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47

슈만, 클라라와 브라암스

"나는 당신에게 사랑으로 말하지 않은 모든 말들을 후회합니다."브라암스가 슈만의 아내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에 있는 말이다. 클라리넷 5중주곡 B단조의 슬픔과 애달픔의 곡조는 마음 속 깊게 자리한 그늘을 환하게 비치며 어두운 정서를 오히려 정화시킨다. 독일 함부크크 출신인 브라암스는 15세 때 넉넉치 않은 가정형편으로 제도교육을 포기하고 사사로 음악교육을 받는데 그의 음악은 경제적 음악적 지원을 태어나면서 부터 풍부하게 받은 부유한 귀족출신 멘델스존 음악이 갖는 명랑성, 쾌활함과 대조적인 쓸쓸함, 우수,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오늘은 오전에 브라암스를 듣는 여유를 갖고 있다. 라이마니노프 못지않게 좋아하는 음악가. 브라암스. 무엇보다 그가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그의 재능을 인정하고 지원해 주었던 슈만과의 ..

나의 이야기 2022.05.04

빙떡과 도너츠

제주 동문시장에 가면 십여년 전에도 포장마차에서 빙떡과 호떡을 파시던 곱디곱게 생긴 할머니들이 지금도 빙떡과 호떡을 파시고 계신다. 세월이 무색하리만큼 고운 얼굴빛과 야무진 손맛으로 빙떡을 빚어주시면 그 맛이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그저 좋아서 먹었던 추억으로 제주를 갈 때 마다 꼭 들르곤 했다. 이제 알아보니 빙떡은 매밀과 무로 만들어진 밀전병이다. 이효석의 매밀꽃 필 무렵이라는 작품에서 만난 매밀... 실제 제주를 비롯한 곳곳에서는 매밀꽃밭을 가꾸어 정원을 개방하기도 한다. 매밀은 강원도와 같은 척박하고 가문 곳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라 한다. 단백질과 식이섬유등 필수아미노산이 많이 들어있어 뇌졸증을 예방하는데 좋은 음식이지만 찬음식이어서 알레르기를 일으키기도 한단다. 예로부터 조상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

나의 이야기 2022.04.28

4월의 제주

베케( Veke) 서귀포 효돈로 생태정원 핀크스와 비오토피아 생태공원을 설계한 김봉찬님의 작품인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이국적 이름인 베케는 쟁기로 농사짓던 시절에 밭을 일구다 나온 돌들을 아무렇게나 밭의 경계에 쌓아놓은 돌무더기를 일컫는 제주방언이다. 제주의 지형적인 특성상 어디에나 있는 현무암돌들을 그저 자연스럽게 배치하고 이색적인 꽃나무들을 친구삼아 무심히 옆에 둔 정원은 인간의 삶에서 자연이 어떻게 함께 가야하는가 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닫게 만든다. 나무들 사이사이 놓인 글씨가 지워진 나무푯말과 혼자 앉아있고싶은 나무벤치들의 고적함. 정원입구에 자리한 지하를 활용한 비대칭 구조의 카페, 이끼낀 돌무더기 베케를 창밖으로 내다보며 앉아서 커피나 차를 마시는 인간들이 아름답고 정답게 느껴지는 일은 인..

나의 이야기 2022.04.26

나의 살던 고향은 ....

완도군 군래리 1구. 이곳이 내 유년을 보낸 동네이다. 너무 많은 것들이 개발의 물결에 휩쓸려가버렸지만 그래도 몇군데는 예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여름 장마가 거칠게 오면 바닷물이 초등학교 앞에 있는 다리를 넘어 낮은 지대의 집들을 침수시키곤 했다. 그러면 우린 살림살이를 포기하고 몸만 겨우 헤험쳐 나와 높은 지대인 군내리 3구로 도피해서 낯선 이들의 집에서 곁살이를 하다 비가 잦아지면 돌아와 황토물과 진흙으로 범벅이 된 이불이며 살림도구들을 씻어 햇볕에 말리곤 했다.이끼낀 돌담과 철문을 넘어 안마당을 훔쳐보며, 아 이곳이 우리 가족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이사했던 세번째 집이 아닌가 싶었다. 석권네 집. 대게 큰아이의 이름을 붙여 우리는 누구누구네 집 이렇게 불렀다.성미가 사나운 주인 아주머니에게..

나의 이야기 2022.04.10

코로나에 나포되다

코로나라는 기괴한 바이러스행 열차에 마지막으로 탑승하게 된 손님이 된 기분이다. 델타변이, 오미크론 변이니 이름마저 낯설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습격을 아주 요령껏 백신에 힘입어 피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어제 자가진단키트로 양성반응이 나오면서 한편으론 이제 나도 그 대열에 끼였구나 드디어. 언제 걸리나 하면서 불안하고 두려워했던 미증유의 심리적 불안정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았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론 마치 코로나를 피해 당당히 코로나 이전의 나의 몸 상태를 유지해야지 하는 자기보존적인 본능에 종지부를 찍은 아쉬움으로 초점이 앞다갔다 흔들리는 나침판같은 상태이다. 누구나 그렇듯 독감과 비슷하게 한기가 느껴지고 약간은 어지럽고 목젖 있는 곳이 두텁게 느껴지며 따끔거리는 증세. 나는 특히 렘슬립에서 약간의 환청과 ..

나의 이야기 2022.04.07

4월의 봄.. 그리고.

섬진강너머 송강마을 입구에 정겹게 앉아 있는 낮은 처마집의 봄은 애잔하다. 4월의 봄은 왜 이렇게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가. 4월은 잔인한 달임에 틀림없다. 아침신문에 아프게 읽은 박민규의 글 중 기울어가는 세월호에서 "아이들은 내 구명조끼를 입어"이렇게 말했다 한다. 그 누구도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는 그 배에서.. 아이들의 영혼은 아직도 맹골수도의 차가운 바다에서 제대로 인양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그리고우크라이나 카이우 부처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떼죽음으로 암매장된 곳이 발굴되어 그이들이 수습되었다 한다.수습되었다니. 사람이 어떻게 ... 답답하고 어지러운 마음으로 딸과 친구와 환성을 지르며 바람에 나부끼는 꽃잎을 바라보았다. 특히 강가에 피어있는 몸살 앓듯이 온통 연한 꽃잎들을 밀어내는 벚꽃무..

나의 이야기 2022.04.05

똘 순: 미래의 부재와 기억...

똘순이의 잠이 길어졌다. 우리곁에 머문지가 벌써 14년이라니.. 순이는 백내장으로 거의 앞이 보이지않아 자주 허공을 그냥 처다보고 있곤한다. 그리고 거의 귀가 들리지 않아 간혹 간식을 줄 때엔 하이톤으로이름을 불러야 그나마 소리의 향방을 가늠하고 두리번거리며 온다. 똘이는 가느다란 다리가 거의 바닷개의 다리처럼 휘어졌고, 등은 사막의 낙타등처럼 구부정하다. 둘다 젊었을 때의 때깔을 벗고 기름기가 빠지고 털은 헐거워졌다. 하지만 아직은 둘다 건강하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두녀석의 생태를 좀더 들여다 볼 시간들이 늘었다. 함께 더 오래 살 수 있기를.. 오래 전 장그로니에의 "어느개의 죽음"이라는 책을 읽었다. 언제나 그의 글은 누구의 말처럼 더이상 깍을 수 없을 정도로 정으로..

나의 이야기 2022.03.29

병원화단에 봄꽃을 심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라는 책에 중요한 기억의 기표로 나오는 과자 마들렌을 언제나 연상시키는 하얀 마가렛. 구절초와 개미취, 쑥부쟁이를 닮았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보라색 꽃 파라솔- 이름이 파라솔이라니 상상이 간다. 푸대접을 받지만 가장 화려한 색을 가진 꽃의 열대어, 팬지 .. 그런 자잘한 봄꽃들을 병원 작은 화단에 심으면서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겨우내 마싹 마른 흙을 모종삽과 호미로 파내어 거름흙과 뒤섞어서 모종꽃을 하나씪 파낸 곳에 심고 살짝살짝 뒤덮는데 손에 감기는 흙의 감촉과 냄세가 너무 좋아서 자꾸 웃음이 새어나왔다. 한뼘로 안되는 좁기좁은 곳에 생명들이 피고지고하는 것을 보는 즐거움이 이렇게 큰데, 농부들은 오직 할까.아무튼 흙을 만지면서 그곳에 자잘한 생명들을 가꾸면서 ..

나의 이야기 2022.03.28

3월 의 끝 무렵 남해

남해 아난티... 연거푸 코로나 오미크론 감염률이 갱신되면서 오늘도 주변인중 다수가 코로나로 인한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초 과학문명세계에서 전파만큼이나 빨리 확산되고있는 바이러스의 역습이 기후재앙의 신호탄이 되어 인류세에 강한 말기적인 메세지를 송신하고 있다. 어린아이들에게도 이제 코로나는 보통명사화 되었고, 마치 감기처럼 일상속에서 함께 살아가야하는 엔데믹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참 서글프지만 인류가 안락과 번영이라는 탐욕으로 혹사한 자연이 이제 더이상 안돼 라며 우리에게 아픔을 호소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코로나 이전의 세계로 회귀하는 것이 코로나를 극복하고 정상성을 탈환하는 것이 아닐 것임은 자명하다. 수없이 많은 지구인들의 죽음의 행렬과 가족과의 통렬한 이별, 그리고 대책없는 고립과 심리적 두려움과..

나의 이야기 2022.03.28