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47

무위에 대해

평화로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있네 봄이 오고 풀은 저절로 자라나네 얼마전 롤랑 바르트 의 마지막 강의를 띄엄띄엄 시간을 끌며 읽었다. 그의 글들은 시간속에서 시간을 잃게 하는 힘을 갖는다. 목적의식적으로 살아가는 실용적인 지식이 넘쳐나는 인터넷 세대에게 사유하는 힘을 얻기 위한 좋은 글감들이 그의 글에서 발견된다. 그의 글 중 무위에 대한 부분이 있다. 1. 생활속에서 가장 사소한 사건들을 위해 투쟁을 할 필요가 있다는 사소하지만 반복적인 확신. 2. 무위는 반사회적이다. 이해 시킬 수가없다. 처박히고 싶은 욕망. 3.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의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 책을 손에 쥐고 있거나 책을 쓰는 것을 꿈꾸지 않게 되면 바로 권테에 잡힙니다. 나에게는 참을 수 없는 것이다. -플로베르 ..

나의 이야기 2022.06.25

휴식에 대해....

「우리는 자신은 물론 남의 휴식에 관대하지 않다. 어릴 때 부터 쉴 틈 없이 공부에 매달리고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선행하여 무리속에서 또 잠을 줄이고 내달린 사람들이 이끄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특히 자기보다 낮은 처지인 사람들이 쉬는 꼴을 못 본다. 대학의 청소노동자들은 남의 눈을 피해 화장실 옆 비품 칸에 쪼들려 앉아 쉰다. 대기업 체인 제빵 노동자들이 점심시간 1시간을 편하게 쉬지 못하고 아파도 연차를 내지 못하고 아파트 경비원들이 에어컨을 설치하자 동대표들이 자기 허락을 받지 않았다며 철거하라고 한다. 인생이 붕어빵이라면 그 안엔 팥이 있어야한다. 그리고 그 팥은 휴식, 휴일, 휴가라 부르는 시간 동안만 자란다. 빵의 크기에만 집착하는 사회는 푸석한 밀가루만 날리는 기이한 공갈빵을 만들..

나의 이야기 2022.06.17

6월 속초에서

6월 가뭄으로 강바닥이 드러나고 흑두루미가 발을 적실 곳이 마땅잖아 해매일 무렵 이번 3월에 개통된 양양행 비행기를 여수에서 타고 훌훌 날아 강원도 속초엘 갔다. 비가 내렸다. 그래도 좋다. 설악산 준봉들을 비구름속에서 보면서 가슴이 먹먹하다. 늘 자연은 인간을 압도한다. 인간들에게 모욕적으로 주눅들게 만드는 압도감이 아닌 자신의 존재를 자연의 품안에 놓고 살포시 작게 엄마에게 안기게 하는 따뜻한 압도감. 1시간에 걸쳐 달려간 인제 미시령을 넘어 원대리에 있는 자작나무숲. 주차장 바로 앞에 놓여있겠지 생각한 건방진 나는 딸과 3킬러 긴 비포장 대로를 걷다 자작나무숲 안내글귀가 새겨진 구불구불 산길을 1킬러를 더 걷다 드디어 무슨 환영처럼 펼쳐진 자작나무숲을 갑자기 맞대면하면서 약간의 공포감에 휩싸였다. ..

나의 이야기 2022.06.11

여름으로 가는 갈대밭, 순천만

쨍쨍한 햇빛이 갯고랑의 물고리를 흐리게 하고 잠깐 외출나와 어슬렁거리는 칠게를 숨게하는 여름의 순천만. 청정한 여름갈대의 짙푸른 녹색의 명랑함이 철지난 갈대의 쓸쓸한 노곤함과 잘 어울려 아름답다. 세상사람들이 이러이러한 일이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연쇄의 마지막 고리라는 자리 덕에 가장 두드러진 고리가 되었다는 것만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카이사르가 루비콘강을 건너기 전 주저하는 사이에 어떤 나팔수가 지나가던 목동들의 피리를 뺏어 쨍쨍하게 나팔을 불자 그때 카이사르는 "자 강을 건너자. 주사위는 던져졌다. "라고 명령한다. 만약 나팔을 불던 그 이방인들이 옆에 없었다면 카이사르는 루비콘강을 건너지 않을 수도 있었다. 상황이 우리 기질의 도움을 받아 우리 모두의 계획을 짜준다는 것은 틀..

나의 이야기 2022.06.04

5월의 제주 여행- 혼자 있으면 더 다정해져

사람들의 생각의 틀은 왜 그리도 견고할까. 거푸집을 만들 때 사용되는 콘트리트처럼 생각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지 않을 경우, 아마도 더 딱딱해지는 것은 아닐까. 딱딱한 것이 부드럽게 흔들리는 것들, 그것이 바람이던 바람이 흔들어놓은 갈대이던, 땅에 누워있는 잡풀이던 상관없이 내가 한없이 부끄럽고 서러워지는 것은 이미 그 딱딱함이 우리의 내면을 잠식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음이다. 5월 새별오름을 오르며. 오름을 오르고 내리면서 앞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거친 숨소리와 뒤틀린 근육들의 힘겨움이 그대로 전달되면서 왠지 안쓰럽고 정답게 까지 느껴진다. 친절함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닐 것이다. 힘든 밥벌이의 일상을 벗어나 아무것도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으면서 그저 와서 쉴 수있는 품을 내어주는 대자..

나의 이야기 2022.06.02

서울을 걷다.도시인처럼 ( pretend it's a city)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제작 연출한 은 직설적인 비평가이자 휴머니스트인 뉴욕커 프랜 리보위츠의 일상을 따라가며 찍은 다큐다. 휴대폰 화면이 자신의 세계인양 내려다보며 걷는 뉴욕의 사이보거들과 달리 프랜은 뉴욕거리 바닥 구석구석 새겨둔 동판들을 유심히 내려다 보고 사람들을 구경하며 유유히 걸어다니는 예사롭지 않은 패셔니스타이자 자유인이다. 그리고 자신만의 속도로 도시를 유영하듯 걸어 다니는 방랑인이다. 그녀는 자신이 오랫동안 산 도시 뉴욕에 대한 삐꺽거리지만 굳건한 믿음과 애증이 있다. "Pretend it's a city where there are other peple who are not here just sightseeing who have to go to people." 지하철 역공사를 위해 역을 ..

나의 이야기 2022.05.23

어느 수집가의 초대 를 받다-불청객의 불편한 독백

5월의 서울 나들이라니.. 30여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명퇴 후 처음으로 5월에 서울 구경 3일 일정 중 둘째날에 들른 국립중앙박물관 별관. 고이건희 기증 컬랙션전에 갔다. 며칠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하는 이건희 걸랙션에 딸이 갔다가 1시간 넘게 줄을 서 지쳐 포기했다는 말을 듣고 온라인 예약을 하지 않은 터라 조마조마했지만 10여분 길지 않은 줄을 서서 12시 관람권을 사서 기증 컬랙션전을 관람할 수 있었다. 아침부터 부슬부슬 봄비가 내렸다. 고궁을 가든 아님 외국 유명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가든 언제나 내 마음 한켠을 불편하게 하는게 뭘까. 삼성재벌가의 비리 못지않게 천문학적인 자본력으로 수만점의 예술수집품들을 사모아 사회에 기증하는 것으로 한국사회가 들썩들썩. 그걸 보기 위해 아침부터 줄을 서고 인터넷..

나의 이야기 2022.05.22

우리의 혼자 -이문재

혼자는 바쁩니다 외롭거나 쓸슬할 겨를이 없습니다 혼자는 오늘도 모든걸 혼자서 다 하려고 정신이 없습니다 친구글 만나지 않는 것도 혼자 전기밥솥 예약 버튼을 눌러놓지 않는 것도 옛 애인 이름을 생각하지 않기로 한 것도 국가고시에 접수만 하고 시험장에는 안 가는 것도 미국 드라마 세편을 연속으로 보는 것도 혼자서 다 하느라 겨를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혼자는 자기가 혼자라는 걸 누구한테 들키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매번 자기 자신에게 발각 됩니다 의도하지 않아도 노출되고 맙니다 그래서 혼자는 더욱더 혼자이고 그래서 더더욱 혼자서 잘하려고 애를 씁니다 혼자 주변에는 온통 혼자입니다 혼자는 늘 혼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습니다 주의에 있는 혼자들도 다 알고 있지만 서로 다들 혼자이기 때문에 간섭하지 않습니다 오..

나의 이야기 2022.05.11

때죽나무 처럼..

때죽나무 5월이 가기전에 동네 야산에 피어있는 때죽나무 흰꽃의 향기를 놓치지않고 맡아 보기길... 장미처럼 심장 가까이를 급습하는 강한 향이 아니고, 봄철의 후레지어처럼 아련하게 기약없는 누군가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향도 아닌 그저 향기의 풍문을 쫒아 이리저리 코를 큼큼거리며 숲을 기웃거리면 저 멀리서 가지 끝에 수없는 종이 종처럼 매달려 '나 여기 있어요'라며 속삭이듯 손짓하는 귀여운 향기의 때죽나무. 줄기는 오래 씻지 못해 때가 올라 거뭇거뭇하지만 피부는 노각나무처럼 매끈하다.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하얗고 앙증맞게 피어있는 꽃이 내품는 가만가만한 꽃 향기의 유혹은 그냥 그 자리에 오랫동안 서서 서성이게 만든다. 꽃은 쪽동백나무와 많이 닮았고 5,6월에 핀단다. 꽃잎은 금새 땅바닥에 떨어져 밟기가 미안하다.

나의 이야기 2022.05.11

지리산 노고단 그리고...

살아가면서 고마워하는 일들이 많지만 그중 고마운 것은 우리보다 더 오랜 시간을 견디며 사시사철 젊음과 늙음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자연과 그 자연을 인간과 가깝게 하기 위해 대크를 놓고 위태로운 곳에는 난간을 만들기도 하는 노동자들이 제일 고맙다. 간혹 인생사가 허무하고 권태롭게 생각들 때면 창문너머 하루하루 높아져 가는 아파트 공사장에서 거대한 크레인과 함께 보이지 않게 개미처럼 새까맣게 타들어가며 피와 땀을 갈아넣어 노동하는 이들의 모습과 이렇게 울울창창하게 무심히 할일을 다 하고 있는 자연을 대하다 보면 한가롭게 권태와 우울을 느끼는 내 자신이 좀 부끄러워지고 다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다짐해 본다. 노고단 고개는 고맙게도 성삼재에서 왕복 6킬로 정도로 걸어서 두어시간이면 갈 수 있는 봉우리로..

나의 이야기 2022.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