의 독립을 인정하게 된다. 이로서 스위스는 당당한 독립국가로서 국제무대에 등장할 수 있다.
1648년 독립국가가 된 스위스는 잏 150년 뒤 1789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의해 처음으로 무참히 깨진다. 스위스를 점령한 프랑스는 귀족들이 다스리던 스위스 동맹을 깨뜨리고 국민들의 대표가 정권을 잡도록 하는 "헬베티아 공화국"을 1798년에 탄생시킨다. 그러면서 중앙집권적인 정책들이 차츰 자리 잡게 되는데 강제로 바쳤던 교회세를 폐지하고 국민의 의무교육제와 고문금지 그리고 교회의 특권을 폐지하는 혁신적인 정치개혁을 추진하지만 지방자치역사를 오랫동안 가졌던 스위스는 이에 반대해 중앙집권을 찬성하는 통일당과 지방자치를 찬성하는 연맹당의 두 당으로 나뉘어 혼돈을 거듭하였으며 1803년 나폴레옹의 중재로 외교와 군대의 지휘는 중앙정부가 그리고 세금 및 재판, 화폐와 우표에 대한 권리는 지방자치제에 두는 새 정부안을 마련하였다. 대륙봉쇄령으로 차츰 역전을 당하던 나폴레옹은 결국 라이프치히 대전에서 연합군에 패배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든다. 결국 전후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빈회의에서 스의스는 완전한 주권을 인정받게 된다. 스위스는 자유와 독립이 아무리 소중하다 해도 자기 힘이 아닌 남의 덕으로 독립된 주권국가로 된 형국이다. 여러 주변 강대국들의 간섭과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후 스위스는 군사도로와 다리 터널등을 개발하며 군사를 2만에서 7만으로 늘리는 등 군사강국으로 가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프랑스혁명정신의 영향을 받은 혁명세력과 반혁명세력 간의 오랜 갈등이 지속되었고 스위스 영웅 앙리 뒤푸르 장군이 오스트이라와 프로이센을 끌어들여 동맹을 맺은 반혁명세력에 맞서 승리하고 이후 외국의 간섭 없는 완전한 자주독립을 쟁취한다.
각 주의 자치권이 세계에서 가장 잘 보장된 스위스 헌법은 캔톤이라는 스위스 26개의 주가 마치 하나의 나라와 다름없는 자치권을 행사하면서 국가와 칸토 그리고 국민이 서로 필요에 의해 존중하고 존중받는 제도로 정착한다.
자치정부는 세금을 거둬들이는 권한을 갇고 있으며 지방재정이 부족할 경우 중앙정부에서 그 부족분을 보충해 주고 큰 개발사업을 지원해 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스위스 헌법은 국민의 권리를 중요하게 여겨 "국민 주도권"을 인정하여 국민들이 옳다고만 생각하면 헌법까지도 고칠 권리를 가진다. 만약 국민이 헌법에 불만이 있으면 서명운동을 벌여 유권자 10만 명의 서명을 받아 국민의 심판을 받아 국민투표에 부쳐진다.
시민들은 준법정신과 질서지키는 습관이 북유럽권의 시민들처럼 철저하다고 한다. 영구 중립국으로 남아 유엔가입을 포기하고 있다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2002년에 국민투표로 유엔 가입을 결정한다. 스위스는 중립국으로의 최대이점을 누리는 나라다. 유엔회원국이 아니면서 유엔본부를 비롯하여 수많은 국제기구들이 자리 잡고 있고 그 기구들의 회의가 개최되는 곳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스위스 은행금고와 세계에서 전쟁 준비가 가장 잘되어 있다는 것. 자신의 방어를 위한 준비. 최신의 고성능 무기를 비롯해 공공건물이나 큰 건물에는 두꺼운 철근 콘크리트로 된 지하 대기소가 마련돼 있어 이곳에서 밖에 나오지 않고도 한 달 이상 버틸 수 있고 화장실은 물론 오락시설 식량 보관소등 없는 것이 없단다.
그리고 스위스의 방공시설은 원자폭탄이 터져도 끄덕하지 못할 정도로 지하실에 30센티에 이르는 두거운 쇠문이 겹겹히 있다고 한다. 이렇듯 비무장중립이 아닌 완전무장 중립국가인 스위스는 매년 20여 일의 집단 예비군 훈련을 하고 집에 실탄이 든 총을 보관하고 있다고 동원령이 내리면 바로 준비가 돼있다고 한다.
이원복교수의 분석처럼 선진국의 부강은 가난한 후진국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였고 못사는 나라의 가난의 책임은 스스로에게 있다기보다 계속 뜯어가는 선진국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민족성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
스위스는 식민지를 갖지 않은 부강한 나라이긴 하지만 스위스 은행은 아주 기묘해서 돈을 맡겨 예금을 하면 보관료를 받고 돈을 맡는다는 것. 그 돈이 떳떳지 못한 구린내 나는 돈이기 때문인 경우가 많을 터이다. 그리고 고객에 대한 비밀주의가 철저하게 국가에서 보호되기 때문이기도.
보관료까지 받아가며 은행에 쌓인 돈을 큰소리치며 이자 받아 돈놀이를 하고,공장지어 물건 만들어 팔아 또 돈을 벌고. 꿩 먹고 알 먹고.
어쨌든 스위스는 강대국 사이에서 자주독립을 지켜왔고 작은 나라다운 외교, 국방정책으로 강대국과 맞서 독립, 민주주의 그리고 중립을 지켜냈다. 또한 스위스는 국민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충분히 인정하여 국민이 국가의 일을 결정하는 데 직접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그래서 스위스는 여당과 야당이 없을 수밖에. 정부의 정책과 의회의 결정에 따르지 않고 중요한 문제는 국민투표로 결정을 하니까.
또한 스위스는 부가가치세란 것이 없다. 의회는 인구비례에 따라 선출된 200여 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국회와 각주의 권리를 대변하기 위해 인구나 땅 크기에 관계없이 각 주 칸톤에서 두 명씩 대표를 보내 구성한 스의스 의회(상원과 비스)가 있고 대통령은 1년 임기로 각 주가 돌아가면서 맡기 대문에 대통령 이름을 외우는 스위스 국민은 극히 드물다. 수없이 많은 국민투표와 선거투표로 스위스의 직접민주주의는 피곤한 민주주의이기도 하단다. 스위스는 정부가 작고 힘이 없어 보여도 막상 행정에 들어가면 너무나 철저하고 세밀하게 법과 규칙을 정해놓아서 세계 어디에도 이렇게 철저하게 법을 집행하는 곳이 없을 정도란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허가서가 필요하고 엄청난 돈을 내고 또 규칙을 어기면 엄청난 벌금에.. 심지어 집에 주민명부를 비치하게 돼있어. 그 가정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의 신상을 기록해 둔 책정도의 명부라니...
그리고 운전면허증을 소지하고 공해, 안전검사 합격증을 부착해야 하고 자전거를 타도 보험에 들어야 하고 자전거를 타고 자전거토로가 아닌 인도로 다니면 벌금 40프랑(45000 정도) 사람이 자전거도로를 걸어도 벌금 10프랑.. 주차 시 반드시 거주자 주차증명 스티커. 민원서류 한 장 수수료는 최저 1만 원을 넘는다고. 스위스의 다세대주택에선 밤 10시부터 7시까지 목욕금지. 걸릴 경우 벌금 통지서가 날아온다고.
그리고 스위스 국민 모두가 경찰이나 다름없는 이웃 감시인. 대부분의 범법자가 경찰이 아닌 주민 신고에 의해 붙잡힌다고 한다.
돈세탁하는 나라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국민투표에 붙여지지만 한결같이 부결. 이중적인 면을 보이기도. 오랜 세월 동안 외부와 인연을 끊고 중립의 길을 선택한 스위스도 동구권이 무너지고 이제 냉전의 시대가 지난지라 고립이 아닌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U 회원국이 서로 세금을 면제해 주고 물가가 훨씬 싸지는데 스위스는 모든 수입품에 세금을 매기는 관세 때문에 물가가 터무니없이 높아 국민들이나 관광객들에게 너무 비싼 나라이기도하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와 내통하여 비밀무역을 하고 유대인에게 빼앗은 금을 물건갑으로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가이미지가 실추되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중 하나이면서 (국민소득 세계 1위) 자살률이 열여섯 번째로 많은 스위스. 직접민주주의에 때론 변혁의 발목이 잡히는 스위스. 스위스의 역사와 경제 그리고 국민생활을 살펴보면서 스위스의 이면을 들여다보았다. 스위스의 역사와 알프스 준봉과 실핏줄처럼 촘촘하게 얽힌 트래킹 길에 대한 황홀한 랑데부를 꿈꾸며 길지 않은 6박 8일의 여행길에 오른다.
7월 1일 (첫째 날) 리기산-루체른 호수-링게른-인터라켄
밥벌이를 위한 일은 가끔씩 멈출 필요가 있다. 휴식은 지리멸렬한 일상의 무한반복을 끊어내고 지친 몸과 마음을 가볍게 놓아주어 살아온 삶의 시간을 되짚어 보게 하고 자신의 자리를 더듬어 보게 한다. 노동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사회에 닿게 하여 의미 있는 쓰임을 찾게 하고 삶의 사회적 의미를 성취하게 하지만 노동으로 굳은 뻑뻑한 몸의 근육과 뻣뻣한 정신의 긴장을 끝까지 밀어붙이기도 한다. 그래서 지치고 옹이 진 굳은살과 영혼이 슬그머니 찾아온다. 잠시의 일상 탈출이지만 매일을 고단하게 살고 있는 남편을 위한 스위스 여행동행은 나보단 그를 위한 것이라고 하면 너무 자가당착인가. 아직 노구는 아니지만 여러 곳을 점찍듯이 다니는 여행은 이제 그만. 한 곳에 여러 날 머물면서 그곳을 느끼고 싶은 마음으로 스위스 여행을 시작한다.

산, 강, 호수의 삼위일체라 하는 루체른. 취리히에서 1시간 정도 걸려 비치나우역에서 산악열차를 타고 약 30분쯤 오르면 리기산을 볼 수 있는 근접한 곳에 이른다. 리기산은 1871에 최초로 유럽에 만들어진 등산철도다. 지난주에 폭우로 이곳저곳에 산사태가 나고 홍수로 인한 사망사고도 발생했다고 들었다. 여전히 첫날의 날씨는 안개가 짙고 흐리다. 마치 애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듯 웅장하지만 사랑스러운 리기산을 볼 수 있기를 애타게 기다린다.

리기산은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나타날 것인지. 7월 중순경에 시작되는 본격적인 여름의 무더위는 들꽃을 마르게 하여 알프스에 피어있는 수없이 많은 알핀로즈를 비롯한 야생화를 아쉽게도 볼 수 없도록 하는데 시기가 적절하여 7월 초 알프스 산정에 피어있는 꽃들은 우리의 정서를 순화시킨다. 마치 순정을 품고 있는 여린 사람들의 모습이랄까.

감질나게 사라졌다 다가왔다 하는 리기산을 기다리며 철길옆에서 사진을 찍는다. 왜 우리는 철길에 매료되는가. 알 수 없는 곳에서 왔다가 어딘가로 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을 닮고 싶어서일까. 어쨌든 끝이 보이지 않는 길과 그 길에 놓인 철로는 왠지 슬프다.

리기산을 잠시 일별 했다. 그저 바라만 보는 산은 글쎄 그렇게 의미는 없었다. 리기산정에 있는 호텔 리기 쿨럼 앞에 놓여있는 벤치. 누워서 하늘보기. 우아한 능선과 야트막하고 푸른 초원 그리고 파란 하늘과 두둥실 구름들.
이곳에 유명건축가 마리오보타가 설계한 칼트바드 스파가 발아래 있다. 이런 곳에 스파라니. 야외온천장에서 스파를 즐기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보인다.

빛의 도시 루체른. 알프스의 무역중심지라 한다. 도시의 중심에 자리한 <빈사의 사자상> 미국의 작가 마크투웨인이 "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조각상'이라고 했던 바위에 조각된 조각상. 프랑스 대혁명 당시 베르사유궁전에서 도주하여 파리의 튈릴리 궁전으로 옮겼던 루이 16세의 근위병이었다가 대혁명의 거친 물살에 왕과 함께 운명을 같이한 스위스 근위병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카펠교. 목조다리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1333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도시의 방위를 위한 요새로서 지붕이 있는 게 특징적이다. 지붕에는 역사적 인물과 수호성인을 비롯한 신화적인 내용을 표현한 베그만의 판화작품이 새겨져 있다. 화재로 손실되었다가 1994년에 복원되었다고 한다.

로이스강이 흐르는 루체른 시내에 놓인 목조다리 카펠교. 단정하고 아담하다.

옛 건물 외벽을 장식하 프레스코화가 유려하진 않지만 단아하고 아름답다. 카펠교를 마주하고 있는 도시의 아담하고 오래된 건물들.

루체른 시내. 빙하가 녹아 흐르는 강은 발을 담그거나 수영을 해도 될 듯 맑다.

룽게른 호수를 품고 있는 호수동네의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룽게른 호수-보석처럼 박혀있는 에메랄드빛의 빙하호수
7월 2일 (화요일) 인터라켄- 그란덴바르트-융프라우호- 아이거 클라이네 샤이덱 트레킹-피르스트 클리프워크

인터라켄
툰호수와 브리엔츠 호수사이에 위치한 마을. 인터라켄은 <호수사이>라는 뜻. 융프라우를 오르기 위해 전 세계 관광객들이 모이는 곳이다. 숙소 앞에 넓은 잔디공원에선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들과 여유롭게 저 멀리 보이는 융프라우를 바라보며 있는 사람들. 그리고 마을 뒤편으론 아에르강이 유유히 흐른다.

아침 일찍 융프라우를 보기 위해 베른주 그란덴바르트 터미널로 이동한다. 이곳에서 8년 걸려 완성된 곤돌라, 아이거 익스프레스를 타고 해발 2300미터까지 이동한다. 덕분에 유럽의 정상 융프라우호까지 45분 더 빠르게 도착할 수 있다. 20여 년 전 아이들과 서유럽일대를 여행할 때 하루 정도 머물면서 등산열차로 오른 융프라우호. 여름인데도 너무 추워 파커를 입고 덜덜 떨면서 융프라우정상에서 어린아이들과 컵라면을 사 먹었던 기억들이 아슴하게 남아있다.

융프라우 레일웨이는 스위스 산업계의 거물인 아돌프 구에르 첼러의 거침없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다한다. 그는 아이거와 묀휘의 깎아지른 듯한 암벽을 통과하는 터널을 뚫어 융프라우 정상까지 톱니바퀴 철도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1893년에 클라이네 샤이텍- 아이거-묀히-융프라우 구간 운행권을 처음으로 신청하고 1898년에 터널 암벽 폭파사업을 착수했다고 한다. 1899년 화약폭발로 인한 노동자들의 희생이 발생했고 광부들의 파업과 재정난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지만 결국은 사업을 이어나갔다. 1912년, 착공 16년 만에 유럽 최고 고도의 철도역이 해발고도 3454m에 개통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스핑스 테라스. 스위스에서 가장 빠른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단 27초 만에 융프라우요흐의 상징인 스핑스 전망대로 오른다. 이곳에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알레취 빙하의 장관이 한눈에 펼쳐진다.

아이거 북벽 ( North Face)
1936년 독일의 등반가 토니 쿠르츠가 동려의 부상으로 등반을 포기하고 죽음의 비박을 한 후 수직암벽인 아이거 북벽을 하강하다 꼬인 자일 때문에 구조대와 불과 5m 남은 곳에서 매듭이 카라비너에 끼어 더 이상 하강하지 못하고 줄에 매달려 숨을 거둔 절망과 두려움의 수직 암벽인 아이거 북벽. 1938년에야 초등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매혹적이지만 잔혹한 북벽. 아마 지금도 이곳을 등반하는 것을 꿈꾸고 있는 등반가들이 많을 것이다.

천운이랄까. 융프라우요흐를 볼 수 있는 것은 쉽지 않은데 드디어 그 장관을 마주하니 가슴이 뛰었다. 고산증이 약간 있긴 했다. 속이 매쓱거리고 약간의 두통.그렇지만 융프라우요흐의 자태에 그만 압도되었다. 지구온난호로 언제까지 만년설을 볼 수 있을까라는 염려와 우려. 하지만 그곳에 만년설이 있었다. 해발고도 3454. 신비로운 알레취 빙하와 4000 미터급 봉우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곳. 그리고 아이거 북벽과 연봉들. 마치 생명의 시원처럼 사라지지 않고 계속 우리 곁에 있어줘 그러면 모든 것이 끝날 때 돌아갈게 그런 마음이랄까.


알파인 센세이션. 빛과 음악이 더해진 독특한 이미지가 연출되는 알파인 센세이션통로 일주는 융프라우 지역의 과거와 현재 구에르 첼러의 기발한 발상부터 융프라우 철도 건설에 쏟은 극한의 노력을 보여준다.
이곳은 카르스트 동굴.

얼음궁전.
1930년대 만들어진 얼음궁전은 연평균 영하 3도로 일정하게 냉각 유지된다고 한다. 독수리, 펭귄, 로마시대 항아리, 그리고 피 아니 시트의 모습등이 조각되어 있다.

연평균 기온이 -7.9도인 융프라우요흐. 가장 긴 빙하 알페츠 빙하 ( 22킬로)를 볼 수 있는 곳. 유럽의 지붕.
융프라우 산 아래 인터라켄 마을에 있던 수녀원에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직접 설원에 나가 눈을 밟을 수 있는 곳에서 인생컷을 남기고자 세계 71개국 사람들이 매년 오간단다. 우리도 한컷. 하지만 줄을 서서 스위스깃발과 함께 찍는 것은 포기.

추억을 되돌리고 싶어 유럽의 지붕에 있는 샾에서 컵라면을 먹기로 한다. 지식인에 따르면 융프라우에서 신라면을 팔게 된 것은 스위스 항공 출신 동신항운의 송진 이사 때문이라고. IMF이후 퇴사를 하고 그 린덴발트에서 융프라우까지 가는 산악 열차의 한국 독점 판매권을 취득했는데 여기에 신라면 가격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 이때가 97년 말쯤. 이후 산악열차와 연계되어 판매되던 것이 지금껏 이어져 왔다고. 하지만 역시 한국사람들이 주로 즐기는 간식.
요즘 스위스 프랑이 너무 비싸 1프랑이 1500원 정도여서 라면값도 만만치 않다는 것(10프랑ㅠ). 그래도 지나칠 수 없다는 것.

가이드가 준 융프라우 철도 기념 여권에 도장을 찍는 곳. 나도 이곳에서 여권에 도장을 찍었다. 재미.

융프라우 아이거 워크. 아이거 글렛쳐역에서 크라이네 샤이텍까지 약 2.5 킬로미터의 완만한 트레킹코스.

융프라우 아이거 워크. 아이거 글렛쳐역에서 크라이네 샤이텍까지 약 2.5 킬로미터의 완만한 트레킹코스.

고산지대에 낮게 포복하듯 피어있는 들꽃의 앙징스러움이 자주 나를 앉게 한다. 융프라우와 아이거북벽을 쭉 감상하면서 완만하게 걸을 수 있는 너무 멋진 트레킹 코스.

걷다 보면 아주 작은 교회 같지 않은 초막 같은 것이 보인다. 이런 곳에. 리기산을 오를 때 저 아래 멀리서 카랑카랑하게 울리던 워낭소리가 생각난다. 스위스에서는 관광산업과 축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산정에 소를 키우는 것을 정부 보조금으로 장려하고 있다고 한다. 축산 한 가구당 연 오천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좋은 정책인 듯하다.

융프라우에서는 매주 선로 보수원이 걸어서 융프라우요흐와 클라이네 샤이텍 구간의 9.2킬로 길이 톱니바퀴 기찻길을 점검한다고 한다. 그리고 융프라우 철도가 자체 수력발전소를 운영한다고 하다.


클라이네 샤이텍 정류장은 해발 2061미터에 위치.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 세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있다. 빨간색 융프라우 철도를 타고 가면 융프라우 전망대 아이커 클래쳐에서 환승해 정상에 오른다.
두방향서 올라오는 톱니바퀴 열차가 모이는 곳으로 버니스 오버란트 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역을 탐험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든다고.


그란덴바르트 피르스트역. 1947년에 만들어진 피르스트 정상을 오르기 위한 곤돌라로 20분 만에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

아이거 북벽이 어디에도 보이는 그란덴 바르트역 근처의 산악마을. 길목의 그란트 지역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배경이 되었던 빙하마을. 카우벨, 즉 워낭을 매단 소들이 멀리서 보인다.


이곳에선 클리프워크를 비롯한 마운틴 카트, 트로티바이크, 플라이어 등 다양한 야외 액티비티를 할 수 있어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는다고 한다.

아슬아슬한 클리프 워크. 바위산을 휘감은 터번 모양의 철제플랫폼을 후들후들 떨면서 걸어본다. 여행동료분은 주저앉아 울정도로 겁을 냈지만 결국 다리를 건너고 나서 일생일대의 경험을 했다고 좋아한다.

둘째 날의 여행을 마치고 다시 인터라켄으로 돌아왔다. 숙소뒤를 흐르는 아름다운 아에르 강. 유속이 빠르고 유량이 풍부해서 마치 소용돌이치듯 흘러가는 모습이 바다에 와 있는 듯. 시티투어 간판 안내문을 유심히 읽어본다. 아에르 강은 툰호수와 브리엔츠호수 사이에 있는 인터라켄과 운테르 센 그리고 융프라우 골짜기 마을을 가르던 유일한 강으로 중세 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두 지역사이에 자연적 경계선으로 자리 잡았다고. 어업권과 마켓관리 및 다리 통행세를 두고 오랜 기간 분쟁해왔다 한다. 이후 목조다리는 몇 차례 홍수로 인한 범람으로 무너지기도 하고 인근 집들이 침수되는 등 인명피해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지금껏 인터라켄의 교통체증을 덜어주는 중요한 기능한 하고 있다고 한다.


인터라켄 아에르 강을 산책하다 마치 한국의 동네 입구에 있는 정자나무 같은 것을 발견했다. 이곳의 안내판에는 이런 인상적이면서 너무나 감동적인 구절이 있다.
" Everyone has the right to rest and leisure, including reasonable limitation of working hours and periodic holidays with pay."
모든 사람은 쉼과 휴식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것에는 주기적인 유급휴가와 근무시간제한이 포함된다.
7월 3일 (수요일) 인터라켄-알레츠 빙하-체르마트


그림젤패스

인터라켄에서 체르마트로 이동한다. 가는 길에 융프라우에서 보았던 알레취 빙하의 아랫부분을 볼 것이다. 날씨가 흐리고 기온은 영상 8도 정도. 구불구불 경사가 심한 그림젤 패스를 통과하는 것은 여간해선 자가운전을 권하고 싶지 않다. 아슬아슬한 길들이 2시간여 동안 이어진다. 이렇듯 로마시대 때부터 산길을 놓아 알프스를 넘나들었을 것이다.

알레취 빙하 전망대

뫼렐역에서 알레취 빙하를 보기위해 곤돌라를 타고 전망대로 오른다. 알레취 빙하를 보기위해 발레주로 이동한 것이다.
알레취 빙하는 알프스 산맥의 최대 빙하로 꼽힌다. 길이는 약 23미터 면적은 81.7 킬로미터에 이른다. 북쪽은 융프라우에 남쪽은 마사강의 협곡군을 경유하여 론강에, 동쪽은 메르엘렌제호수에 이른다고 한다. 알레취 빙하를 둘러싼 9개의 산 정상은 모두 해발 4,000 m급이란다. 2001년에 빙하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했다. 숨 막히는 경관이다.


체르마트에 도착하다.
해발 1608에 위치한 인구 5,500명가량의 작은 산악마을이다. 알프스산맥 마터호른산기슭에 위치한 마을로 마터호른을 오르고자 하는 산악인들이 반드시 머무는 곳이다. 이탈리아 국경과 가까운 지점에 있고 스위스 알프스의 등산과 스키리조트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은 전기차만이 다닐 수 있다. 버스에서 내려 Tasch (타쉬) 역세서 체르마트로 이동하는 셔틀기차를 탄다. 티켓을 나눠준 투어가이드는 왕복 15만 원 상당의 티켓이라며 절대 분실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체르마르행 셔틀열차 왕복비용과 체르마트에서 고르노그라트열차 왕복비용까지 포함한 것이다. 체르마트에 도착하니 역 앞에 오래된 마차와 전기택시가 보인다. 환경친화적인 운송수단으로 마차와 전기택시만이 사용되고 있고 버스를 비롯한 내연기관차는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환경보전에 힘을 쓰고 있는 아주 아담하고 유서 깊은 마을이다. 벌써 마터호른 산정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왠지 경외감이 드는 마을이다. 

산양이 마을로 내려와 떼 지어 걸어가는 것을 드물게 본다. 이것도 이채롭고 흥미롭다. 비롯 냄새는 지독했지만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라 신이 났다.

알핀호른을 어르신들이 연주하는 모습을 체르마트 시내를 둘러보면서 보게 되었다. 소리는 웅숭깊고 아주 멀고 깊은 곳에서 울리는 소리 같았다. 마치 빙하 속을 흐르는 물소리 같다 할까.

쉴레. 스위스 산정마을의 전통가옥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다. 체르마트 시내를 걷다 보니 마치 민속촌처럼 보존되어 있다. 나무를 잇대어 만든 소박한 널빤지 집 같다.


마우리셔스 성당 부속묘지 건너편에 있는 세미터리 (공동묘지)에 잠깐 들러 그곳에 잠들어 있는 사람들의 묘비명을 읽어보고 생몰연대를 가만히 들여다 본다. 죽음이 삶과 함께 머무는 곳은 언제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마우리셔스 성당 부속묘지. 이곳에는 마터호른을 등정하다 숨진 500여명의 사람들이 지금까지 사망했다한다. 마테호른에서 사망한 산악인들이 묻힌 묘지. 첫 등반에 성공한 에드워드 휨퍼를 비롯해 등반도중 사망한 그의 동료들이 체르마트 이곳에 잠들어 있다. 노아의 방주가 천장화로 그려진 성당안에서 잠시 명상에 잠긴다.

노아빙주가 천장에 그려진 마우리셔스 성당

마테호른 박물관에 들른다. 일정에는 없었지만 이 박물관에는 이곳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작고 아담한 박물관.
험준한 자연환경에 맞서 알프스 산악마을에서 살아왔던 체르마트 인들의 생활 모습과 가옥을 재현해 둔 공간과 산악인들을 위한 초기 거처공간 그리고 등산화를 제작했던 장인들의 작업공간과 등산장비의 변천과정을 보여주는 전시물과 마터호른의 멋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낸 전시공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마테호른 첫등정에 성공한 에드워드 휨퍼와 사망한 동료등반인과 관련된 broken rope 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고 최초 등정인이 사용한 hemp rope가 전시되어 있는데 이것은 300 킬로그램만을 지탱해낼 수 있었던 것으로 처음 등정인 4명은 끝내 로프에 매달렸지만 살아남지 못했다 한다. 그리고 1985년 Theodul Glacier에서 지역민에 의해 발견된 초기 빙하에서 실종 사망한 등정인들의 유물-동전, 신발, 의류와 무기등이 발견되어 고고학적 샌세이션을 몰고 온 것들이 전시되어 있기도 하다.

체르마트인들의 전통가옥의 모습.

에드워드 휨퍼를 비롯한 세명의 영국 여행가들과 가이드 피터와 크로즈는 1865년 7월 13일 이른 아침에 마테호른 등정을 시작한다. 피터의 아들 피터 주니어도 포터로 함께 한다.
7월 14일 오후 1시경 휨퍼 일행은 하룻밤을 마터호른 입구에서 보낸 후 마테호른 4478에 이른다. 휨퍼는 그곳에서 마터호른을 스케치한다. 그리고 하산하던중 정상에서 약 100미터 떨어진 곳에서 헤도우가 눈으로 뒤덮혀 미끄러운 표면에서 미끌어지면서 앞서가던 크로즈를 밀치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들이 몸무게가 합쳐지면서 가속이 붓어 뒤따르던 허드슨과 더글러스도 넘어지게 된다. 바로 얼마전에 피터 시니어가 안전을 위해 로프를 바위에 고리로 걸어서 휨퍼와 그의 아들 피터 주니어는 안전하게 발을 내디딜수 있었다. 피터시니어와 더글라스 사이에 있던 로프는 공중에서 늘어지더니 끊어지고 만다. 이는 피터의 막내둥이가 망원경으로 목격한 장면이었으며 불행히도 4명의 등반가들이 마테호른의 북면에서 빙하로 떨어지고 마는 비극이 일어났다. 헤도우, 크로즈 허드슨의 유해는 빙하에서 발견되었고 더글라스의 장갑과 벨트 신발 한쪽만 발견했다. 그의 시신은 빙하에서 유실되었다. 그들의 유해는 체르마트의 엔글리칸 교회에 안치되었고 해도우의 유골은 나중에 영국으로 송환되었다고 한다. 법정에서는 해도우의 결정적인 실수가 이 사고의 원인이라고 결론지었지만 이후 에드워드 휨퍼와 피터 시니어가 자신들이 살기 위해 로프를 끊었다는 악의적인 소문이 퍼지면서 체르마트의 마테호른이 유명세를 얻었다.

이곳은 원래 신부님의 거처였지만 산악인들을 위한 초기 거처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체르마트 박물관 입구에 있는 조각상. 최초 마테호른을 오른 여성 등반가를 추모하고 있다.
7월 4일 목요일
체르마트- 고르너그라트 전망대-마터호른 하이킹-몽트뢰-로잔

체르마트에서 고르너그라트까지 열차로 이동한다. 고르노그라트 전망대는 아주 가까이에서 마터호른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 자태가 가히 알프스 고봉 중에서도 돋보이는 웅장함과 감탄을 자아내는 절정을 보여주는 준봉이다. 마터호른
초원의 뿔이라는 뜻. 이름 그대로이다. 해발 고도 4478 미터. 마터호른 북벽은 아이거 북벽과 그랑드조라스와 함께 세계 3대 북벽 중 하나라 한다. 알프스 산중 가장 험준해서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등정한 산이다.

마터호른을 비롯한 높은 산봉우리들이 파라노마처럼 펼쳐진 곳에서 커피 한잔을 마신다. 세상을 다 가진 느낌 그런 건 그저 호들갑이고, 내가 웅장한 더 네이처에 발밑에 있는 작은 미물만 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함께 두려움 겸손함이 차례로 찾아온다.

고르노그라트 슈바르츠 호수. 마터호른이 의젓하게 서 있는 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 부터 트레킹을 시작한다. 많은 여행객들이 마테호른을 가까이 옆에 끼고 트레킹 코스를 따라 약 2시간 가량 걸어서 리펠부르크까지 내려갈 것이다.




리펠부르크까지 내려오니 산정 레스토랑이 있다. 잠시 앉아 발 쉼을 한다.


체르마트 중앙역에서 내려 마테호른 특급열차를 타고 타쉬까지 간다 그곳에서 전용 투어버스로 갈아타고 3시간가량을 달려 스위스 서북부에 있는 레만호수와 시옹성을 보게 될 것이다.


시옹성( Chillon Castle)
레만호수에 떠 있는 중세의 성. 12세기에 사부이 공작이 제네바 호수( 레만호수)근처에 요새를 만들어 정착하였다. 전략적인 위치와 다양한 방어시스템으로 중세 때 다른 영주들의 공격을 피해 갈 수 있었다. 하지만 1563년 시옹성은 침략을 당해 정복되었다. 시옹성은 로마시대 부터 요새와 전초기지로 기능하며 알프스 산맥을 통과하는 도로들을 수호하는 역할을 했다. 12세기 중반에는 호수에 선박함대를 정박시키고 사부이 공작의 여름별장으로 사용되었다 한다. 16세기 유럽의 종교전쟁이 한창일 때 포로를 수용하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이때 개혁파 수도사 보니바르를 6년간 이곳에 감금시켰다. 이후 후 베른군대에 의해 다시 성이 수복되면서 수도사는 석방이 되었다. 그다음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보두아 시대 때는 독일어권 베른을 축출하고 레만공화국을 선포한다. 보두아는 프랑스 군대를 끌어들이고 성을 군수품과 무기 저장고로 사용했다고 한다. 현재는 보주에 소속되어 관리되며 스위스 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시옹성은 이후 근대에 이르러 장자크 루소 빅토르 위고 바이런 등 많은 작가와 시인들이 방문하는 유명관광지가 되었고 특히 바이런의 <시옹의 죄수>라는 시는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면서 시옹성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쿠르베의 <시옹성>과 영국화가 윌리엄 터너가 그린 시옹성 그림이 있으며 1989년 애니메이션 영화 인어공주의 성에 영감을 준 성이기도 하단다.

몽트뢰에 왔다. 1967년부터 매년 7월에 열리는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을 개최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아쉽게도 우리가 도착한 날 바로 다음에 열린다고. 거리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열기로 북적되고 들떠 있을 것이다. 레만호와 수호성인처럼 둘러 서있는 알프스의 준봉들의 연호를 받으며 축제는 익어갈 것이다.

몽트뢰는 온화한 기후로 19세기부터 중요한 관광지였다 한다 제네바 호수 기슭 근처에 수많은 벨에포크 양식의 궁전과 호텔이 있고 몽트뢰역은 산악철도의 허브라 한다. 몽트뢰 주요 광장인 마르쉐광장에 프레드 머큐리의 동상이 있다. 그가 속한 퀸밴드가 이곳에 머물면서 음악작업을 했다 한다. 퀸의 보헤미안 렙소디를 비롯한 몇 곡을 차를 타고 가면서 듣는다.
7월 5일 (금요일) 라보 -그뤼에르 성-취리히

라도 쉐브르 포도밭. 스위스 보주 캔톤에 있다. 이곳에서 재배한 다양한 품종의 포도를 이용한 와인을 만든다. 레만호의 전망을 즐길 수 있어 프랑스어로 "레만호의 발코니"라는 별명을 가졌다.

12세기에 포도재배가 도입되어 라보에서 몽트뢰에 이르는 호수의 햇볕이 잘 드는 경사면에 중요한 와인재배지역이 되었다고 한다. 나폴레옹이 1789년 이 지역을 베른으로부터 독립시킨 후 몽트뢰의 웅장한 호텔은 유럽과 미국의 부유한 자산가들의 유양지가 되었다고 한다. 어쨌든 끝이 보이지 않는 레만호수와 멀리서 옹위하듯 둘러 서있는 알프스의 산맥 그리고 따뜻한 햇볕을 받고 점점이 그림처럼 앉아있는 포도농가의 모습은 환상적이다.

그뤼예르. 스위스의 프리부르주에 위치한 작은 휴양도시. 1270년에서 1282년에 건설된 중세 시대의 요새인 그뤼예르 성이 있는 곳. 대표적인 특산물 그뤼예르 치즈로 유명하단다. 점심으로 라클레라는 녹여먹는 치즈를 호텔 르블르 식당에서 먹었다. 느끼하거나 냄새가 나지 않은 나 같은 치즈에 익숙지 않은 사람에겐 딱인 맛이다.

그뤼예르 성문 바로 앞에 있는 멋진 조각상.

성을 구경하기로 한다. 13세기에 지어진 이성은 그 당시 스위스의 그뤼예르 영주의 집이었다. 원래는 방위목적의 요새 (fortified castle)로 건축되었으나 15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거주지(Residence)로 중축되었다 한다. 수세기에 걸쳐 이곳에 거주하며 주변의 넓은 영지를 지배하던 백작은 왕정이 무너지고 재정난에 허덕이다 결국 1554년에 프리버그의 채권단에 성과 모든 재산을 양도한다. 1848년까지 성은 그뤼예르의 행정기관으로 사용되었다가 매매로 나온다.
제네바의 보비 (Bovy) 형제들이 1849년에 그들의 여름별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성을 구입하고 그들의 친구들과 가족들의 모임을 이곳에서 갖기 시작한다.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이들은 이 집을 예술가에게 레노베이션을 맡기고 수차례 수리를 하였고 예술인 및 작가들을 초청해 연회를 열고 그들만의 콜로니를 만들어 활동하였다. 특히 장애를 가진 보비 형제 중 한 명은 도르래를 이용해 작품을 이동시키면서 그림을 그렸다한다. 그의 작품들이 성안에 전시되어 있다.
1938년에 프리보르그 (Fribourg)가 그뤼예르성을 다시 사들여 대중에게 공개하였다.
현재 성은 역사적인 보존물과 기록물 그리고 보비가족의 3세대에 걸친 생활상과 예술작품들이 전시되어있다.

그뤼예르 성 내부

그뤼예르 성 내부

그뤼예르 성 내부

그뤼예르 성 밖

그뤼예르 성 입구에 있는 광장. 주변 건물들은 호텔 및 식당 그리고 카페.

스위스 제1의 도시 취리히. 로마시대 게르만인들과 무역을 위해 세관이 설치되면서 도시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첨탑의 도시 취리히. 인구가 약 40만 인 금융업이 번창한 도시. 프라이빗 뱅크의 강국. 프랑스 대혁명의 혼란을 피해 제네바로 대자본가들과 부호들이 자본을 이동시키면서 프라이빗 뱅크가 위세를 떨치기 시작했다고. 돈세탁이라는 오명을 피하고자 개인비밀계좌원칙을 없애고자 국민투표를 실시했으나 대다수가 반대했다나. 보관료를 내면서 은행에 돈을 맡기고 그 돈으로 다른 산업기반사업을 지원하면서 자본주의적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취리히..

취리히 호수로 흐르는 리마트 강. 강이 유속이 빠르고 맑다. 취리히 사람들이 강으로 나있는 계단아래에서 느긋하게 앉아 발을 담그거나 수영을 하고 있다. 그 정도로 맑다.

금요일인지라 5시에 문을 닫아 성페터 교회를 보지 못해 아쉬웠다. 유럽에서 가장 큰 시계가 있는 교회 1534년에 완공되었고 첨탑은 13세기에 만들어졌다한다. 1366년에 화재로 붕괴되었다고 1966년에 전자식 시계로 바뀌었다고 한다. 샤갈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정갈한 고딕 양식의 내부가 있다는 성당을 보지 못했다.


그로스뮨스터 대사원. 스위스 최고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 1519년 종교개혁가 성 츠빙글리가 활동하면서 구교성당이었던 곳이 신교교회로 바뀌었다고 한다. 자코메티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다는데 이곳도 내부는 보지 못하고 교회입구의 거대한 조각상들이 있는 문만 구경.

스위스 전통음식인 퐁듀. 소고기를 끓는 기름에 담가 익혀서 먹는다. 마치 샤부샤부 같다고나 할까. 맛은 글쎄. 우리나라에서 숯불에 구워 먹는 소고기 바비큐나 삼겹살보다는 어째 좀... 그리고 빵은 끓인 치즈에 담가 먹는다.

스위스 전통음식인 퐁듀. 소고기를 끓는 기름에 담가 익혀서 먹는다. 마치 샤부샤부같다고나 할까. 맛은 글쎄. 우리나라에서 숯불에 구워먹는 소고기 바베큐나 삼겹살보다는 어째 좀... 그리고 빵은 끓인 치즈에 담가 먹는다.

라끌레. 전기로 데워진 네모진 사각팬에서 치즈가 지글지글 녹으면 나이프로 부드럽게 나긋나긋해진 치즈를 긁어내 감자에 발라 먹는 음식. 의외로 맛있었다.

해발 2080미터에 있는 레스티 아이거 글리쳐 식당에서 먹은 피자. 화덕에 피자를 즉석에서 구워 햄처럼 생긴 소고기를 위에 탑핑한 피자인데. 맛있긴 한데 너무 마르고 딱딱한 소고기는 먹기가 거시기해서 걷어내고 먹었다. 열차 탑승시간을 맞추기 위해 서둘러 먹은 기억.

밀알인가 아님 다른 통밀. 아님 보리. 잘 모르겠다. 좀 특별한 샐러드.

알프스 산정에 피어있는, 6월에 가장 많이 볼 수 있다는 너무도 사랑스러운 야생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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