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사회적 거리두기 끝.정치적 거리두기의 시작

숨그네 2022. 5. 3. 13:21

오늘 읽은 한겨레신문 오피니언란에 실린 글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끝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에 견줘 우리는 정치적 거리두기를 시작해야하지 않겠냐는 의미의 인상깊은 글을 읽었다. 

정치적 거리두기는 당연 정치적 무관심이나 냉소주의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어찌보면 무수하게 쏟아져 나오는 앵무새와 같은 정치평론과 무의미한 세평들, 편향적인 기득권바래기와 같은 소음을 멀리하고 좀 더 객관적인 거리를 확보해서

정치란 무엇인지, 후안무치의 정치꾼들의 행태들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치적인 반작용이 필요한지에 대해  한걸음 물러서 큰 호흡을 할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대사에서 역사적인 흐름을 막아서며 국민들을 호도하고 근현대사를 왜곡시킨 무리들에게서 정권을 빼앗아 그나마 잰걸음으로 조금씩 인본주의적인 민주주의로 나아가고 있는 것을 다시 후퇴시킨 현정부의 여러면들은 불을 보듯 뻔하게 예측이 가능한 것이었기에 선거결과가 발표되고나서 잠 못 드는 나날들을 참담한 심정으로 겪지 않았는가. 더이상 티비 뉴스도 보지 않고 시사채널도 멀리하고 그저 비정치적인 스포츠와 다큐만 들여다보거나 열린공감과 뉴스공장과 같은 유튜브를 보면서 간혹 힘을 얻고자 했다. 역사는 늘 진보적이지 않고 성공하지 않으며 늧줘지거나 뒷걸음치지만 더디게 앞으로 다시 나아간다. 그러기에 오랜 참음과 끈기, 진보적인 가치에 대한 포기하지 않은 열정과 견딤이 필요한 것이다. 다시 연대를 꿈꾸는 시민단체에 가입하거나 새롭게 시민단체를 결성하는것에 관심을 갖고 고민을 해야 할 일이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가 없다. 함께 공감하고 연대해서 지지기반을 굳히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분열된 개인들의 삶을 구제하는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조폭들의 나와바리(영역)싸움에서 그저 들러리로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노암촘스키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지켜보면서 " 핵전쟁과 같은 최악의 사태를 막을려면 푸틴에게 출구를 주는 추악한 해결책을 시도해야 한다"고 했다. 모든 전쟁은 그 명분이 아무리 선하다 하더라도 결국은 무죄한 다수의 국민들이 참혹한 희생을 치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무고한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추악한 협상"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모든 정책적인 결정이 결국은 소수의 정치엘리트와 절대 희생을 감수하지 않는 이기적인 기득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무죄한 다수의 국민들을 위해서 추악한 협상을 해서라도 그들의 생명과 인간적인 존엄성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가야된다는 의미로 읽힌다. 다수의 국민들을 떨거지로 생각하고 기본적인 국민들의 눈높이에 닿지도 않은 부도덕하고 몰염치한 행태로 수십억을 벌고 아이들과 교사들이 입시지옥에 허덕이며 공정한 입시제도라도 치뤄야 할 마당에 자신들의 제도적인 학벌세습을 위해 입시제도마저 불공정하게 자신들을 위해 좌지우지 입맛에 맞게 뜯어고친 자들이 이 정권의 요소요소에 포진하고 있다. 1퍼샌트도 안되는 기득권 세력들의 배부른 만찬을 위해 나머지 99 퍼센트들은 새벽부터 거친 손으로 식탁을 마련하기 위해 애쓴 꼴이다. 나는 무엇을 전향적으로 할 수 있는가. 그러기 위해선 개인적인 영역에서 가능한 일부터 다시 사유해야 할 일이다. 정치적인 거리두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