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보건교사 안은영...친절함이 결국 이긴다

숨그네 2022. 4. 9. 11:27

정세랑 작가의 두번째 책을 읽었다. 친절한 사람들이 결국은 이긴다. 초능력과 유머로도 수습할 수 없는 일들이 되풀이 된다 해도 어쨌든 다시 한다. 쓸데없이 비장해지지 않으면서 하루 하루 경쾌하게 떄로는 에로에로 에너지를 발산하는 이들과 손잡고 우리곁에 늘 불청객처럼 따라붙는 파괴적인 에너지를 비비탄과 무지게 장난감 칼로 얍 하면서 제압한다. 우습지만 안심이되고 위안을 받는다. 늘 폭력적인 장소로 우리에게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느끼게 하는 트라우마의 온상지 학교에서 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단순히 이 소설은 "학교"를 소재로한 공포이야기로 슬쩍 미끄러지지 않고 식상한 학교 크리쉐를 벗어나지만 학교는 역시 억압적인 장소로 작동된다. 그래서 학교 지하실은 오래 묵은 폭력성과 경잼심들, 묵은 반목과 불명예와 수치의 잔여물들이 어둡게 누워있고 산자들 사이를 부유하면서 공격한다. 마치 억압된 무의식이 꿈틀대면서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르듯이 말이다. 첫째장, 승권과 젤리피시 혜연 그리고 보건교사 안은영과 그의 맑은 에너지원 장애인 한문교사 인표. 소심하지만 젤리피시라는 애칭을 얻은 혜연에게 사랑을 고백하려 하지만 부유하는 나쁜 기운의 가시에 찔리는 승권. 조마조마하게 이들을 응원하는 나...  인표와의 만남과 놀터의 명승지 여행을 마치 휘발유 급유라면 고급엔진오일 교체와 같다고 작가는 묘사하는데 씩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만땅으로 에너지를 충전해 주는 이들이 혹은 장소가 우리에겐 필요한 것이다. 학교창업자인 인표의 할아보지로 부터 받은 강력한 보호와 사랑은 인표에게 수호천사로 작동하고 그것으로 인영은 공격적인 원어민 교사 메켄지를 어김없이 비비탄총으로 인표를 보호한다. 오리선생 한아름은 또 어떠한가... 학교 교사중에는 늘 어눌하고 소외되지만 자신의 역할을 성실하게 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치적과 명성을 다른이들을 이용해서 쌓지는 않지만 아이들을 위해 작은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마치 아이들이 학교의 메라르고 딱딱한 교실을 벗어나 자유롭게 유영하는 오리를 보고 환호하듯이 슬쩍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가져다 놓는다.

세련되고 레디컬한 음악으로 사랑을 받는 조슈아장과 시설에서 입양된 가수 연에인 레이디버그와 그의 양엄마와의 이야기에서도 남편의 옛애인 유령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양엄마의 허깨비 환영을 물리쳐주면서 그저 세간의 게으른 오해와 편견을 넘어선다. 가로등 아래 김강선 에피소드는 칙칙해하지마라며 위로하는 혼령을 보내면서 오랫만에 조용히 우는 인영을 따라 마음속으로 묵직한 것이 느껴지며 속울음을 했다. 일찍 우리곁을 떠나간 어린 학생들..어른들에게 보호받지 못하고 위험한 알바로 생계를 유지하다 생명을 잃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늘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라고 말하지만 그 목소리에 힘이 없다. 전학생 옴  에피소드는 악귀를 잡는 은영과 사람들에게 들러붙어 가벼운 상처를 입히는 재수 옴붙은 것부터 크게는 목숨까지 앗아가는 옴을 떼내는 역할을 하는 전학생 백혜민.너무 고맙고 믿음직스럽다.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때론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주는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다. 여기서 선한 규칙도 , 다른 것보다 위에 두는 가치도 없이 살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특유의 탁함에 대한 은영의 견디기 힘듦을 원어민 교사 메켄지를 통해 보여준다. 탁해지지 않도록 날마다 조금씩 탁해질 수 있는 세상살이에서 자신을 어떻게 갈고 닦아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는 대목이다. 

온건교사 대흥 에피소드.. 익숙한 일이다. 더치커피처럼 더디고 차갑고 카페인이 없다며 그에게 퇴짜를 준 여자친구처럼 그저 치열하게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은 그였지만 교과서선정에서 합리적인 선택에 대해 무슨 정치적 편향의 결과물인양 터무리없이 빨갱이 아니냐고 공격하는 교장의 어이없는 낯박살에 그는 길을 잃어버리고 세피아색으로 앉아있는 학생들의 얼굴이 무한 반복되는 교실에서 밖을 나갈 수 없는 악몽에 시달리다 인영이 주는 화살표로 방향을 그려넣는 묘술로 겨우 악몽에서 헤어나와 제대로 세상에 대해 왜 역사은 오류없이 흐르지 못하나요. 왜 나쁜 사람들이 선거에서 뽑히나요 라며 묻는 학생들의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같이 고민하며 민감한 방식으로 설명하는 교사로 바뀌어간다... 

그렇다. 뒤에 오는 이들은 언제나 더 똑똑하고 아이들이 교사들보다 훨씬 나을 거다 라는 확신은 교사의 격무와 때로는 학교폭력이 주는 인간에 대한 회의와 실망을 넘어서게 만드는 힘이 있다. 마지막 장. 돌풍속에 우리둘은 안고 있었어

인영은 자기몸이 꼭 계획없이 막지어진 가건물이나 창고 같다고 느끼며 제 소유가 아닌 것들이 가득 들어찰때도 있었으나 간신히, 간간히, 겨우겨우 서있는 녹슨 슬레이트 건물같다고 느끼는 지점에서 갑자기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재앙적인 일들을 겪는다. 학교급식실의 세균성 이질 발생, 분노가 모욕이 아닌 충격을 겪게 한 장애인 인표 걸음 흉내내기, 동성애 커플들 구타,성추행과 어이없는 절도, 지적장애 학생을 받지 않겠다고 아우성치는 담임들, 이 모든일들이 소멸하는 태풍성으로 오지 않고 한꺼번에 모든 것을 박살내듯이 쓰나미로 온다. 원래 독은 혹은 불행은 한꺼번에 몰려든다. 결국 교비 밑에 마치 악귀의 부적처럼 만들어진 동굴에 그동안 허술한 틈을 타서 메켄지와 인표가 잠시 만난 데이트 상대가 키운 용을 물리치면서 둘은 따뜻하게 껴안는다. 

-어짜피 언젠가는 지게 되어 있어요. 친절한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을 어떻게 계속 이겨요. 도무지 이기지 못하는 것까지 친절함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괜찮아요. 안되겠다 싶으면 도망칩시다. (271쪽)

마지막 이 말이 주는 안도감과 위안은 뭘까.. 끝내 정의와 선함이 승리할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뒤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용감하게 전진합시다. 아마 이런 말을 했으면 도덕적인 우월감과 근거없는 결의로 마음이 무겁고 현실감이 떨어졌을 것이다. 그렇다. 가끔씩 뒷걸음치고 앞이 안보일 때가 있는것이다. 언제나 승리하거나 나아갈 수 는 없다. 겁쟁이여서가 아니라 친절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맞바람이 훨씬 세게 불어닥치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씩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숨고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우리를 매섭게 내몰지 않는 자신에 대한 친절함이 필요하다. 

정세랑 곁에서 누구의 말처럼 계속 얼쩡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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