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은 언제나 현재를 사는 우리를 호명하고 우리가 끝내 답하지 못한 질문들과 마주하게 하면서 우리를 들볶는다. 때론 슬픔과 고통으로 그리고 회한으로 일상의 나룻배에 실려 정처 없이 떠내려온 삶을 잠시 멈춰 세우게 한다. 그리고 그 질문이 역사적인 진실이든 개별적 존재론적인 진실이든 우리의 허약한 양심을 들춰보며 너는 무엇을 들었으며 무엇을 보았으며 무엇을 생각했으며 그리고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아프게 질문한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 있는 자신을 들여다보게 한다.
문학은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의 작품이든 , 어렸을 적 끌적였던 구두상자에 쓴 시든, 아님 종이벌레에 좀먹은 수십 년 전 일기장에 자신만의 작은 심장으로 작고 삐뚤빠툴하게 두서없이 써 내려간 일상의 기록이든 실체를 입은 언어의 힘은 가늘고도 단단해서 우리의 삶을 다듬어가는 연금술사와 같은 힘이 있다.
한강을 읽는 것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그녀가 말한 것처럼 사랑에서 고통이 나오고 그 고통은 사랑을 증거하는 것이어서 일까 라는 질문에서 그 고통이란 " 세상은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상은 어떻게 이토록 아름다운가"라는 참혹함과 존귀함이 함께 존재하는 세상에서 결국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간들이 겪어내야 하는 근본적인 삶의 모순적 상황 때문이 아닐까.
한강은 말한다. 어렸을 적 구두상자에 넣어 둔 그녀의 일기장에 쓴 그녀의 시 한편에서 "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엇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 주는 금실이지."
삶을 살아내는 과정에서 겪는 고통과 모욕과 잔혹함을 결국 이겨내는 것은 인간에 대한 존엄함을 지키려는 힘, 다시 말해 사람을 이어주는 가늘고도 단단한 연대의 힘, 사랑일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녀는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에서 그간 출간되었던 책들에 대한 소회를 말한다.
<채식주위자>에서는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될 수 있는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걸 위해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그래서 그녀는 결국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은가. 생명으로 진실을 증거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한다.
두 번 영어번역본으로 읽어본 소설 < 희랍어 시간>에서는 영원처럼 부풀어 오늘은 순간의 빛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신의 가장 연한 부분을 보여준다. 인간의 가장 연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 그것으로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닌가. 이 덧없고 폭력적인 세계 한가운데에서.... 폭력은 측은지심으로 촉발된 연민으로 그 차갑고 두려운 벽을 조금씩 부숴가는 것 아닌가.
그녀는 채식주의자 이후 사랑으로 밝은 글을 쓰고자 했지만 그녀가 어렸을 때 경험했던 일이 또아리 처럼 심장에 남아 그녀에게 질문을 던진 광주의 대학살을 결국 외면하지 못한다. 그 질문을 비껴가고는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리라는 운명적인 깨달음이 아마도 그녀에게 광주의 이야기에 자신을 압도적인 고통으로 몰아넣게 했을 것이다.
한 젊은 야학교사의 일기"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라는 것이 잇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 마치 예수가 골고다 언덕을 올라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에 신에게 통곡했던" 주여 왜 나를 버리 시 나이까. 가능하면 이 독배의 잔을 거두어주소서.'라고 했던 장면이 연상된다. 그는 YWCA광장에서 살해되었다.
한강은 이 일기를 읽고"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자가 산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고통스럽게 매달려야 했을 것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고통을 품고 망각에 맞서는 사람. 작별하지 않는 사람. 평생에 걸쳐 고통과 사랑이 같은 밀도와 온도로 끓고 있던 제주 43 항쟁 피해자 중 생존했던 이의 삶을 들여다보며 묻는다. "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남는 것인가?" 왜 세상은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어떻게 이토록 아름다운가?"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에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 그 실에 연결되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말을 전한다.
" 이 세계에서 끝끝내 인간으로 남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가장 어두운 밤에 우리의 본성에 대해 질문하는, 이 행성에 깃들인 사람들과 생명체들의 일인칭을 끈질기게 상상하는 , 끝끝내 우리를 연결하는 언어를 다루는 문학에는 필연적인 체온이 깃들어있다. 문학은 읽고 쓰는 일은 생명을 파괴하는 반대편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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